영화와 드라마에서 가장 부끄러웠던 남자 친구 12
저는 사랑을 믿어요! 다만 한쪽 귀에 주렁주렁 긴 귀고리를 하거나, 허리선이 한참 올라오는 바지를 입거나, 둘만의 순간을 보낸 직후에 제 눈을 들여다보며 경박하게 “헤이”라고 말하는 남자들과는 만나기가 어렵겠네요. 또 호텔 방이 아닌데도 실내 가운을 걸치고 돌아다니는 남자도 좀 꺼려집니다. 그런 게 무작정 싫다는 건 아니에요. 오래 함께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극복 가능할 사소한 것들도 있죠. 하지만 어떤 행동들은 때론 부끄럽게 느껴집니다.

샹테 조셉(Chanté Joseph)이 ‘요즘은 남자 친구 있다는 게 부끄러운 일인가요?’라는 최근 <보그> 칼럼에 적었듯, 그런 경험은 문화적인 의미에서 ‘루저가 된 듯한’ 기분이 들게 합니다. “파트너가 있다는 것이 더 이상 여성성을 확인해주지 않고, 성취로 여겨지지 않으며, 오히려 싱글이라고 선언하는 것이 과시적인 행위가 됐다’는 것이죠. 조셉은 또 이런 분석을 내놓았습니다. ‘한때 싱글이라는 것은 결국 고양이를 잔뜩 키우는 노처녀가 될 거라는 경고의 의미였지만, 이제 동경의 대상이자 바람직한 삶의 방식으로 바뀌고 있다. 애초에 여성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던 수백 년간의 이성애 동화에 마침표를 찍는 일이나 다름없다.’ 자, 어떤가요? 이런 말들이, 포스트잇으로 이별 통보를 하는 남자 친구, 혹은 주렁주렁한 액세서리 때문에 가는 곳마다 블링블링 반짝거리는 남자 친구를 사귀는 것보다 더 희망적으로 느껴지지는 않나요?
세상의 반이 남자이고, 좋은 남자들은 많습니다. 오래전부터 미디어에서 그렇지 않은 남자를 찾아내는 방법을 귀띔해주었을 뿐이죠. 영화와 드라마, 뮤지컬 등 대중문화에서 찾은 부끄러운 남친들을 소개합니다.
<섹스 앤 더 시티>의 잭 버거
중학교 영어 시간에 친구들을 통해 쪽지를 전달해 첫 남자 친구에게 이별 통보를 했던 제가, 캐리에게 포스트잇으로 이별 통보를 한 잭 버거를 비난하는 건 엄청난 위선이겠죠. 하지만 포스트잇을 빼더라도 그는 최악의 남자입니다. 애인의 성공을 보고 질투에 휩싸이는 남자 친구는 정말이지 끔찍하거든요. —줄리아 스톰(Julia Storm)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네이트 쿠퍼
머릿결이 비단결 같은 멋진 언니를 여자 친구로 두고도, 그녀가 고작 술자리에 늦었다는 이유로 분개하는 남자라니. 한심하네요! 많은 이들이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진짜 빌런’은 네이트라고 말했지만, 저는 네이트가 정말로 흔히 말하는 ‘빌런’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그 악랄한 찬사는 응당 미란다 프리슬리에게 돌아가야죠). 네이트는 그냥 좀 창피한 남자입니다. 빌런보다 그 편이 훨씬 더 별로예요. —데이지 존스(Daisy Jones)
<트와일라잇>의 에드워드 컬렌
일단 저는 <트와일라잇> 팬이 아니에요. 이 뱀파이어 영화가 처음 나온 2008년에 저는 <하이 스쿨 뮤지컬>과 잭 에프론에 더 열광했거든요. 그럼에도 에드워드 컬렌은 아주 부끄러운 남자 친구로 꼽힐 만한 유력 후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일단, 정말로 몸에서 반짝반짝 빛이 나잖아요. —한나 달리(Hannah Daly)
<민디 프로젝트>의 조쉬 대니얼스

민디 라히리의 남자 친구들을 쭉 나열하면 그 자체로 절대 만나서는 안 되는 남자 친구 리스트가 될 겁니다. 민디는 자신에게 해로운 남자들을 좋아하고, 그들을 계속 곁에 두려고 하죠.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민디를 부끄럽게 만든 그들의 행동이 정당화되지는 않을 거예요. 그들 중에서도 가장 악랄한 남자는 조쉬입니다. 민디에게 명령을 해대며 끊임없이 바람을 피우는 조쉬는 한마디로 정말 후졌죠. —모건 파고(Morgan Fargo)
<내가 예뻐진 그 여름>의 제레마이아 피셔

<보그> 편집부에서도, 인터넷에서도 이번 여름을 지배한 건 <내가 예뻐진 그 여름>이었습니다. 그 가운데 최악의 남자는 물론 제레마이아였고요. 처음에는 벨리를 놔두고 바람을 피우더니, 그녀에게 세계에서 가장 작을 법한 약혼반지를 사주며 이를 만회하려고 합니다. 또 벨리가 두 사람의 결혼식용 케이크로 자신이 꿈꾸던 ‘라즈베리 쿨리스 필링과 미러 글레이즈를 올린 2단 다크 초콜릿 케이크’ 대신 더 싼 초콜릿 케이크를 사려고 하자, 심술을 부리며 그녀에게 카카오 빈이 얼마나 섬세하고 복잡한지 장광설을 늘어놓죠. 벨리가 형을 선택한 건 정말 옳은 결정이었어요. —H. D
<오만과 편견>의 콜린스 씨

“당신에게 또다시 결혼하자는 제안이 들어올 가능성은 전혀 없소.”
콜린스 씨에게서는 수동 공격성이 엿보입니다. 그는 베넷가의 난로 옆에서 밤늦게까지 설교문을 낭독하는 남자이기도 하죠. 엘리자베스와 약혼 비슷하게 한 상태이기도, 혹은 그저 사촌일 뿐이기도 한 콜린스 씨의 망신스러운 점은 여자가 말하는 걸 가만히 내버려두지 못한다는 겁니다. 그는 꿩 대신 닭이라는 듯 엘리자베스의 가장 친한 친구와 결혼함으로써 망신살의 정점을 찍었죠. 자, 다음 남자로 넘어갑니다! —M. F
<해밀턴>의 알렉산더 해밀턴

남편이 사기 혐의를 피한답시고 갑자기 자신이 불륜을 저질렀음을 온 세상에 발표해버리는 것만큼 아내로서 창피한 일이 또 있을까요? 알렉산더 해밀턴은, 적어도 뮤지컬 <해밀턴> 속 알렉산더 해밀턴은 차마 얼굴을 들 수 없게 만드는 남자 친구들 중에서도 최고봉을 찍습니다. 그는 자기가 크게 파산했다는 멘트와 함께 일라이자에게 청혼합니다. 또 아내의 언니를 사랑합니다. 그러다 나중에는 이 두 사람을 놔두고 다른 여성과 바람을 피우죠. 아, 진짜 적당히 좀요. —리안 필립(Riann Phillip)
<추락의 해부>의 사뮈엘 말레스키

2023년 영화 <추락의 해부>는 남편을 살해한 혐의를 받고 여기에서 벗어나려는 여성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야기입니다. 법정에서는 이 여성의 삶, 그리고 부부의 관계가 마치 현미경을 들이댄 듯 조각조각 세세하게 밝혀집니다. 그 과정에서 남편 사뮈엘이 아내의 성공에 대해 마음 깊이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죠. 폭력을 용납하는 건 아닙니다만, 사뮈엘의 죽음은 어쩌면 자업자득일지도요. —R. P
<프렌즈>의 로스 겔러

나는 캐리일까, 사만다일까? 1990년대와 2000년대에 10대를 보낸 사람들에게 이 질문에 답하는 건 통과의례와도 같았습니다. <프렌즈>에서 가장 남자 친구로 삼고 싶은 사람을 고르라는 것 역시 그런 질문 중 하나였죠. 여러분은 셋 중 누구와 사귀는 걸 선택하셨나요? 재치 있는 챈들러? 아니면 마음이 따뜻한 바람둥이 조이? 그러나 사실 <프렌즈>의 남자들은 모두 끔찍합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부끄러운 남자 친구는 로스죠. (부풀려서 젤로 고정한 머리나 리얼리티 방송에 나올 것같이 새하얗게 미백한 치아처럼) 보는 사람이 민망해지는 허세는 둘째 치더라도, 비록 다른 두 친구처럼 겉으로 두드러지지는 않더라도, 로스가 보여주는 행동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제법 익숙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문법을 틀릴 때마다 지적하고, 레이첼이 자기 직업에 대해 속상하게 느끼도록 말하는가 하면, 남성 유모를 보고 기겁하기까지 합니다. 남성우월주의에서 딱 한 발짝 떨어져 있는 인물이죠. 이제 학생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어 문제가 되는 것만 남았네요. 아니 잠깐, 그것도 이미 클리어했군요? —조이 몽고메리(Joy Montgomery)
<가십걸>의 댄 험프리

토트백과 노트를 들고 다니는 이미지의 댄 험프리는 알고 보니 어퍼이스트사이드의 모두를 스토킹한 스토커이자 드라마의 해설자였습니다. <가십걸> 6개 시즌 동안, 그는 특권층을 비난하는 동시에 그 세상으로 침투했고, 자기가 싫어하는 여러 여자들과 동시에 데이트를 했습니다. 그리고 반전! 그는 사실 몇 년 동안 그들 삶의 가장 은밀하고 세세한 내용을 몰래 실시간으로 블로그에 올려온 가십걸이었죠. 한번 생각해보세요. 내 남자 친구가 알고 보니 ‘작가’가 되고 싶다는 미명하에 내 모든 것을 기록해왔다고요. 정말 외로운 남자로군요. —다니엘 로저스(Daniel Rodgers)
<퀸카로 살아남는 법>의 애런 새뮤얼스

레고 머리에서 완벽하게 다듬은 송충이 눈썹까지, 애런 새뮤얼스는 관념적인 면에서 2000년대 최고의 남자 친구였습니다. 하지만 20년(!)이 지난 지금 다시 보니, 우리가 황홀하다고 생각했던 그의 모습은 이제 짜증만 불러일으키네요. 플라스틱파의 우두머리와 사귀었으면서, 막상 케이디가 우두머리가 되고 싶어 하니 비난을 하다니요. 정말 짜증 납니다. 미적분을 가지고 맨스플레인을 하더니, 케이디가 아주 조금 레지나처럼 굴자 성질을 냅니다. 정말 창피합니다. 애런, 이 영화의 여왕벌은 바로 당신이에요. —J. M
<오피스>의 마이클 스콧

마이클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찍어두었던 섹시한 상사 잰이 자신의 애인이 되었다는 걸 믿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녀와 사귀게 되자마자 곧바로 관계를 망쳐버리죠. 잰은 공사를 구분해야 한다며 두 사람의 관계를 비밀에 부치고 싶어 하는데요. 글쎄요, 제가 생각하기에 잰은 사실 그냥 마이클을 참아주기 힘들었던 것 같아요. —R. P
* 해외 필진의 칼럼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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