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막의 여왕’ 김지미의 85년
원로 영화배우 김지미가 향년 85세로 별세했습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배우이자, 은막의 스타로 긴 전성기를 누린 그녀의 뜨거웠던 생이 막을 내렸습니다.

10일 영화계에 따르면, 김지미는 현지 시간으로 7일 미국에서 건강 악화로 사망했습니다. 장례는 미국에서 치렀으며, 한국에서는 따로 장례를 진행하지 않을 것으로 전해집니다. 대신 영화인들이 고인을 추모할 수 있는 공간을 따로 마련할 계획입니다.
‘한국의 엘리자베스 테일러’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김지미. 그녀의 영화 인생은 파란만장했습니다. 1940년 대전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란 그녀는 고등학교를 휴학하고 유학을 준비하던 중 영화감독 김기영에게 이른바 ‘길거리 캐스팅’을 통해 발탁됐습니다.
김지미는 1957년 <황혼열차>로 영화계에 본격 데뷔 후 도회적인 외모와 독특한 분위기로 인기를 얻었습니다. 멜로 영화 <별아 내 가슴에>로 스타로 떠오른 그녀는 1960~1980년대 전성기를 누리며 많은 작품의 크레딧에 이름을 올렸죠. <대원군>, <너의 이름은 여자>, <옥합을 깨뜨릴 때>, <잡초>, <토지>, <길소뜸>, <추억의 이름으로> 등 수백 편의 영화에 출연했으며, 그녀가 마지막으로 출연한 작품은 1992년 <명자 아끼꼬 쏘냐>입니다.
데뷔 후 1990년대까지 현역으로 활동한 김지미가 출연한 작품만 700여 편에 달합니다. 지난 2017년 기자회견에서 “아마 700편 이상에 출연했을 것”이라며 “700가지 인생을 살았던 만큼, 역할에 대한 미련은 없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녀는 여러 작품을 통해 백상예술대상, 청룡영화상, 부일영화상 등 여러 시상식의 여우 주연상을 휩쓸며 진가를 보여줬습니다. 배우 은퇴 후에는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을 역임하고, 제작사 ‘지미필름’을 설립해 7편의 영화를 제작하며 한국 영화계 발전에 힘썼습니다.

김지미가 인기를 얻은 건 아름다운 외모뿐 아니라, 그녀가 삶을 대하는 방식 덕분이기도 했습니다. 당시 보수적이던 사회 분위기와 달리, 그녀는 주체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일도 열심히 하고, 사랑도 자유롭게 한 ‘신여성’이었죠.
한 시대를 대표했던 배우, 김지미. 비록 그녀는 눈을 감았지만, 많은 이들의 가슴속에서 오래도록 살아 숨 쉴 겁니다.
- 포토
- Getty Images, 김상곤, 한국영상자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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