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코

파리의 하얀 집, 토리 버치의 새로운 안식처

2025.12.13

파리의 하얀 집, 토리 버치의 새로운 안식처

순백으로 물든 토리 버치의 새 안식처가 파리에 자리 잡았다. 지난 20년간 토리 버치를 견인해온 그녀에게 꼭 필요한 평화와 안식이 이곳에 있다.

토리 버치와 그녀의 남편 피에르 이브 루셀이 함께 꾸민 파리지앵 스타일의 집 거실. 한가운데 걸린 17세기 네덜란드 예술가 디르크 베인트락(Dirck Wijntrack)의 그림과 1921년 탄생한 프랑수아즈 질로(Françoise Gilot)의 자화상이 눈에 띈다.

“아직도 마음에 꼭 들진 않아요.” 토리 버치(Tory Burch)가 후드 아일릿에 가죽끈이 매달린 탄탄하고 여유로운 실루엣의 새틴 재킷을 걸치고 회의실로 걸어 들어오는 모델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녀의 양옆에는 버치의 의붓딸이자 부(副)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푸키 버치(Pookie Burch)와 버치가 2019년 남편 피에르 이브 루셀(Pierre-Yves Roussel)에게 CEO 자리를 넘겨주고 회장 겸 최고 크리에이티브 책임자(CCO)로 일하기 시작한 2020년부터 그녀와 함께해온 스타일리스트 브라이언 몰로이(Brian Molloy)가 앉아 있었다. 푸키는 재킷의 새틴 소재가 비단처럼 무거운 느낌이라 ‘임산부용 드레스’ 같은 느낌이 다소 나지만, 독특한 레이스 처리가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하지만 버치 마음에는 썩 들지 않는 듯 보였다.

파리의 새집 부엌에서 마주한 토리 버치.

모델이 옷을 갈아입기 위해 사무실을 나가자 버치는 조수에게 브랜드 아카이브에서 19세기 디너 재킷 사진을 찾아 화면에 띄워보라고 주문했다. “디테일 측면에서 묘하게 연관성이 있어요.” 토리 버치는 이런 식으로 과거의 것을 자주 재해석한다. 또한 주변 사람들을 새로움에 도전하도록 부추기거나, 동료들에게 영향을 받아 자신이 직접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경우도 흔하다. 모델이 이번에는 엉치뼈 부분이 주름 잡힌 바지를 입고 회의실로 들어왔다. “이건 좀 올리버 트위스트 같아 보이는데요.” 농담 섞인 버치의 말에 모델이 미소를 지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같은 건물에 있는 버치 사무실에서 다시 그녀를 만났다. 아틀리에와 쇼룸을 비롯해 복잡하고 큼지막한 공간이 많아 까딱하면 길을 잃게 생긴 여러 층으로 이루어진 건물이었다. 버치는 이제껏 많은 매체를 통해 어린 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지만 나를 위해 기꺼이 하이라이트 부분을 다시 언급했다. “아버지는 이렇다 할 직업이 없는 분이셨어요.” 버치가 나와 함께 사무실 소파에 자리 잡으며 운을 뗐다. 우린 태국 음식이 담긴 접시를 무릎 위에 아슬아슬하게 올려놓았다. 모든 행동이 거침없는 버치를 보니 나 역시 거리낌이 없어졌다. 그녀가 크림색 바지에 새우 팟타이를 올리고 균형을 잡을 수 있다면 나도 못할 건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바짓단 아래론 매끄러운 은색 힐이 얼굴을 내밀었고, 비둘기색 블레이저에 매치한 버튼다운 셔츠도 눈에 들어왔다.

버치가 가장 먼저 언급한 그녀의 어머니 레바(Reva)는 버드나무 가지를 엮어 센터피스를 만들고, 직접 만든 수세미를 말려 크리스마스 선물로 건네는 마사 스튜어트를 연상시키는 완벽한 안주인이었다. 펜실베이니아 밸리 포지 지역에서 버치 가족이 살았던 200년 된 집에는 침실만 15개가 있었다. 방마다 부모님이 벼룩시장이나 경매에서 사온 물건이 가득했다. 한때는 2만165㎡ 부지의 집에 셰퍼드 35마리와 고양이 6마리, 온갖 종류의 새와 거북, 오리를 키우기도 했다. 그곳에서 버치는 처음엔 지역의 퀘이커 학교에 다니다가 부모님의 권유로 사립학교인 아그네스 어윈 여학교에 입학했다. 이후 그녀는 펜실베이니아 대학에 진학해 미술사학을 공부했고, 한 학기 동안 여행을 다니며 사회봉사에 대한 꿈도 키웠다. 일에 대한 버치의 가치관은 대부분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것이다. “어머니는 제가 아는 이들 중 가장 바쁘게 사는 사람이고, 저보다 훨씬 에너지가 넘치는 분이세요.” 돈이 필요하면 스스로 벌어야 한다는 것 역시 그런 어머니의 가르침이었다.

대학을 졸업한 버치가 처음 취업한 곳은 모친이 즐겨 입던 우아하고 미니멀한 옷을 앞세운 조란(Zoran)이라는 동명의 유고슬라비아 출신 디자이너가 만든 브랜드였다. “그야말로 저, 조란과 그의 파트너, 뒤쪽에 있는 재봉실이 전부인 삶이었죠.” 버치가 회상했다. 그곳에서는 오전 10시부터 보드카를 마시기 시작했고(“조란은 라스푸틴 같았어요”) 조란은 자기 밑에서 일하는 직원이 화장기 없는 얼굴에 굽 낮은 신발, 짧은 머리라는 자신의 미적 기준을 갖출 것을 요구했다. 버치는 종종 상사가 숍 뒤쪽에 숨어 있는 동안 원치 않는 손님들을 정중히 돌려보내는 일도 맡았다. 그다음 직장 <하퍼스 바자>에서는 화보 촬영이 진행되는 방식, 제프리 빈을 포함한 모든 이를 성이 아닌 이름으로 제멋대로 부르면 안 된다는 것을 배웠다.

그리고 버치는 랄프 로렌, 베라 왕, 로에베를 거치며 패션계에서 커리어를 이어갔다. 그러다 1996년 성공한 사업가 J. 크리스토퍼 버치(J. Christopher Burch)와 결혼했다. 그에게는 푸키, 이지(Izzie), 루이자(Louisa)라는 어린 딸 셋이 있었고, 이들은 곧 버치의 딸이 됐다. 푸키는 햄프턴에 자리한 집 수영장에서 놀고 있다가 버치를 처음 만났던 때를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한다. “어떤 여자분이 우리 쪽으로 걸어오더라고요. 무슨 옷을 입고 계셨는지도 정확히 기억해요. 그러더니 저와 동생들에게 말을 거셨죠. 잘은 모르지만 ‘좋은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왠지 모를 안정감을 느꼈죠.” 버치는 이후 크리스토퍼 버치와의 사이에서 1997년생 쌍둥이 헨리(Henry)와 니콜라스(Nicholas), 2001년 소여(Sawyer)까지 세 아들을 출산했다.

기쁨은 컸지만, 갓난아이를 키우며 일하는 것은 녹록지 않았다. “남자들은 그렇지 않지만, 여자들은 이 지점에서 선택해야 해요.” 버치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하지만 한동안 전업주부로 지냈던 시간을 그녀는 좋은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다. “매일같이 테니스를 쳤어요. 사실 그런 삶이 꽤 만족스러웠죠.” 하지만 무시할 수 없는 사실이 있었다. 바로 버치가 잠이 별로 없으며 온갖 모험과 도전에 대한 아이디어로 가득한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그녀의 브랜드 토리 버치는 2004년 탄생할 때부터 다음과 같은 철학을 고수했다. ‘정원에서 수국을 돌볼 때도, 교외에 사는 엄마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마트에 갈 때도 즐겨 입을 수 있는, 여유와 세련미가 돋보이는 옷이어야 한다는 것.’ 갤러리 오너로 긴 시간 그녀와 우정을 나눠온 잔느 그린버그 로하틴(Jeanne Greenberg Rohatyn)은 브랜드 초기에 버치가 자기 아버지의 골프 스웨터를 보여준 일을 떠올렸다. “당시 버치는 예전 사람들이 컨트리클럽에서 즐겨 입던 클래식한 미국식 스포츠웨어라는 컨셉에 골몰하고 있었어요. 그런 틈새시장이 존재함을 간파하고, 합리적인 가격대의 브랜드를 만들고 싶어 했죠.”

토리 버치의 첫 투자자들은 주로 가족과 친구였다. 버치는 그들에게 “잃어도 괜찮은 정도만” 투자해달라고 했고, 그 결과 단 몇천 달러만 받은 경우도 더러 있었다. 그러나 그때도 버치는 더 원대한 목표를 위해 사업을 일궈나가겠다는 포부를 안고 꿋꿋이 전진했다. “초기 투자자 중 한 명과 마주 보고 앉아서 이렇게 말한 기억이 나요. ‘언젠가 자선단체를 세울 만큼 세계적인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고요. 그랬더니 그분이 ‘그런 얘긴 다신 하지 말라’고 하시더군요.” (2009년 공식 출범한 토리 버치 재단은 지금껏 여성 사업가들에게 200만 달러의 지원금을 전달해왔으며, 뱅크 오브 아메리카 등 굵직한 기업과 함께 운영하는 여신 프로그램을 통해 1억 달러 이상의 기금을 지원했다. 재단의 현재 목표는 여성 사업가들을 계속 후원하며 2030년까지 10억 달러를 더 기부하는 것이다.)

회사가 성장할수록 개인적인 삶과 직업적인 삶을 분리해야겠다는 욕구가 커졌고, 그 마음이 스스로를 폐쇄적으로 만들 때도 종종 있었다고 버치는 고백한다. 그러나 그녀가 프라이버시를 원한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크리스토퍼 버치와 오랫동안 이혼 절차를 밟고 있었기 때문이다. (둘은 이제 좋은 친구 사이다.) 사람들이 그녀의 지난날에 대해 가장 크게 오해하는 부분을 묻자 버치는 “쉽게 성공했다고 여기는 것”이라고 답했다. “사람들은 제가 모든 걸 쉽게 이뤘다고 해요. 하지만 일의 물리적인 양 자체가 엄청났어요. 매일 아침 8시부터 밤 10시까지 일에 매달렸죠. 새벽 4시에 쓰러지듯 잠들 때도 부지기수였고요. 더군다나 어린아이들을 키우면서 그 모든 걸 해냈죠.”

“여성이 더 적은 자원으로 더 많은 걸 해내야 한다는 생각, 그런 의식이 너무 당연했어요. 그에 대한 논의조차 하지 않았죠.” 버치 친구인 여성 사업가 겸 금융가 멜로디 홉슨(Mellody Hobson)이 강조했다. 버치 사무실에서 그녀를 만났을 때 버치는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이렇게 조수들이 세팅해준 냅킨을 옆에 두고 안락한 소파에 앉아 다이어트 콜라를 홀짝이며 불평을 늘어놓고 싶지 않다고 덧붙이면서 말이다. “제 말은 그러니까 이 회사를 지금의 자리에 올려놓기까지 정말 많이 힘들게 일했다는 거예요. 하지만 여성에겐 다른 잣대가 적용되죠.”

<포브스>에서 추산한 토리 버치의 지난해 매출액은 18억 달러에 이르며, 토리 버치는 어느덧 전 세계에 400개 매장과 13개의 글로벌 온라인 쇼핑몰 사이트를 둔 초대형 기업이 됐다. 버치가 초기 투자자들의 투자금을 완전히 상환한 것은 오래전 일이다. “덕분에 상황이 많이 바뀌었죠.” 버치가 간단명료하게 말했다. 물론 그녀가 최근 경험한 가장 큰 변화는 2018년 루셀과 결혼한 것과 2019년 루셀이 CEO 자격으로 토리 버치에 합류한 것이지만 말이다.

훤칠하고 말끔한 인상의 루셀은 우리가 버치의 뉴욕 사무실에서 만났을 때, 자신이 아내와 함께 일하게 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고 터놓았다. 파리에서 의사인 아버지와 심리학자인 어머니 사이에서 자란 그는 처음엔 금융업에 종사하다 곧 컨설팅으로 직무를 옮겼고, 그 후 LVMH에 합류했다. 그곳에서 그는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과 함께 일하며 인수 합병을 관리하고, 브랜드에 어울리는 창의적 인재를 연결하는 일을 도맡았다.

루셀은 파리 리츠 호텔에서 한 은행가와 미팅 겸 아침 식사를 함께 하는 자리에서 버치를 처음 만났다. 버치에게 호감을 느낀 그는 마음을 담은 편지를 건넸지만 회신은 없었다. 그 후 1년쯤 지났을 때 버치가 그를 패션쇼에 초대하면서 둘의 관계는 본격적으로 진전되기 시작했다. 이후 친구 이상의 관계가 된 두 사람은 꺼지지 않는 축하 행렬 속에서 결혼을 선언했다. 맨 처음 파리에서 리허설 디너가 열렸고, 생제르맹데프레 시청에서 결혼식이 거행됐으며, 미국의 저명한 원예사 버니 멜론(Bunny Mellon) 소유였던 부지를 근사하게 리모델링해 이슈가 된 안티과로 이동해 또 다른 파티와 예식을 줄줄이 이어갔다. 그 전까지 뉴욕과 파리를 오가며 생활했던 루셀은 결혼 후 여전히 LVMH에서 일하고 있었는데도 뉴욕 이주를 결심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결국 직장을 그만뒀다. 루셀은 이 시점부터 일과 가정의 경계가 흐려지기 시작했다고 고백한다. “아내가 계속 ‘이렇게 해야 할까?’ ‘저렇게 하는 것이 좋을까?’ 하면서 제 의견을 묻더라고요. 토리가 다른 사람을 데려와 일한다고 하더라도 주말 저녁마다 제가 집에서 브랜드 일을 관리해야 한다면, 차라리 제가 직접 하는 게 낫겠다 싶더군요.”

다니엘 카너먼(Daniel Kahneman)의 직언에 따르면, 버치는 ‘빨리 생각하는’ 타입이고, 루셀은 ‘체계적으로 사고하는’ 사람이다. 버치는 주로 밤에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반면, 루셀은 아침에 생각을 정리하는 것을 선호한다. “둘은 서로 자극하는 관계예요.” 버치의 오른팔을 자처하는 그녀의 의붓딸 푸키가 말했다. “사업 파트너나 부부로서도요.” 이런 역동적인 관계는 버치가 가까운 이들과 함께 일할 때 늘 추구하는 그림이다. 회사 창립 4년 뒤 입사해 이제는 최고 법률 책임자 겸 기업 개발 총괄 사장으로 일하는 버치의 남동생 로버트 아이센(Robert Isen)이 증언했다. “누나는 함께 머리를 맞댈 때 더 좋은 아이디어가 탄생한다는 주의지만, 늘 제 말을 듣는 건 아니랍니다.”(웃음)

루셀이 회사에 합류한 시기는 토리 버치가 더 과감한 디자인, 틀에서 벗어난 실루엣, 에지 있는 액세서리, 확장된 미니멀리즘을 추구하기 시작한 이른바 ‘토리상스’라고 일컫는 시기와 맞물려 있다. 우연찮게도 버치가 회사의 창의적인 방향성에 더 깊이 골몰한 때다. “우리가 특정한 것으로 유명해지니 사람들이 우리가 하는 다른 것들을 굳이 궁금해하지 않더라고요.” 버치가 설명했다. “그 결과 디자이너들이 틀에 갇히고 정형화되기 시작했죠. 하지만 이제 사람들은 그 너머를 원하고 있어요.”

루셀과 버치가 발산하는 시너지는 직업적 에너지의 궁합보다는 예술, 문학, 건축, 정치, F1 등의 다양한 공동 관심사를 바탕으로 한 삶의 태도에서 비롯된다. (맥라렌 이사직을 맡고 있는 루셀은 브래드 피트 주연의 영화 <F1 더 무비>가 재밌었으나 다소 늘어지는 감이 있었다고 언급했다.) “함께 이야기 나눌 만한 주제가 패션뿐이었다면 문제가 됐을 거예요.” 루셀의 말이다.

앙드레 드랭(André Derain)의 회화 ‘La Crêtoise’가 거실 책상 위에 걸려 있다.
버치의 친구이자 작고한 디자이너 로버트 카임(Robert Kime)이 소장했던 17세기 초 무명 예술가의 그림.

우리의 대화는 새로운 삶의 상징 그 자체인 파리에 안착한 그들의 근사한 새집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갔다. 루셀이 인생 대부분을 보낸 곳이자 두 사람의 활동 기반이며, 토리 버치의 새로운 미학을 위한 캔버스가 될 파리에 마련한 가족의 보금자리 말이다. 각각의 출입구를 갖춘 서향 건물 두 채와 뒤뜰로 구성된 이 집은 파리 추기경이 머무는 건물과 가까이 있다. (이 집은 60~70년 전 그 교회에서 분리되어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다 보니 정원에 서 있으면 종소리와 인근 학교에서 어린아이들이 놀며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흔히 들린다. 꼭대기 층에서 창밖을 내려다보자 단풍나무와 마르세유에서 공수한 감귤나무, 재스민과 덩굴 수국으로 뒤덮인 격자무늬 담장이 싱그럽게 어우러진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자수 실크를 씌운 루이 15세 시대 의자가 현관에 놓여 있다.
우르스 피셔의 ‘발레리나(Danseuse)’(2025).

이 집은 강렬한 색상과 다채로운 패턴, 중국풍 화병이 즐비했던 버치의 이전 집에 비하면 훨씬 절제된 미학을 품고 있지만, 파리 앤티크 숍에서 구한 아트 앤 크래프트 시대의 테이블, 벼룩시장에서 발견한 라리끄(Lalique)의 1920년대 펜던트 조명, 그리고 베냉 공화국 출신의 예술가 로뮈알드 아주메(Romuald Hazoumè)의 마스크 작품과 18세기 그림의 배치에서 여전히 버치의 세련된 감각이 엿보인다. “버치가 전에 추구했던 스타일과는 많이 다르죠.” 그녀와 여러 번 손발을 맞춰온 건축가 겸 디자이너 다니엘 로무알데스(Daniel Romualdez)가 설명했다. (버치는 새집의 구조 설계를 밀라노 기반의 스튜디오 페레갈리 사르토리(Studio Peregalli Sartori)에, 인테리어는 로무알데스에게 일임했다.) 로무알데스는 버치의 새로운 주문을 처음엔 어색하게 느꼈다고 회상했다. “한번은 이런 농담도 했어요. ‘우리, 이러다 서로 안 보는 거 아니야?’라고요. 하지만 끝내 서로를 이해하게 됐고, 그에 맞춰 작업하다 보니 가장 만족스러운 협업이 됐죠.” 침대 헤드보드를 감싼 천과 캐노피, 커튼, 새로 커버를 씌운 루이 16세 시대 의자는 버치가 역사적인 프랑스 직물 회사 르 마나크(Le Manach)의 아카이브에서 발견한 18세기 남성용 조끼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한 것으로, 프티 트리아농의 마리 앙투아네트 아파트에 대한 오마주다.

버치와 여러 번 손발을 맞춘 건축가 겸 디자이너 다니엘 로무알데스는 버치와 상의 끝에 웨인스코팅 시공으로 다이닝 룸에 입체감을 더했다. 가운데 보이는 그림은 안드리스 베이크만(Andries Beeckman)의 ‘바타비아 시장의 노점상(A Market Stall in Batavia)’.

그러나 집을 이루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집이 그들의 아이들과 손자들까지 다 함께 생활하는 집이라는 사실이다. “처음부터 그런 얘기를 자주 했어요.” 루셀이 재혼으로 완성된 그들의 대가족에 대해 이야기했다. “우리는 이것이 아이들과 손자들 모두에게 대단한 모험이 될 거라 여겼고, 그럴 거라 진심으로 믿고 있어요.” 집을 말하는 걸까? 아니면 결혼을 말하는 걸까? 루셀은 “둘 다”라고 답한다. “하지만 집이야말로 그 모든 것을 담아내는 그릇이죠.”

나는 기사에 실을 사진 촬영을 진행하기 하루 전, 버치의 집을 낱낱이 둘러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버치는 집에 들어선 나를 보고 손을 흔들었지만, 한 번에 열 가지쯤 되는 일을 차분히 처리하느라 분주한 상태였다. 멀티태스커라는 흔한 수식어로는 버치의 타고난,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효율적인 일 처리 능력을 다 담아낼 수 없을 듯했다. “토리에겐 성공한 사람들만 지닌 특징이 있어요.” 야니차 브라보(Janicza Bravo) 감독이 올해 멧 갈라에서 입었던 드레스를 버치와 함께 디자인한 그녀의 친구 라시드 존슨(Rashid Johnson)의 말이다. “연락하기 정말 쉬운 상대라는 뜻이죠.”

버치 자택에서 정원을 바라볼 때 보이는 풍경.
정원 위쪽으로 이어지는 계단에 어우러진 헐떡이풀, 이베리스 라벤더, 세이지 화분이 방문객을 환영한다.

이어 로무알데스가 도착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친구들을 대동한 정원 디자이너 매디슨 콕스(Madison Cox)가 (사전 언질 없이) 도착했다. 푸키가 여덟 명까지 앉을 수 있는 식사 테이블이 꽉 찼으니, 자신은 친구인 케이트 맥콜로(Kate McCollough, 디자이너 잭 맥콜로(Jack McCollough)의 동생이다)와 함께 나가서 따로 식사하고 오겠다고 말했지만 자리가 더 마련되면서 그 아이디어는 무산되었다. 정원 계단에는 헐떡이풀, 이베리스 라벤더, 세이지로 가득한 커다란 테라코타 화분이 줄지어 놓여 있었다. “토리는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에 대한 감각이 아주 칼같아요.” 콕스가 귀띔했다. “색상 팔레트도 전부 다 토리의 머릿속에서 나온 거예요.”

새집은 매디슨 콕스가 설계한 정원이 내려다보이는 두 개의 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곧 식사가 준비되었다. “이거 만든다고 하루 종일 부엌에 갇혀 있었어요.” 버치가 무심하게 볼멘소리를 했다. (그러나 버치가 하루 종일 혼자 요리한 건 아니고, 지원군이 있었다.) 가장 먼저 에어룸 토마토 샐러드가 나왔고, 뒤이어 스테이크, 아스파라거스구이, 얇게 썬 감자, 크리미한 빨간 소스를 얹은 대구와 홍합 요리, 블루베리를 곁들인 치즈 케이크를 디저트로 내왔다. 1년 중 낮이 가장 긴 날과 가까운 날이었기에 밤 10시가 다 될 때까지도 하늘에는 가냘픈 빛이 남아 있었다. 라벤더색 하늘을 배경으로 허리케인 램프 안의 촛불이 은은한 빛을 발산했다. 교회 종소리가 울리자 나뭇가지에 앉아 있던 비둘기들이 푸드득거리며 날아올랐다.

다음 날 아침, 신발에 커버를 씌운 사람들이 삼각대 위에 카메라를 세우거나 이 방 저 방을 분주하게 오가는 동안 버치는 지극히 차분해 보였다. “아주 평온한 상태예요.” 버치가 내 판단을 확증했다. “살면서 지난 7~8년만큼 일에 미친 듯이 매달린 시기는 없었던 것 같아요. 정말 정신이 없었죠. 여섯 명의 아이를 키우면서 사업을 하느라고요. 행복한 볼멘소리지만 정말 힘들었어요.”

자, 그렇다면 새로운 보금자리까지 완성된 지금, 버치는 이제 어디에 관심과 에너지를 쏟을 작정일까? 물론 디자인 일도 있지만, 여자라면 더 분발해야 할 영역이 있는 것 같다고 그녀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여자들이 전보다 더 능력 있고 자신감 있는 존재로 받아들여지지만, 또 한편으로는 전혀 그렇지 않기도 해요.” 버치는 이어 AI가 반여성적으로 설계되고 있다며 핏대를 세웠다. 아마 밤늦게까지 잠들지 못하고 신경세포를 활성화한 채 버치가 골똘히 생각하는 수많은 논제 중 하나인 듯했다. “버치는 여성을 외적으로는 물론 내적으로도 더 고양시키고 싶어 해요.” 홉슨이 이야기했다. 버치의 말이 홉슨의 주장을 뒷받침했다. “여성의 자신감이 흔들리고 있어요. 제 생각에 여성들은 지금 한 걸음 뒤로 물러선 것 같아요. 할 수만 있다면, 그 문제를 해결하도록 돕고 싶어요.” 이날 버치는 4시간 동안 나와 함께하며 가까운 과거와 먼 과거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지만, 그녀는 앞을 향해 가는 데 더 익숙한 사람처럼 보였다. “늘 고민해요. ‘뭘 더 배워야 할까?’” 진지한 고민과 감사하는 마음, 뼈를 깎는 노력으로 가득했던 그 모든 세월을 겪고도 버치는 여전히 자문한다. VL

    피처 에디터
    류가영
    Chloe Schama
    사진
    François Halard
    아트
    Urs Fischer Artwork: ©Urs Fischer. Courtesy of the Artist and Salon 94, New York
    헤어
    Michael Johnson
    메이크업
    Berta Camal
    프로덕션
    Kitten Production
    플라워
    Rana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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