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

파티시에 4인의 판타지가 담긴 ‘꿈의 케이크’

2025.12.13

파티시에 4인의 판타지가 담긴 ‘꿈의 케이크’

축하, 기쁨, 사랑, 염원··· 다채로운 감정을 겹겹이 쌓아 올린 욕망의 디저트. 지금 한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파티시에 4인에게 자신의 모든 판타지를 구현한 단 하나의 케이크를 〈보그 리빙〉이 의뢰했다. 과연 어떤 맛일까? 이제 당신이 상상력을 발휘할 차례다.

SUÈDE STUDIO 이영준

지드래곤, 톰 삭스 등 세계적인 셀러브리티를 위한 커스터마이징 케이크를 전담하며 세련된 감각을 입증해온 스웨이드 스튜디오(Suède Studio)의 이영준 대표. 테일러드 수트에 사용되는 고급 소재 ‘스웨이드’를 앞세운 이름처럼 정제된 감각으로 커스터마이징 케이크의 우아한 세계를 개척하고 있다. 케이크라는 매체를 통해 자신만의 미학을 확장해온 지난 여정은 트렌드보다 본질을, 화려함보다 솔직한 감정을 좇으며 거쳐온 시간이었다.

‘브라운 벨벳 케이크’ 암벽처럼 단단히 다진 브라운 아이싱 표면 위에 스웨이드 스튜디오의 시그니처 요소인 붉은 생화를 얹었다. 지난 10년간 파티시에로서 좌충우돌하며 성장해온 시간에 대한 진솔한 기록이자 그 과정에서 피어난 열정, 에너지를 상징한다.

돌고 돌아 13년 맨 처음엔 그래픽 디자인을 공부했지만 적성에 맞지 않았다. 그 후 카페를 운영했는데, 당시 케이크를 만들던 누나를 돕다 보니 자연스럽게 케이크와 가까워졌다. 스물다섯 살에 처음으로 나만의 케이크를 만들었고, 그렇게 13년이 흘렀다. 패션, 옷, 인테리어, 애니메이션, 음악, 요리, 식물, K-팝 등 다방면에 걸쳐 쌓아온 폭넓은 관심사가 케이크를 만드는 데 훌륭한 자양분이 된다.

미국식 뉴욕 여행 중에 본 거칠고 친근한 질감의 미국식 케이크가 오랫동안 가슴에 남아 있었다. 10여 년 전 처음 케이크를 만들 당시 국내 업계에서는 프랑스식이나 일본식이 주류였지만 그때도 나는 미국식 홈메이드 케이크의 투박함이 좋았다. 매끈하게 다듬기보다 손으로 매만진 흔적을 살리고, 장식보다는 구조를, 과시보다는 정직함을 택해왔다. 스케치에도 많은 시간을 들이지 않는다. ‘누가 먹을 것인가’ ‘왜 만들어야 하는가’라는 의문에 대한 답이 머릿속에서 정리되면 곧바로 작업에 돌입한다.

스웨이드 스튜디오의 정체성 예쁜 케이크를 위해 먹을 수 없는 재료를 사용하는 것은 지양한다. 케이크는 결국 음식이다. 새로운 재료나 형태를 시도하더라도 맛과 안전이 최우선이다. 색소를 최소한으로 사용하고, 단맛을 절제하는 이유다. 스웨이드 스튜디오가 꽃 장식으로 잘 알려지긴 했지만, 화려함과 기본기를 추구하는 것이 우리의 철학임을 잊지 않으려 한다.

더 특별한 케이크를 만드는 방법 선물 받는 사람과 행사의 취지도 고민해야 한다. 평소 작업할 때 케이크가 어떤 자리에 놓이는지, 누가 자르는지, 그날 조명이 어떤 색인지 디테일하게 상상한다. 단순히 근사한 케이크가 아니라 최고의 순간에 가장 부합한 케이크를 만든다.

완벽주의를 벗어나 작업할 때마다 늘 긴장한다. 매일 만드는 케이크지만, 누군가에겐 1년에 단 한 번 맛보는 것일 수 있다. 만들고 나면 늘 아쉬움을 느끼기에 다음 케이크를 빨리 만들기도 한다. 케이크를 만드는 것은 완벽하기보다는 새로운 과정임을 복기하며 작업한다.

TACHE 정이안

최근 르세라핌의 뮤직비디오에 등장해 눈길을 사로잡은 타셰(Tache). ‘열심히 노력하다’라는 뜻의 프랑스어 ‘Tâcher’에서 착안한 상호처럼, 감각적인 구조와 색채로 케이크의 색다른 미학을 제시하며 지난 1년간 부지런히 움직여왔다. 패션 디자인을 전공하고 공간 디자이너로도 활약했던 정이안 대표는 지난 경험을 바탕으로 비정형적인 형태와 과감한 컬러 팔레트를 실험하는 일에 거침이 없다. 화려함 뒤에 남는 것은? 정직한 ‘맛있음’이다.

‘생과일 마스카르포네 생크림 케이크’ 현실의 재료로 만들었지만 보는 순간 ‘과연 먹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낯선 케이크를 만들고 싶었다. 바나나와 키위 같은 트로피컬 과일로 시트를 샌딩해 풍성한 맛을 강조하고, 몽환적인 파스텔 톤 생크림을 곁들여 꿈과 현실의 경계가 흐려지는 듯한 느낌을 유도했다.

취미가 삶이 되다 패션 디자인을 전공한 뒤 한동안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일했다. 손으로 뭔가를 만드는 일이 좋아서 취미로 제과·제빵을 한 지 10년이 다 됐을 때쯤 타셰를 오픈하게 됐다. 마들렌과 쿠키처럼 작은 것을 만들다가 나중에는 케이크까지 만들게 됐는데 주변 친구들에게 선물한 케이크를 보고 주변에서 하나둘씩 구매 문의가 들어와 아예 직업을 바꾸게 된 거다. 상담, 재료 준비, 제작까지 모든 과정을 오롯이 혼자 도맡는 건 힘에 부치지만 마음만큼은 어느 때보다 평온하다.

무한한 팔레트 케이크에 적용할 수 있는 색의 한계란 없다. <보그 리빙> 촬영에서는 말끔하게 보이기 위해 블랙으로 입었지만 평소에는 컬러풀한 옷을 즐겨 입는다. 그런 취향이 케이크에도 고스란히 반영되는 듯하다.

더 특별한 케이크를 만드는 방법 케이크 의뢰서를 꼼꼼하게 읽는 편이다. 커스터마이징 케이크가 보편화된 지금, 손님들은 단순히 케이크의 형태나 색을 요청하는 것을 넘어 선물 받는 사람의 취향까지 상세하게 적어 보낸다. 의뢰서에 적힌 플레이리스트를 들으며 작업하는 것처럼 손님의 요구 사항을 자세히 살피다 보면 어떤 케이크를 만들어야 할지 자연스럽게 감이 잡힌다. 세밀한 시안은 필요 없다. 색과 질감, 높낮이 정도만 간단히 계획하고 이후엔 즉흥적으로 작업하며 형태를 잡아간다.

최고의 맛을 향하여 담백하게 달콤한 맛을 추구하기에 재료를 구할 때부터 심혈을 기울인다. 생크림이 가장 중요한데, 어떤 브랜드의 제품을 쓰는지는 비밀이다.(웃음) 잼과 콩포트도 직접 만들고, 한 조각을 먹었을 때 모든 레이어가 함께 느껴지도록 배합과 두께도 정교하게 조정한다. 그렇게 선보인 케이크에 대해 손님이 ‘예쁘다’보다 ‘맛있다’고 해줬을 때 정말 뿌듯하다. 케이크를 픽업하러 오신 분이 선물 받을 대상을 떠올리며 행복해하는 모습을 볼 때면 내가 하는 일이 결국 사랑을 전하는 일임을 실감한다.

BALANCE 강두식

서울 디저트 풍경의 급진적인 변화 속에서 발렁스(Balance)는 유행을 따르지 않고, 정통 프랑스 제과의 층위와 깊이를 견고히 유지해왔다. 발렁스의 강두식 파티시에는 그런 중심을 지키되 자신만의 감각으로 균형을 찾고자 묵묵히 제과를 탐구한다. 5년 전 성수에서 출발한 발렁스는 올해 안국역 근처로 자리를 옮겨 제과의 나라 프랑스에서 온 관광객부터 카페 문화를 애정하는 한국인까지 더 다채로운 손님을 맞이하는 중이다.

‘바나나 바닐라 케이크’ 모두에게 익숙한 식재료인 바나나를 더 향기롭고 정제된 방식으로 풀어냈다. 셰프 티에리 바마스(Thierry Bamas)가 만든 바나나 퓌레에서 영감을 받아 껍질이 검게 익은 바나나를 생크림에 24시간 동안 인퓨징했다. 그 결과 텁텁함은 전혀 없이 입안에 꽃 향만 은은히 감도는 산뜻한 케이크가 탄생했다.

디저트의 가치 디저트와 요리를 명확하게 구분하는 편이다. 요리가 생존을 위한 것이라면, 디저트는 욕망에서 비롯된다. 식사를 다 마친 뒤에도 여전히 허기처럼 남아 있는 감정을 달래는 것이 디저트의 역할이다. 꼭 필요한 건 아니지만 잘 만든 디저트는 기대 이상으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내게 디저트는 감정의 언어이자, 감각의 쉼표다.

발렁스의 정체성 균형 감각이 중요하다. 향과 질감, 온도와 형태의 균형이 잘 맞아야 한 입으로도 조화로움을 창출할 수 있다. 케이크의 층은 보통 세 개 이상. 각 레이어가 만들어내는 미묘한 향의 차이를 잘 어우르기 위해 하루 종일 저울질을 한다. 클래식한 틀 안에서 낯선 재료를 가미하고 조율하는 일은 늘 긴장되지만, 그렇게 완성한 한 조각을 소개하는 일은 커다란 기쁨이다.

클래식 오랫동안 사랑받은 디저트에는 지혜가 담겨 있다. 몽블랑이나 타르트 같은 디저트의 전통적인 형태를 사수하되 그 안에서 나만의 한 끗을 더한다. 예를 들어 발렁스만의 몽블랑을 만든다면 ‘하얀 산’을 뜻하는 몽블랑의 형태는 유지한 채 그 안에 들어가는 샹티이 크림과 머랭, 밤의 새로운 밸런스를 찾아내는 식이다. 새로움을 위한 새로움은 매력적이지 않다. 오히려 오랫동안 통용된 언어로 지금 시대가 원하는 맛을 재해석하는 것, 그것이 내가 제과를 하는 방식이다.

직관의 힘 디저트는 보는 순간 ‘어떤 맛일 것 같다’는 예감을 줘야 한다. 그 직관의 힘을 믿는다. 보자마자 어떤 재료가 들어 있는지 상상할 수 있고, 그 행복한 기대를 한 입만으로도 채워주는 케이크를 만들고 싶다. 이를 위해 먹을 수 없는 장식은 배제한다.

POLDMH 장다연

디저트를 시각예술 반열에 올린 브랜드 누데이크의 비주얼 베이커로 활약한 장다연 디렉터가 독립 후 서울 해방촌에 폴듬(Poldmh)을 열었다. 파격적이고 실험적인 디자인으로 누데이크에서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했던 그는 이제 대중성과 유머, 자신만의 감각으로 또 다른 흐름을 개척하는 중. 폴듬은 실험과 협업이 공존하는 공간이자, 누구나 들러 케이크를 맛볼 수 있는 카페형 오픈 스튜디오로 운영된다.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늘 도전해보고 싶던 라비올리 모티브를 가니시로 얹은 치즈 케이크. 설탕으로 만든 라비올리를 자르면 무지개색 스프링클이 흘러내린다. 한 입의 유머와 예상치 못한 순간, 폴듬에서 소개하고 싶은 케이크의 즐거움이 모두 담겨 있다.

든든한 내 고향 누데이크에서 보낸 지난 7년은 단연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였다. 좋은 인연을 많이 만났고, 디자인 감각도 단단해졌다. 다만 누데이크라는 브랜드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나만의 취향과 예술적 시도를 내려놓아야 하는 순간도 많았다. 트렌드를 선도하는 브랜드인 만큼 정신적 허기도 느꼈다. 어느 순간 ‘더 이상 꺼낼 게 없다’는 생각이 들어 퇴사를 결심했다. 어떤 일을 할지 궁리하다가 한동안 네일 아트도 배웠지만 결국 선택은 케이크였다.

새로운 인연, 엇박자의 시너지 케이터링과 케이크 주문을 받기 시작하면서 작업실이 필요했다. 카페 매니징과 베이킹 경력이 있는 언니와 함께 카페 겸 스튜디오 ‘폴듬’을 열게 된 계기다. 폴듬은 ‘폴리리듬(Polyrhythm)’에서 착안한 이름이다. 즉흥적인 나와 달리 차분하고 이성적인 언니와 서로 다른 박자로 하나의 리듬을 이뤄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로고와 공간 디자인은 누데이크 시절부터 함께 일하던 친구가 작업했다.

독립의 무게 메뉴 개발, 패키지 하나하나에 들어가는 비용이 만만치가 않다. 번쩍이는 아이디어를 든든하게 뒷받침해줄 시스템을 가진 누데이크에서 100만원짜리 재료도 과감하게 주문하던 시절이 그립기도 하다. 그에 비해 모든 걸 스스로 결정하고 감당해야 하는 지금은 현실적인 리듬과 균형을 찾아 움직이기 급급하다. 성격이 급한 편이라 예상치 못한 실수를 할 때도 많지만 다행히 언니가 곁에서 보폭을 조절해준다. 그러면서 우리만의 결을 다듬어가는 중이다.

폴듬의 정체성 과하지 않은 장난기. 위트와 귀여움을 곁들인 디자인을 좋아한다. 맛에 관해서는 지나친 단맛은 선호하지 않고, 케이크 하나를 당일에 다 먹어치우는 경우가 극히 드문 한국인의 성향을 고려해 하루이틀 뒤에 냉장고에서 꺼내 먹어도 맛있는 케이크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 첫입부터 마지막 한 입까지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케이크를 만든다. VL

    피처 에디터
    류가영
    유승현(프리랜스 에디터)
    사진
    조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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