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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모델 팔로마 엘세서의 대담한 타운하우스

2025.12.14

슈퍼모델 팔로마 엘세서의 대담한 타운하우스

팔로마 엘세서의 브루클린 타운 하우스는 대담한 선택과 의외성으로 가득하다. 그곳에서 이 슈퍼모델은 요람처럼 평온하고, 휴가처럼 달콤한 시간을 만끽한다.

1960년대 소나무 의자가 에토레 소트사스 테이블을 둘러싼 부엌. 어스 랜딩 프로젝트(Earth Landing Project)의 조명이 드리워져 있다. 테이블 위 화분은 코디 호이트(Cody Hoyt)가 디자인한 것으로 더 퓨처 퍼펙트(The Future Perfect)에서 구입했다. 벽에 걸린 그림은 테일러 시몬스의 작품. 대나무 발은 런던의 앤티크 전문점 조스 그레이엄(Joss Graham)에서 구입했다.

“여행을 미친 듯이 다니다 보면 집에 있는 게 휴가처럼 느껴져요.” 슈퍼모델이자 보디 포지티브 운동가로도 맹활약 중인 팔로마 엘세서(Paloma Elsesser)가 얘기했다. 그녀는 브루클린 자택의 부엌에 놓인 에토레 소트사스(Ettore Sottsass) 테이블에 앉아 있었고, 그 뒤로 테일러 시몬스(Taylor Simmons)의 거대한 그림이 보였다. 긴 촬영을 마친 그녀는 1시간 뒤 로스앤젤레스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공항으로 향해야 했지만, 새집에 관해 이야기하는 내내 활력이 넘쳤다. “이곳을 꾸밀 때 그런 것들을 많이 고려했어요.” 엘세서가 말을 이었다. “일에서 비롯된 피로감을 벗어던지는 안식처에 꼭 필요한 것이 뭘까 떠올려봤죠. 생기 넘치는 컬러, 가벼운 분위기, 저만의 취향 리스트가 생각났어요.”

거실에서 마주한 팔로마 엘세서. 드레스는 니클라스 스코우고르(Nicklas Skovgaard), 슬링백은 마놀로 블라닉(Manolo Blahnik), 귀고리는 소피 부하이(Sophie Buhai), 시계는 까르띠에(Cartier). 커스텀 제작한 소파는 슈마허의 벨벳 천을 덧댔고, 암체어에는 제노마니아(Xenomania)의 빈티지 숨바 이카트 원단을 씌웠다. 조지 모리슨(George Morrison)의 그림 양옆으로는 트랜스 룩스(Trans Luxe)의 커스텀 벽 조명을 설치했다. 빈티지 칵테일 테이블 위에 놓은 에나멜 구리 접시는 발렌티나 카메라네시 스그로이(Valentina Cameranesi Sgroi)의 작품. 바닥에 깔린 러그는 도리스 레슬리 블라우(Doris Leslie Blau)에서 맞춤 제작했다.
크리스 알보(Chris Albo)의 작품과 카스틸리오니(Castiglioni) 형제가 디자인한 플로스(Flos) 조명을 마주하는 현관.

엘세서는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 때문에 정신을 빼앗기는 삶 속에서 집은 모든 것을 치유해줄 수 있는 변함없는 안식처가 돼야 한다고 믿는다. 2015년 메이크업 아티스트 팻 맥그라스(Pat McGrath)가 인스타그램에서 발굴한 그녀는 그로부터 2년 뒤 글로시에의 누드 광고에 등장하며 큰 주목을 받았다. 몸매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급격하게 뒤바뀌던 시기에 패션계에 발을 들인 그녀는 펜디, 발렌시아가, 페라가모, 빅토리아 시크릿 등 여러 브랜드의 런웨이와 <보그> 표지에 등장하며 ‘잇 걸’로 떠올랐다. 그러나 그런 그녀의 인생 최대 목표는 많은 이들이 고개를 끄덕일 법한 그것, 바로 ‘내 집 마련’이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 어머니와 칠레계 스위스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엘세서는 로스앤젤레스 미드시티의 다세대 가정에서 성장했다. “조부모님은 아래층에, 우리 가족은 위층에 살았어요. 그러니까 제가 자란 집은 곧 제 어머니가 자란 집이죠.” 그녀가 때로는 혼잡하지만 활기 넘치던 어린 시절 둥지를 회상하며 미소 지었다. 엘세서가 자신만의 보금자리를 꿈꾸며 친구들과 가족이 언제든 편하게 머물 수 있고 역사가 깃든 공간을 찾아 헤맨 이유다. “젊은 혼혈 흑인 여성으로서, 역사적으로 흑인이 거주해온 지역에 정착하는 것은 당연한 선택으로 여겼어요.”

2021년, 엘세서는 브루클린 베드스타이 지역에서 1905년 지은 타운 하우스 한 채를 발견했다. 인근에 스케이트보더이자 음악가인 남동생 세이지가 살고 있는 동네였다. “위층을 둘러보기 위해 계단을 오를 필요도 없었어요. 그냥 알았죠. 삶에 대한 제 비전이 순식간에 확고해지는 것을 느꼈어요.”

현대미술관에서 볼 법한 에릭 N. 맥의 작품이 한쪽 벽을 완전히 뒤덮은 거실. 슈마허의 모헤어를 씌운 1960년대 요하네스 안데르센(Johannes Andersen) 소파가 피에르 프레이의 체크무늬 원단을 씌운 1970년대 베르나르 브뤼니에 의자 옆에 놓여 있다. 스피커는 프렌들리 프레셔(Friendly Pressure) 제품. 스피커 중간에 걸린 그림은 마고 버그만(Margot Bergman)의 작품.

엘세서의 비전은 지극히 개인적이면서 충분히 도발적이었다. “사람들이 제게 질문을 퍼부어주길 바랐어요. 그러면서 제게 실례를 저질러도 괜찮다는 생각이었죠. 누군가 ‘어째서 그런데?’라고 되묻는 것도 좋아요.” 그런 식의 비전으로 가득한 집을 위해 엘세서는 친분이 있는 그레고리 록웰 인테리어스(Gregory Rockwell Interiors)의 그레고리 록웰과 헤스터 호드(Hester Hodde)에게 연락했다. “우리는 비슷한 비전과 호기심을 공유하는 사이였고, 당연히 협업은 성공적일 것 같았어요.” 엘세서는 그 두 사람이 오랜 세월 방치된 낡은 건물을 현대적으로 완벽하게 살리면서, 자신만의 독창적인 미감을 매력적으로 반영해줄 거라 확신했다.

록웰은 “옛것과 새것을 연결하는 일이 핵심이었다”고 고백했다. 그는 건축 디자이너 헨리 보일(Henry Boyle)과 함께 주택의 순환 구조를 개선했고, 주방을 거실 층으로 옮겨 모든 방을 편안하면서도 세련미가 넘치도록 탈바꿈했다. “꾸준한 관리를 필요로 하는 타운 하우스를 현대적이고 흥미로운 공간으로 만들되, 본래의 개성을 잃지 않도록 주의했어요.”

필립 제프리스(Phillip Jeffries)의 코르크 패널을 두른 미디어 룸에는 애니멀 프린트 커스텀 소파와 파스칼 무르그(Pascal Mourgue)가 디자인한 리네로제(Ligne Roset) 의자, 나탈리 뒤 파스키에의 그림, 아르누보 스타일의 화분 스탠드가 우아하게 조화를 이룬다. 빈티지 벽 조명은 에르네스토 발라브레가(Ernesto Valabrega)의 작품이다.

엘세서는 새집을 위한 본격적인 영감을 밀라노에서 발견했다. 일 때문에 자주 드나들었던 이 도시에는 마르니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프란체스코 리소의 개성 넘치는 주택부터 1930년대 합리주의 건축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피에로 포르탈루피(Piero Portaluppi)의 빌라 네키 캄필리오(Villa Necchi Campiglio)까지, 매력적인 주거 공간이 차고 넘쳤다. “밀라노의 주택에는 마음을 울리는 우아한 개성이 깃들어 있어요.” 엘세서가 설명했다. 록웰과 호드는 색상과 석재, 가구, 패브릭 하나하나까지 신중하게 골라 마렐라 아녤리(Marella Agnelli)나 엘사 퍼레티(Elsa Peretti)가 머물 법한 공간을 창조해 엘세서의 영감을 구체화했다. 21세기적 혁신을 적절하게 가미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강렬한 개성이 돋보이는 석재를 사용한 욕실의 색채는 밀라노의 유서 깊은 빌라 네키 캄필리오에서 영감을 받았다. 벽에 바른 산뜻한 컬러의 페인트는 벤자민무어의 ‘컨트리 그린(Country Green)’.

이곳 거실은 고급스러운 직물과 세련된 가구가 어우러져 특유의 분위기를 내고 있다. 숨바 이카트(Ikat) 원단을 씌운 영국식 롤 암체어는 호화로운 올리브 그린 벨벳으로 장식한 아르데코 스타일 커스텀 소파와 마주하고, 맞은편에는 피에르 프레이(Pierre Frey)의 체크무늬 울 원단을 씌운 1970년대 베르나르 브뤼니에(Bernard Brunier) 의자가 차분한 매력을 뽐내고 있다. 록웰은 “취향 좋은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의자처럼 보이길 바랐다”고 언급하며 “1950년대 패브릭이 그런 느낌을 더해주었다”고 덧붙였다. 한쪽 벽에 걸린 에릭 N. 맥(Eric N. Mack)의 텍스타일 작품은 공간에 따뜻함과 무게감을 동시에 보태고 있다. 엘세서는 이 작품이 아름다운 이유는 “작가의 할머니 이름인 ‘메리’를 작품 제목으로 내세웠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풍성한 아름다움으로 꽉 찬 거실 층을 지나면 반짝이는 주방이 나타난다. 벤자민무어의 ‘레인포레스트 듀(Rainforest Dew)’ 컬러로 칠한 벽은 밀라노에서 가장 시크한 제과점으로 손꼽히는 마르케시의 사탕을 오마주했다. 원래 있었던 화려한 몰딩을 그대로 남긴 주방 한가운데에는 호주산 월넛과 에메랄드색 대리석을 정육면체로 다듬어 만든 육중한 아일랜드 식탁이 놓여 있다. 정육면체 형태의 의자가 아일랜드 식탁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주방 가전은 알루미늄 베니어 뒤에 감쪽같이 감춰져 있다. 호드는 다소 허술해 보이는 줄무늬 주방 타일을 가리키며 “약간의 엉뚱함을 더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주방에는 1969년에 프랑코 알비니(Franco Albini)와 프랑카 엘그(Franca Helg)가 디자인한 조명이 대리석과 월넛으로 제작한 아일랜드 식탁 위에 걸려 있다. 아일랜드 식탁에는 콜러 수도꼭지를 설치해 편의를 높였다. 벽에 바른 페인트는 벤자민무어의 ‘레인포레스트 듀’. 세라믹 화병은 제네퍼 호프만(Jennefer Hoffmann)의 작품으로 재클린 설리번 갤러리에서 구입했다. 벽에 걸린 아담한 그림은 마고 버그만의 작품이다.

엘세서의 타고난 절충주의와 호기심은 공간마다 예상치 못한 요소로 발휘되며 이 집의 미묘하지만 핵심적인 개성을 드러낸다. 그녀가 스스로를 ‘수집가’로 일컬으며 입을 열었다. “밀라노 디자인뿐 아니라 북아프리카의 이카트 원단과 말리의 도곤족 조각상, 가면 같은 것들을 정말 좋아해요.” 최근 모로코로 출장 갔을 땐 벼룩시장을 샅샅이 뒤져 투아레그 부족의 매트를 기어이 찾아낸 일화도 들려주었다. “새로운 도시에 갈 때마다 익숙한 음식을 먹기 위해 애쓰고, 다음 촬영이 시작되기까지 쾌적한 숙소에서 가만히 앉아 기다리는 스타일은 아니에요. 시간을 쪼개 지역의 개성을 느낄 수 있는 별장이나 디자인 공간, 쇼룸, 박물관 등을 찾아다니죠.”

호드가 말했다. “엘세서는 수년 동안 패션계에서 일하며 안목이 높아졌어요. 매우 까다로운 사람이 됐달까요?(웃음) 좋아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죠.” 일례로 엘세서는 미디어 전용 공간에 애니멀 프린트 소파를 두고 싶었지만, 반드시 세련된 것이어야 했고, 레오파드는 아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호드와 록웰은 슈마허(Schumacher)의 ‘제브르 에펭글레(Ze’bre Épinglé)’ 패브릭을 골라 섹시한 분위기를 연출했고, 코르크로 마감한 벽과 중국풍 칵테일 테이블, 나탈리 뒤 파스키에(Nathalie Du Pasquier)의 모던한 추상화를 매치해 미묘하게 여성스러운 느낌이 풍기는 피에르 베르제나 이브 생 로랑의 아파트 같은 분위기를 연출했다.

방마다 분위기는 다르지만, 록웰의 말처럼 모든 방이 분명 조화를 이룬다. 위층으로 올라가자 엘세서의 조용하고 호텔 같은 분위기의 침실에서 대리석과 거울, 월넛 패널이 신선한 심포니를 이루는 깔끔한 욕실로 이어졌다. 그 옆으로 여유로운 수납장 안에 방대한 의류 컬렉션을 감춰둔 드레스 룸도 있었다. 일본 아르데코 스타일 카펫, 실크와 사무엘앤선즈(Samuel&Sons)의 태슬로 장식한 펜던트 조명을 가리키며 록웰이 말했다. “그야말로 슈퍼모델의 드레스 룸이죠.”

어느 날 자신이 꿈꿔온 집에서 엘세서는 과거를 돌아보는 명상의 시간을 보냈다. “이 집에서 비로소 진짜 어른이 된 것 같아요.” 엘세서가 이야기했다. “이별, 계약, 금전적 자유와 스스로 내린 모든 결정 등 혼자 힘으로 헤쳐나가는 법을 배웠으니까요. 이제 누구의 통제도 받지 않아요. 무섭기도 하지만 아주 자유로운 기분이죠.” VL

    피처 에디터
    류가영
    Hannah Martin
    사진
    Frank Frances
    스타일리스트
    Aly Cooper
    헤어
    Sonny Molina(Streeters)
    메이크업
    Miguel Ramos
    아트
    ©Taylor Simmons / Public Gallery, London. Chris Albo / Long Story Short, ©Eric N. Mack / Paula Cooper Gallery, New York. Margot Bergman / Anton Kern Gallery, New York, ©Nathalie Du Pasquier, ©George Morrison Estate, Courtesy of the George Morrison Estate and Bockley Gallery, Minneapol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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