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만다 할레치가 베트남에서 발견한 치유와 변화
아만다 할레치가 치유와 변화를 위해 동쪽으로 떠났다. 베트남 하노이, 호이안, 다낭에 이르는 여정은 그간 알려진 것보다 좀 더 평화롭다.

갈리아노와 라거펠트의 뮤즈였고, 지금도 전 세계 <보그>를 위해 맹렬하게 일하는 아만다 할레치(Amanda Harlech)에게 베트남으로 가는 여정은 이른바 정화의 오디세이였다. 출발은 지리학과 점성술을 결합한 아스트로카토그래피(Astrocartography)였다. 이를 알려준 친구이자 작가, 편집자, 그리고 아스트로카토그래피의 안내자인 딜라일라 코모(Delilah Khomo)는 북극, 몽골, 루마니아, 스페인, 포르투갈, 베트남에서 내가 치유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물론 온전히 믿지 않지만 여행지 선정을 앞두고 이런 재미를 가미해도 나쁘지 않으니까.
딜라일라가 말한 곳 가운데 고민하다가 치앙마이와 런던 사이를 오가던 한 예술가의 말이 떠올랐다. “베트남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야.” 그가 말한 ‘아름다움’이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 그때 물어볼 걸 그랬다. 눈에 보이는 풍경 너머로 깊은 의미가 넘실대고 있음은 분명했고, 나는 자연스럽게 베트남에 이끌렸다.
부족 간 분열과 1당 지배 체제가 유지되는 이 복잡한 나라를 온전히 이해하긴 어렵다. 하지만 하나는 분명히 알았다. 진정으로 본다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너머를 느끼는 일임을. 딜라일라와 함께한 여정은 단순한 여행이 아니었다. 사원이나 성스러운 샘 깊숙이, 고대의 돌무덤에서 그녀는 보이지 않는 선을 따라 걸었다.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는 자비의 화신, 관세음보살을 찾는 것이었다.
인간의 절규를 듣고, 그 고통을 꿰뚫어 보는 존재. 꽃과 촛불, 축복을 기다리는 공물이 높다랗게 쌓인 제단 위의 관세음보살 앞에서 우린 고개를 숙였다.
16시간의 비행 끝에, 우리는 새벽 5시 30분 하노이에 착륙했다. 창밖은 안개로 가득했고, 흐릿한 시야 속에 땅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처음부터 아름다운 풍광을 기대했기에 약간 실망했다. 그것이 베트남이 준 첫 번째 교훈이었다. 예상하거나 예측하지 말 것.
우리를 맞이한 가이드는 다부지고 민첩하며 영리하고 따뜻한 사람이었다. 그는 끊임없이 의미가 재구성되는 다면적인 신앙과 조상 숭배에 대한 우리의 질문에 성실히 답해주었다. 그렇게 남서쪽으로 향했다. 물빛 수채화처럼 펼쳐진 산맥과 짙은 녹음이 감싸는 마이쩌우 계곡으로.
아침 출근 시간 수백 대의 오토바이와 트럭, 버스로 넘실대는 도로 가장자리 작은 카페에서 사골 육수를 우려낸 쌀국수 한 그릇을 먹고 차에 올랐다. 여전히 안개가 자욱하고 습했지만, 쌀국수 덕분에 기운을 차렸다. 앞으로 8일 동안, 우리는 수없이 많은 쌀국수 그릇과 사랑을 나눌 것이다. 닭고기나 소고기를 베이스로, 레몬그라스와 불에 그을린 생강, 약초와 향신료를 넣어 천천히 끓여낸 그 국물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었다. 그것은 정화이고 회복이었으며, 여행의 리듬을 되찾아주는 놀라운 순간이었다.
하노이를 벗어나 홍강을 건너, 우리는 시멘트 먼지가 자욱한 산길을 따라 올라갔다. 가파른 비탈 꼭대기에서 잠시 차를 멈추고 몸을 푸는데, 아래쪽의 초록빛 논이 눈에 들어왔다. 이곳은 호아빈성. 푸루옹의 산은 비와 강물에 깎여 환상 속 성채처럼 솟아올라 있고, 북쪽 전역을 흐르는 강줄기는 머리카락처럼 엉키며 흘렀다. 구름 사이로 하늘이 파랗게 스며들자 기분이 좋아지면서 대지가 노래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길가에 열린 상점은 색채의 향연이었다. 수백 개의 오렌지, 정성스럽게 피라미드처럼 쌓아 올린 수박과 석륫빛 용과가 진열대를 가득 채웠다..
우리는 메인 도로를 벗어나 붉은 흙길로 접어들었고, 야생화의 이름을 딴 아바나 리트리트(Avana Retreat)에 도착했다. 우리가 머무는 빌라는 야자수잎 지붕을 얹은 두 채의 오두막이었다. 오두막은 웃음지빠귀와 초록코초아 새소리가 가득한 숲속에 자리하고 있었다. 머리 위로 아시아산 야자나무칼새가 시원하게 날아갔다. 아바나 리트리트의 모든 공간은 풍(Pung) 폭포의 물줄기를 중심으로 세심하게 기획됐다. 폭포가 리트리트 곳곳에 소용돌이치며 만든 웅덩이에는 오리와 물고기가 가득했고, 주변 마을과 논밭에 물을 대고 있었다. 이곳에서는 섬세한 상호 의존과 소통이 눈에 띄었다. 리조트와 마을 사람들은 서로에게 기대며 공동체를 이루고 있었다. 아바나 직원 대부분은 인근 마을 출신으로, 현지 몽(Hmong)족 장인들의 손끝에서 전해지는 기술을 마음 깊이 존중했다. 딜라일라와 나는 아바나 리트리트의 그린 칠리 레스토랑에서 이른 저녁을 먹기 전에 주변을 탐색해보기로 했다. 두 개의 석호 사이, 수련잎 위에 떠 있는 듯한 그곳은 자연 속에 숨겨진 비밀의 정원 같았다. 우리는 종이처럼 얇은 보랏빛 부겐빌레아로 둘러싸인 좁다란 길을 따라 걸었다. 중국 인동덩굴과 플루메리아 향이 공기 중에 짙게 배어 있었다. 몽족의 전통 공예를 배울 수 있는 수상 가옥 박물관(Stilt House Museum)을 둘러보았다. 계단식 논에서 영감을 받은 클라우드 풀 수영장이 끝없는 하늘을 비추는 사이, 우리는 몸을 담글 수 있는 연못을 발견했다. 차갑고 어두운 물속에 들어가는 순간, 나뭇잎 사이로 스며드는 저녁 햇살의 따스함과 함께 신선하고 차가운 물이 전하는 재생의 감각을 온몸으로 느꼈다.
다음 날 새벽 5시에 눈을 뜨고 발코니에 앉아 부드럽고 따뜻한 공기를 마셨다. 숲속 깊은 곳에서 울려 퍼지는 수탉의 울음소리. 곧 새의 지저귐이 새벽안개 속을 휘감으며 메아리쳤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이곳을 떠날 이유가 없다는 것을. 지도 위의 좌표보다 내면의 풍경이 더 강렬하다는 것을. 신성한 연못으로 걸음을 옮기며 과거의 흔적이 씻겨 내려가는 것을 느꼈다. 잭프루트와 파파야나무 아래에는 치자와 히비스커스, 백합과 나팔꽃이 피어 있었다. 나는 가이드와 함께 산책에 나섰다. 고요함이 온몸을 적셨다. 암탉과 병아리 무리가 새까만 새끼 돼지들 사이를 질주하고 있었다. 물소의 방울 소리가 은은히 울렸다. 푸른 옷을 입은 노파가 넓은 연못의 물고기들에게 먹이를 주기 위해 바나나잎을 뜯고 있었다.
연못 속 두 개의 어두운 그림자가 가라앉은 배처럼 떠 있었다. 가이드는 그것이 관이라고 했다. 숲에서 끌고 온 나무를 깎아 만든 것으로, 가족의 죽음을 위해 물속에 보관해둔다. 그 순간 깨달았다. 이곳에는 삶과 죽음, 소멸과 탄생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고요한 순응이 흐른다는 것을.
다음 날, 우리는 대나무 삿갓과 순례자의 지팡이를 손에 쥐고 산으로 향했다. 동행한 삼림 관리원은 수백 년간 약용으로 쓰여온 식물과 나무를 하나하나 짚어주었다. 그가 가리킨 것은 건강에 좋다는 잎고사리, 잇몸과 치아를 튼튼하게 한다는 빈랑나무, 주황빛 꽃이 슬픔과 상실을 막아주고 여성의 건강과 생식력을 지켜준다고 전해지는 아쇼카나무였다. 삐걱거리는 대나무 문을 지나, 몽족의 산악 지대로 들어섰다. 가파르게 이어지는 오르막길을 걷다 보니 산등성이 아래 메마른 공터가 펼쳐졌다. 이곳에서 몽족은 지붕을 이는 풀과 카사바, 고랭지 쌀을 재배한다. 논에서 나는 쌀보다 단단하고 짠맛이 강하다. 내리막길에 있는 가이드의 아버지 집에 들렀다. 오렌지와 망고 조각이 나오고 톡 쏘는 녹차를 따라줬다. 현대적이면서도 깨끗한 수상 가옥의 서늘한 그늘 아래서 보낸 몇 분에 한없이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우리는 숲이 우거진 협곡을 지나, 논이 내려다보이는 절벽 위에 도착했다. 테이블 위에 점심이 차려져 있었다. 천재적인 셰프와 그의 조수가 준비한 식사는 그야말로 예술이었다. 철갑상어 필레, 닭고기와 라임, 바나나꽃 샐러드, 연꽃 모양으로 깎은 당근으로 장식한 보랏빛 고랭지 찰밥. 차갑게 식힌 사이공 맥주를 들어 올렸다. 이 모든 순간을 만들어준 자연과 셰프에게 건배를.
내일이면 떠난다는 사실을 깨닫고, 우리는 이 치유와 은총의 에덴으로 반드시 돌아오리라 다짐했다. 마지막 밤은 몽족의 산장에서 보냈다. 사방이 열린 공간에서 전문가가 강력한 정화의 힘을 지닌 사운드 배스를 이끌었다. 싱잉볼의 진동이 몸을 관통하며 울려 퍼졌다. 저녁 8시 30분, 우리는 잠자리에 들었다. 부드러운 빗소리에 눈을 뜬 나는 조용히 관세음보살에게 감사드렸다.
안개 속을 뚫고 긴 시간을 달려 하노이에 도착했다. 구시가의 녹음이 우거진 프랑스 식민지 시대의 대로에 자리한 호텔 카펠라 하노이(Capella Hanoi)는 프랑스 식민 시기(1901~1911)에 지어진 하노이 오페라 하우스의 예술가, 디자이너, 작곡가에게 바치는 아르누보식 오마주이자, 1920년대풍의 화려함을 완벽하게 담아낸 빌 벤슬리(Bill Bensley)의 걸작이다. 우리는 청록색과 검은색으로 옻칠한 듯한 아우리가 스파(Auriga Spa)에 몸을 던졌다. 손으로 그린 작약과 나이팅게일이 벽면을 장식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남쪽 다낭으로 날아갔다. 푸른 논과 바다 사이로 펼쳐진 도시, 잠든 신처럼 솟아오른 신비로운 섬들. 린응사(Linh Ung Pagoda)로 가는 길에 멀리 언덕 위 하얀 수직선이 눈에 들어왔다. 진실의 손가락처럼 선명한 그 형상은 바로 관세음보살이었다. 그 성소로 향하는 우리에게 길조가 따랐다. 이곳은 과거 어부들이 선짜반도의 모래톱에 떠내려온 불상 하나를 발견하고 사당을 세운 곳으로, 그날 이후 바다는 잠잠해졌고 관세음보살은 어부와 뱃사람들의 수호신이 되었다.
이 사당의 탑은 2004년에 세워졌지만, 높이 67m에 달하는 관세음보살의 존재는 경외감을 불러일으켰다. 관음의 시선은 몬순 아래 출렁이는 남중국해를 향해 있었다. 바다 자체가 인류를 대신해 절규하는 듯했다.

다음 목적지는 호이안 인근의 포시즌스 리조트 남하이(Four Seasons Resort The Nam Hai).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럭셔리하고 지적인 호텔이고 스파가 아닐까. 백사장이 펼쳐진 이 청정 해변을 따라 휘어진 옛 어촌의 윤곽을 그대로 살려 지은 호텔은 전통적으로 느껴지겠지만, 럭셔리한 디테일만큼은 21세기적이다. 우리 빌라는 바다를 향한 프라이빗 풀과 다이닝 룸, 빈틈없이 움직이는 집사까지 딸려 있었다. 바람에 휩쓸린 해변에서 파도를 쫓고 작고 흰 조개껍데기를 주웠다. 저 멀리 관세음보살이 무한한 희망의 등대처럼 우뚝 서 있었다.

포시즌스 리조트의 하트 오브 디 어스 스파(Heart of the Earth Spa)는 그야말로 감각의 정점이었다. 테라피스트는 크리스털 싱잉볼과 소리굽쇠를 쳐서 각 차크라 위에 올려놓더니, 크리스털과 생강을 등줄기를 따라 쓸어내리는 진동 마사지를 이어갔다. 스파는 연꽃이 흩어진 석호 위에 떠 있었고, 우리는 그곳에서 종이 등을 밝히며 대지에 고요히 작별 인사를 건넸다. 황혼이 밤으로 물들고 야자수가 바람에 바스락거렸다.

영적 깨달음은 다음 날 짬(Cham) 사원 유적지로 향하는 길에서 찾아왔다. 고고학자 쩐끼프엉(Trần Kỳ Phương)은 존경받는 샤먼처럼 우리의 길잡이가 되어주었다. 그는 심각하게 방치된 데다 미군의 폭격까지 맞아 훼손된 유적을 묵묵히 되살려왔다. 사원 단지로 이어지는 오솔길 아래 작은 박물관에는 4세기부터 13세기에 걸친 초창기 힌두 문자판이 총탄에 파인 자국과 함께 소장되어 있었다. 샤이바(Shaiva) 힌두 사원들은 한때 짬파(Champa) 왕국의 종교 수도였다. 불에 구운 벽돌로 쌓아 올린 사원, 신성한 아치형 공간을 지나 정화된 몸으로 신의 형상 혹은 요니-링가가 놓인 제단으로 향하던 순례자의 발걸음이 느껴졌다.

이곳의 에너지는 실로 경이로웠다. 일곱 개의 성소에서 일곱 개의 별을 숭배하는 곳. 태양, 달, 화성, 수성, 목성, 금성, 토성의 신들에게 바친 각각의 사원은 우주의 기운을 품고 있었다. 바로 이 에너지를 느끼기 위해 베트남에 온 것이다. 딜라일라와 나는 말없이 서 있었다. 우리 모두를, 시간 그 자체를 초월하는 힘 앞에서 겸손해졌다. 우리는 달빛이 비칠 때 다시 이곳을 찾겠노라고 약속했다.
베트남 여행은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 변화의 순환은 보름달이 차고 기울고 다시 태어나는 것과 같다. 베트남은 달을 중심으로 살아간다. 성스러운 날은 음력에 따라 정해지고, 선과 불교, 힌두교, 그리고 고대 조상 숭배의 전승이 태피스트리처럼 촘촘히 이어져 있다. 이곳은 피할 수 없는 운명처럼, 그러나 우아하게 현재와 미래를 향해 나아간다. 미신의 향기를 머금은 이 땅에서는 오랜 상처를 간직한 망령조차 북소리에 실려 증발한다. VL
- 피처 디렉터
- 김나랑
- 글
- Amanda Harlech
- 사진
- GettyImagesKorea, Courtesy of Avana Retreat, Four Seasons Resort The Nam H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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