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최고의 영화 11편
2025년 최고의 영화는 무엇일까? 미국에서는 지난 4월, 라이언 쿠글러 감독의 <씨너스: 죄인들>이 개봉해 박스오피스를 살려냈다. 늦여름과 가을에는 오스카 경쟁작들이 줄줄이 등장해 치열한 시상식 시즌을 예고했다. 다만 일부 평론가들은 폴 토머스 앤더슨의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가 이미 오스카 레이스에서 압도적으로 앞서간다고 말한다. 글쎄, 과연 그럴까?
올해 관객의 눈을 사로잡은 영화들은 규모와 장르, 소재 모두 폭이 넓다. 한정된 공간에서 밀도 있게 전개되는 실내극부터, 눈물(혹은 스트레스성 식은땀)을 닦을 휴지가 필요할 만큼 과감한 시대극까지. 미국 영화도 있고, 노르웨이·이란·브라질에서 온 영화도 있다. 그리고 어떤 작품은 당신이 무엇을 가장 두려워하느냐에 따라, 꽤 오래 악몽으로 남을지도 모른다.
아래에 소개하는 작품들이 2025년의 ‘가장 큰’ 영화는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모두 조명받을 가치가 있다. <베니티 페어> 편집부가 알파벳 순으로 정리한 ‘2025년 최고의 영화들’이다. 올해는 10편에서 멈추는 게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총 11편이다.
<블루문(Blue Moon)>

감독: 리처드 링클레이터
출연: 에단 호크, 앤드루 스콧, 마거릿 퀄리, 바비 캐너베일
시놉시스: <비포 선라이즈>, <보이후드>를 연출한 리처드 링클레이터가 시대극 역량을 제대로 펼친 작품. 브로드웨이 작사가 로렌즈 하트의 전기 영화로, 리처드 로저스와 오스카 해머스타인 2세가 만든 뮤지컬 <클라호마!>의 초연 무대가 배경이다.
<오클라호마!>가 세상에 공개된 날의 이야기가 영화 한 편을 만들 만큼 드라마틱할 거라고 누가 상상했을까. 이야기는 거의 실시간으로 진행된다. 에단 호크가 연기한 알코올 의존증 작사가 로렌즈 하트는 ‘좋았던 시절’을 회상한다. 과거 그는 작곡가 리처드 로저스(앤드루 스콧)와 함께 브로드웨이의 스타로 살았다. 지금 로저스는 로렌즈 하트를 떠나 새 파트너와 만든 뮤지컬에 대한 언론의 평가를 기다리는 중이다. (1943년의 결과를 말하자면, 대호평이었고 로렌즈 하트는 그만큼 더 쓰라렸다.) 영화의 규모는 작지만, 배우들의 연기는 탁월하다. 에단 호크는 엄청난 기세와 처량한 기색을 동시에 지닌 로렌즈 하트를 정확히 잡아낸다. 한때 위대한 예술가였던 사람이 태연한 얼굴을 하려고 애쓰는 순간의 안간힘이 느껴진다. 앤드루 스콧이 연기한 리처드 로저스는 기세등등하고 거만하지만, 동시에 공감 가능한 다층적 인물로 그려진다. 두 배우의 섬세한 연기는 ‘프로페셔널한 결별’이 로맨틱한 이별만큼이나 고통스러운 사건임을 보여준다. —크리스 머피
<프렌드십(Friendship)>

감독: 앤드루 드영
출연: 팀 로빈슨, 폴 러드, 케이트 마라
시놉시스: 좌절감에 빠진 감정적으로 무감각한 남자가 ‘멋진 새 이웃’과 친구가 되기를 갈망한다.
팀 로빈슨은 미국 <SNL>을 통해 얼굴을 알린 코미디언이자 배우다. (팀 로빈스와 헷갈리지 말자.) 그가 구사하는 유머의 특징 중 하나는 ‘비호감’이다. 그의 팬이 아닌 사람에게는 이 영화도 ‘비호감’일 가능성이 크다. 독특하지만 민망하고, 난해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옛날 같았으면 10대 소년이 하루 종일 대사를 따라 했을 영화인데, <프렌드십>은 그처럼 바보 같아 보이는 지점이 오히려 장점이자 매력이다. —힐러리 부시스
<햄넷(Hamnet)>

감독: 클로이 자오
출연: 제시 버클리, 폴 메스칼, 에밀리 왓슨, 조 앨윈
시놉시스: 윌리엄 셰익스피어와 아내 아그네스의 관계를 상상하며 사랑·상실·비탄을 탐구한다. 아이를 잃은 비극은 어쩌면 <햄릿>에 영감을 주었을지도 모른다.
작가 매기 오패럴은 2020년 소설 <햄닛>으로 사랑과 상실의 이야기를 완성했고, 감독 클로이 자오는 이를 아름다운 영화적 체험으로 바꿔놓았다. 자오 특유의 사색적이고 신비로운 연출 스타일이 촘촘히 스며들며, 어머니의 파괴적인 슬픔과 그 슬픔을 창작의 동력으로 이끄는 아버지의 모습을 포착한다. 제시 버클리가 연기한 아그네스는 날것의 감정과 취약함으로 가득하다. 이야기는 눈물 버튼을 확실히 누르지만, 마지막에 이르면 슬픔의 껍질 속에 숨겨진 희망과 치유의 빛을 보여준다. —레베카 포드
<그저 사고였을 뿐(It Was Just an Accident)>

감독: 자파르 파나히
출연: 마리암 아프샤리, 바히드 모바세리, 에브라힘 아지지, 하디스 하바텐, 마지드 파나히, 모하마드 알리 엘리아스메르
시놉시스: 이란의 한 정비공이 과거 자신을 괴롭힌 교도소 간수로 보이는 남자와 마주친다. 그는 그 남자를 납치하고 옛 수감자들을 모아 ‘그 사람’이 맞는지 확인하려 한다. 테헤란 시내를 밴으로 돌아다니는 동안, 이들은 진실을 위해 어디까지 갈 것인지라는 도덕적 딜레마와 맞닥뜨린다.
올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이 영화는 ‘톤’의 마스터클래스다. 긴장감 넘치는 심문 장면이 갑자기 슬랩스틱 코미디로 전환되며, 웨딩드레스를 입은 여자를 포함한 무리가 밴을 밀고 거리를 내려간다. 다른 감독이었으면 이 장면은 어색하게 붕 떴을 텐데, 자파르 파나히는 두 가지 톤을 매끄럽게 엮어 트라우마와 일상에 대한 깊은 성찰로 이끈다. 영화감독으로 살아오며 이란의 감옥을 들락날락했던 파나히는 관객을 도덕적 여정으로 데려가되, 결코 설교처럼 느끼지 않게 한다. 놀라운 점은 이 영화가 ‘숨긴 핸드헬드 카메라’로 비밀리에 촬영되었다는 사실이다. —존 로스
<마티 슈프림(Marty Supreme)>

감독: 조시 사프디
출연: 티모시 샬라메, 기네스 팰트로, 오데사 아지온, 케빈 오리어리, 타일러 오콘마
시놉시스: 1950년대 뉴욕. 탁구 챔피언이 일본에서 열리는 경기에 필요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 미친 듯이 도시를 뛰어다닌다.
2019년 영화 <언컷 젬스>가 당신에게 위궤양을 안겨줬다면, 이번엔 제산제를 준비하자. 형제인 베니 사프디 없이 조시 사프디가 처음 단독으로 연출한 영화로, 더 크고, 더 길고, 스트레스가 더 심하다. 물론 칭찬이다. 티모시 샬라메는 자신의 능력을 또 넘어선다. 그가 연기하는 마티는 재능 있는 운동선수지만, 속에는 사기꾼의 심장과 끔찍할 정도로 자기 파괴적인 불운이 함께 내재한다. 영광을 위해 벌이는 ‘무리수’의 연속을 보며 관객은 입을 벌리고 찡그리기를 반복할 것이다. 사프디 감독은 정확한 프로덕션 디자인과 베테랑·신인으로 빽빽하게 채운 캐스팅으로, 중세기 맨해튼의 질감을 엄청 풍부하게 만든다. 속이 쓰려도 끝까지 먹게 되는 성찬 같은 영화다. —H.B.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One Battle After Another)>

감독: 폴 토머스 앤더슨
출연: 레오나르도 디캐프리오, 숀 펜, 테야나 테일러, 체이스 인피니티, 레지나 홀, 베니시오 델 토로, 토니 골드윈
시놉시스: 은퇴한 혁명가가 다시 행동할 수밖에 없게 된다. 과거의 숙적이 그의 딸을 새 표적으로 삼기 때문이다.
폴 토머스 앤더슨의 추진력 넘치는 영화는 말 그대로 ‘광란의 시대를 위한, 그리고 그 시대에 관한’ 영화다.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저항 정신과 세상의 억압을 유머와 정직함으로 포착한다. 모델로를 마시며 로브를 걸친 레오나르도 디캐프리오는 전직 혁명가이자 ‘딸바보’인 밥 퍼거슨 역으로 의외의 폭소를 선사한다. 숀 펜은 옛 적수 ‘콜로넬 록조’로 등장해 뒤틀린 경직성을 밀어붙인다. 두 사람의 추격전은 러닝타임 내내 관객을 긴장시키는 만큼 짜릿하다. 이 영화는 새로운 영화 스타를 ‘한 명도 아니고 두 명’이나 확실히 찍어낸다. 먼저, 2023년 영화 <어 사우전드 앤드 원>에서 돋보였던 테야나 테일러가 충동적인 혁명가 ‘퍼피디아 비벌리힐스’를 연기하며 전반부를 장악한다. 그리고 신예 체이스 인피니티는 거물 배우들 사이에서도 전혀 밀리지 않는다. 폴 토머스 앤더슨은 ‘정치적으로 급진적인 대중 오락 영화’라는 보기 드문 성취를 해냈다. —C.M.
<시크릿 에이전트(The Secret Agent)>

감독: 클레베르 멘돈사 필류
출연: 바그너 모라, 마리아 페르난다 칸지두, 가브리엘 레오네
시놉시스: 1970년대 브라질 군사독재 시절. 도망 중인 과학자가 아들과 재회하기 위해 고향으로 숨어든다. 킬러와 경찰에게 쫓기던 그는 다른 정치적 반체제 인사들과 함께 은신하며 자신의 과거에 대한 단서를 찾으려 한다.
러닝타임이 2시간 40분쯤 된다. 하지만 걱정하지 말자. 정말 많은 사건이 벌어진다. 초현실적이면서도 강렬한 이 영화는 브라질 역사 속 ‘아주 특정한 시간’으로 당신을 데려간다. 올해 칸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은 바그너 모라의 놀라운 연기가 중심을 잡으며, 영화는 몰입감 있고 강력하게 전개된다. 모라는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거의 땀 한 방울 흘리지 않는 듯 절제된 연기를 보여준다. 영화 중반부의 ‘그 장면’에서 당신의 턱이 바닥에 떨어질지도 모른다. 경고했다. —J.R.
<센티멘탈 밸류(Sentimental Value)>

감독: 요아킴 트리에
출연: 르나트 라인제브, 스텔란 스카스가드, 엘 패닝, 잉가 입스도테르 릴레오스
시놉시스: 꼬이고 뒤틀린 가족 드라마. 노르웨이의 연극배우 노라는 영화감독인 아버지가 자신의 어린 시절을 바탕으로 기획한 영화에 출연해달라는 제안을 받는다. 하지만 노라가 거부하면서 그 역할은 미국의 유명 배우에게 넘어간다. 노라는 ‘자기 어린 시절’을 남이 연기하는 상황을 지켜보게 된다.
<센티멘탈 밸류>는 ‘집’에 관한 이야기이자, 깨진 가족에 관한 이야기다.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로 알려진 노르웨이 감독 요아킴 트리에는 이 작품으로 칸영화제 그랑프리를 수상했다. 스텔란 스카스가드(감독이자 아버지 역), 르나트 라인제브(연극배우인 딸 역), 잉가 입스도테르 릴레오스(또 다른 딸로, 연구자이며 어쩌면 이 영화의 ‘발굴’일지도 모르는 인물), 엘 패닝(연기 변신을 꿈꾸는 미국 스타)까지, 주요 배우들이 다수의 시상식 후보로 거론됐다. 영화를 보는 동안 당신은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을 느낄 것이다. ‘엉엉 우는’ 방식은 아니고, 약간 음울하고 우울하다가, 결국엔 처참하게 무너뜨리는 ‘북유럽식’으로. 오슬로의 집은 그 자체로 하나의 주인공이다. 바이킹 배를 떠올리게 하는 형태인데, 살짝 위협적인 분위기까지 풍긴다. —마리사 멜처
<씨너스: 죄인들(Sinners)>

감독: 라이언 쿠글러
출연: 마이클 B. 조던, 마일스 케이턴, 헤일리 스타인펠드, 운미 모사쿠, 델로이 린도
시놉시스: 1932년 미시시피 시골. 쌍둥이 형제 스모크와 스택이 고향으로 돌아와 음악 클럽을 연다. 그런데 그들의 공동체와 문화를 파괴하려는 뱀파이어들과 맞닥뜨리게 된다.
역사색 짙은 뱀파이어 영화라니, 글로 읽으면 성립이 어려워 보인다. 하지만 라이언 쿠글러의 손에 들어가자 올해 최대 히트작 중 하나가 됐다. 쿠글러의 뮤즈 마이클 B. 조던은 쌍둥이 형제 스모크와 스택을 1인 2역으로 연기했다. 한 명은 과묵하고, 다른 한 명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약 같다. 두 사람은 남부에서 클럽을 열어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려 한다. 하지만 인종차별만으로도 충분히 지옥 같은데, 이번엔 진짜 뱀파이어까지 상대해야 한다. <씨너스: 죄인들>은 공포 영화처럼 보이지만 인종·계급·예술에 대한 코멘터리로 가득하다. 블루스 지망생 새미 무어(마일스 케이턴)가 ‘조상들을 불러내는’ 듯한 영적 연주를 하는 장면이 핵심이다. 소재가 그렇듯 영화의 장르도 혼종이다. 무서운 영화이면서 시대극이고, 동시에 뮤지컬 같은 순간을 품는다. 그리고 그 혼합은 각 파트의 훌륭함을 더해 더 큰 무언가로 만든다. 결과적으로 <씨너스: 죄인들>은 예상 밖의 박스오피스 성공작이자, 문화와 그 문화를 노리는 수많은 독수리들에 대해 중요한 말을 던지는 작품이 됐다. —C.M.
<기차의 꿈(Train Dreams)>

감독: 클린트 벤틀리
출연: 조엘 에저턴, 펄리시티 존스, 클리프턴 콜린스 주니어, 케리 콘던, 윌리엄 H. 메이시
시놉시스: 20세기 초 미국. 태평양 북서부의 벌목꾼이자 철도 노동자가 끔찍한 비극으로 삶이 흔들린 뒤, 자신의 인생을 이해하려 애쓴다.
2012년 퓰리처상 최종 후보에 오른 데니스 존슨의 원작은 거대한 변화의 시대를 사는 ‘평범한 남자’에 초점을 맞췄다. 하지만 클린트 벤틀리 감독의 몽환적인 각색으로 완성된 영화는 전혀 평범하지 않다. 조용하지만 확신에 찬, 그리고 부드럽게 심장부를 건드리는 캐릭터를 ‘서사적 기운’과 함께 완성했다. 영화는 한 남자의 영혼 깊은 시선을 통해 삶·변화·슬픔을 탐색하는 아름답고 명상적인 여정을 그린다. 주인공은 말수가 적지만, 배우 조엘 에저턴은 깊이와 단단함으로 그를 채운다. —R.F.
<웨폰(Weapons)>

감독: 잭 크레거
출연: 조시 브롤린, 줄리아 가너, 올든 에런라이크, 에이미 매디건
시놉시스: 어느 날 밤, 초등학교 3학년 한 반의 아이들 17명이 단 한 명을 제외하고 모두 사라진다. 남겨진 학생 한 명과 “무슨 일이 벌어진 거냐”는 질문만 떠오르는 작은 마을.
겉으로는 한 반의 아이들이 하룻밤 사이에(한 명만 빼고) 사라지는 공포 영화처럼 보인다. 물론 무섭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감독이자 각본가인 잭 크레거는 여러 개의 챕터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실종 아이들의 담임에 관한 챕터는 드라마이고, 한 부모에 관한 챕터는 교외 탐정극처럼 흐른다. 마을 부랑자에 관한 챕터는 대마초 ‘스토너 코미디’ 같은 결을 띤다. 그러다 ‘글래디스 이모’가 등장하는 순간, 공포와 코미디가 동시에 최고치로 치솟는다. 그녀의 모습은 앞으로 수년간 할로윈 코스튬으로 각광받을 것이다. —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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