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스 사이렌이 웬말, 눈에 띄고 싶지 않은 직장인의 룩
1월이 되면 현실행 급행열차를 타는 기분이 듭니다. 사무실에서 문득 ‘와 다음 연휴까지 이렇게 매일매일 출근해야 한다고?’라는 생각이 들죠. 입을 옷도 문제입니다. 같은 겨울인데, 작년엔 도대체 뭘 입었지 싶어요. 이럴 때 영국 <보그> 사무실의 힌트를 참고해보세요. 패션 에디터 올리비아 앨런(Olivia Allen)이 새해 출근 룩은 클래식한 네이비 니트 한 벌이면 충분하다더군요.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가 심어준 환상과는 달리 패션계 종사자들은 대체로 심심해 보이는 옷을 입는 걸 좋아합니다. 대표적 예가 조나단 앤더슨의 ‘노멀코어’ 스타일, 그중에서도 유독 자주 등장하는 게 네이비 크루넥이죠. 그리고 이번 주 보그 사무실 풍경만 봐도 답은 명확합니다. 집단적 무의식이라 해도 좋고, 1월의 추위를 버티기 위한 캐시미어 본능이라 해도 좋습니다. 어쨌든 아델피 빌딩 안을 둘러보면 네이비 니트가 파도처럼 펼쳐져 있습니다.

‘사무실에서 지루한 옷 입기 캠페인’, 패션 뉴스 에디터 다니엘 로저스(Daniel Rodgers)가 작년부터 적극 주장해오던 바입니다. 단정하고 합리적인 옷을 입는 데서 오는 묘한 쾌감이 있고, 그 감각이 하루의 리듬을 차분하게 정돈해준다는 이유에서였죠. 그가 제시한 해독제 목록은 간단했습니다. 메리노 울 카디건, 캐시미어 크루넥, 빳빳한 셔츠에 스트레이트 팬츠, 두툼한 솔의 로퍼. 네이비 니트는 출근 룩과 외출 룩의 경계가 무너진 ‘Z세대 식 사무실 혼란’이나 ‘오피스 사이렌’ 트렌드의 피로감에서 한발 물러나게 해주는 가장 현실적인 선택이었습니다.

네이비 니트는 태생적으로 눈에 띄지 않는 옷입니다. 설명이 필요 없는 클래식 중에서도 이 정도로 무난한 선택지는 드뭅니다. 다니엘의 표현을 빌리자면, 가끔은 익명으로 존재하는 일이 얼마나 큰 해방감을 주는지 깨닫게 해주는 옷이죠. 매주 어떤 스니커즈나 어떤 배럴 진이 유행하는지 해부하듯 분석해야 하는 직장인이라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뷰티와 웰니스 에디터 모건 파고(Morgan Fargo)는 스스로 ‘네이비에 미친 사람’이라고 칭하더군요. 색이 지닌 범용성 때문에 사랑할 수밖에 없다고요. 전 남자친구의 친구에게서 훔치듯 가져온 네이비 니트는 어느새 애착 니트가 됐고, 8년이 지난 지금 소매에 작은 구멍이 났음에도 여전히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는 헤어지자마자 드라이까지 해서 친구를 통해 돌려줬는데, 조금 멍청했네요! 하지만 그 친구도 아빠 옷장에서 가져온 니트라 했으니 돌려줄 수밖에요.) 실제로 최고의 네이비 니트는 우회 경로로 손에 들어온 경우가 많습니다. 저 역시 어느새 옷장에 들어와 있던 존스톤스 오브 엘긴(Johnstons of Elgin) 니트를 충성스럽게 입고 있으니까요. 패션 뉴스와 피처 디렉터 앨리스 뉴볼드(Alice Newbold)가 웃으며 말합니다. “제일 좋은 네이비 니트는 남자친구 옷장에서 빌린 것임은 다들 알잖아요.”

마지막으로 다시 다니엘의 말을 빌리자면, 옷으로 자신의 다채로운 내면을 전부 설명하려 드는 일은 생각보다 큰 노동입니다. 네이비 니트는 이 피로를 단번에 덜어줍니다. 프로페셔널하고 단정하며, 거기다 믿음직스럽고 깔끔한 인상을 유지하면서도 질 샌더의 아카이브와 미우치아 프라다의 빈티지 피스를 안다는 신호를 은근히 보낼 수 있죠. 네이비 니트를 입은 채로 우리는 트렌드의 거친 파도 위를 유영하며 풍부한 내면을 잠시 숨길 수 있습니다. 적어도 당분간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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