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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하게 새해를 시작하고 싶은 사람을 위한 책

2026.01.10

조용하게 새해를 시작하고 싶은 사람을 위한 책

@elsadanielson

악수도 없이 헤어졌다 | 피천득

수필에도 ‘고전’이라는 수식어가 허락된다면, 그것은 아마 피천득의 글일 것이다. 청자 연적처럼 단아하고 깊이가 있되 결코 강요하거나 가르치려 들지 않는 글. 그저 마음의 산책이 되어주는 그의 수필보다 새해를 더 단정하게 시작할 수 있는 문장이 또 있을까?

‘자정이 넘으면 날이 캄캄해도 새벽이 된 것과 같이, 날씨가 아무리 추워도 1월은 봄이다’라는 문장은 무거운 겨울 코트를 벗어던지듯 마음을 가볍게 만든다. 다이어트나 영어 공부 같은 뻔하고도 버거운 결심들이 어깨를 짓누르는 1월, ‘거울을 보거나 사람을 마주할 때 늘 웃는 낯을 하겠다’는 작가의 소박한 결심은 우리를 기분 좋은 미소로 따라 웃게 만든다. 그의 짧은 글 <신춘(新春)>을 읽는 것만으로도, 어쩐지 새해의 독서를 충분히 해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게으름에 대한 찬양 | 버트런드 러셀

보통 새해가 되면 무언가를 더 해보겠다고 다짐한다. 하지만 때로는 덜어낼 용기를 내는 것, 게으름을 즐길 준비를 하는 것이 더 필요할 때가 있다. 삶을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에 끌려다니는 기분을 끊어낼 수 없다면, 그때야말로 ‘더’ 해서 해결할 것이 아니라 ‘덜’ 하는 기술을 익혀야 한다.

버트런드 러셀은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사회적 통념과 달리, 인간의 진정한 자유와 주체성 확립을 위해서는 오히려 적극적인 여가와 무용한 지식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새해를 맞이하며 행복해지는 법을 고민하거나, 더 해내야 한다는 압박감에 도무지 힘이 나지 않는다면 자책은 잠시 멈추자. 대신 게으름에 대한 지적이고 깊이 있는 탐구에 동참해보길 권한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지만 ‘나 지금 잘 살고 있나?’라는 생각이 든다면 반드시 읽어보아야 할 책.

나의 바람 | 톤 텔레헨 글, 잉그리드 고돈 그림

잉그리드 고돈의 서정적인 그림과 정신과 의사이자 시인인 톤 텔레헨의 서사가 만난 이 책은, 책장을 넘길 때마다 마주하는 인물들의 깊은 눈빛으로 독자의 내면을 정직하게 비춘다. 서른세 점의 초상화, 그 기묘하고도 신비로운 얼굴들 뒤에는 타인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슬프고 비밀스러운, 그러나 지독하게 간절한 바람이 숨어 있다.

거창한 새해 목표에 가려진 사소하지만 특별한 소망들을 하나씩 들여다보는 과정은 그 자체로 깊은 치유다. ‘모두가 아는 것을 나만 모르면 좋겠다’거나 ‘무언가 갑자기 취소됐으면 좋겠다’는 은밀한 바람부터, ‘진짜 특이한 반려동물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엉뚱한 상상까지. 이처럼 누구에게도 쉽게 털어놓지 못한 내밀한 욕망을 직면하는 순간, 우리는 역설적으로 기묘한 해방감을 맛보게 된다. 2026년의 첫 달, 이 책을 따라 나만의 ‘바람’을 기록해보는 것은 어떨까.

내가 지금의 나보다 조금만 더 귀엽고,
더 친절하고, 더 다정하고, 더 재미있고, 더 행복하고,
더 멋지고, 더 용감하고, 더 똑똑하고
더 머리가 좋고, 더 흥미롭고, 더 특이했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누군가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에이 아냐, 전에도 너는 그대로 딱 완벽했어.”
내가 그래요! 알고 있다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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