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공든 탑 무너뜨리기, 잔해에서 답을 찾기

2026.02.10

공든 탑 무너뜨리기, 잔해에서 답을 찾기

전국광이라는 예술가를 아시나요. 한국 추상 조각 분야에서 남다른 행보를 보였지만 불의의 사고로 45세의 나이에 타계한 작가입니다. 오는 2월 22일까지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에서 열리는 전시 <전국광: 쌓는 친구, 허무는 친구>는 미처 알려지지 못한 추상 조각가, 전국광의 작업 세계를 조명합니다. 전시 제목으로 예측할 수 있듯, 전국광은 다양한 재료를 적층하고 또 허무는 방식을 평생 반복하면서 추상적인 조각의 세계를 그렸는데요. 이번 전시에서는 그의 주요 예술 언어였던 ‘매스’, 즉 덩어리를 다채로운 형식으로 변주한 작업을 포함해 조각, 드로잉 등 100여 점의 작품을 소개합니다.

전국광 개인전 ‘전국광: 쌓는 친구, 허무는 친구’ 모습.
전국광 작가.

저 역시 미술 전문지에서나 간혹 만났을 뿐, 전국광의 작품을 이토록 자세히 들여다본 적은 없습니다. 특히 작가가 1970년대에 몰두한 대표 연작 ‘적’ 시리즈는 매우 기묘합니다. 자연의 물리적인 힘과 비가시적인 에너지, 즉 보이지 않는 힘이 내 눈앞에 현현하는 듯한데요. 층층이 쌓은 얇은 면에 어떠한 힘을 가해 생긴 주름, 접힘 같은 형상이 고스란히 조각으로 거듭났습니다. 지층을 그대로 본뜬 것 같기도, 부드럽고 물렁물렁한 반죽을 겹쳐 올린 것 같기도 합니다. 돌, 나무, 금속 등 단단한 전통 조각 재료를 중력에서 자유롭게, 거리낌없이 다룬 솜씨는 조각의 본성, 즉 단단함과 육중함을 정면으로 거스릅니다. 지금 보이는 것과 재료 본연의 특성 사이에서 일종의 착시가 생겨나는 거죠.

전국광 개인전 ‘전국광: 쌓는 친구, 허무는 친구’ 모습.
‘적’, 1979, 포천석, 20×70×45cm.

흥미로운 건, 1970년대에 쌓는 행위로 매스를 탐구하던 전국광이 이후에는 오히려 매스를 허무는 작업에 매진했다는 겁니다. ‘매스의 내면’ 시리즈가 그 결과물인데요. 무거운 덩어리를 다루어야 하는 조각가로서 갖는 원죄 의식과 현실적 한계에 직면한 그가 찾은 돌파구가 아니었을까 싶어요. 자신을 매혹한 덩어리에서 도리어 벗어나고자 했던 전국광은 옵아트, 일루저니즘 같은 사조를 접하면서 새로운 시도를 하게 됩니다. 나무로 제작한 ‘평면구조’ 같은 작업은 덩어리의 내면, 즉 본질을 찾고자 한 작가의 열망을 담담히 담아내고 있습니다.

‘매스의 내면’, 1987, 나무, 200×200×50cm.

생각해보면 예술가란 묵묵히 자신만의 탑을 쌓고 또 공들인 탑을 스스로 무너뜨리면서, 그 잔해에서 답을 찾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세상에는 절대적으로 옳은 건 없을 뿐만 아니라, 특히 예술의 세계에서는 모든 것이 답이 되고, 또 모든 것이 오류가 되니까요. 전국광에게 조각의 정체성이란 그럴듯한 형상을 만드는 게 아니라 충실하게 덩어리의 물성을 탐구하는 거였습니다. 그리고 쌓고, 또 허무는 자기 수행적 행위를 통해 그는 물성을 정복하고자 하는 욕망을 지나 가벼움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예술가는 바로 그러한 모순과 역설을 기꺼이 즐기는 사람들입니다. 만약 그가 지금까지 살아남아 쌓고 허무는 행위를 지속했다면 과연 어떤 획기적인 조각을 만들었을까요. 얼마나 자유로운 조각이었을까요. 저에게는 어쩐지 전국광이라는 낯선 예술가가 세상에 없는 정직한 작가로 느껴집니다.

‘탑’, 1975, FRP, 113×40×40cm.
‘자유 – 나와 너희들 그리고 나들’, 1989, 브론즈, 철사, 천, 70×70×60cm.
전국광 개인전 ‘전국광: 쌓는 친구, 허무는 친구’ 모습.
하솔휘

하솔휘

웹 에디터

2025년 4월 <보그>에서 시작했습니다. 패션 감각이 필요한 모든 분야의 글을 씁니다. 많이 듣고, 다니고, 읽고, 고민하면서 제대로 된 글을 재밌게 쓸 줄 아는 사람이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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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원(미술애호가, 작가)
사진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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