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얗고 고운 얼굴에 무엇이든 꿰뚫어 볼 것 같은 맑은 눈, 정확한 발음과 흠잡을 데 없는 연기력은 서현진을 ‘멜로 장인’으로 만들었다. 그녀를 더 빛나게 하는 건 작품에 완전히 몰두하는 자세다. 서현진은 아크리스(Akris)와 함께한 <보그> 촬영장에서도 뷰파인더 너머 본인의 모습을 하나의 캐릭터처럼 표현했다.
아크리스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알버트 크리믈러(Albert Kriemler)는 2026 봄/여름 컬렉션의 영감을 20세기 미니멀리즘 화가 레온 포크 스미스(Leon Polk Smith)의 작품에서 받았다. 생동감 넘치는 컬러와 기하학적 형태가 돋보이는 그의 작품은 컬렉션에 고스란히 투영되었다.
“아크리스는 본질에 관한 것이지, 절제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형태와 소재를 통해 사람을 빛나게 하죠.” 알버트 크리믈러는 레온 포크 스미스가 본인 작업을 ‘미니멀의 반대’로 정의하는 것에 깊이 공감했다. 아크리스 역시 2026 봄/여름 컬렉션을 통해 단순한 축소가 아닌 본질을 드러냈다.
“빠른 속도로 가기보다 매일을 버티는 단단한 힘을 차근히 만들어가는 게 중요해요. 그리고 한번 망쳤다고 다 끝난 것처럼 굴지 않아요. 그냥 다음 날 일어나서 다시 시작하면 되니까요.” 시간과 노력을 통해 얻은 자기 확신은 서현진의 무기다. 그녀의 단단한 태도는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동시대 여성을 위한 옷을 묵묵히 만들어온 아크리스와 닮았다.
아크리스의 핵심은 원단에 있다. 같은 컬러도 원단에 따라 깊이와 실루엣이 다르다. 반듯한 형태와 간결한 디테일이 돋보이는 가방은 ‘앨리스’ 백.
기하학무늬가 선명하게 드러나는 티셔츠와 스커트를 입은 서현진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멋스러운 프린지 디테일 드레스를 착용한 서현진. 의상과 가방은 아크리스(Akris).
감정의 결을 섬세하게 쌓아 올려 여운을 남기는 배우 서현진은 오늘도 조금씩 나아가는 중이다. ‘꾸준함’은 어느새 그녀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가 되었다. 하루가 쌓여 여러 날이 되면 그보다 큰 힘이 없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10대 후반부터 20대 후반까지 무명 생활을 할 때는 늘 쫓기듯 조급했어요. 무작정 다른 배우에게 가서 어떻게 하면 그 감독님과 작업할 수 있는지 물은 적도 있고요. 그만큼 너무 막막했어요. 꼭 지름길이 있을 것만 같았거든요. 지금 와서 느끼는데 그런 요행은 당연히 없더라고요.”
그 후로 서현진은 눈앞에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해 집중했다. “빠른 속도로 가기보다 매일을 버티는 단단한 힘을 차근히 만들어가는 게 중요해요. 그리고 한번 망쳤다고 다 끝난 것처럼 굴지 않아요. 그냥 다음 날 일어나서 다시 시작하면 되니까요.”
힘을 주어 말하는 모습을 보니, 그녀의 필모그래피 속 여성들이 떠올랐다. 완벽하지 않아도 자기 몫의 삶을 치열하게 살아내는 단단한 인물들. 그녀는 ‘연기해야 할 캐릭터’보다 ‘공감할 수 있는 인물’을 찾는다. “운명이라 말하기엔 거창하지만 제 삶의 리듬과 비슷한 대본을 만나면 꼭 하고 싶더라고요. 드라마 <러브 미>도 우리 집 이야기 같았어요. 1부를 보다가 너무 많이 울어서 차마 2부를 보기가 힘들 정도죠. 대본 전체가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인지, 스스로 잘 이해해서 시청자가 납득할 만한 연기를 할 수 있는 인물인지 살펴요.” 곧 촬영에 들어갈 심리 스릴러 드라마 <라이어> 역시, 살면서 한 번쯤 꼭 해보고 싶은 이야기였다. “배우들이 한자리에 모인 전체 리딩 날, 감독님께서 ‘이 대본을 택한 배우들의 용기에 감사드린다’고 했어요. 그 말을 듣고 심장이 덜컹했어요. 올해는 그저 이 작품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으면 해요.”
그녀가 거쳐온 인물은 대부분 ‘성장 캐릭터’라는 공통점이 있다. 오늘을 착실하게 진심으로 살아내는 역할들이다. “전부 저보다 나은 사람들이라 존경스러워요. 10년 전의 나와 지금을 비교해보면 대단히 발전하지도, 엄청나게 좋은 사람이 되지도 않았는데, 작품 속 인물들은 마지막 회가 되면 언제나 훨씬 더 성장해 있더라고요. 드라마 <제왕의 딸, 수백향>의 수백향, <또 오해영>의 오해영, <블랙독>의 고하늘 등이 모두 그렇죠.” 그리고 배우가 되지 않았다면 자신은 지금보다 냉소적인 사람이 되었을 거라고 덧붙였다. “타인에게 큰 관심이 없었는데, 작품 속 여러 캐릭터로 살아보면서 모두의 다양성을 좀 더 포용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어요.”
그녀에게 많은 영감을 안겨주는 여성이 또 있다. 이 시대의 ‘워킹 맘’이다. “제 주변의 워킹 맘들을 보면 ‘슈퍼우먼’ 같아요. 매일을 잘 살아내고 또 그 안에서 기쁨과 행복을 찾아내고야 말잖아요. 정말 대단해요.” 앞으로는 엄마 역할이나 액션 장르에 도전하고 싶어서, 이를 위해 꾸준히 운동하며 준비 중이다.
스케줄이 없는 날에는 반려견 ‘시더’와 주로 시간을 보낸다. 올해 열다섯 살인 시더의 대학 입학을 누구보다 간절히 소망한다.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좋아해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도 꽤 오래된 취미다. “스포츠 다큐멘터리부터 <건축탐구-집> <인간극장> 등 많은 프로그램을 즐겨 보는데, 우리 사회의 좋은 면면에 마음이 따뜻해져요. 저도 그만큼 좋은 사람이 되고 싶고요.”
훗날 대중에게는 배신감이 들지 않는 배우로 남고 싶은 꿈이 있다. “그래서 제 삶을 잘 살았으면 좋겠어요. 어떤 일로든 사람들의 마음을 서운하게 하고 싶지 않거든요. 결국 제가 되고 싶은 배우는 ‘좋은 사람’일지도 모르겠어요.” V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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