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여성이라는 이름으로, 선배와 동료의 이야기

2026.03.05

여성이라는 이름으로, 선배와 동료의 이야기

사회적 기대와 편견에 잠식당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여성 선배와 동료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변화의 주체는 나 그리고 여성이라 믿기에.

박지원 대표가 왼손 검지에 낀 ‘러브’ 반지, 문우리 대표가 오른손 약지에 낀 ‘저스트 앵 끌루’ 반지, 각자가 왼 손목에 착용한 ‘팬더 드 까르띠에’ 시계는 까르띠에(Cartier).

문제 인식에서 멈추지 않는 힘

어떤 비즈니스는 사소한 불편함, 만연해서 언급조차 되지 않은 문제를 인식하며 시작된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해결책을 탐구하고 현실화한 이들이 있다. 여성에게 초점을 맞춘 콘돔을 선보이는 ‘세이브앤코’의 박지원 대표와 온라인 멘탈 케어 서비스를 운영하는 ‘포티파이’의 문우리 대표다. 문우리는 2023년, 박지원은 2024년 까르띠에 여성 창업 이니셔티브(CWI) 동아시아 지역 1위로 선정되며 자신들의 비즈니스로 국제 무대에서 조명받고 있다. 물론 둘의 사업은 처음부터 거창하지 않았다. 자기 목소리에 집중하는 집요함과 실행력, 같은 시기를 통과하는 CWI 펠로우들의 지지가 동력이 되었다.

안정된 커리어와 전문성을 갖추었음에도 안주하지 않고 창업을 선택했어요. 이전에 가보지 않은 길을 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박지원 처음부터 창업을 염두에 두진 않았어요. 미국 디자인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중 내가 얼마나 성 건강에 무지한지 자각했죠. 이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문화의 문제라는 인식이 생겼고, 그 불편함을 그냥 지나치고 싶지 않았어요. 문우리 저도 비슷해요. 병원에서 환자를 만날수록 한계가 보였어요. 환자는 계속 늘어나는데, 진료실에서 제가 할 수 있는 방식은 비슷했거든요. 약을 처방하고 상담하고, 다시 병원을 찾게 하는 구조에서는 만날 수 있는 사람도, 만들어낼 수 있는 변화의 크기도 분명히 제한이 있었죠.

문제의식을 갖더라도 비즈니스로 전환, 성장시키기는 쉽지 않은데요. 결정적 계기가 있었나요? 박지원 콘돔을 처음 사러 간 경험이 아주 컸어요. 미국 드러그스토어의 많은 제품이 거의 남성적인 디자인이었어요. 패키지를 보는 순간부터 ‘이건 네 게 아니야’라고 말하는 것 같았죠. 계산하고 가방에 넣는 과정도 괜히 불편했고요. 저는 화장품이나 식료품은 성분을 꼼꼼히 따지는 편인데, 정작 몸에 직접 닿는 제품의 전성분이 제대로 공개되지 않는 점도 의아하더라고요. 그때 시장에서 두 가지 문제를 감지했어요. 여성 소비자를 완전히 배제하고 있다는 것, 좋은 성분에 대해 말해주는 제품이 없다는 것이죠. 문우리 체감과 데이터가 맞아떨어진 순간이 있었어요. 병원에 오는 환자가 너무 많다고 느꼈는데, 실제로 보건복지부 통계를 찾아보니 몇 년 사이에 관련 환자가 크게 늘었죠. 하지만 환자들에게 정신과라는 진입 장벽이 높은 옵션밖에 없어요. 이 문제를 기존 방식 말고 다른 방식으로 풀 수는 없을까, 기술을 쓰면 더 많은 사람에게 닿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창업 초기를 회상하면 먼저 떠오르는 순간 혹은 감정은 무엇인가요? 막막한 시기였을 텐데요. 문우리 외로움이 컸어요. 처음 몇 달은 친구 회사에 자리를 하나 얻어서 혼자 일했는데, 하루 종일 말을 거의 하지 않는 날도 많았죠. 주어지는 일을 하면 된다고 여겼는데, 혼자 모든 결정을 내려야 하고, 이 방향이 맞는지 확인할 사람이 없다는 것이 예상보다 힘들더라고요. 그때는 외로움을 견디기가 일보다 어려웠던 것 같아요. 팀이 생기고 나서야, 혼자가 아니라는 감각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았죠. 박지원 초반에는 직접적인 공격을 많이 받았어요. 여자가 콘돔을 만든다는 이유만으로 기사에 악플이 달리고, 성희롱에 가까운 말도 따라다녔죠. 그걸 개인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해도 쉽지 않았어요. 그 시기를 지나면서, 이 아이템 자체가 아직 우리 사회에서는 불편한 질문을 던지고 있음을 실감했어요.

그럼에도 비즈니스를 계속 이끄는 힘은 어디에서 오나요? 박지원 사람들의 반응을 직접 마주할 때요. 우리 제품을 통해 처음으로 이 문제를 인식했다거나 예전보다 훨씬 편하게 다가갈 수 있었다는 얘기를 들을 때죠. 우리 브랜드가 세상에 큰 변화를 가져올 수는 없겠죠. 하지만 세대가 바뀌고, 여성이 더 주체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흐름 속에서 아주 작은 역할이라도 한다면 그것이 계속할 수 있는 이유예요. 문우리 사람에게서 에너지를 많이 받아요. 돈을 많이 벌기보다 타인이 자기 안의 보석 같은 면을 발견하고 그 힘을 발휘하는 모습을 보고 싶거든요. 실제로 다른 팀이나 대표를 도우면서 기쁨을 많이 느껴요. 이런 경험이 반복되면서, 리더의 내면 상태가 조직 전체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는 사실도 알았어요. 지금 포티파이에서 심리 기반 리더십 코칭 프로그램도 운영하는데 그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했어요.

성과나 속도보다 가치 기준이 있는가가 중요하죠. 이런 가치관에 CWI 프로그램의 영향도 컸을 것 같은데요. 문우리 맞아요. 저도 이전에는 스타트업에서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기준을 신경 썼어요. 팀이 몇 명인지, 투자를 얼마나 받았는지 같은 것들이요. 그런데 CWI 프로그램에서 만난 사람들은 그런 걸 묻지 않더라고요. 왜 이 일을 하는지,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는지에 더 집중했어요. 아프리카에서 모녀가 함께 지역 식재료로 이유식을 만들어 판매하는 기업이 있어요. 투자나 확장보다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가 분명했죠. 건강한 이유식을 안정적으로 구하기 어려운 환경이었거든요. 덕분에 저도 다시 생각하게 됐어요. 내가 어떤 기준으로 이 일을 하는지, 무엇을 위해 회사를 설립했는지요. 박지원 CWI는 1년의 긴 프로그램 안에서 계속 질문을 받아요. 이 사업이 어떤 임팩트를 만들고 있는지, 그걸 어떻게 측정하고 지속할지에 대해서요. 단기적 성과보다 내가 맞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계속 점검하게 만들어요. 그 시간 동안 다른 펠로우들과 관계를 맺다 보니, 비슷한 고민을 반복해서 나누게 되고요. 그것이 사업적인 판단뿐 아니라 개인적인 선택에도 영향을 주었죠.

일반적인 스타트업 액셀러레이션 프로그램과는 결이 다른 것 같아요. 박지원 일반적인 액셀러레이션처럼 단기간에 성과를 내는 데 집중하기보다는 리더로서 내가 성장하고 있는지를 중요하게 봐요. 숫자나 지표를 넘어 임팩트를 어떻게 정의하고 측정할지 그것을 어떻게 지속 가능하게 가져갈지 계속 묻거든요. 또 인상 깊은 것은 다양한 지역과 연령대의 여성 창업가들이 모이는데, 다들 비슷한 고민을 한다는 점이었어요. 회사의 성장과 임팩트를 어떻게 같이 가져갈지, 투자자들과는 어떻게 소통할지 같은 고민이요. 그걸 1년 동안 반복해서 나누다 보니, 단순한 네트워크를 넘어서는 관계가 만들어졌어요. 문우리 지원 당시 프로그램이 진지하다고 느꼈어요. 떨어지더라도 그 과정에서 많이 배울 수 있을 것 같았죠. 실제로 선발 과정도 아주 세세해요. 서류를 시작으로 여러 차례 심층 인터뷰는 물론, 회사 투자자나 고객, 팀원까지 포함해서 몇 시간 동안 인터뷰를 진행하죠. 그 과정 자체가 계속 질문을 던지게 만들어요. 내가 왜 이 사업을 하는지, 어떤 세상을 만들고 싶은지요. 그리고 CWI는 단순히 사업만 보지 않고, 창업자 개인의 삶도 현실적으로 고려해요. 예를 들어 육아 중인 펠로우들을 위해 베이비시터 비용을 지원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느꼈어요. 그런 배려 덕분에 특정 선택이 가능해지는 경우도 아주 많고요.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스스로에게 꼭 확인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박지원 비즈니스적으로는 앞선 이야기의 연장선이 될 듯해요. 이 결정이 세이브앤코를 만들면서 세운 가치와 일치하는지를 먼저 감안하죠. 개인적으로는 이 선택을 1년 뒤, 10년 뒤에도 내가 다시 할 수 있을지 돌아봐요. 저 역시 잘해온 시간보다 흔들리고 부족한 순간이 훨씬 많았어요. 그래도 이렇게 기준을 확인하면 덜 흔들리겠죠. 문우리 누군가의 기대나 상황이 만들어낸 선택이 아니라 내가 충분히 숙고하고 내린 결정인지 점검해요. 결과가 같아 보여도, 그 결정이 어디서 왔는지에 따라 완전히 달라지거든요. 물론 매 순간 확신을 위해 헤매고 고민이 이어져요.(웃음) 그래도 내가 진짜로 내린 결정이라면, 그 안에서 배움은 계속 이어질 거라고 믿어요. VK

김나랑

김나랑

피처 디렉터

글을 쓰고 인터뷰를 하고 매번 배웁니다. 집에 가면 요가를 수련하고 책을 읽고 아무도 미워하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더보기
    피처 디렉터
    김나랑
    컨트리뷰팅 패션 에디터
    송보라
    유승현(프리랜스 에디터)
    포토그래퍼
    김수진
    헤어
    권영은
    메이크업
    김지현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