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두사의 웃음
요 며칠 마음이 쪼그라들었다. 경칩을 지났다는데도 여전히 겨울 기운이 남아 몸을 웅크리고 만다. 그렇다고 오는 봄을 영 모르는 체할 수도 없어서 괜스레 속으로만 분주하다. 이럴 때 마음 근력을 키우기에는 유순하고 안온한 우정과 사랑의 말만 한 게 없다. ‘책을 펼쳐야 해. 부담 없이 냉큼 집어 들어 훌훌 읽어 내려가며 여기저기를 더듬대고 만져볼 수 있는 책이어야만 해.’ 듬직하고 미더운 친구 같은 책을 발견했다. 아니, 그런 책이 눈앞에 도착했다.

서둘러 서점으로 향했다. 푸드덕. 날갯짓하며 비행(飛行)을 해가며. 이상한 말로 들리겠지만, <메두사의 웃음>을 펼치면 단박에 수긍할 것이다. 이미 이 책에는 수많은 여성의 날갯짓이 깃들어 있다. 그들의 비행은 아주 오래전부터 시작됐고, 도래할 미래의 일이기도 하다. 나도 그들처럼 비행했고, 또 비행할 것이다.
엘렌 식수의 <메두사의 웃음-여성적 글쓰기에 대한 최초의 선언>(2026, 마티)이다. 1975년 프랑스에서 출간된 이후 51년 만에, 한국어판이 출간된 지 22년 만에 다시 왔다. 귀환이기도 하고 귀환만도 아니다. 새로운 첫 번째 도착.
책을 펼치면 들릴 것이다. ‘비행하라.’ 낱장의 종이를 묶어 책등을 만드는 제본 과정에서 책 안쪽에 어쩔 수 없이 여백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것이 책을 왼쪽 면과 오른쪽 면으로 나누고 가르는 강력한 경계 역할을 한다. 왼쪽 면이 끝나야 오른쪽 면이 시작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그 경계를 뛰어넘는 읽기를 제안한다. 문장을 왼쪽에서 안쪽 여백을 지나 오른쪽으로 흐르도록 배치했다. 책 자체가 관성에 따른 우리의 읽기 습(習)을 와락 무너뜨리고 새로이 읽고 만들기를 요청한다. 경계를 가로질러 흘러가는 글의 형상이 세로로 길게 늘어져 있다. 마치 이름 모를 여인의 척추뼈처럼, 등골처럼. 그 낱장을 지나 플립 북처럼 책장을 후루룩 넘기면 이번에는 새의 날갯짓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메두사의 웃음>, 이것은 선언인가? 시인가? 에세이인가? 무엇이든! 프랑스를 대표하는 페미니스트 작가 엘렌 식수는 여성을 규정하고 경계 짓는 말, 혀, 법, 관습을 폭파해버리자 하고, 그리 한다. 기존 틀과 기성의 선을 넘나들고 흐트러뜨리고 넘어서서 혼란을 일으킨다. 식수의 비행의 기술(技術/奇術)은 여기에 있다. ‘여성적 글쓰기’라는 식수의 표현은 그럴듯한 수사가 아니라 몸을 써서 경계를 흐트러뜨리는 수행, 삶과 사고의 실천적 양식이다.
‘여성은 자기 자신을 써야/써져야 한다. 즉, 여성은 여성을 써야 하고, 여성들을 글쓰기로 오게 해야 하는데, 그녀들은 자신의 몸에서 난폭하게 멀어졌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와 동일한 이유로, 동일한 법에 의해, 동일하게 치명적인 목적으로 글쓰기에서 멀어졌다. 여성은 자기 자신을 출산하고 역사를 시작하듯이 자발적으로 텍스트에 착수해야 한다.’ (12~13쪽)
이때 ‘여성적’이라는 말은 그 의미를 한정 짓는 방식의 정의 내림으로는 설명될 수 없다. 나는 그것을 곧이어 오는 ‘글쓰기’라는 말과 함께 둠으로써 비로소 가능한 변화라고 이해한다. ‘글쓰기란 변화의 가능성 자체이자, 전복적인 사고가 솟구칠 수 있는 공간, 사회와 문화 구조의 변형을 예고하는 움직임이기 때문이다.’ (30~31쪽) 여성이 글을 쓰는 것, 여성이 여성에 대해 쓰는 것, 글이 써 내려가는 여성, 여성들이 자기 몸과 목소리로 자기의 말과 혀를 찾아가는 일, 전승과 계보라는 그럴듯한 말로 여성들을 괴롭혀온 거세와 결핍의 역사를 단호히 끊어내는 것이다.
식수는 거듭 우리에게 말한다. ‘여성들이여, 글을 쓰라!’ 글쓰기는 결코 글 쓰는 그 자신을 막아서지 못한다. 오히려 글 쓰는 그 자신보다 더 내밀한 자기를 알고 있고, 알려준다. 글 쓰는 자를 초월하는 게 글쓰기다. 그리하여 ‘여성적 글쓰기’는 여성들에게 막강한 돌파의 힘을 주고 더 멀리, 더 깊이까지 가보게 한다. 이때 구별과 차별의 경계선을 넘어서는 ‘여성적 글쓰기’야말로 다른 세계, 타자, 차이와 만나게 할 것이다.

이 책에는 식수의 또 다른 글 <장미 가시 효과>가 수록돼 있다. <메두사의 웃음>이 2010년 갈릴레 출판사에서 단행본 <메두사의 웃음과 다른 아이러니들>로 출간될 때 함께 수록된 글이다. 시적 선언, 선언적 에세이에 가까운 앞선 글에 이어 식수의 목소리에 한번 머물러볼 수 있다. 식수의 글은 독해의 기쁨보다는 그의 영향과 자장 안에 있다는 쾌감을 강력하게 불러일으킨다. 그런 만큼 이어서 실린 두 편의 글이 식수의 세계를 기꺼이 헤매고 비행하고픈 이들에게는 반가운 가이드가 돼줄 것이다. 식수의 세계를 연구하고 번역해온 이혜인 번역가의 ‘이 책을 옮기며: 두 언어의 경계에서 여성적 글쓰기를 옮기기’와 <마지네일리아의 거주자-여성적 읽기로 여백을 쓰다>(2025, 마티)로 여성적 읽기와 쓰기를 탐색하는 김지승 작가의 ‘이 책을 새롭게 읽으며: 거듭 도래하는 몸의 전언’이다.
<메두사의 웃음>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고 나니 마치 내가 어딘가를 다녀온 듯하다. 뭔가를 관통한 것만 같다. 쪼그라든 마음에 온기가 들어차고 몸이 풀린다. 쓰고 말하고 싶어진다. 하여, 이렇게 또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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