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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 헤일메리’, 과학이 있는 한 지구는 외롭지 않아

2026.03.19

‘프로젝트 헤일메리’, 과학이 있는 한 지구는 외롭지 않아

‘프로젝트 헤일메리’ 스틸 컷. 사진: Jonathan Olley/© Amazon MGM Studios/Courtesy Everett Collection

영화 <프로젝트 헤일메리>를 보고 나면 같은 작가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마션>(2015)을 생각하게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 한 장면이 유독 자주 떠올랐다. 화성에 남겨진 마크 와트니를 구하기 위해 제작한 미 항공우주국(NASA)의 보급선이 폭발해버린다. 쏟아부은 시간과 돈이 한순간에 해양 쓰레기가 되고, 와트니를 구할 수 있는 유일한 계획까지 사라진 상황. 이때 뉴스를 보던 중국 국가항천국(중국의 NASA와 같은 기관)의 수뇌부가 말한다. “이건 정치가 아니라, 과학이야. 우리가 도와줘야 해.” 사실 과학은 정치와 국제 관계의 영역에서 움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마션>은 긍정을 선택했고, 덕분에 이 장면의 감흥은 컸다. 과학의 세계에서 정치는 잠시 지워질 수 있다. 그래서 과학은 정치가 풀지 못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마션>이 보여주었던 낙관적 태도를 또 다른 차원으로 확장시킨 작품이다. 지구 밖 외계인도 과학의 문제 앞에서는 우리를 모른 척하지 않을 것이라는 상상이다.

‘헤일메리(Hail Mary)’는 경기 종료 버저가 울리는 순간 득점을 노리고 먼 거리에서 던지는 슛을 뜻하는 농구 용어다. 영화는 경기 종료를 앞둔 지구에서 시작된다. 태양 온도가 낮아지면서 지구 온도도 낮아진다. 몇십 년 안에 인류는 멸망할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마지막 슛이 우주를 향해 던져진다. ‘헤일메리’라는 이름의 우주선에서 주인공 그레이스가 혼수상태에 빠져 있다가 깨어난다. 그는 아직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 여기는 어디? 나는 누구? 기억이 하나씩 돌아오면서 퍼즐이 맞춰진다. 분자생물학 박사인 그는 학계에서 따돌림당한 후 중학교 과학 교사로 일하고 있었는데, 과거에 쓴 논문 때문에 지구를 구하기 위한 연구에 참여했다. 태양은 아스트로파지라는 물질에 먹히고 있었는데, 그는 이 물질을 막아낼 방법을 찾기 위해 ‘헤일메리’를 타고 다른 태양계에 온 것이었다. 그렇게 자신의 정체와 임무를 파악한 그레이스 앞에 거대한 우주선이 나타난다. 어디서도 본 적 없는 형태의 우주선에는 바위를 닮은 생명체가 타고 있다.

‘프로젝트 헤일메리’ 스틸 컷. 소니픽처스코리아
‘프로젝트 헤일메리’ 스틸 컷. 소니픽처스코리아

외계인과의 조우를 그린 이야기는 셀 수 없이 많다. 그래서 ‘프로젝트 헤일메리’가 보여주는 만남이 특별해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여기에는 ‘과학’이 있다는 점이 특별하다. 주인공 그레이스와 그가 ‘로키’라는 이름을 붙여준 외계인은 태양 온도가 낮아지는 문제를 ‘조별 과제’로 받아들이고 협력한다. 이들이 협력할 수 있는 이유는 그들 모두 과학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지구인과 외계인은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 그들은 어떻게 한 공간에서 일할 것인가. 원작 소설이 그냥 지나치지 않았던 부분을 영화도 영화적 방식으로 충실하게 재현한다. 그리고 이때 원작의 묘사보다 더 아름다운 장면을 만들어낸다. 무엇보다 외계인을 지구인보다 몇천 년 앞선 과학 문명을 일궈낸 존재일 것이라고 상상하는 흔한 SF 서사와는 다른 선택을 하는 것도 이 영화의 특징이다. 각각의 문명이 있으니 서로 알고 있는 게 다른 것일 뿐이라는 시선이라고 할까. 그레이스는 로키를 통해 지구에서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깨닫지만, 동시에 로키 또한 지구인의 과학을 통해 새로운 지식을 얻는다.

‘프로젝트 헤일메리’ 스틸 컷. © Amazon MGM Studios/Courtesy Everett Collection
‘프로젝트 헤일메리’ 스틸 컷. © Amazon MGM Studios/Courtesy Everett Collection

작가 앤디 위어는 <마션>으로 시작해 <아르테미스>를 거쳐 <프로젝트 헤일메리>에 이르기까지 거대한 우주와 작은 인간을 대조시켜왔다. 이 광활한 우주에서 인간은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이때 주인공이 과학을 통해 답을 하나씩 찾아가는 과정이 서사의 핵심이다. 하지만 주인공이 찾는 본질적 답은 과학 이전에 ‘집단’에 있다. <마션>에서는 지구의 NASA 직원들과 협력했고, <아르테미스>에서는 달에 조성한 도시를 통해 협력했다. 극단적으로 고립된 주인공을 내세우지만, 결국 그를 도우려는 집단이 형성될 때 가장 긍정적인 순간이 완성되는 것이다. <프로젝트 헤일메리>에서 이런 긍정은 더 강렬할 수밖에 없다. ‘과학’은 지구 안에서만이 아니라 지구 밖에서도 협력의 매개가 될 것이라는 믿음. 심지어 영화는 원작보다 그런 낙관의 온도를 더 높여놓았다. 어쩌면 과학은 처음부터 차갑지 않은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강병진

강병진

대중문화 저널리스트

영화 저널리스트입니다. <씨네21>에서 영화 전문 기자, <허프포스트코리아>에서 뉴스 에디터, OTT 플랫폼 왓챠에서는 콘텐츠 마케팅을 담당했습니다. ‘이상한 장면’이란 유튜브 채널을 운영 중입니다. 어쩌다 보니 20년 가까이 영화를 비롯해 대중문화에 대한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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