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과 미술관의 경계 없는 산책_미술 실크로드
세계적인 건축 사무소 사나가 대만 타이중에 그린 뮤지엄브러리를 설계했다. 전시장과 서고가 유기적으로 연결된 이곳에서 즐겁게 길을 잃다.

대만 타이베이에서 고속 열차를 타고 약 1시간, 타이중에 도착했다. 한국에서 직항도 있다. 대만 중부에 자리한 타이중에선 세계적인 건축가의 대작을 여럿 볼 수 있다.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아시아 대학교 현대미술관, 이오 밍 페이의 루스 기념 예배당, 이토 도요의 타이중 국립극장, 구마 겐고의 친 미술관, 이제 첫 삽을 뜬 프랭크 게리의 중국의약대학 미술관이 스카이라인을 재편한다. 하지만 나의 목표는 하나, 지난해 12월 개관한 그린 뮤지엄브러리였다. 이름부터 독특하다. 원래 뮤지엄브러리라는 단어가 있나? 이곳에 자리한 타이중 시립미술관 디렉터 라이이신(Lai Yi-Hsin)은 “우리의 이상을 담아 만들어낸 명칭”이라고 설명했다. 대만어로는 ‘뤼메이투(綠美圖, 녹미도)’라 불린다. 각 글자가 녹지, 미술관, 도서관을 상징한다.

그린 뮤지엄브러리는 그야말로 녹지 한가운데 자리한다. 슈이난 무역경제 생태공원에 속하는 중앙공원은 군용 비행장 부지였던 과거는 찾아볼 수 없다. 순백의 건물 8동은 5만8,000㎡의 규모인데도 튀지 않고 주변과 어우러진다. 2010년 프리츠커상, 2025년 영국 왕립건축가협회에서 로열 금메달을 수상한 일본의 세계적인 건축 사무소 사나(SANAA)가 설계와 디자인을 맡았다. 사나의 세지마 가즈요(Sejima Kazuyo)와 니시자와 류에(Nishizawa Ryue)는 타이중 시립미술관과 시립도서관을 한데 묶은 이곳에서 ‘예술, 독서, 자연의 공생’을 재현하고자 했다.

1층은 중정처럼 뚫려 있고 대형 인공 연못이 있다. 대만의 열기가 빠지도록 바람이 통하는 구조로 시민이면 누구나 들어와 쉴 수 있는 그늘막을 자처한다. 실내는 사나의 건축 언어인 유동성과 무경계성을 담고 있다. 8동의 구조물은 교량으로 이어져 걷다 보면 전시장과 도서관을 자연스럽게 오간다. 벽은 투명한 유리와 창이 대신하고, 각 층이 헷갈릴 만큼 경계가 모호하며, 입구도 많아 여러 방향에서 안으로 진입할 수 있다.

로비에서 시선을 압도하는 것은 양혜규 작가의 27m, 약 6층에 달하는 설치 작품이다. 타이중 시립미술관 아트 커미션 첫 작가로 선보인 블라인드 신작 ‘유동 봉헌-삼합 나무 그늘(Liquid Votive-Tree Shade Triad)’(2025)이다. 미술관의 공공 관계 전략 연구원 란위화(Lan Yu-Hua)는 양혜규 작가도 만족스러워했다고 회상한다. “한국과 대만 모두 나무를 숭상한다는 점에 착안해 하늘에서부터 뿌리 내리는 나무를 형상화했죠. 작가가 설치한 LED 조명과 반딧불이 같은 레이저 조명 덕분에 밤에는 신비로운 숲에 들어온 것 같아요. 통창을 통해 밖에서도 작품이 보여 야간에 산책하는 시민들이 좋아하죠.” 미술관은 2년마다 한 번씩 새로운 커미션 작품을 설치할 예정이다. 기준은 그린 뮤지엄브러리 건축물과 지역의 생태, 문화적 풍경이 조화를 이루는 작품이다. 로비 한쪽에는 앉아서 쉴 수 있는 꽃 모양 탁자와 의자가 놓여 있다. 대만 작가 마이클 린(Michael Lin)이 대만 객가족(대만으로 대거 이주한 한족의 일파)의 꽃문양을 일일이 손으로 그린 것이다.
양혜규의 작품을 보면서 나선형 통로로 올라가니 5개 공간에서 <만물의 초대(A Call of All Beings)>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전 세계 20여 개국에서 70명 이상의 예술가가 모여 인간과 만물, 자연과 도시의 공생 관계를 토론한다. 전시장을 나와 구름다리를 건너니 자연스럽게 도서관으로 이어진다. 사나가 디자인한 귀여운 서고와 의자 덕분에 친근한 분위기다. 사나는 책꽂이로 꽉 막힌 도서관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서고 높이를 낮추거나 테이블에 책을 눕히는 진열 방식을 선택했다.

타이중에는 시에서 운영하는 40여 개 도서관이 있는데, 이곳이 본관이다. 도서관을 나온 라이이신이 위층 사무실로 안내했다. 독특하게도 신발을 벗고 안에 들어서니 모두 모니터에 집중한 바쁜 모습이다. 어딜 가나 사무실 풍경은 비슷하지만, 통창 너머 푸른 녹음에 숨이 트인다. 라이이신과 나눈 대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타이중 시민과 문화 소외 계층에 열린 공간이 되길 소망한다는 점이었다. 이들에게 예술은 돈이나 어려운 개념이 아니라 일상에 스며드는 친구에 가까웠다.
그린 뮤지엄브러리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공간은 어디인가요?
연결 통로예요. 미술관과 도서관, 각 전시장을 연결하는 통로를 걸으면 공원을 산책하는 것 같거든요. 미술관에선 이런 구조가 흔치 않죠. 관람객이라면 이 길이 나를 어디로 이끌지 설렐 것 같아요. 작은 탐험을 하는 것처럼요. 미술적 해석을 덧붙인다면 그린 뮤지엄브러리는 예술과 개인의 관계, 예술의 발전 방향을 의미해요. 미술은 고정된 방향으로 가는 법 없이, 전혀 예상치 못한 곳으로 우리를 데려가잖아요.
도서관과 미술관이 자연스럽게 융합된 건축입니다. 공간 말고도 두 공간의 교류를 기획하고 있나요?
모두 타이중 시청에서 관할하지만 독립적인 조직으로 운영돼요. 물론 공간은 한곳처럼 연결되어 있어서 누구든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죠. 큐레이터 팀은 텍스트와 전시를 결합하는 시도를 고민하고 있어요. <만물의 초대> 전시에서도 미술관 소장품과 도서관 내 원문을 함께 보여주는 구역이 있죠. 레지던시 프로그램도 기획 중인데, 평면 미술에 국한하지 않고 작가, 영상 예술가, 음악가 등과 함께할 예정이에요.
타이중 시립미술관이 지향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개념은 현대미술관이지만 그 안의 내용은 타이중의 미술사를 정체성으로 삼고 있어요. 그렇기에 근대미술도 우리에겐 중요합니다. 소장품은 690여 점으로, 4분의 3 정도가 타이중 예술가의 작품이죠. 그중 400여 점을 타이중의 5개 문화센터에서 나누어 관리해요. 올해부터는 해외 예술가의 컬렉션을 좀 더 키우려고요. 운영 방향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타이중을 비롯한 대만의 중부 미술에 초점을 맞춥니다. 둘째는 글로벌 관점에서 현대미술 의제를 연결하는 통로가 되고자 해요. 그렇기에 국제적인 큐레이터, 기관과 협업해 세계적인 흐름을 놓치지 않으려 합니다. <만물의 초대> 전시도 대만, 미국, 루마니아 큐레이터들이 공동으로 기획했고, 소통과 준비에 상당한 시간을 투자했어요. 셋째, 운영 방향은 다양한 관람객을 끌어오는 거죠. ESG로 얘기되는 지속 가능성의 문화 버전인데요, 소외 계층이 미술관에 스스럼없이 들어올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에요. 이곳을 벗어나 시내 곳곳에서의 미술 활동도 계획 중이고요.
이 건축물과도 닮은 방향성이군요.
개관할 때 정말 다양한 이들이 방문했어요. 미술관을 처음 찾은 관람객도 있었죠. 그분의 접근성을 높였다는 점에서 스스로 격앙됐어요. 대만인은 교육열이 높기 때문에 도서관은 친숙하지만 미술관은 그렇지 않은 이들도 많거든요. 그들의 발길이 이어지도록 노력해야죠.

한국은 서울에 미술 생태계가 집중된 편입니다. 컬렉터의 도시라 할 수 있는 대구, 최근 수려한 미술관이 입점한 경주 등 주요 거점이 있지만요. 대만 미술계에서 타이중은 어느 정도 위치인가요?
대만에서 미술이 발전하고 자원이 모이기 시작한 곳은 수도 타이베이입니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에는 지리적으로 대만의 중심에 자리한 타이중에 예술가들이 많이 모였고, 1980~1990년대에 타이중과 가오슝에 시립미술관과 문화 기관이 건립되면서 예술 도시로 발전해가고 있죠. 타이중에 오신다면 안도 다다오, 구마 겐고 등이 참여한 아름다운 건축물을 볼 수 있고, 올해 프랭크 게리의 건축 프로젝트도 시작됐죠. 이렇듯 민간과 시 차원에서 전폭적인 지원과 시도가 이뤄지고 있어요. 올해 14회를 맞는 타이중 아트 페어는 그린 뮤지엄브러리 옆에 완공된 컨벤션 센터에서 열릴 거예요.
아트 페어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대만의 미술 시장은 어떤 상황인가요?
지난해에 프리즈 서울을 방문했는데, 도시의 에너지가 대단했어요. 대만은 중소 아트 페어가 여러 지방에서 열립니다. 소수가 압도적인 규모라기보다는 수평적인 형태죠. 급격한 변화는 아니지만 컬렉터층도 두꺼워지고 있는 중입니다.
그린 뮤지엄브러리를 방문하는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바가 있나요?
이 유기적인 건축에서 본래 목적에서 벗어난 의도치 않은 것을 발견할지도 몰라요. 책을 빌리러 왔다가 아주 멋진 그림이나 자연의 풍광에 넋을 놓은 어느 관람객처럼요. 당황스러울 수 있지만 분명 즐거운 놀라움이 될 겁니다. VK
- 피처 디렉터
- 김나랑
- 포토
- Courtesy of Taichung Green Museumbr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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