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드 비즈가 ‘뻬를리’가 되기까지
작은 금빛으로 엮어낸 리듬감. 역사가 지금이 될 때.

나에게 어떤 주얼리는 상징으로 기억된다. 네 잎 클로버 혹은 꽃처럼 ‘그 주얼리’를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무엇’은 주로 구체적인 형태가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반클리프 아펠(Van Cleef & Arpels)의 ‘뻬를리’ 컬렉션은 좀 다르다. 뻬를리의 첫 번째는 모티브보다는 감각이다. 무엇보다 만지고 싶어진다. 바로 연속적이고 입체적으로 조형된 골드 비즈 때문이다. 피부 위에서 굴러가는 듯한 골드 비즈가 만드는 섬세한 볼륨감은 무작정 진지하다기보다 오히려 유쾌하고, 빛이 자연스럽게 흩어지면서 우아한 생동감마저 느껴진다. 결국 뻬를리의 골드 비즈는 장식이라기보다는 리듬에 가깝다.

‘뻬를리(Perlée)’라는 컬렉션의 이름 자체가 진주를 뜻하는 프랑스어 ‘Perle’에서 출발했을 정도로 골드 비즈는 뻬를리의 모든 것이라 해도 과장이 아니다. 금을 완벽한 구형으로 다듬어 금빛 진주처럼 보이게 만든 골드 비즈. 사실 골드 비즈는 뻬를리뿐 아니라 메종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언어다. 뻬를리 컬렉션은 2008년 처음 출시되었지만, 뻬를리를 진정으로 이해하려면 먼저 골드 비즈에 대해 살펴봐야 한다. 골드 비즈, 뻬를리의 진정한 시작은 192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골드 비즈는 하나의 독립된 주제가 아니라 특정 디자인을 강조하거나 보석 둘레를 정교하게 마감하는 세공의 일부에 가까웠다. 하지만 1940년대 후반을 기점으로 더 큰 볼륨과 곡선을 지닌 형태로 확장되면서 골드 비즈는 하나의 강력한 디자인 언어로 자리 잡았다. 가장 결정적인 건 볼륨감이 있으면서도 유연하게 흐르는 투보가스(Tubogas) 스타일 체인 위에 옐로 골드 비즈가 빼곡히 장식된 ‘쿠스쿠스(Couscous)’ 컬렉션의 등장이다. 여기서 골드 비즈는 더 이상 보조적인 존재가 아니라 금속의 광채와 젬스톤의 반짝임을 엮어내는 핵심 구조였다. 특히 골드 비즈와 다이아몬드를 비롯해 다양한 색조의 보석을 조화롭게 결합한 모습은 당시 주얼리 디자인의 흐름에 전환점을 마련했다.
쿠스쿠스 컬렉션에서 골드 비즈의 추상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줬다면, ‘바가텔(Bagatelle)’ 컬렉션은 작고 가벼운 아름다움, 혹은 우아한 소품을 뜻하는 이름 그대로 과시적이기보다는 경쾌한 매력을 강조했다. 1950년대에는 편안하게 착용할 수 있는 주얼리 컬렉션 ‘라 부티크’가 출시됐는데, 애니멀 클립처럼 구상적인 피스에서도 골드 비즈를 사용했을 정도다. 1963년 ‘트위스트(Twist)’ 컬렉션에서는 더 산뜻한 골드의 감각을 선보였다. 붉은 오렌지색의 코럴, 깊은 푸른색의 라피스라줄리, 하늘색 터키석 같은 컬러 스톤과 골드 비즈가 섬세하게 꼬인 형태로 어우러진 것이다. 이 피스들은 당시 유행하던 둥근 볼륨감과 대비감 있는 조합을 반영하는 동시에, 골드 비즈의 조형적 가능성을 한층 넓히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1968년 메종의 가장 대중적이고 상징적인 아이콘 ‘알함브라(Alhambra)’가 이 계보에 등장한다. 모두 알고 있는 것처럼 알함브라 컬렉션의 클로버 모티브 윤곽을 따라 골드 비즈를 장식하면서 시대를 초월한 메종의 정체성이 된 것이다. 결국 골드 비즈는 뻬를리만의 특징이 아니라 메종 전체를 관통하는 유산이며, 뻬를리는 그 역사를 가장 집중적으로 보여주는 컬렉션인 셈이다.

2008년 드디어 하나의 컬렉션으로 탄생한 ‘뻬를리’. 새로운 컬렉션의 출발을 넘어, 오래된 조형 문법의 본격적인 독립선언과도 같다. 골드 비즈 반지에서 사랑스러운 분위기가 느껴진다.

‘뻬를리 골드 비즈 후프’ 귀고리. 작은 원형의 비즈를 하나의 리듬처럼 이어가려면 크기와 간격, 표면의 광택을 한 치의 오차 없이 동일하게 적용해야 한다.
골드 비즈가 반클리프 아펠에서 가진 의미를 상기하면, 2008년 뻬를리의 탄생은 단지 새로운 컬렉션의 출발이라고만 볼 수 없다. 그것은 오래된 조형 문법의 본격적인 독립선언과도 같다. 상징성뿐 아니라 골드 비즈의 완성도 측면에서 봐도 그렇다. 균일한 골드 비즈를 완성하는 데는 높은 수준의 기술력이 필수다. 작은 원형의 비즈를 하나의 리듬처럼 이어가려면 크기와 간격, 표면의 광택을 한 치의 오차 없이 동일하게 적용해야 한다. 단순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아주 미세한 차이도 전체 인상을 바꾸기 때문에, 골드 비즈 작업은 메종의 정교한 제작 기술이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공정이다. 시작은 로스트 왁스 캐스팅(Lost-wax Casting) 기법이다. 구형 왁스를 틀로 감싼 뒤 열로 녹여 왁스를 비워낸 자리에 금속을 부어 형태를 완성하는 전통적인 주조 방식으로, 그 이후엔 하나하나 손으로 다시 다듬어 전체적으로 완벽한 조화를 완성한다.

옐로 골드 소재의 ‘뻬를리’ 팔찌. 뻬를리의 골드 비즈가 차가운 빛이 아니라 따뜻한 빛을 내뿜는 건 장인들의 미러 폴리싱 기법 덕분이다.

화이트 골드 소재의 ‘뻬를리’ 팔찌. 미러 폴리싱 기법으로 금속 표면을 여러 단계에 걸쳐 미세하게 연마해, 거울처럼 매끈하고 반짝이는 마감을 완성한다.
뻬를리의 골드 비즈가 차가운 빛이 아니라 따뜻한 빛을 내뿜는 건 숙련된 장인들이 세대를 거쳐 전수한 미러 폴리싱(Mirror Polishing) 기법 덕분이다. 미러 폴리싱이란 금속 표면을 여러 단계에 걸쳐 아주 미세하게 연마해, 이름 그대로 거울처럼 매끈하고 반사율 높은 상태로 만드는 마감 기법을 뜻한다. 미러 폴리싱 과정을 거친 골드 비즈는 주얼리에 선명한 광택과 입체감, 일종의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그렇기 때문에 골드 비즈는 그 자체로 중심이 될 때도 충분한 존재감을 발휘하지만, 주변의 스톤과 보석을 더 돋보이게 하는 역할도 한다. 이건 골드 비즈가 반클리프 아펠의 역사 속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된 이유이기도 하다.
골드 비즈를 만드는 과정에서 또 하나 주목할 점은 뻬를리 다이아몬드나 클로버에 적용되는 오픈워크 기법이다. 간단히 말하면, 골드에 구멍을 내어 스톤 사이로 빛이 통과하도록 하는 것. 모든 오픈워크 디자인은 수작업으로 재가공을 거치며, 이 과정에서 폴리싱 와이어를 사용하는 스레드 폴리싱(Thread Polishing) 기법도 활용된다. 바로 가느다란 와이어 형태의 연마 도구를 이용해 일반적인 폴리싱 도구가 닿기 어려운 좁고 섬세한 부분까지 정교하게 다듬는 방식이다. 특히 금속을 꽉 채우지 않고 일부를 비워 만든 구조인 오픈워크처럼 복잡하고 내부 공간이 많은 디자인에서 사용되며, 가장자리와 안쪽 면까지 완벽한 마감이 가능하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구조의 섬세함은 유지하면서 빛의 반사와 표면의 완성도를 한층 높일 수 있다. 구조는 한층 가벼워지고, 빛은 더 섬세하게 살아나는 것이다. 그리고 엄격한 기준 아래 선별된 스톤과 페어링 과정을 거쳐 컬러와 대칭, 광채가 균형을 이룬 뻬를리가 탄생한다.

특히 ‘뻬를리 다이아몬드 브레이슬릿 5-로우’에서는 기술의 정수를 목격할 수 있다. 다이아몬드 아래 금속 부분에 벌집 모양 오픈워크 구조를 적용한 것인데, 육각형 패턴으로 금속을 섬세하게 비워 빛이 스톤을 잘 통과하도록 유도한 것이다. 자세히 살펴보지 않으면 눈치채기 어렵지만, 결과적으로는 다이아몬드의 광채를 한층 또렷하게 만든다. 이렇게 뻬를리에서 스톤은 별도의 장식이 아니라 골드 비즈가 만들어내는 리듬 속에 하나로 녹아든다.
- 사진
- COURTESY OF VAN CLEEF & ARP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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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AN CLEEF & ARP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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