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동인천 웨이브

2019.09.02

by 송보라

    동인천 웨이브

    동인천에 동인천식 블루보틀, 이치란, 베르크하인이 생겼다. 나는 진작 이곳에 기습당해버렸다. 어떤 작전 세력이 건물을 열여섯 채 매입했다는 소문, 이태원과 망원동처럼 힙스터의 놀이터가 될 거란 우려도 돈다. 하지만 동인천의 오래된 문화를 믿기에 걱정하지 않는다.

    OOO에 대한 동인천의 대답. 요즘 내가 소셜 네트워크에 재미 삼아 쓰는 일종의 시리즈다. ‘OOO에 대한 OO의 대답’은 음악 매체에서 많이 쓰는 표현으로 예를 들어 일본에서 판테라와 비슷한 음악을 하는 코코뱃 같은 팀에게 ‘판테라에 대한 일본의 대답’ 같은 수사를 만드는 식이다. 여기에 뜬금없이 동인천을 갖다 붙인다. 이를테면 동인천 차이나타운에 있는 카페 ‘아키라’엔 ‘블루보틀에 대한 동인천의 대답’이란 말을 붙이고, 새로 생긴 온면집 ‘개항면’은 ‘이치란에 대한 동인천의 대답’이 된다.

    가좌동 공장을 개조해 만든 공간 ‘코스모40’엔 베를린의 유명 클럽 ‘베르크하인’을 가져와 ‘베르크하인에 대한 동인천의 대답’이라 한다. 인천유나이티드 축구 경기를 보러 와서는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에 대한 동인천의 대답’이라고 글을 올린다. 이 가운데 실제 가본 곳은 블루보틀뿐이다. 이치란도 안 가봤고 베르크하인은 클럽을 그리 선호하지 않는 나로선 더더욱 가볼 일이 없다. 잉글랜드 선덜랜드 홈구장인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 역시 마찬가지다. 안타까운 팀 성적에 비해 너무나 아름다운 홈구장을 가진 두 구단을 비교해 말해본 것이다. 베르크하인과 코스모40이 얼마나 비슷한지, 개항면과 이치란의 맛이 어떻게 다른지는 나에게 전혀 중요한 게 아니다. 그저 나는 (동)인천이라는 매력적인 곳을 알리고 싶은 것뿐이다.

    이렇게 동인천에 대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소셜 네트워크에 글을 올리고, 급기야 이 귀중한 지면에까지 글을 쓰고 있는 나의 모습은 내 인생 계획표에 전혀 없던 일이었다. 아니, 그에 앞서 내가 지금 인천의 끝, 서쪽에 있지만 왜 동인천으로 불리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는 동네에 와서 살고 있을 거라곤 불과 몇 년 전의 나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소설가 신경숙이 했던 말처럼 “삶에는 분명 기습이 있”는 거라면 나에겐 동인천이 기습과 같았다. 동인천은 나의 삶을 기습하였고, 난 기꺼이 기습을 받아들였다.

    대전에서 나고 자란 나에게 인천은 부정적인 면이 더 강한 도시였다. 인천을 생각하면 먼저 부평이나 주안 같은 곳이 떠올랐다. 주안과 부평이 주는 혼돈의 이미지, 미로 같은 부평 지하상가처럼 인천은 복잡하고 거칠어 보였다. ‘마계인천’이니 ‘도봉산’이니 하는 인터넷 용어는 그런 이미지를 더욱 고착시켰다. 인천은 바다를 끼고 있는 도시지만 푸른 바다보다는 오히려 잿빛 항(港)과 포구가 황량하고 쓸쓸하게 자리하고 있다.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의 혜주(이요원)처럼 서울에 나갔다 1호선 지하철을 타고 인천으로 돌아올 때 느꼈던 초라함을 공유하는 인천 지인들이 주변에 있다. 그렇게 300만 인구를 가진 대도시 인천은 나에겐 여전히 아쉽게도 서울의 위성도시처럼 보였다.

    아, 용화반점. 용화반점이 없었다면 인천에 대한 나의 이미지는 위 문단에서 멈춰 있었을 것이다. 동인천 배다리, 행정구역상으론 중구 경동에 있는 이 중국집에서 볶음밥과 고추짬뽕밥을 처음 먹는 순간 동인천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만났다. ‘청요리’를 워낙 좋아하는 나에게 용화반점은 완벽한 중화요릿집이었다. 볶음밥, 짬뽕, 탕수육, 양장피, 팔보채, 잡채, 난젠완쯔, 자춘걸, 우럭탕수, 거의 모든 요리를 이 집은 완벽하게 해냈다. 맛에 반해 한 번, 두 번 드나들던 발걸음은 어느새 날 용화반점의 단골로 만들었고, 용화를 중심으로 동인천에 대한 관심의 영역이 점점 확대됐다.

    자유공원과 신포시장이 동인천의 전부라고 생각했던 나는 점점 동인천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율목동과 답동에 그렇게 예쁜 고택과 골목이 많다는 걸 처음 알았고, 배다리 헌책방 아벨서점에서 흘러나오는 클래식 FM 방송은 그 자체로 공간을 고풍스럽게 만들어주었다(그리고 배다리 헌책방 거리는 드라마 <도깨비>와 영화 <극한직업>의 배경이 된다). 구한말 개항기 영향으로 오랜 시간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는 성당과 교회도 고풍스러움과 고즈넉함을 배가시켜주었다. 그 고풍스러움과 고즈넉함, 저녁나절의 조용함에 반했고 지난 2월 더 이상 동인천 방문자가 아닌 거주자가 되었다.

    이 오래된 매력에 언제부턴가 새로움이 더해지기 시작했다. 65세 이상 노인 비율이 20%를 넘어 초고령 지역이 된 동네에 젊은이들이 드나들기 시작했다. 용화반점 맞은편에 카페 ‘라이트하우스’가 들어선 건 상징적이었다. 1972년 시작해 동인천을 대표하는 맛집이 된 용화반점 바로 앞에 폐업 상태였던 산부인과 건물을 개조한 카페가 들어선 건 동인천의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근처엔 역시 비어 있던 이비인후과 건물에 들어선 카페 ‘브라운핸즈’도 있다. 용화반점 사장님 표현을 그대로 빌려 “저녁만 되면 귀신 나올 것 같은” 동네였던 곳에 이제 젊은이들이 모여들어 용화반점에서 식사를 하고 브라운핸즈와 라이트하우스에서 커피를 마신다.

    1960년대까지 싸리재라 불리던 길이 있다. 배다리에서 경동사거리까지 이어지는 길이다. 정식 명칭은 ‘개항로’다. 이 길에는 오래된 책과 음반이 가득한 찻집 ‘싸리재’가 있고, 공식적인 역사로는 인정받지 못하고 있지만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극장이라는 120년 전통의 ‘애관극장’이 있다. 옆으로는 수많은 가구점이 늘어서 있었다. 이제는 폐업한 가구점과 오래 비어 있던 건물에 새로운 젊은 가게가 속속 들어선다. 젊은 감각의 가게가 오래된 동네에 이전과는 다른 공기를 넣고 있다.

    ‘치킨’도 아니고 ‘통닭’을 전면에 내건 ‘개항로통닭’은 처음부터 을지로에 있는 만선호프의 이미지를 빌려왔다. 플라스틱 의자와 탁자가 펼쳐진 곳에 믿기지 않을 정도로 평일 저녁에도 손님이 가득하다. 온면 전문점 ‘개항면’은 개업 한 달도 안 돼 주말이면 줄을 서서 먹어야 하는 식당이 됐다. 베트남 음식점 ‘메콩사롱’과 이자카야 ‘오노고로’, 젊은 술꾼을 위한 ‘이슬옥’ 등 각기 다른 종류의 식당이 계속 들어서고 있고, 개항로에는 여전히 많은 건물에 임대 문의가 붙어 있다. ‘임대 문의’가 대변하듯 당분간 더 많은 식당과 공간이 동인천에 들어설 것이다.

    이 흐름에는 분명한 우려의 시선이 있다. 이태원이 그랬듯 부동산 가격을 올리고 빠지려는 작전이 아니냐는 우려의 시선과 어떤 작전 세력이 한꺼번에 건물을 열여섯 채 매입했다는 소문이 함께 떠돈다. 내가 처음 들렀을 때의 동인천과 너무나 달라진 지금의 분위기를 생각하면 그런 우려는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너무나 갑작스럽고 아이러니하게 너무나 계획적이다. 또 이태원과 망원동처럼 ‘힙스터 놀이’만으론 활기가 오래 지속되지 못할 거라는 걸 우리는 경험으로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내가 이런 급작스러운 변화에도 크게 걱정하지 않는 건 이 정도 변화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수십 년 넘게 제자리를 지켜온 수많은 노포와 그 오래된 것들이 중심이 돼 만들어내는 동인천의 문화를 믿기 때문이다. 개항과 차이나타운, 그곳에서 살아온 사람들. 한국과 중국, 일본의 고유한 문화가 한 공간에서 만나 만들어낸 묘한 정서와 풍광은 동인천만의 힘이다. 설령 새로 생긴 젊은 가게들이 다 사라진대도 30년 정도론 명함도 못 내밀 오래된 공간들이 계속 동인천을 지킬 것이다.

    120년 전통의 애관극장에서 (4,000원으로!) 조조 영화를 보고 난 뒤 60년 넘은 경인면옥 평양냉면이나 삼강옥 설렁탕으로 점심을 먹는다. 가장 고즈넉한 도서관 가운데 하나일 율목도서관이나 1890년 지어진 한국 최초의 성공회 교회 내동교회에서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다 동인천 곳곳에 있는 부대고기 전문점에서 이른 저녁을 먹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신포시장 신포닭강정이나 동인천 토박이가 선호하는 찬누리 프라이드치킨이 손에 들려 있다. 오래된 것들이 주는 평온함과 여유로움이 동인천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인천 출신 명인 송창식이 소년 시절 늘 음악책을 샀다는 헌책방 아벨서점은 책만 파는 공간이 아니다. 아벨서점은 아벨전시관이라는 공간을 따로 두고 시 낭송회와 강연을 연다. 화려하진 않지만 배다리와 동인천의 문화를 지키기 위한 소박한 행사가 곳곳에서 열린다. 옛 인천양조장을 개조해 만든 문화 공간 스페이스 빔도, 수많은 곳에서 운영되는 중화요릿집도, 오래전부터 외식 명소로 자리 잡은 경양식집도 동네를 더 특별하게 만든다. 맛있는 음식과 고풍스러운 건물과 골목 사이사이에 동인천의 진짜 멋이 느리지만 천천히 계속 유지되고 있다. 이 오래된 멋에 지금 새로운 기운이 입혀지고 있다. 이 새로운 흐름이 또 그만큼 오래된 멋으로 바뀌길 바란다. 그때 진짜 ‘동인천 웨이브’가 완성될 것이다.

      에디터
      김나랑
      포토그래퍼
      이윤화
      김학선(음악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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