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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이네’, 무엇 하나 부족한 것 없지만 그래서 한가하다

2023.03.17

by 강병진

    ‘서진이네’, 무엇 하나 부족한 것 없지만 그래서 한가하다

    “아, 어떡해요. 좀 뚝딱뚝딱거려야지 예능으로 좀 재밌을 텐데…” 지난 3월 10일 방영된 tvN <서진이네>에서 인턴 최우식은 이렇게 말했다. 자신이 맡은 역할에서 보여줄 수 있는 너스레였지만, <서진이네>를 보는 내 입장이기도 했다. 사장 이서진, 이사 정유미, 부장 박서준, 인턴 최우식과 김태형까지 모두 책임감을 갖고 일하는 모습, 그리고 그들이 만든 음식을 좋아하는 손님들, 그 모두를 둘러싼 이국의 풍경까지. 무엇 하나 모자라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서진이네>를 보면서 나 또한 같은 생각을 했던 것이다.

    tvN <서진이네>

    <서진이네>를 연출한 나영석 PD가 KBS <1박 2일> 시절 보여준 레전드 에피소드 중에 ‘강호동의 커피 주문’이 있다. 다른 멤버들의 복잡한 커피 주문을 강호동이 그대로 기억하고 주문할 수 있을지 지켜보는 에피소드였다. 스타벅스에서 통용되는 용어에 친숙하지 않은 강호동은 당연히 잔뜩 얼어붙어 더듬거리는 말로 주문을 이어갔는데, 그 상황이 너무 웃겨서 지금까지도 ‘짤’로 회자되곤 한다. 커피에 대해 거의 모를 사람한테 커피를 주문하라고 하는 것. 이건 이후 나영석 PD와 이우정 작가가 tvN에서 만든 대부분의 예능 프로그램에 적용한 공식이기도 했다. 70~80대 노인들이 유럽 배낭여행을 할 수 있을까? 이서진 같은 도회적인 캐릭터를 주로 연기한 사람이 그들의 수발을 들 수 있을까? 또 그 사람이 시골에서 직접 요리하고 밥을 해 먹을 수 있을까? 윤여정 같은 배우가 장사를 할 수 있을까? 그렇게 출발해 성공한 포맷은 또 다른 출연자들을 끌어안으면서 생명력을 이어갔다. 그리고 성공한 포맷에서 가지를 친 스핀오프와 유튜브 ‘채널 십오야’에서도 같은 공식이 이어졌다. ‘신서유기 외전’으로 기획된 <사장이 더 많이 먹는 강식당>과 <운동천재 안재현> 등이 그렇다. <서진이네> 이전에 기획한 <뿅뿅 지구오락실>까지도 같은 공식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여성 출연자들을 <신서유기>의 포맷에 넣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연기자의 능력과 이미지, 나이 등을 고려해 그들과 거리가 멀어 보이는 공간에 놔두는 것. 나영석 PD의 예능이 재밌고, 때로는 감동적인 이유도 그곳에 있었다.

    tvN <서진이네>

    하지만 <서진이네>는 이전의 공식과 달리 그곳에 가장 어울리는, 그것도 이미 같은 경험이 많은 연기자를 그곳에 놓아둔 프로그램이다. 그런 연기자들이 이미 시청자마저 익숙한 포맷의 형태에 놓여 있으니 무엇 하나 “뚝딱뚝딱거리지도 않고”, 거슬리는 것도 없는 결과물이 나온 것이다. 윤여정도 없으니 윤여정이 있을 때 생겨나는 긴장감도 사라졌다. 여기에 만들어주는 음식마다 놀라워하며 맛있게 먹는 외국인 손님들의 리액션이 있으니 적절한 ‘국뽕’까지 차오른다. 분명 지금까지 나영석 PD가 연출한 프로그램의 포맷 안에 있는데도, 이전 나영석 PD의 작품과 가장 거리가 먼 프로그램을 보는 것 같다고 할까. 좋게 보면 보는 동안 마음이 편한 예능이고, 솔직히 말하면 한가하다. 프로그램 속 인물들은 주문이 밀려서 정신이 없는데도 말이다.

    tvN <서진이네>
    tvN <서진이네>

    <서진이네>가 예전 같지 않은 나영석의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아쉽지만, 그렇다고 해서 <서진이네>를 나영석 PD의 나태한 자기 복제라고만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시청자의 취향은 저마다 다르고, 연출가의 취향과 공식은 시간에 따라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서진이네>가 ‘생고생 버라이어티’에서 ‘힐링 예능’으로 향하는 나영석의 변화를 보여주는 작품이라면, 그것 또한 흥미로운 부분일 수 있다. 비슷한 시기에 공개된 김태호 PD의 <지구마불 세계여행>도 같은 관점에서 볼 수 있다. ENA 채널 첫 방영 전 유튜브 라이브로 가진 Q&A에서 김태호 PD는 “제가 원래 카메라를 너무 많이 쓰는 걸로 유명했는데, 이번에는 카메라를 최소화했다”라고 말했다. 그가 연출한 <무한도전>은 멤버당 여러 대의 카메라를 붙이는 걸로 유명했고, 그 후 수많은 예능 프로그램이 따라 하면서 그것 또한 기본 공식이 되었다. 그런 유행을 선도한 김태호 PD가 이번에는 기존 연예인이 아닌 유튜버들과 함께 그들의 손에 들린 카메라로 찍는 예능을 기획한 것이다. 어쩌면 2023년은 그처럼 예능의 기본 공식을 만든 크리에이터의 변화를 경험할 수 있는 시점일 수도 있다. 그래서인지 오히려 그들의 오랜 공식을 벤치마킹한 <두발로 티켓팅>이나 <텐트 밖은 유럽> 같은 프로그램이 더 한가해 보이기도 한다. 출연진 몰래 제작진이 사라진다던가, 외국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커피를 사고 자동차를 빌리면서 허둥지둥하는 장면은 이미 10년 전에 보았던 것이니 말이다. 새로운 모험과 변화마저도 흥행 공식을 만들던 그들에게만 가능한 걸까? 그렇다면 ‘실패’ 또한 그들에게만 허락된 결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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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vN '서진이네' 공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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