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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을 완성하는 레시피 ‘당신의 맛’

2025.05.15

여름을 완성하는 레시피 ‘당신의 맛’

ENA ‘당신의 맛’ 스틸 컷

강하늘, 고민시 주연의 <당신의 맛>(지니 TV, ENA, 넷플릭스)은 간판 없는 전주 골목 식당의 고집 센 요리사와 대기업 상속 경쟁에 뛰어든 ‘스포일드 어덜트(버릇 없는 어른)’가 만나서 티격태격하는 얘기다. 각본의 주재료는 파인다이닝이지만 결과물은 K-드라마 팬들이 모두 아는 맛, 평생 먹어온 맛, 그러나 막상 밥상에 오르면 또 손이 가고 마는 일상식 같은 맛의 로맨틱 코미디다.

요리사 모연주(고민시)는 직접 채소와 콩을 기르고, 고기와 달걀 맛을 농장별로 구별하고, 버섯 하나 구하러 산에 오르고, 최상품 고춧가루 거래에 실패했다고 대성통곡하는 미각 천재이자 완벽주의자다. 이 인물은 경영과 회계는 물론이고 마케팅에도 관심이 없다. 가스가 끊길 위기에 처해도 고지서를 씹어 먹으며 현실을 외면한다. 그는 처음 이 도시에 와서 식당을 계약할 때 건물주가 우정의 증표라며 준 선바이저를 야외에서 재료를 구할 때 꼭 쓰고 다녔는데, 월세가 밀리는 바람에 그마저 빼앗기게 되었다. 그제야 연주는 선바이저를 되찾아야 한다는 핑계로 현실과 타협하기 시작한다.

ENA ‘당신의 맛’ 스틸 컷
ENA ‘당신의 맛’ 스틸 컷

남주인공 한범우(강하늘)는 식품 대기업인 한상그룹 자제지만 집안에서 입지가 불안하다. 회장은 한선우(배나라)와 범우 중에서 먼저 (미쉐린을 암시하는) 레스토랑 평가 기구의 ‘3스타’를 받는 이에게 그룹을 물려주기로 한다. 범우는 셀러브리티 셰프 장영혜(홍화연)를 간판으로 내걸고 마케팅에 공을 들인다. 정작 요리는 전국 맛집의 레시피를 도용하거나 인수니 투자니 하는 말로 구워삶아서 빼앗는 것으로 해결한다. 한선우의 방해 공작으로 그룹에서 쫓겨나고 돈줄이 마른 한범우는 모연주를 이용해 3스타 레스토랑을 만들고 회장의 인정을 받으려 한다.

모연주는 계약 조건으로 범우가 직접 식당에서 일을 할 것, 각자 주방과 홀을 맡고 서로 간섭하지 않을 것을 요구한다. 범우는 고분고분 이를 따르는 척하지만 진짜 목표는 레시피를 훔치는 것이다.

여기까지만 봐도 <당신의 맛>이 <더 베어>(디즈니+) 유의 진지하고 리얼한 전문직 드라마는 아니라는 게 분명해진다. 누구는 개점 첫해에 1스타를 땄고 누구는 3년 만에 2스타를 땄다느니 하는 대사, 메뉴 개발에는 관심 없고 셀러브리티 놀이에만 빠져 있는 셰프 장영혜, 소위 ‘먼치킨급’ 능력을 가진 데다 수지 타산을 개의치 않는 모연주 등 요식업계의 치열한 생존 경쟁을 아는 이들에게는 농담처럼 들릴 설정이 많다. 요리를 돈벌이 수단으로만 여기는 도시 남자와 요리를 성스럽게 여기는 지방 여자의 대비는 누가 누구를 극적으로 감화시킬지 답이 짐작되는 공식이다. 배우들이 얼버무리는 것처럼 대사가 희미하게 들릴 때가 많은 것도 아쉽다. 방언이 익숙지 않아서 그렇다고 하기에는 전라도 출신 배우들의 대사도 마찬가지여서 원인이 궁금해진다.

ENA ‘당신의 맛’ 스틸 컷
ENA ‘당신의 맛’ 스틸 컷

제작진이 정교함 대신 힘을 준 요소는 서정이다. 1~2화에서 고급 자동차, 시계, 의류, 라이프스타일을 뽐내며 대기업 이사 명함을 무기처럼 내밀던 한범우는 순식간에 시골 청년 ‘삼식이’로 변신한다. 이 캐릭터가 양복으로 여인숙비를 대납하고 동네 축구회 유니폼을 걸친 순간부터 강하늘 특유의 친근하고 능청스러운 이미지가 힘을 발하기 시작한다. 그는 무시하던 동네 사람들과도 점점 가까워진다. ‘코리안 미드 센추리 스타일’이라고 불러도 좋을 법한 소도시 서민 한옥 주택가의 정취, 텃밭 딸린 상가 주택에서 민낯에 편한 차림으로 부지런히 노동을 하는 고민시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즐겁다. 모연주 캐릭터는 한식 요리와 지역 식재료에 애착이 깊은 동시에 서양 파인다이닝 문화에도 경험치가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1~2화에서 그의 입을 통해 식재료가 설명되는 장면은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소소한 지적 만족감과 호감을 선사할 대목이다.

요식업계를 보는 시각이 다분히 과장되었다고는 하나, 대기업이 자영업자를 착취하는 현실을 비판적으로 언급하는 것도 흥미롭다. 한범우와 모연주는 각자 자본과 아이디어, 경영자와 실무자, 판매자와 예술가의 입장을 대변하며 충돌한다. 그렇기 때문이 이 커플이 일에 관해 어떤 타협점을 찾을지가 로맨스 못지않게 기대가 된다.

지방 힐링 청춘 성공물에 요리와 코미디를 더했으니, 여름 드라마의 재료는 고루 갖췄다. 맛있게 즐길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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