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티칸 도서관에서 열리는 삶과 여행에 관한 전시
여행을 향한 갈망은 현시대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19세기나 20세기에도 열정의 여행자들이 존재했다. 메종 디올 후원으로 바티칸 도서관에서 열리는 전시 〈En Route〉는 그 자체로 여행의 목적이 되기에 충분하다.

누군가는 여행을 거리와 기간, 시간 등의 단어를 통해 설명하고, 다른 누군가는 페이지 혹은 챕터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또한 우리는 패션과 예술, 책을 말할 때도 여행이라는 단어를 가져다 쓴다. 삶은 곧 여행이라고 여기는 이들에게 올해 바티칸 도서관은 한층 특별하고 심오한 여행을 선물한다.
로마에 사는 사람들은 바티칸 시국이 하나의 국가이자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라는 사실을 종종 잊는다. 그러다 바티칸 출입국 사무소에서 가방 밑에 깔린 여권을 꺼낼 때 비로소 국경을 넘고 있음을 깨닫는다. 물론 그 후 다시 이탈리아로 돌아올 때, 그들은 관료적이라고 치부하던 그 절차가 얼마나 상징적이고 의미심장한지 알아차리게 될 것이다.

바티칸 도서관 입구에서 나를 맞이한 이는 전시장 담당자이자 보조 기록관(도서관의 다양한 소장물을 분류하고 연구하는 직원)인 돈 자코모 카르디날리(Don Giacomo Cardinali)였다. 그의 안내에 따라 둘러본 전시는 희년(성경에서 안식년이 일곱 번 지난 50년마다 돌아오는 해)을 기념해 12월 20일까지 이어지는 <En Route>. 카르디날리가 메종 디올 후원으로 시모나 데 크레셴초(Simona De Crescenzo), 프란체스카 잔네토(Francesca Giannetto), 델리오 V. 프로베르비오(Delio V. Proverbio)와 함께 기획한 전시로 간략하게 소개하자면 디올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마리아 그라치아 키우리(Maria Grazia Chiuri)를 비롯해 가수 로렌초 요바노티 케루비니(Lorenzo Jovanotti Cherubini), 비주얼 아티스트 크리스티아나 S. 빌리암스(Kristjana S. Williams)의 시선으로 여행이 가진 보편적 힘을 기리는 프로젝트다.
<En Route>는 희년을 기념해 이탈리아 외교관 체사레 포마(Cesare Poma)의 소장품도 공개한다. 포마는 앞장서서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에 걸친 여행자들의 이야기를 수록한 전 세계 신문 1,200여 부를 수집해왔는데, 여기에는 과라니어와 히브리어 신문과 최초의 여성 패션지 등 매우 소중한 기록물도 포함돼 있다.
두 명의 프랑스 저널리스트 뤼시앵 르루아(Lucien Leroy)와 앙리 파필로(Henri Papillaud)가 창간한 잡지 <앙 루트(En Route)>도 전시된다. 두 선구적인 저널리스트는 1895년부터 1897년까지 세계 일주를 하며 그들이 방문한 여행지에 관한 기사를 쓰는 것으로 여행 자금을 마련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남성들의 모험뿐 아니라 당시 선입견을 극복하고 직접 세계 일주를 떠난 여성들의 이야기도 함께 만나볼 수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미국 저널리스트 넬리 블라이(Nellie Bly)의 모험. 그녀는 쥘 베른의 소설 <80일간의 세계 일주>의 주인공 필리어스 포그를 이기기 위한 세계 일주를 계획했고, 자금을 지원해달라고 신문사 대표 조지프 퓰리처를 설득했다.

블라이의 모험은 성공적이었다. 그녀는 72일 만에 세계 일주를 마쳤고, <뉴욕 월드> 신문은 블라이의 여행을 순차적으로 낱낱이 보도해 그녀의 여행을 온 미디어가 주목하는 화제의 이벤트로 만들었다.
전시 <En Route>는 케루비니의 작품으로 시작한다. 그가 여행할 때 타고 다닌 자전거, 사색의 기록과 초상화, 각종 스케치로 빼곡한 노트, 늘 지니고 다니던 책뿐 아니라 그에게 많은 영감을 준 글귀와 음악 등이 전부 예술품으로 전시장에 소개된다. 한편 빌리암스는 신문 수집광이던 포마의 컬렉션에서 포착한 세계를 환상적이고 상징적인 비주얼 아트로 재창조했다. 낭만적인 분위기가 풍기는 그녀의 미니어처는 초현실적인 감성을 불러일으키는 3차원 콜라주라고 할 수 있다.

전시는 카리슈마 스왈리(Karishma Swali)와 그녀가 이끄는 차나키야 공예학교 장인들이 협업한 키우리의 작품으로 마무리된다. 키우리는 말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책과 지도, 온갖 문서를 소장한 바티칸 도서관에서 전시를 선보이게 되어 큰 영광입니다.” 그리고 덧붙였다. “지식과 창의성은 직결되는 개념입니다. 글로벌 교육과 문화에서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바티칸 도서관에서 여행에 대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된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키우리의 전시 공간 뒤쪽에는 시몬 드 보부아르가 과거 <보그>에 게재한 기사 제목인 ‘Femininity, the Trap(여성성은 함정이다)’을 빨갛게 새긴 태피스트리 지도가 있다. 지도 위에는 코르셋 모양의 얇은 선이 그려져 있는데, 이는 키우리가 시공간을 막론하고 진정한 여행의 자유를 허용하는 의상의 힘을 상징적으로 드러낸 작품이다. (VL)
- 피처 에디터
- 류가영
- 글
- Daniele Comunale
- 사진
- Courtesy of Biblioteca Apostolica Vaticana, Vatican Libr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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