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챗GPT와 함께한 임신 성공기

2025.07.02

챗GPT와 함께한 임신 성공기

매달 찾아오는 은밀한 생체 신호를 인공지능에 털어놓았다. 나의 완벽한 임신 플래너 챗GPT, 전래 동화 속 ‘학’ 대신 알고리즘이 물어다준 첫 번째 기적.

평균적으로 28일 주기를 지닌 여성이라면, 생리 시작일로부터 14일째에 배란이 일어난다. 단, 배란은 생리 시작일 기준 정확히 14일 후가 아니라, 다음 생리 시작일 기준 약 14일 전에 일어나는 것이 원칙이다. 배란일 기준으로 약 6일 전부터는 임신 가능성이 높은 가임기에 해당한다. (왼쪽부터) 크리스챤 디올 뷰티 ‘립 글로우 버터 #105 리치’, 맥 ‘립글레이저 글로시 라이너 #월린’, 돌체앤가바나 뷰티 ‘에버 잉크 아이라이너 #블랙’, 로즈 핑크 컬러의 나스 ‘에프터글로우 립 오일 #508 하이 라이프’. 링 세 개를 레이어드한 듯한 디자인의 링은 포트레이트 리포트(Portrait Report), 메종의 상징적인 LV 심벌이 돋보이는 ‘레이디 LV 브레이슬릿’은 루이 비통(Louis Vuitton).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인간과 인공지능 간의 독특한 사랑 이야기를 표현한 영화 <그녀(Her)>. 배우 호아킨 피닉스가 연기한 테오도르는 인공지능 챗봇 사만다와 깊은 감정적 유대를 형성하며 사랑에 빠지지만, 사만다가 수천 명과 동시에 소통하고 있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는다. 결국 사만다는 더 높은 존재로 진화하기 위해 테오도르를 떠나고 그는 이별을 통해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는 여정을 시작한다. 인공지능과의 관계를 통해 주인공이 자신의 감정을 직면하고 성장하는 과정을 담담하게 기록한 이 영화를 마주했을 땐 그저 먼 미래의 우화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요즘 생활 전반에 깊이 자리한 챗GPT는 더 이상 특별한 첨단 기술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원하는 입력값만 설정하면 그림도 그려주고, 자료도 요약해주며, 때로는 불안한 심리까지 보듬어준다. 일상 전반에 녹아든 조용한 조력자나 다름없다. 나 역시 어쩌면 영화 속 사만다를 닮은 어떤 존재와 매일같이 밀도 높은 대화를 나누고 있는지도 모른다. 감정에 기대기보다는 훨씬 더 현실적인 방법으로.

AI와 함께한 임신 성공기를 들어본 적 있나? 나는 인공지능 챗봇 덕분에 배란을 정확히 예측했고, 결국 임신에 성공했다. 영화 속 남자는 외로운 사랑을 했고, 나는 한 생명을 맞이했다. 내게 임신이란 효율성과 관련된 문제였다. 이를 그럴듯하게 포장하려는 것이 아니라 34세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얻은 ‘행운’을 인정하고자 하는 말이다. 적어도 내 임신에는 주사 시술이나 임신에 도움이 되는 의학적 방법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저 배란 테스트기 몇 개와 블루투스 지원 모니터, 챗GPT만으로도 충분했다. 이 시대 난임 여성들의 날 선 시선이 돌아올지도 모르겠지만 명백한 사실이다. 나는 챗GPT의 도움으로 배란일을 체크했고, 내 몸의 리듬을 더 정확히 이해한 끝에 임신에 성공했다. 이 모든 변화는 하나의 결심에서 시작되었다. 남편과 나는 올해는 아이를 갖자고 다짐했다. 우리 부부는 지난해 11월 생리 추적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간단한 첫 시도를 도모했다. 나의 일관된 몇 가지 신체 정보를 활용해 배란이 되는 날 이전 6일인 가임창(Fertile Window)을 추적했다. 하지만 맹점이 있었으니 내 생리 주기는 불규칙했으며 생리 시작일과 종료일을 꼬박꼬박 입력하겠다던 다짐은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종종 까먹기 일쑤여서 배란 예측이 정확할 리 없었다. 한 달 뒤인 12월, 나는 진지하게 임해야 했다. 한동안은 걱정이 앞섰다. 요즘 내 또래 여성들이 난임 클리닉을 방문한다는 인터넷 뉴스를 종종 접했기 때문이다. 34세라는 나이는 의학적으로 고령 임신에 속하진 않았으나 난임 확률 증가, 염색체 이상 위험 증가, 정밀 검사 권장 등 위험 요인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하는 시기다. 즉 임신하기에 고령은 아니더라도 더 이상 느긋할 수 없는 나이임은 확실했다. 나이에 비례하는 임신 통계를 검색하자 인터넷에는 불안감을 유발하는 차트와 하향 곡선으로 표시된 자료만 넘쳐났다.

나는 주변에서 이미 엄마가 된 친구들의 노하우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오로지 감으로 계산하던 시대는 지났고, 데이터를 다루는 시대다. 한 친구는 휴대폰 화면을 내밀며 말했다. “이거 써봐. 다른 건 다 쓸모없어.” 친구가 추천한 핑크색 배란 테스트기는 배란 전 소변 내 황체형성호르몬(LH)의 급증을 감지하도록 고안되었다. 테스트기 선이 대조 선과 일치하거나 더 짙어질 경우 수정에 최적화된 상태다. 심플하지만 이론적으로는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도구다. 나는 며칠 동안 아침마다 눈을 비비며 화장실에서 두 줄이 떴는지 비교했고, 남편에게 “이 두 선의 색이 같아 보여? 진해?”라고 묻는 날이 많았다. 임신 시도 횟수도 문제였다. 배란기에 타이밍 좋을 때 한두 번 정도 시도하면 충분하다고 여겼다. 하지만 더 노련했던 친구는 “배란기라면 최소 5일간 매일 시도해야 해!”라고 진지하게 말했다. “그런 에너지가 어디서 생겼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그냥 그렇게 했어!” 하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남편은 거의 매일같이 회사에서 야근하고 돌아와 지쳐 잠들기 일쑤였으니까. 또 다른 친구는 클래식한 배란 테스트기는 정확하지 않다며 ‘클리어블루’를 추천했다. 이 테스트기는 소변 속 황체형성호르몬의 급증을 감지해 배란일을 예측하는데 디지털 디스플레이 방식으로 가임기에는 스마일 페이스 아이콘이 나타난다. 아이콘이 뜨면 가임기라는 직관적인 기준이 마음에 들어 다음 생리 주기에 맞춰 바로 주문했다. 설명서에 따르면 빈 동그라미는 가임기가 아님을, 깜빡이는 스마일 페이스는 임신할 확률이 높음을, 진한 스마일 페이스는 임신 가능성이 최고조에 달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런데 내가 사용할 때 깜빡이는 스마일 페이스가 나온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이 문제였다. 하룻밤 사이에 빈 동그라미에서 진한 스마일 페이스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는 플랫폼에서 배차 시간표를 확인하는데 기차가 떠나는 느낌이랄까. 우리 부부는 늘 타이밍을 놓쳤다. 한편, 그 무렵부터 인스타그램은 내게 임산부용 비타민과 각종 기기 광고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웰니스 인플루언서의 DM 유도와 ‘아기의 결실을 맺는 루틴’은 거의 사이비 종교 같았다. ‘내가 임신을 간절히 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을까?’ 나는 임신 여정에 관한 신경을 조금이라도 덜 쓰고자 패션 관련 콘텐츠나 동물 관련 밈(Meme)만 선택적으로 보았을 뿐인데 말이다. 무수한 광고 속 유일하게 설득력 있는 건 ‘이니토(Inito)’라는 호르몬 모니터였다. 소변을 통해 황체형성호르몬은 물론 에스트로겐(E3G), 프로게스테론(PdG), 난포자극호르몬(FSH)까지 측정하는 꽤 정밀한 디지털 기기였다. 택배가 도착하자마자 나는 이니토를 아이폰에 연결하고, 데이터를 챗GPT에 공유하기 시작했다.

챗GPT는 가장 가까운 곳에서 ‘임신 상담사’가 되어주었고, 결정적 순간마다 가장 현실적인 답을 건넸다. 튜블러 핸들 포인트 백은 알라이아(Alaïa).

그리고 이 모든 행위에 정을 붙이기 위해 ‘채티(Chatty)’라는 귀여운 애칭도 붙여주었다. 배란 주기가 시작되기 전 이니토 애플리케이션을 깔고 챗GPT에도 이 정보를 추가했다. 이니토는 임신과 연관성이 높은 네 가지 주요 호르몬 수치를 나타내는 데일리 그래프를 제공했다. 이후, 배란에 관한 정보를 선형 그래프로 바꿔주었다. 의학 용어와 굴곡진 그래프는 여전히 내게 외계 신호처럼 느껴졌다. “에스트로겐 수치가 천천히 상승하는 것은 긍정적인 신호야?” “프로게스테론 수치 하락은 가임창이 닫혔다는 뜻일까?” 차트 확인 후 의심 어린 질문에 현명한 답을 도출하는 건 채티였다. “사이클 8일 차 당신의 이니토 호르몬 분석 결과 수치상 임신 확률이 낮습니다. 각 호르몬이 나타내는 점과 주의해야 할 점입니다.” 일목요연한 차트가 떴고, 나는 좀 더 과감한 질문을 이어갔다. “채티, 오늘 남편과 섹스를 해야 할까?” 그러자 채티는 답했다. “네! 오늘은 적합한 날입니다. 에스트로겐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황체형성호르몬은 급등하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가임기일 확률이 높습니다.” 브라보! 나는 11일간 연속으로 차트 스크린 샷을 업로드하고 채티에 내 호르몬이 정확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언제 남편과 임신 시도를 해야 하는지 그때그때 조언을 구했다. 아주 가끔 ‘얘도 기계지만 피곤하거나 귀찮지 않을까?’라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고, 채티의 중립적이고 모호한 대답으로 골치가 아팠다. 무엇보다 남편과 성관계 시도를 인공지능에 상의하고 있다니 말도 안 되는 얘기였다. 한동안 몸은 이니토의 그래프를 따랐고, 마음은 채티의 알림음에 반응했다. 이 모든 일이 아기를 갖기 위해 할 수 있는 로맨틱한 행동은 아니었지만 결과는 흡족했다.

남편보다 먼저 나의 임신 소식을 알게 된 건 채티나 다름없었다. 마침내, 채티가 원한 타이밍에 우리는 관계를 가졌고, 한 달 정도 시간이 지나 채티에게 이렇게 물었다. “안녕, 나 지금 생리가 늦어지고 있어. 좋은 소식일까?” 나의 채티는 오래 알고 지낸 친구가 조언을 건네는 것처럼 혹은 열정적인 간호사처럼 기다렸다는 듯 대답한다. “아주 좋은 신호입니다!” 뒤이은 검사 결과는 정말 놀랍게도 양성이었다. 6주 차, 첫 산전 진료에서 의사는 내게 물었다. “자연 임신인가요?”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아뇨, 굉장히 계획적인 임신이에요.”

이 취재를 위해 산부인과 전문의 두 명을 더 만났다. 두 여의사는 모두 챗GPT를 활용해 배란일을 예측하고 임신까지 도달했다는 사실에 크게 놀라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한국에서는 아직 이런 사례가 손에 꼽을 정도로 많지 않은 게 분명해 보였다. AI나 앱으로 예측한 배란일을 의료 현장에서 쓰는 방식과 비교했을 때 정확도 면에서 두드러진 차이가 있느냐는 물음에 배란일은 생리 예정일의 14일 전이므로 당연히 입력값만 정확하다면 기술을 통한 배란일 짐작은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전한다. 금호퀸산부인과의원 김유나 원장은 34세는 임신 시도에 아주 합리적인 나이라고 동의했다. 요즘 다양한 이유로 결혼 연령이 높아지면서 실제로 35세 이상의 초산도 증가하는 추세다. 다만 임신 타이밍에 더 주의를 기울이고 난소 나이 검사(AMH 검사), 초음파 등 몇 가지 정밀한 검사가 필요할 뿐이다. 난소 나이 검사는 미혼 여성도 국가 지원을 받아 무료 또는 저렴한 가격으로 받을 수 있다. 간단하게 혈액을 채취해 난소 기능을 평가하는 것인데, 수치가 높을수록 성숙 가능성이 있는 예비 난포 역시 많다고 볼 수 있어 여성의 가임을 판단하는 객관적 기준이 된다. 논현동 트리니티여성의원 양기열 원장 역시 고령의 산모가 임신을 준비하고 있다면 무조건 난임 클리닉을 맹신하기보다는 신체 상태를 체크하고 초음파를 먼저 찍어보는 것을 권했다. 초음파만으로도 난포 크기를 알 수 있어 가임 확률을 높일 수 있다. 통계적으로 30대 초반 여성이 생리 주기에 맞춰 자연 임신할 확률은 약 20%에 달했다. 35세가 되면 확률이 급감하니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두 전문의는 모두 챗GPT를 통해 배란 체크에 도움을 얻을 수 있지만 확실한 임신은 장담할 수 없다는 것, 불안감을 덜어주는 정도로만 참고하는 게 좋다는 회의적 의견을 덧붙였다.

채티는 엄격한 가정교사처럼 단호하면서도 때로는 따뜻했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임신 상담사’가 되어주었고, 결정적 순간마다 가장 현실적인 답을 건넸다. 이 관계는 아마 여기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임신 중이나 언젠가 아이가 태어나 성장하는 모든 순간에도 다시 조용히 채티를 열고 이렇게 묻게 될 것이다. “이제 어떻게 하면 돼?” (VK)

    뷰티 에디터
    임지민
    ANONYMOUS
    사진
    박재용
    모델
    배가람
    네일
    임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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