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료 냄새 맡기, 맨눈으로 보기, 스크린 벗어나기! 회화의 미래에 관하여
젊은 작가들의 회화는 과연 무엇이 같고 또 다를까요? 국제갤러리에서 오는 7월 20일까지 열리는 전시 <넥스트 페인팅: 애즈 위 아 Next Painting: As We Are>를 감상하다 보면 정답까지는 아니더라도 단서는 얻을 것 같습니다. 현재 미술계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작가들, 즉 고등어, 김세은, 유신애, 이은새, 전병구, 정이지는 모두 1980년대 초중반부터 1990년대 중반 사이에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입니다. 디지털 환경에서 성장해, 기술 기반의 일상이 숨 쉬듯 자연스러운 이들이 가장 오래된 매체인 회화의 물질성 및 역사성을 어떻게 이해하고 구현하는가를 따라가다 보면 진화한 회화의 현주소에 닿습니다. 게다가 이번 전시는 국제갤러리에서 지난 2017년 이후 오랜만에 열리는 단체전이기에 더 관심을 모았는데요, 그동안 젊은 회화 작가들의 작품을 꾸준히 좇고 전시로 기록해온 이성휘 큐레이터가 전시 기획을 도맡았습니다.


“궁극적으로 이번 전시는 도래할 ‘다음 회화’가 디지털 이미지의 쏜살같은 가속도를 거스르며, 느린 속도의 감각 경험과 물질적 실체로서의 중요성을 지속적으로 담지할 것임을 주장한다.” 큐레이터의 글 중 특히 이 문장이 눈에 들었습니다. 속도감, 감각, 경험, 물질, 실체 같은 단어들도요. 이들의 작업은 모두 빠르면서도 느립니다. 그 자리에 고착된 듯한 전통적인 회화보다 빠르지만, 우리가 현실에서 느끼는 속도감보다는 느리게 다가온다고나 할까요. 이때의 속도는 단순히 물리적인 움직임에서 파생되는 것이 아닙니다. 시선의 속도이기도, 심리적 속도이기도 하죠. 젊은 작가들의 회화에 대한 심상은 결코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정적이지만 동적이고, 가상적이지만 실재적입니다.
1984년생인 고등어 작가는 신체에 대한 날 선 감각과 인식을 연필로 밀도 있게 표현한 드로잉을 비롯해 실내 공간을 채우는 다양한 신체와 그것이 만들어내는 장면들을 구현합니다. 일상적인 동시에 몽환적인 작업에서는 회화가 내쉬는 숨이 느껴집니다. 같은 방에 배치된 1985년생 전병구 작가는 회화 속의 대상보다는 그 대상을 바라본 순간과 작가 자신의 감정에 몰입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그의 작업 속 풍경이나 오브제들은 모두 화가의 감각을 통해 개인화되고 재해석된 유일무이한 대상이 됩니다.



한편 1985년생인 유신애 작가의 작업은 고전적인 화풍으로 동시대인의 자화상을, 더 나아가 자본주의 체제가 포착하지 못한 초월적 존재를 구현하고 있습니다. 특히 왜곡되고 훼손된 신체를 통해 섹시함과 아름다움에 대한 신념을 전복적으로 드러내며 과감하게 발언합니다. 맞은편에 놓인 1987년생 작가 이은새의 작품은 자유로운 필체로 생의 감각을 표현합니다. 어떤 공기를 가득 품은 듯한 작업을 보면, 작가가 어떤 상황이 아니라 흔적을 그렸다는 생각이 듭니다. 감정의 흔적이든, 감각의 흔적이든, 정서의 흔적이든 말이지요.



K3에 걸린 김세은의 거대한 회화 작품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도시 공간을 신체적 경험으로 명징하게 드러냅니다. 도시가 시간에 따라 인위적으로 변화하는 과정, 특히 터널이라는 공간에 주목해왔다는 점도 흥미로운데요. 도시의 변모를 보여주는 모티프인 동시에 물리적으로 경험이 가능한 터널이라는 공간에 내부의 신체기관이나 골격의 개념을 더함으로써, 회화적 사유의 폭을 극대화합니다. 또 함께 공간을 구성한 1995년생 정이지 작가의 작업에서는 화가의 절실함이 담백하게 묻어납니다. 무엇을, 왜 그려야 하는지 자문하는 작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군더더기 없이 경쾌하게 그려내며 길을 찾아가는 듯합니다. 일상의 소소한 풍경이 캔버스에 실리는 순간, 그 이상의 의미를 갖게 되지요. 친구들과 함께 본 일출을 담은 거대한 회화를 감상하면서, 저는 그려야만 살 수 있는 젊은 작가의 희망을 보았습니다. 작가 저마다의 야심 찬 도전이, ‘회화는 아직 죽지 않았다’는 전형적인 문장보다 더 생생하다는 걸 알게 된 즐거운 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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