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러가는 빛은 나의 뼈대가 된다, 제임스 터렐 ‘The Return’展

감각하고, 의심하고, 사유하라. 오는 9월 27일까지 페이스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선보이는 제임스 터렐의 작품이 저에게 이렇게 말하는 듯합니다. 터렐은 ‘빛의 마술사’로 불리는 대표적인 작가죠. 많은 작가들이 캔버스와 물감, 철과 찰흙에 몰두해 있을 때, 그는 일찌감치 빛 자체를 작업 소재로 삼았습니다. 캘리포니아를 중심으로 한 ‘라이트 앤 스페이스(Light and Space)’ 운동의 핵심 인물로, ‘지각 예술’이라는 개념을 평생 탐구해왔습니다. 며칠 전에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그는 “빛을 묘사하는 걸 넘어 빛 자체를 다루는 예술을 하고 싶었다”고 말했지요. 그에게 빛은 소재이자 주제, 그리고 작업 세계를 구성하는 철학과도 같습니다.
이번 전시는 2008년 이후 서울에서 실로 오랜만에 열리는 터렐의 개인전입니다. 지난 1960년대 말 네온 조명으로 이 작업을 시작한 그는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자신이 원하는 상태를 더욱 절묘하게 구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너무나 일상적이라 오히려 인지할 수 없는 빛을 조각한다는 것은 세상을 보는 시선 자체를 바꿉니다. 특히 이번에 한국에서는 처음 선보이는 ‘웨지워크(Wedgeworks)’의 경우 평면의 빛을 통해 공간이 한없이 확장되는 기기묘묘한 경험을 선사합니다. 20분 동안 서서히 변화하는 색은 그 속으로 걸어 들어가면 어떤 길이 끝없이 펼쳐질 것 같은 느낌으로 바뀝니다. 분명 아무것도 없는데, 누군가가 부르는 것 같은 환청도 들립니다. 눈을 비비면서 그 경계를 찾고자 애쓰다가 결국은 보는 것보다 느끼는 것, 느끼는 것보다 경험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무의식중에 깨닫게 됩니다.


‘웨지워크’와 함께 회자되고 있는 ‘글라스워크(Glasswork)’는 왜곡된 빛의 평면이 무한한 깊이의 환상을 선사하는 작품인데요. 이를 보고 있자니 터렐이 1977년부터 진행 중인 작업, 미국 애리조나 북부의 화산 분화구에서 행하는 ‘로든 크레이터(Roden Crater)’ 프로젝트가 더욱 궁금해졌습니다. 40만 년 된 화산 분화구 안에 24개의 공간과 6개의 터널을 지었다는 이 작업이야말로 빛을 획기적으로 경험하고, 그 경험을 자연과 공유할 수 있다는 점에서 궁극의 작품이 아닐까 생각되더군요. 이번 전시에서 이 미지의 프로젝트에 대한 사진과 모형 등도 만날 수 있습니다.


터렐의 작업은 침묵으로 가득합니다. 서서히 변화하는 빛, 함께 변모하는 공기, 그리고 그 공간 한가운데 서 있는 나. 그 이상의 예술적 요소, 개념, 철학 등은 모두 부질없이 느껴집니다.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천천히 변하는 빛은 공간의 성격 자체를 바꿉니다. 그러고는 빛과 공간 너머 지금의 나 자신에 집중하도록 만듭니다. 내 앞에 펼쳐지는 것이 특정한 이미지가 아니라 ‘어떠한 상태’라는 것을 인지한 순간, 나의 시선이 내부를 향하는 거지요. 터렐의 몰입형 설치 작품은 그래서 명상적입니다. 명상이란 어쩌면 대단한 게 아닐 수 있습니다. 예술을 통해 나 자신의 존재를 알아차리는 것이겠지요. 터렐은 모두가 부르짖는 이 진실을 가장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예술가 중 한 명일 겁니다. 올여름이야말로 터렐의 낙원에 머물며 복잡한 마음을 접고 망중한을 즐길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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