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솔은 자연 발생하지 않는다, ‘모태솔로지만 연애는 하고 싶어’

유럽인 친구와 서울 직장가의 술집에 갔다. 석연찮은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던 그가 물었다. “왜 테이블마다 성별이 나뉘어 있어?” 그러고 보니 술집에는 여자끼리, 혹은 남자끼리 앉은 손님들이 많았다. 나는 평생을 여초 회사에서 일했기 때문에 여자만의 모임이 익숙하다. 더욱이 그날은 여고 동창회였다. 그런데 주변 테이블도 모두 같은 사정이었을까? 유럽 친구는 “여고 동창 모임이라도 배우자들이 같이 올 수 있는 거 아니야?”라고 물었다. 내가 속한 여초 모임에서는 이성 파트너를 부르면 서로가 불편해하는 분위기가 있다. 한국 문화를 모르는 이방인에게 그 이유를 설명하느라 애를 먹었다. 그 후 한국에서 외출할 때면 주변 성비를 살피는 취미가 생겼다.
여초 회사에 다니던 어느 날은 점집에 연애 상담을 다녀온 선배가 마침내 도를 깨쳤다는 듯 말했다. “이 나이면 일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사람을 만나는 게 보통인데 나는 여자만 바글거리는 업계에 있으니까 그게 안 된다는 거야.” 복비 5만원짜리 조언치고 맥없는 소리다 싶지만 동료들은 신나게 맞장구를 쳤고, 화제는 곧 ‘어느 동호회에 가면 남자가 많다더라’로 이어졌다. 그러나 실은 그들 대부분이 동호회까지 다닐 정도로 확실한 취미가 있는 것도 아니고, 말 안 통하는 사람들과 시간 보내는 게 싫어서 대외 활동을 하지 않으며, 데이팅 앱과 결정사처럼 인위적 만남은 거부하는지라 몇 년째 비자발적 연애 휴지기를 보내고 있었다. 그들은 이성과 자연스럽게 소통하는 법도 까먹기 일쑤였다. “누가 저보고 남자랑 눈도 못 마주치니까 연애를 못하는 거래요.” “왜 우리끼리는 이렇게 티키타카가 되는데 남자들이랑은 안 될까요?” 그런 고민이 잦았다.
넷플릭스 예능 <모태솔로지만 연애는 하고 싶어>(이하 <모솔연애>)는 이런 비자발적 싱글 이성애자들의 현실, 그리고 한국형 모솔 양성 시스템을 잘 보여주는 쇼다. 한국의 낮은 출생률, 결혼율, 젠더 갈등은 이미 사회적 연구 주제다. 그런데 이 쇼는 20~30대 비혼 그룹에서 빈번하게 관찰됨에도 진지한 연구 대상이 되지 못하는, 연애 시장의 장외 후보군을 다룬다.


출연자들은 이성을 싫어하지 않는다. 연애와 결혼을 의도적으로 보류하거나 거부하지도 않는다. 여느 연애 쇼 출연자에 비해 경험은 부족할지언정 매력이 뒤지지도 않는다. 말하자면 주변에서 “너는 멀쩡한 애가 왜 연애를 ‘못’하니” 소리를 밥 먹듯 들었을 법한 인물들이다. 그들이 실제로 ‘모태솔로’인지는 시청의 재미를 위해 깊이 따지지 않는 게 좋겠다. 다만 연출과 연기로만 전개된다기에는 실감 나는 대목이 많다.
이 쇼가 성립되려면 우선 출연진이 모솔인 이유가 설득력 있어야 한다. 그런데 스킨십조차 조심스러워하는 보수적인 기독교인에다 사람들과 눈을 못 마주치는 ‘재윤’, 어린 시절 외국에 살면서 어학 실력 부족과 소아비만 등으로 또래 여자들에게 왕따당한 경험이 있는 ‘승리’, 아버지와의 불화 때문에 남자를 신뢰할 수 없었다는 ‘지연’을 제외하고는 이렇다 할 사연이 없다. 이들 3인의 사연도 ‘굳이 말하자면 그렇다’는 뉘앙스다. 그보다는 ‘학교가 여초였다’, ‘여중, 여고, 여대를 나왔다’, ‘남중, 남고, 공대, 군대를 나왔다’, ‘여자끼리만 놀다가 친구들이 다 결혼하고 혼자 남았다’는 엇비슷한 진술이 반복되는 게 흥미롭다. 이건 어찌 보면 황당한 사유인데 한국인에게는 쉽게 납득이 된다는 게 비극이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도 ‘남녀칠세부동석’이 이렇게나 잘 지켜진다니 지폐에 수놓인 조상님들이 흐뭇해하실 일이다. 여기에 ‘공부하느라 이성을 만날 시간이 없었다’거나 ‘스몰 토크가 어렵다’는 진술까지 더해지니 한국형 모솔 양성 시스템의 윤곽이 드러난다.


<모솔연애> 참가자 대부분은 인간을 성별로 갈라 분리하고, 성장기 이성 교류를 경계하고, 공적 영역을 인생의 중심에 두고, 낯선 사람에게 말 걸기를 지양해서 느슨한 관계의 확장이 제한된 문화의 산물이다. 때로는 가장 성실하고 사회성 좋고 대인관계 감수성 뛰어난 사람들이 이 문화의 희생자가 된다. 이 쇼의 출연진이 그렇다. 상상 속 동물, 기린처럼 왜곡된 이성상을 지닌 또 다른 한국형 모솔들에 비하면 개선의 여지가 충분하나, 이들에게도 경험 부족에서 비롯된 소소한 부작용은 남아 있다. 이성에 대한 막연한 불편감, 성적 긴장을 회피하려는 태도 따위가 그것이다. 그로 인한 좌충우돌이 이 쇼의 핵심이다.
<모솔연애>에서는 31년 동안 고작 100일짜리 연애 한 번 해본 참가자가 ‘메기남’, ‘픽업 아티스트’ 대우를 받는다. 일부 남성 참가자들은 여자 앞에서 조리 있는 문장을 구사하지 못한다. 그저 상대가 여자라는 이유로 몸이 얼어붙는다. 어떤 여성 참가자는 관심 없는 이성 앞에서 즉각 가능성을 차단하고 중성적인 털털함으로 무장한다. 남자 출연자들은 첫눈에 목표로 삼은 대상이 아니면 무례에 가까운 무심함을 보이고, 여자 출연자들은 그것을 별로 개의치 않는다. 누군가는 관심 없는 이성이 호감을 표하자 선을 긋는답시고 이상한 말을 해놓고 죄책감에 오열한다.

이 뚝딱이들이 과연 연애 시장에서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을까? <나는 솔로>류의 화끈한 자극은 없지만 그 조마조마함이 다음 에피소드를 기대하게 만든다. 이 쇼는 어쩌면 우리 사회가 놓치고 있는 중요한 기회에 대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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