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빛나는 보석이 만드는 가장 극적인 장면
자연과 보석의 빛이 만들어낸 하이 콘트라스트.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의 태양이 느슨하게 드리운 오후. 바닷바람이 장미와 무화과 향을 싣고 고요히 스쳐간다. 마르베야(Marbella)의 은밀한 비밀 정원 같은 공간 ‘빌라 엘 보스케(Villa El Bosque)’에서 쇼메가 2025 하이 주얼리 컬렉션 ‘주얼스 바이 네이처(Jewels by Nature)’를 선보였다. 꽃과 자연이 어울린 풍부한 문화유산으로 완벽한 무대를 제공한 마르베야는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화와 권력이 교차하며 유서 깊은 역사를 지닌 도시. 강한 안달루시아의 뿌리를 지닌 마르베야와 그 주변 지역은 장인 정신, 다채로운 미식 문화와 와인, 그리고 파블로 피카소 같은 주요 예술가를 통해 예술 세계를 기념하며, 세대를 거쳐 전해 내려오는 전통, 특히 플라멩코의 독특한 리듬을 소중히 이어가고 있는 곳이다.
난생처음 방문한 이곳은 확실히 파리의 우아함과는 결이 다른 도시였다. 로마와 이슬람의 역사, 유럽 귀족의 낭만, 현대 럭셔리 문화가 공존하는 마르베야는 단순한 휴양지를 넘어 패션 도시가 되기에 충분했다. 1950~1960년대, 독일 귀족 알폰소 폰 호엔로에(Alfonso von Hohenlohe)가 이 지역에 마르베야 클럽 호텔(Marbella Club Hotel)을 세우며 귀족과 왕족, 할리우드 스타들이 모여드는 럭셔리 휴양지로 급부상했다. 이후 그레이스 켈리, 오드리 헵번, 브리짓 바르도 같은 인물들이 자주 방문하며 ‘지중해의 생트로페’라 불린다. 그리고 도심의 올드 타운과 해변, 산악 지형, 아라비아풍 정원 등이 조화를 이루며 독특한 문화와 아름다운 매력을 간직하고 있다.
이곳에서 선보인 쇼메 하이 주얼리는 자연과 보석 두 언어의 유기적 해석을 통해 날개 달린 생물과 식물은 현대와 역사적 창조물의 조화 속에서 여전히 번성하고 있음을 보여주며 자연이 메종의 영감의 원천임을 증명했다. 피카소의 고향으로 유명한 말라가를 거쳐 도착한 6월 중순 마르베야의 자연환경은 쇼메의 컨셉과 완벽히 어울렸다. 온화한 지중해성 기후부터 레몬나무·무화과·장미가 자라는 정원, 모로칸 건축양식과 이슬람의 무어 양식이 어울린 안달루시아식 건축을 비롯한 도시 곳곳의 이국적인 공간까지, 장소 자체가 컬렉션의 배경이자 해석의 일부임을 알 수 있었다. 게다가 프렌치 주얼리 메종의 헤리티지를 남부 유럽의 정서와 연결한 것은 파리의 고전적 우아함을 벗어나 더 자유롭고 감각적인 분위기 속에서 새로운 스타일을 선보이려는 메종의 의지가 느껴졌다. 또 마르베야의 투박하면서도 고급스럽고 이질적이면서도 자연스러운 분위기는 요즘 럭셔리가 표현하고자 하는 ‘절제된 화려함’과도 잘 어울렸다.
쇼메는 언제나 자연을 사랑해왔다. 쇼메의 자연주의는 메종의 디자인 철학 중 핵심적 유산. 자연 모티브 디자인은 이미 18세기에 출발한 쇼메의 장인 정신과 함께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메종의 미적 감수성을 상징하며, 프랑스 보석의 역사적인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1780년 쇼메의 설립자 마리 에티엔 니토(Marie-Étienne Nitot)는 공방을 열자마자 조세핀 황후와 편지를 주고받으며 ‘Joaillier Passion for Plants(식물에 대한 열정)’라는 문구를 새겼다. 조세핀 황후는 자신의 정원에서 전통적인 식물부터 가장 희귀한 식물까지 다양한 식물을 수집했고, 그 모든 아름다움을 보존했다고 전해진다. 당연히 쇼메 레퍼토리에 빠지지 않는 ‘자연’이라는 유산은 하이 주얼리 컬렉션에도 자주 등장하는 소재. 2016년 ‘라 나뛰르 드 쇼메(La Nature de Chaumet)’ 컬렉션, 2023년 선보인 ‘르 자르뎅 드 쇼메(Le Jardin de Chaumet)’와 지난 1월 선보인 ‘뱀부(Bamboo)’ 캡슐 컬렉션 등이 그 예. 마르베야에서 선보인 ‘주얼스 바이 네이처’ 컬렉션까지 메종의 자연주의는 점점 더 위협받는 식물 세계에 대한 우려를 담고 있다. 쇼메는 주얼리 노하우를 적극 활용해 자연의 시간을 정지시키고 모든 종류의 식물 종을 주얼리 식물표본으로 변모케 한다. 생명에서 포착된 각각의 영감은 비유적이면서도 상징적인 하이 주얼리를 탄생시키고, 자연주의적 모티브는 아름다운 꽃으로 만개한다.
특히 사실주의적 표현이 핵심이었던 이번 컬렉션은 고요한 줄기, 섬세한 잎맥, 빛을 머금은 꽃잎으로 구현된다. 주얼리와 자연이 하나의 존재처럼 호흡하며, 단순한 ‘보석’이 아니라 자연의 시를 몸에 두르는 듯한 경험을 제공했다. 예부터 쇼메는 밀, 이삭, 클로버, 귀리, 월계수, 날도래, 꿀벌 등 자연 소재를 장식적 모티브로 사용한 데서 나아가 꽃잎의 곡선, 이슬방울, 나뭇잎의 결 등 매우 정교하고 세밀한 묘사를 통해 보석에 생명력을 담아냈다. 1850~1900년대 프랑스에서는 자연과학과 식물학의 발전에 힘입어 식물의 구조적 아름다움을 강조한 예술 운동이 있었고, 메종은 이를 적극 수용해 하이 주얼리에 반영한 것. 자연의 조형미를 구현하는 동시에, 각 모티브에 희망, 사랑, 번영, 수확, 자유 등의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감성적 가치까지 전달하는 것이 쇼메 주얼리의 핵심이다.
‘영원함(Everlasting)’ ‘찰나의 아름다움(Ephemeral)’ ‘부활(Reviving)’이라는 테마 아래 자연의 다양한 모습을 이야기한 이번 여정에는 벌과 나비, 잠자리 같은 날개 달린 존재가 리드미컬하게 등장하며 생명의 순환을 상징한다. 가장 겸허한 생명체부터 고귀한 존재에 이르기까지 영감을 받아 탄생한 총 54피스의 작품은 245년 전부터 자연을 존중하는 가운데 조화를 이뤄온 메종 쇼메의 철학을 반영하기에 충분했다.
먼저 ‘영원함(Everlasting)’은 들장미, 클로버와 고사리, 귀리와 양별꽃처럼 길들지 않는 야생식물이 창조적 영감의 원천이다. 메종의 아카이브 속 티아라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한 ‘와일드 로즈(Wild Rose)’는 들장미의 풍성한 황금빛 수술을 형상화하고 눈부신 옐로 다이아몬드를 세팅해 아름다움을 강조한 목걸이로,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을 빼앗긴 보석이다. 갈라 디너에서 앰배서더 송혜교가 착용한 ‘클로버(Clover and Fern)’ 목걸이는 콜롬비아산 에메랄드 3피스를 세팅한 클로버 잎사귀가 다이아몬드 양치식물 위에 활짝 핀 채 네크라인을 우아하게 감싼다. 클로버는 쇼메 헤리티지에서 중요한 모티브로, 1853년 니토의 후계자 쥘 포생(Jules Fossin)이 제작한 투명한 그린 에나멜과 다이아몬드 브로치에 처음 등장했으며, 현재 메종의 영구 컬렉션으로 보존돼 있다.
한편 ‘스워드 릴리(Sword Lily, 글라디올러스)’, ‘카네이션(Carnation)’, ‘스위트슈럽(Sweetshrub, 자주받침꽃)’처럼 짧은 순간 피는 꽃이 영감이 된 두 번째 테마 ‘찰나의 아름다움(Ephemeral)’은 무한한 시적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쇼메가 계승하고 지켜온 장인 정신처럼 소중하면서도 위태로운 자연의 한 조각은 섬세한 하이 주얼리로 재탄생하며 그 가치를 다시 일깨운다. 인체의 곡선을 따라 유려하게 흐르며 감각적인 유연함을 선사하는 카네이션 시리즈가 대표적. 풍성한 카네이션꽃 여섯 송이는 깊은 블루부터 연한 스카이 블루에 이르기까지 세 가지 색조의 사파이어를 커스텀 컷으로 세팅해 정교한 그러데이션 효과를 보여준다. 트롱프뢰유 기법으로 연출된 이 젬스톤은 목걸이 메시 위에 봉오리처럼 자리한 연 모양(Kite Shape)으로 구성되며, 대담한 ‘V’ 형태는 메종의 시그니처 아그레뜨(Aigrette) 모티브를 연상시킨다. 특히 총 8주에 걸쳐 섬세한 작업이 요구된 목걸이는 54개 보석 중에서 최고가! 이번 컬렉션의 주목할 만한 특징은 여러 가지 다양한 연출이 가능하도록 설계된 하이브리드 디자인이다. 드롭 세팅된 36.44캐럿의 실론산 사파이어는 다이아몬드 체인에 단독 착용할 수 있도록 탈착 가능하다. 매혹적인 모잠비크산 루비로 눈부시게 빛나는 ‘스워드 릴리’는 방돔 장인들이 선보이는 뛰어난 장인 정신을 또 한 번 증명했다. 자연을 시적으로 풀어내는 쇼메 특유의 감성을 통해 덩굴처럼 유려하게 얽힌 다이아몬드의 고귀한 실루엣이란!
세 번째 장 ‘부활(Reviving)’에서는 조세핀 황후가 사랑했던 네 가지 식물 매그놀리아, 아이리스, 달리아, 워터 릴리를 통해 다시 살아나는 자연의 생명력을 노래했다. 지구 반대편에서 다시 피거나 계절의 흐름 속에 주기적으로 되돌아오는 이 식물들은 회복과 순환의 상징으로 등장한다. 생동감 넘치는 새와 잠자리는 날아오르거나 보석 위에 머무는 모습 그대로 주얼리로 표현했고 자연의 찰나를 우아하게 포착한 것이 특징이다. 만개한 매그놀리아의 풍성한 아름다움을 다이아몬드로 꽃피는 순간을 섬세하게 풀어낸 ‘매그놀리아 그랜디플로라(Magnolia Grandiflora)’는 조세핀 황후의 식물 화가였던 피에르 조제프 르두테(Pierre-Joseph Redouté)의 작품에서 막 튀어나온 듯했다. 산들바람에 흩날리는 야생 아이리스의 섬세한 아름다움을 포착하며, 그 곁을 노니는 잠자리 브로치로 시적 여운을 더한 ‘페어리 아이리스(Fairy Iris)’ 또한 시선을 사로잡는다.
또 쇼메 하면 빼놓을 수 없는 티아라는 풍성한 볼륨 가득한 달리아꽃과 함께 우아하게 피었다. 1850년대 쥘 포생이 제작한 팬지 모티브의 티아라를 잇는 작품으로 사실적인 꽃 모양 장식이 특징이다. 역시 하이브리드 컨셉 아래 디자인해 티아라를 장식하는 5개의 탈착 가능한 달리아 장식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연출 가능하다. 한편 스피넬과 토파즈의 대비를 통해 수련의 위엄을 기념하는 ‘워터 릴리(Water Lily)’는 모네의 그림처럼 수중식물의 깊고 고요한 서정을 담아 여성스럽고 우아하다.
때로는 추상에 가까운 자연에 대한 인식과 시적 비전을 의도적으로 담아낸 ‘주얼스 바이 네이처’를 감상하고 바로 떠오른 단어는 ‘자유로움’이었다. 고귀하고 아름다운 보석 사이를 자유롭게 유영한 아이콘이 있었으니 자연주의적 상징 중에서도 메종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벌’이다. 의심할 여지 없이 벌은 다른 어떤 상징보다 우뚝 솟아 있다. 쇼메는 창립 이후 역동적인 벌의 이미지에서 끊임없이 영감을 받아 생동감 넘치는 주얼리를 완성했다. 19세기 초, 프랑스 황제로 즉위한 나폴레옹 1세는 프랑크 왕조의 오래된 상징의 하나인 ‘벌’을 황실의 심벌로 선택했다. 그의 공식 보석상 마리 에티엔 니토는 이 상징을 받아들여 자신의 창작물에 사용했으며, 이것이 바로 벌 스토리의 시작이다.
쇼메 헤리티지 컬렉션 중 가장 오래된 디자인은 1810년대에 제작된 머리띠 장식으로, 황후 마리 루이즈를 위해 만들어진 벌 장식 헤어밴드와 브로치, 나폴레옹의 이니셜을 담은 펜던트 시계 등 여러 중요한 프로젝트 이후 벌은 쇼메의 대표 디자인 코드로 자리 잡았다. 시대를 초월하며 벌 모티브는 점점 더 다양한 스타일로 변화했고, 때로는 도상학적이고, 때로는 추상적인 모습으로 표현됐다. 금과 다이아몬드로 장식하거나, 화려한 스톤 옷을 입은 벌에 각 시대의 미적 감각을 반영했음은 물론이다. 2011년 쇼메는 이 사랑받는 벌에게 ‘비 마이 러브(Bee My Love)’라는 독자적인 컬렉션을 헌정했다. 현재는 ‘비 드 쇼메(Bee de Chaumet)’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이 컬렉션(2024년 부임한 CEO 찰스 룽(Charles Leung)은 나에게 LVMH의 아르노 회장을 설득해 바꾼 이름이라고 자신 있게 설명했다)은 벌과 벌집 모티브를 메종의 시그니처 디자인으로 격상시켰다. 생명력을 찬미하는 오마주로서 벌은 ‘주얼스 바이 네이처’ 컬렉션에서도 극사실적인 묘사(다채로운 색상의 젬스톤을 꿀처럼 모으는 벌은 날개·몸통 디테일까지 정교하게 그려낸 7개의 브로치로 생동감 있게 표현했다)를 통해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들꽃과 꽃, 주얼리와 주얼리 사이를 날아다니며 본연의 사명을 다하는 모습이다.
에메랄드로 조각한 고사리잎과 노란 다이아몬드가 내리쬐는 햇살을 품은 장미꽃, 글라디올러스 이파리 끝에 맺힌 루비 이슬과 깊고 푸른 사파이어 카네이션 줄기로 그려낸 깊은 밤의 정원은 ‘빌라 엘 보스케’에서 다시 한번 고전적 감각으로 재구성됐다. 이국적인 장미와 올리브 향으로 가득했던 안달루시아 정원 속에서 보석은 본래 거기 있었던 듯 조화롭게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 조화는 강렬함보다는 절제된 감성, 진정한 럭셔리의 본질로 깊은 여운을 남기며 플라멩코 캐스터네츠 소리와 함께 잔잔하게 울려 퍼졌다. VK
- 패션 디렉터
- 손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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