뎀나 “지난 10년은 어떻게 경계를 허무는지 묻는 여정이었습니다”
성찰과 준비. 박수 칠 때 떠나는 디자이너가 알고 있는 것.

“나는 정말 운이 좋은 겁니다.” 그는 자신이 큐레이팅한 전시 구성도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요즘은 디자이너가 브랜드를 떠날 때 자신이 해온 일을 직접 보여줄 기회조차 없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하지만 이번 전시는 마침표를 찍는 기분이에요.” 전시는 세브르(Sèvres) 거리의 케어링 본사에서 진행되며, 7월 9일까지 예약제로 대중에게 공개되었다. 전시의 시작은 2007년 뎀나(Demna)가 앤트워프 아카데미 졸업 후 발렌시아가 인턴십에 지원했다가 거절당한 이메일을 출력한 것이다. “그걸 찾으려고 오래된 핫메일 계정을 뒤졌어요.” 그가 웃었다. “남성복 인턴십 면접을 봤고, 다행히 떨어졌습니다.” 다행이라니? “그럼요! 만약 합격했더라면 커리어가 완전히 다른 길로 흘러갔을 테니까요.”
어떤 의미로 전시는 오브제 101개로 구성된 자서전이다. 뎀나 자신의 목소리로 들려주는 오디오 내레이션을 통해 말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그렇게 보이도록 설계한 것이다. AI로 구현한 목소리이기 때문이다. “내용은 직접 썼습니다.” 그가 깔깔대며 말을 이었다. “단지 그 목소리를 들었을 때, 내가 아닌 줄도 몰랐어요.” 진짜와 가짜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것은 지난 10년간 뎀나의 주요 전략 중 하나였다. 트롱프뢰유 기술을 활용하는 장난스러운 방식, 뒤샹식 레디메이드 오브제의 격상 등 전시 곳곳에는 패션계 최고의 밈 창조자이자 메타 조작자의 흔적이 가득했다. 발렌시아가 쇼핑백, 브로치로 판매된 가격표, 파란색 ‘이케아’ 가방 등이 대표적이다. “보이는 것이 실체가 아니라는 아이디어입니다. 화면으로는 아무도 몰랐지만, 그건 전부 가죽으로 만든 거였죠. 진짜 럭셔리처럼요.” 그가 어깨를 으쓱했다.
새로운 플랫폼과 미디어, 디지털 문화와 게임 기술이 빠르게 확산되던 2010년대, 뎀나는 여러 소셜 채널을 통해 매우 다양한 대중과 소통하며 독보적인 존재로 부상했다. 하지만 결국 패션계가 처음부터 그를 인정한 것은 디자이너로서의 진지한 재능 때문이었다. 전시장 입구에서는 뎀나가 발렌시아가 모델 패밀리에서 가장 사랑하는 엘리자 더글러스(Eliza Douglas)의 극사실주의 피규어가 관람객을 맞이했다. 그녀는 2016년 겨울, 회색 테일러드 아워글라스 스커트 수트를 입고 그의 발렌시아가 데뷔 쇼 오프닝을 장식했다.
파리 교외에 있는 조용한 스튜디오에서 뎀나와 만났다. 공간 한쪽 면은 커다란 검은 천으로 덮여 있다. 밖에서 보면 수상한 차고처럼 보이는 건물이었다. 안에는 의심의 여지 없이 럭셔리 패션계의 거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성장한 인물이 앉아 있다. 2015년 34세의 반항아는 베트멍에서 발렌시아가에 들어왔고, 44세가 된 지금 침체된 구찌의 운명을 되살리는 임무를 맡고 있다.
그는 회색 스웨트셔츠를 입고, 두툼하게 솟아오른 어깨선 부분에 구멍이 숭숭 뚫린 차림으로 테이블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파리에서의 시간을 마무리하기 위한 피팅을 끝낸 뒤 잠깐 쉬는 것처럼 보였다. 7월 초 마지막 꾸뛰르 쇼를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가 알겠는가. 9월 밀라노에서 열릴 구찌 데뷔 쇼를 위한 무언가가 저 검은 커튼 뒤에서 이미 진행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는 로스앤젤레스에서 새해 연휴를 보낼 때부터 이미 무엇을 하고 싶은지 고민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남편 로익(Loïk)과 방갈로를 샀는데, 불이 났습니다. 대피하라는 경고를 받자마자 내가 이렇게 외쳤죠. ‘안 돼, 노트북부터 챙겨야 해!’”
다행히 집은 무사했지만, 그 일은 어쩐지 전형적인 뎀나의 종말론적 시나리오를 연상케 한다. 2020년 3월, 팬데믹 직전 불타는 하늘과 물에 잠긴 프런트 로를 연출하며 아직도 많은 이들이 소름 돋는 기억으로 회상하는 발렌시아가의 전설적인 2020 가을/겨울 쇼처럼 말이다. 이렇듯 그가 10년 동안 발렌시아가에 행사한 떠들썩한 영향력을 엿볼 수 있는 회고전이 열렸다. “이 10년은 정말이지 우리가 어떻게 경계를 허물 수 있을지를 묻는 여정이었습니다. 특히 럭셔리라는 맥락 안에서 패션을 전혀 다르게 바라보는 방법에 대한 탐험이었죠.”
당시 쇼는 평단에서 압도적인 찬사를 받았다. 그중에서도 특히 잊지 못할 룩이 있다. 크리스털 장식 터틀넥 상의 위로 헬리 한센(Helly Hansen) 스타일의 붉은 패딩 재킷을 우아한 오프숄더 ‘스윙’ 실루엣으로 재탄생시킨 그 천재적인 발상! “지난 10년을 대표하는 의상을 골라야 한다면, 바로 이거예요.” 그가 설명했다. “발렌시아가에 처음 왔을 때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Cristóbal Balenciaga)의 이미지를 전부 훑어봤습니다. 그는 여성의 목덜미를 정말 인상적으로 다뤘어요. 목걸이 역시 앞에서 보는 것보다 뒷모습을 통해 보는 편이 훨씬 우아하다는 걸 알아차렸죠. 그래서 옷의 모든 네크라인을 뒤로 끌어내렸습니다. 이 룩에서 그걸 구현한 겁니다.” 그가 회상했다. “하지만 크리스토발을 흉내 내고 싶지는 않았어요. 완전히 비전통적인 옷에서 그의 우아함을 표현하고 싶었죠. 사실 내가 겉옷을 입는 방식이고요. 그래서 이 룩은 완벽한 융합이었습니다.”
그가 고른 전시작은 전부 프루스트의 마들렌과도 같다. 이제 끝나가는 어떤 시간이 감싼 아주 사적인 추억이다. 2017 가을/겨울 시즌의 사이드미러 클러치 백이 그렇다. 그즈음 뎀나는 차 한 대를 장만했다. “아버지가 물려준 단 한 가지 이성애적 요소를 꼽자면 자동차에 대한 사랑입니다. 솔직히, 차를 무척 좋아해요!” 그가 크게 웃었다. “남편도 내가 어떻게 그렇게 자동차에 푹 빠질 수 있는지 궁금해할 정도죠. 하지만 그건 아버지와 나 사이의 공통점입니다. 아버지는 자동차 정비공이세요. 아버지가 세차하실 때 내가 광을 내는 것이 우리가 무언가를 공유하는 유일한 순간이었죠. 그런 기억은 평생 남습니다. 그래서 전시에 자동차 관련 요소가 꽤 많아요.”
뎀나의 전시는 우리가 함께 살아온 시대에 대한 일종의 다큐멘터리다. 오버사이즈 실루엣, 럭셔리 패션 전반에 괴물 같은 영향력을 끼친 ‘트리플 S’ 운동화, 사회 정치적 담론을 담은 몰입형 런웨이, 오뜨 꾸뛰르 쇼에 선보인 ‘클로슈(Cloche)’ 볼 가운, 패션계를 뒤덮은 셀러브리티의 전면 부상, 그리고 2022 봄/여름 ‘레드 카펫’ 프리미어 컬렉션을 통해 신격화된 마지 심슨 캐릭터(그의 가장 유쾌한 메타 순간이었다)로 이어지는 연대기 말이다.
2017년 가을 남성복 쇼에 등장한 빛바랜 데님 야구 모자가 덩그러니 놓여 있다. 빨간색과 파란색 물결무늬 선으로 밑줄이 그어진 발렌시아가 로고가 미국 상원 의원 버니 샌더스(Bernie Sanders)의 선거 포스터를 연상시키던 시절로 돌아가게 만든다. “그때 그 버니 샌더스라는 상징이 정말 중요했습니다. 사실, 사람들이 그게 어떤 의미인지 눈치채지 못할 줄 알았어요. 일부러 고른 이 모자는 아카이브 중에서도 의도적으로 완전히 낡아 보이게 만든 버전입니다. 죽을 때까지 쓴 것처럼 정말 오래된 것처럼 보이게요. 우리가 더 이상 그 세계에 살고 있지 않다는 걸 뜻합니다.”
뎀나 개인의 인생 전환점에 대한 서사는 거의 없다. 하지만 10년간 그에겐 커다란 변화가 있었다. 2017년에는 스위스로 이주했고, 프랑스 뮤지션이자 작곡가 BFRND로 알려진 로익 고메즈(Loïk Gomez)와 결혼했다(베일로 얼굴을 완전히 가린 BFRND의 웨딩드레스는 2024 봄/여름 컬렉션 런웨이에서 선보였으며, 전시장에도 있었다). 2019년에는 동생 구람(Guram)과 함께 2014년에 공동 창립한 베트멍에서 물러났다. “앞으로 뎀나는 이름만 사용합니다.” 2021년에는 발렌시아가 홍보실의 공식 발표에 따라 성을 쓰지 않기로 했다. 그다음 해, 광고 논란에 휘말려 뎀나와 당시 CEO 세드릭 샤르비(Cédric Charbit)는 사과문을 발표해야 했다.
그리고 지난 1월 27일, 뎀나는 프랑스 문화부 장관으로부터 레지옹 도뇌르(Légion d’Honneur) 훈장을 받았다. 우리는 모두 한껏 차려입고 팔레 루아얄의 웅장한 방에서 그가 프랑스 최고 명예 훈장을 받는 모습을 지켜봤는데, 정작 뎀나는 낡은 검정 티셔츠 차림이었다. “마침내 프랑스가 나를 인정했습니다! 오랜 역사를 지닌 프랑스 기성 체제가 내 티셔츠에 새겨지길 원했어요.” 그가 설명을 이어갔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을 것 같았어요. 나름의 바보 같은 액티비즘이었습니다. 이곳에서 진짜 많은 외국인 혐오를 겪었거든요. 나 같은 사람을 스트리트 웨어나 만드는 녀석, 약간 화가 난 난민처럼 여기는 거예요. 겉으로 보이는 것이 그 사람의 전부가 아닙니다. 표지로 책을 판단하지 마세요! 지난 10년 동안 그런 인식을 이용해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했습니다. 내가 책이라면, 내 오래된 후디가 표지였던 셈이죠.”
그날은 여러모로 운명적인 하루였다. “아침에는 프랑수아 앙리 피노(François-Henri Pinault)와 만났습니다. 구찌에 대한 비전을 보여줬더니, 언제 시작할 수 있는지 묻더군요. 그리고 몇 시간 뒤 티셔츠에 이 훈장을 꽂으며 드디어 프랑스가 내 존재를 인정하는 거짓말 같은 순간이 겹친 거죠. 뭔가가 정렬된 느낌이었습니다. 에너지와 우주 혹은 신 같은 개념을 믿는 편이거든요. 이야기가 완성됐다는 기분이었어요. 인턴십이라도 얻어보려고 파리에 왔다 거절당한 내가 훈장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떠날 수 있는 거예요.”
전시에 대한 설명도 덧붙였다. “10년간의 두뇌 작동을 시각화했습니다. 모든 것에는 하나의 개념이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스스로를 감동시키려고 이 모든 작업을 해온 것 같아요. 어쩌면 그게 중요할 수도 있죠. 다음 챕터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을 생각이거든요.” 뭐라는 건가! 완전히 다른, 비개념적인 뎀나가 구찌에 등장할지도 모른다는 말일까?
“거기에서 벗어나 잠깐 쉬고 싶습니다. 이 모든 걸 돌아보면서, 그냥 정말 끝내주는 바지를 하나 만들고 싶어졌어요. 아마도 경험이나 패션을 바라보는 관점이 성숙해졌기 때문일 거예요. 지금은 그저 기가 막힌 재킷을 만들고 싶습니다. 가볍고, 입기 좋고, 섹시하게 느껴지는 그런 옷이요. 개념적일 필요도 없고, 그렇다고 지루해서도 안 되죠.” 그가 잠시 말을 멈췄다 다시 이었다. “그게 무슨 의미일까요? 솔직히 말하면, 다른 종류의 두뇌 작동이 필요합니다. 10년 동안 심리 치료를 받은 후, 모든 걸 지적으로 분석하지 않는 법을 배웠어요. 지금은 그저, 특정한 감정을 느끼게 하는 멋진 옷을 만드는 게 훨씬 중요해요. 매번 그 옷을 설명하는 책을 쓸 필요 없이 말이죠.”
“큰 도전이겠군요.” 내가 말했다. “맞아요. 그래서 좋습니다. 여전히 창의적으로 표현할 방법이 존재한다고 믿거든요. 우리는 새롭게 창의성을 드러내는 법을 계속 찾아야 하고, 그러면서 좋은 옷을 만들어야 해요. 디자이너로서 다음 챕터는 그걸 위한 겁니다. 그리고 호기심에 관한 거죠.” 이제 헤어질 시간이다. 그는 빌리 아일리시 콘서트를 보러 간다고 했다. 커다란 검은색 차 한 대가 차고 앞에 대기 중이다. 문을 나서면서 발렌시아가에서의 임기를 마무리하는 마지막 오뜨 꾸뛰르 쇼에 대한 계획을 물었다. 그가 손을 흔들며 외쳤다. “오, 엄청 개념적인 쇼가 될 거예요.”
뎀나와의 오랜 인터뷰 경험에서 한 가지 배운 것이 있다. 그는 말한 그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 그가 구찌에서 뭘 할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건 긍정적인 신호처럼 느껴졌다. 지금 패션계는 좀 더 예측 불가능한 것이 절실하니까. 차를 몰고 돌아가는 길, 뎀나의 마지막 말이 귓가에서 맴돌았다. “패션에서 가장 중요한 동력 중 하나는 ‘놀라움’입니다. 나는 모두를 놀라게 할 거예요. 먼저, 나 자신부터요.” VK

- 글
- Sarah Mower
- 사진
- Acielle(Style Du Monde), Courtesy of Balenciag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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