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그 런웨이’ 명예의 전당: 평론가들이 꼽은 최고의 컬렉션 논평

“제가 존경하는 사람들이 ‘그거 별로다’라고 말할까 봐 걱정되는군요.” 마크 제이콥스의 이 말은 그가 했던 어떤 말보다 공감이 되었습니다. 쇼를 앞둔 디자이너들처럼 <보그 런웨이> 평론가들도 스스로에게 의심을 품는 경험을 합니다. 우리의 경우에는 쇼가 끝나고 난 뒤에나 한밤중에 제작 담당자가 바닥을 발로 쿵쿵 구르면서 우리의 글을 끈질기게 기다리고 있을 때 그 경험을 한다는 것이 다르지만요. <보그 런웨이> 10주년을 기념하며 이곳을 거쳐 갔거나 이곳에 현재 기고하는 평론가들이 지금까지 자신들이 쓴 논평 중 최고를 꼽아봤습니다. 논평을 읽은 후에는 생각에 잠기게 되죠. 단지 좋은 정도가 아니라 아주 훌륭한 기사로 엄선했거든요.
JW 앤더슨 2021 봄/여름 컬렉션
대형 브랜드가 화려하게 쇼를 여는 현상은 지난 10년 동안 폭발적으로 증가했습니다. 360도 ‘체험형’ 메가 콘텐츠 쇼가 휴대폰 사용이 편리해지고 소셜 미디어가 부상하면서 나란히 성장한 것이죠. <보그 런웨이>가 이 모든 것을 기록했습니다.
그러다 코로나19가 시작되었고, 패션쇼는 아예 중단되었습니다. 팬데믹 초기에 패션계는 공황 상태에 빠져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단, 조나단 앤더슨만은 그렇지 않았죠. 2020년 9월 28일 마스크를 쓴 배달원이 우리 집 문을 두드렸을 때를 떠올리면 정말 재미있습니다. 우리 집 도어 매트 위에 JW 앤더슨의 ‘Show in a Box(상자 안의 쇼)’가 배달됐거든요.
상자 안에는 그의 2021 봄 컬렉션을 입은 미니어처 종이 인형 한 세트가 들어 있었습니다. 저는 컴퓨터로 달려가 줌을 켰습니다. 작업실에 고립되어 있던 조나단은 화면 너머에서 자신이 보낸 코믹하게 포토샵이 된 판지 배경 앞 종이 인형을 어떻게 세워놓아야 하는지 설명해주었습니다.
로파이(Lo-Fi), 아날로그, 인터랙티브의 즐거움이 느껴지는 세트였습니다. 아주 적은 것들로 해결책을, 그것도 아주 재미있는 해결책을 만들어내는 앤더슨의 재능이 드러나는 기발하고 획기적인 아이디어였습니다. 제가 당시 기사에 옮겼던 그와의 대화 중에는 이런 말이 담겼습니다. “우리는 이 시대를 기억할 것 같아요.”

앤더슨은 사람들 사이의 연결이 심리적으로 얼마나 중요한지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었으며, 두렵고 지루하게만 느껴지던 세상에 기쁨과 장난스러운 생동감을 불어넣었습니다. (로에베에서도 더 많은 장치를 생각해냈으니까요.) 그는 위기 상황에서 뛰어난 면모를 보임으로써 자신이 대담하고 민첩하며 영리한 우리 시대 최고의 패션 커뮤니케이터라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저는 이 ‘Show in a Box’가 아주 작지만 역사에 남을 보물이라고 봅니다. 정상을 향해 나아가는 앤더슨의 재능이 담긴 기념품이죠. —사라 무어(Sarah Mower)
릭 오웬스 2019 봄/여름 컬렉션
릭 오웬스의 쇼를 논평하는 것은 왜 그렇게 매해 재미있는 걸까요? 2018년 9월 저는 이 문장으로 그 점을 명확하게 표현했습니다. “그는 괴상하고 멋진 방식으로 우리 시대의 문제를 해석하며 드러낸다.” —니콜 펠프스(Nicole Phelps)
엘레나 벨레즈 2023 가을/겨울 컬렉션

열광적인 반응과 균형 잡힌 평가까지 기대하게 만든 매우 극단적인 쇼였습니다. —레어드 보렐리 퍼슨(Laird Borrelli-Persson)
안드레아스 크론탈러 포 비비안 웨스트우드 2019 가을/겨울 컬렉션

패션쇼를 논평할 때의 제4의 벽을 아주 재미있게 깨뜨려 개인적으로 특별히 기억에 남은 쇼입니다. 위대한 패션 디자이너로 꼽히는 비비안 웨스트우트에게, 그녀의 이름으로 열린 쇼에서 혼이 났으니까요. 정말 재미있는 경험이었습니다. 웨스트우드의 쇼를 논평하는 것은 언제나 영광이었으며, 저는 그녀의 패션을 정말 좋아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표현은 가끔 자기모순적이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논평이 그렇듯 <보그 런웨이>는 필요한 경우에는 결코 주저하지 않고 비판적인 시각을 담습니다. —루크 리치(Luke Leitch)
윌리 차바리아 2023 가을/겨울 맨즈웨어 컬렉션

첼시의 교회에서 열렸던 이 아름다운 쇼를 능가하는 쇼를 윌리 차바리아가 또다시 보여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차바리아는 기대에 완벽하게 부응했고, 덕분에 기사도 즐겁게 쓸 수 있었습니다. 차바리아의 쇼에 대한 논평은 전에도 한 번 써본 적이 있어서, 그의 스타일과 상징을 자세히 설명하는 것도 좀 더 수월했어요. 저는 좋은 마지막 문장에 상당히 엄격한 기준을 가진 사람인데, 여기에서도 마지막 문장에 무사히 안착한 것 같습니다. —라이아 가르시아 푸르타도(Laia Garcia-Furtado)
키코 코스타디노프 2023 봄/여름 맨즈웨어 컬렉션 & 초포바 로위나 2022 봄/여름 컬렉션
저는 24세에 <보그 런웨이>에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제가 바란 건 언젠가 미우치아 프라다에 대해 쓴 샐리나 니콜라 제스키에르에 대해 쓴 니콜처럼 위대한 디자이너의 쇼에 대한 논평 기사를 쓰는 것이었죠. 저는 운 좋게도 패션사에 길이 남을 디자이너의 컬렉션을 몇 번 논평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깨달았습니다. 이미 존재하는 위대한 디자이너에 대한 목소리를 더하기보다는, 제가 속한 세대를 비평하는 것이 훨씬 더 가치 있는 일이란 걸요. 저는 32세에 <보그 런웨이>를 떠났습니다. 그때의 저보다 지금 더 현명해진 부분이 있다면, 그건 제가 1년에 두 번씩 키코 코스타디노프와 초포바 로위나의 스튜디오에 몇 시간씩 머물며 동시대인, 즉 우리에게 패션이 어떤 모습인지 파악하는 시간을 가진 덕분일 겁니다. 그게 이 라프 시몬스 기사의 요지입니다. 다른 사람의 입장에 서기보다는 나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하는 것이 좋다는 이야기죠. —스테프 욧카(Steff Yotka)
자크뮈스 2023 가을/겨울 컬렉션

이 쇼는 시몽 포르트 자크뮈스가 베르사유 궁전에서 처음 연 쇼였습니다. 자크뮈스가 올해 다시 베르사유 궁전을 찾아, 그곳에서 지금까지 보여준 컬렉션 중 최고 수준으로 꼽을 만한 새 컬렉션을 선보이긴 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2023년 6월 열렸던 이 쇼는 패션사에 길이 남을 것 같습니다. 이 쇼로 자크뮈스의 야망이 정점을 찍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이 쇼에 대한 기사가 어떤 면에서 제 야망을 잘 드러낸 것 같기도 합니다. 그때까지 제가 논평을 맡았던 쇼 중 가장 중요한 쇼였거든요. 기사 역시 여전히 제가 쓴 기사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듭니다. 기사가 공개되자마자 친구에게서 정말 좋았다는 메시지를 받았던 기억이 나는군요. 전 그 기사를 지금도 자주 읽어봅니다. —호세 크리알레스 운수에타(Jose Criales-Unzueta)
구찌 2023 리조트 컬렉션

논평을 쓴다는 것은 의미론적인 줄타기를 하는 것 같은 기분입니다. 줄 위에 (그것도 종종 하이힐을 신은 채) 서 있는 것 같죠. 그물도 없습니다. 한 번 휘청하면, 우쭐대는 자화자찬과 허세, 장식처럼 곁들인 정보와 부풀린 단어의 늪에 그대로 굴러떨어지죠. 매 순간 내면에 탐지기를 켜두고 섬세하게 작동시키면서 예술적 기교의 미세한 변화, 은밀한 디테일, 디자이너가 자신의 작품에 엮어 넣은 숨은 기벽과 우회하여 드러낸 메시지까지 포착해야 합니다. 너무 친절한 태도로 쓰면 조금 나을 뿐인 글솜씨로 스타를 향해 열광하는 팬의 글로 폭주하게 됩니다. 너무 가혹한 태도를 가지면 스스로 재치 있다고 착각하면서 말의 도끼를 휘둘러 상처를 내게 됩니다. 평론을 쓴다는 건 힘들면서 비뚤어진 전율이 느껴지는 중독성 강한 고된 훈련입니다. 결과가 좋은 날에는 바짝 긴장되는 곡예를 하고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지난 몇 년간 쏟아낸 수많은 논평 가운데 제가 메스나 도끼를 들 필요가 없었던 적이 한 번 있었습니다. 이탈리아 풀리아에 있는 음울한 성, 카스텔 델 몬테에서 2022년 열린 알레산드로 미켈레의 구찌 리조트 쇼에서는 그런 비평의 유혈 사태가 일어날 필요가 없었습니다. 무대는 장엄했고, 쇼는 황홀했습니다. 미켈레 고유의 마술적인 사고방식이 눈부신 정점을 찍었으며, 박학하고, 대담하고, 다른 세상으로 간 듯한 기분이 드는 쇼였습니다. 그리하여 천체의 행성이 일렬로 정렬할 때처럼 매우 드문 순간이 저에게 찾아왔습니다. 패션과 연극, 순수한 광기가 공모해 제 안을 떠도는 냉소를 잠재웠죠. 그때만큼은 저도 그저 감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경이의 빛이 요정의 가루처럼 사라지기 전에, 그 빛의 스쳐가는 일부라도 저의 글에 담겼기를 바랍니다. —티치아나 카르디니(Tiziana Cardini)
빅터앤롤프 2019 봄 꾸뛰르 컬렉션

하이 컨셉과 우스꽝스러움 사이를 전복적으로 오가는 네덜란드의 디자이너 듀오, 빅터 호스팅과 롤프 스뇌렌은 2019년 봄 오뜨 꾸뛰르 컬렉션에서 그야말로 ‘패션 선언’을 했습니다. 드레스의 하늘하늘한 튤 위에는 ‘Give a Damn(관심 좀 가져)’, ‘Leave Me Alone(나 좀 내버려둬)’, ‘No Photos Please(사진 찍지 말아줘)’ 같은 문화적으로 비판적인 문장이 자랑스럽게 적혀 있었습니다. 그들이 냉소적인 것에서 오만한 것까지 여러 메시지를 다양한 그래픽 스타일로 표현한 방식과 역사 속 실루엣을 무지개·네온·파스텔 톤으로 재해석함으로써 이 모델들이 펑크(Punk) 공주로 변신한 것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소셜 미디어에서 이슈가 되는 걸 목적으로 이 18개 룩이 고안되었다는 것은 너무나 분명했습니다. 앤디 워홀에서 영감을 받은 실험일까요? 혹은 엘리자베스 시대의 형태를 차용해 21세기의 아이러니를 표현할 걸까요? 제가 쓴 논평에는 이 컬렉션에 대한 해석은 열려 있다는 디자이너들의 주장으로 미뤄볼 때 이 선언은 살면서 반드시 마주하는 질문에 대한 답과 같다고 쓴 부분이 있습니다. 어쨌든 빅터앤롤프는 타고난 도발자들이기에 그들의 메시지를 명확하게 알 길이 없습니다. —에이미 버너(Amy Verner)
빅토리아 베컴 2021 봄/여름 컬렉션

제가 <보그 런웨이>에서 처음 쓴 빅토리아 베컴 논평 기사였습니다. 팬데믹 시기 우리 모두가 경험한 것과 빅토리아가 평생의 업적인 이 브랜드를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싸운 것이 모두 반영돼 저에게는 의미 있는 기사였습니다. 빅토리아 역시 브랜드를 지키는 데 성공했고요! —앤더스 크리스티안 매드슨(Anders Christian Mad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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