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닻을 내린 프리즈, 프리즈 하우스 개관전 ‘언하우스’
프리즈 하우스 서울의 개관전 <언하우스>는 집을 단순한 거주 공간에서 벗어나 정체성과 사회적 규범에 도전하는 퀴어적 공간으로 재해석한다.
글로벌 아트 페어 프리즈가 서울에 ‘프리즈 하우스’를 설립하며 더욱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프리즈 서울의 계약 종료에 대한 소문을 불식시키듯, 올해 페어 기간에 서울 중구 약수동의 양옥집을 문화예술 공간으로 탈바꿈해 ‘프리즈 하우스’로 개장했다. 이곳은 2021년 개관한 런던의 ‘No.9 코르크 스트리트(No.9 Cork Street)’에 이어 두 번째 문을 연 공간이며, 해외에서는 처음 시도되는 사례다.

프리즈의 CEO 사이먼 폭스는 9월 4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프리즈는 단지 4일 동안 열리고 사라지는 이벤트가 아니다”라며, “프리즈 하우스를 통해 서울에서 연중 내내 상설 전시를 열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공간이 “매우 아름다운 장소이자, 프리즈가 서울에 헌신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강조했다.
프리즈 하우스 서울이 자리 잡은 장충체육관과 약수역 사이는 장충단공원과 서울 성곽길이 가까이 있으며, 구불구불한 골목에 카페와 디자인 스튜디오 등이 모여 있어 독특한 예술적 분위기를 형성한다. 1988년 건축된 2층 서양식 주택을 리모델링한 프리즈 하우스는 경사진 언덕에 자리해, 현관 앞 마당에 핀 빨간색 배롱나무꽃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정원에는 일본 건축 스튜디오 ‘사나(SANAA)’가 디자인한 장소 특정적 설치 작품이 있다. 이 작품은 사나의 대표 의자 시리즈인 ‘Drop Chair’와 ‘Wuzhen Chair’ 시리즈의 연장선인 조형물로, 알루미늄 시트와 스테인리스 다리로 구성되어 있다. 중앙은 오목하게 파여 연못 형태를 띠며, 여러 개의 조형물이 원형으로 배치되어 하나의 유기적 표면을 만든다.

내부로 들어서면 천장을 통해 자연광이 가득 들어오는 중정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이 공간은 반 층씩 어긋나게 설계되어, 각 층에 방이 자리하고 있으며, 중정을 중심으로 유기적으로 연결된 구조 덕분에 자연스러운 시선 교차와 개방감이 느껴진다. 또한 손수 깎은 둥근 화강암 볼을 쌓아 만든 벽과 헤링본 마룻바닥, 금속 난간 등 집 내부의 마감재는 정성스럽게 다듬은 디테일과 품격을 보여준다. 이 집은 건축사무소 사무소효자동, 시공을 맡은 아워레이보, 그리고 조경을 담당한 오차원이 원래의 디테일과 품격을 살리면서도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하여 전시 공간으로 탈바꿈시킨 결과물이다.

개관전 <언하우스>의 기획을 맡은 김재석 디렉터는 “이 집이 주인공”이라고 말하며, 이 공간은 강렬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했다고 설명한다. 그는 집을 안전과 보호의 상징이자, 억압과 은신처가 교차하는 양가적 공간으로 바라보며, 이를 퀴어적 시각에서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작업에 집중했다. 또한 북촌의 집을 개조한 전시 공간 엑스라지 운영 경험을 바탕으로, 작품 감상과 함께 집 내부의 계단, 창문, 복도, 천장 등 구조적 요소를 관찰하도록 유도한다. 이를 통해 관람객은 일상적 공간을 새로운 시선으로 경험하게 된다.
이번 전시는 캐서린 오피, 안네 임호프, 김대운, 김민훈, 듀킴, 박그림, 최하늘 등 세계적 퀴어 작가와 국내 대표 퀴어 작가 17인의 작품을 처음으로 함께 선보인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이들은 사회가 요구하는 정체성에 저항하며, 고정된 공간의 위계를 해체하고 감정과 기억을 섬세하게 재창조한다. 예를 들어, 캐서린 오피의 바다 사진과 듀킴의 조각, 김민훈의 로프 작업과 안네 임호프의 영상이 어우러지면서 새로운 의미의 관계를 형성한다.
김재석 디렉터는 동성혼 법제화 논의가 점차 격화되는 현재, 퀴어라는 틀로 ‘집’을 다시 사유하는 일이 단순히 상징적 행위를 넘어 정치적 의미를 지닌다고 강조한다. 이에 따라, 전시작들은 공간을 단순히 점유하는 것을 넘어, 때로는 집의 주인처럼, 때로는 이방인이나 유령 같은 존재, 미지의 풍경처럼 집을 ‘거주’하는 상태로 관객을 맞아들인다.
한편, 서울에서 10년 이상 미술 비평과 큐레이터로 활동한 앤디 세인트 루이스가 프리즈 하우스의 초대 디렉터로 임명되었다. 그는 동시대 예술의 실험과 담론을 심화하는 플랫폼으로서, 서울과 세계 미술계를 잇는 국제적 교류를 확대할 계획임을 밝히고 있다.
주소: 서울시 중구 동호로 15길 17
전시 기간: 2025년 9월 2일~10월 2일
영업시간: 화~토 10:00~18:00
무료 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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