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의 향기, 이솝이 담은 찰나의 아름다움
칠흑 같은 밤하늘을 가로지르는 별똥별을 떠올려보자. 눈부시게 반짝이지만 곧 사라져버리는 찰나의 아름다움. 이솝이 그 빛의 정수를 향수 한 병에 담아냈다.

조향사 셀린느 바렐(Céline Barel)이 이솝에서 받은 새로운 프로젝트 의뢰서는 수수께끼 같았다. 안에는 추상적인 문화적 단서가 들어 있었는데, 밤하늘을 담은 사진, 다양한 앰버 컬러를 포착한 이미지, 마유즈미 마도카의 시 ‘유성’이 전부였다. 이솝과 이미 10년 넘게 호흡을 맞춰온 바렐은 이 파편 같은 단서를 오랫동안 고심하며 해석했다. 분명 난해했지만 원하는 것은 분명했다. 과연 유성의 향기를 구현할 수 있을까?
바렐이 이런 기묘한 의뢰서를 받은 건 처음이 아니었다. 이솝과의 협업이라면 늘 그래왔듯, 이런 종류의 의뢰를 기대하고 즐기는 그녀다. 2015년 바렐은 브랜드 최초의 시트러스 향수 ‘테싯’을 탄생시켰다. 세르주 갱스부르의 노래, 팬톤의 그린 컬러 스와치, 영화 <화양연화>의 한 장면에서 영감을 받은 향수다. 그로부터 10년 뒤에는 이솝에서 ‘강한 의지로 피어나는 꽃’이라고 설명하는 향수 ‘오르너’가 출시되었다. 중국 시와 재즈 보컬리스트 니나 시몬의 노래 ‘라일락 와인’에서 영감을 받은 향수였다. 최신작 ‘어보브 어스, 스테오라(Above Us, Steorra)’는 가장 야심 찬 프로젝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보브 어스, 스테오라’는 ‘별’을 뜻하는 고대 영어에서 이름을 땄다. 무수한 별로 수놓인 밤하늘을 올려다볼 때 느껴지는 경외심이 출발점이자 과소비와 감각의 과부하가 넘치는 세상에서 향수를 뿌리며 삶의 소소한 즐거움과 미지를 향해 나아가라고 속삭인다.
출시에 앞서 <보그> 사무실에 도착한 ‘어보브 어스, 스테오라’를 보고 처음 한 생각은 ‘이솝 향수 중 최고로 관능적인 향이 아닐까?’였다. 쾌락적이고 관능적인 요소가 담겨 있지만, 결코 화려하거나 과장된 방식은 아니다. 요약하면, 관능적이면서도 호기심을 자극하는 향이다. 처음엔 베르가모트와 카다멈, 엘레미의 향이 질주하는 혜성처럼 반짝이며 터져나온다. 점차 사이프리올 하트의 풍부한 아로마가 가미되어 앰버의 핵심부에 도달하면, 라다넘과 프랑킨센스 향이 코를 스친다. 마지막으로는 이 향조의 잔향이 깊은 여운을 남기며 따스한 바닐라 향으로 포근하게 마무리된다. 이솝 프래그런스 라인의 13번째 작품이자 대작을 선보이고자 하는 야심에 걸맞은 제품인 만큼 이솝 코리아 측에서는 <보그>와 특별한 작업을 원했다. 우리는 뻔한 화보를 만들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별이 가득 흩뿌려진 하늘의 미스터리한 마법을 사진으로 담기 위해 ‘기존 틀을 깨는, 반항적인’ 멤버를 구성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포토그래퍼 김재훈, 윤송이, 김재민이 이번 프로젝트를 이끌 인물로 특별히 선정됐다.
다른 앰버 향수가 파우더리하고 달콤한 편이라면, 이솝이 앰버를 풀어내는 방식은 ‘움직임’을 담은 살아 있는 향이다. 유성을 한 단어로 정의하면 ‘에너지’다. 빠르고, 뜨겁고, 곧 사라진다. 그 역동성을 담아내기 위해 바렐은 향의 ‘척추’ 같은 중심 원료로 향신료를 선택했다. 또 유성의 끓어오르는 뜨거움과 톡 쏘는 성질을 표현하기 위해선 카다멈을, 커민과 시나몬 껍질로 따뜻함을 더하며 그 열기를 드러냈다.

사진가 윤송이의 목표는 단순히 열기와 움직임을 나타내는 데 그치지 않았다. 어둡고 텅 빈 우주 공간을 가로지르는 유성의 눈부신 궤적을 볼 때의 느낌을 병에 담아, 어두운 우주와 빛나는 별의 대비를 그려내는 것이 그녀의 바람이었다. “우주를 떠올렸을 때의 신비로움, 반짝이는 유성과 다채로운 색에서 나타나는 모호하지만 강렬한 이미지. 복잡한 묘사보다는 이미지 자체로 전달하고 싶었어요. 스튜디오에서 조명과 물을 활용해 촬영했는데, 천장 전체에 스테오라, 즉 별이 흩뿌려져 각각 빛을 내며 반짝이는 것 같았죠.”
뜨거운 궤적을 그려내며 불타오르다가 땅에 닿으면 차가운 광물로 변하는 별똥별의 두 얼굴 중 후자를 담기 위해 바렐은 페퍼와 시트러스한 엘리미 수지를 사용해 짙고 묵직한 향의 중심부에 한 줄기 빛을 더했다. 향에 깊이를 더하기 위해 사진가 김재훈은 유년기를 떠올리며 작업에 몰입했다. “아버지와 남해에서 하늘의 별을 볼 때면 상상하던 우주의 모습, 그리고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나를, 또 내가 서 있는 지점을 상상했습니다.”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그는 말했다. “끝없이 펼쳐진 우주에서 느껴지는 차가운 정적과 태양이나 빅뱅처럼 폭발적인 뜨거움이 동시에 공존하는 이미지가 떠올랐죠.” 김재훈은 능숙하게 ‘어보브 어스, 스테오라’가 지닌 차가움과 뜨거움, 침잠과 폭발의 긴장감이 함께 존재하는 순간을 시각적으로 담아냈다. “차가움과 뜨거움, 고요와 폭발이 공존하는 지점. 제가 생각하는 ‘어보브 어스, 스테오라’의 키 비주얼입니다.”

사진가 김재민은 이번 작업을 위해 동해와 서해로 향했다. “앰버와 유성 등 몇 가지 핵심어를 듣고 제일 먼저 떠오른 이미지는 태양의 일출과 일몰에서 볼 수 있는 하늘의 색이었습니다.” 제품명이 ‘별’을 의미하듯, 우리가 낮에 볼 수 있는 유일한 ‘별’인 태양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다. 우리 태양계에서 유일한 별은 태양, 스스로 에너지와 빛을 내뿜는 천체를 ‘별’이라 정의한다. 일출과 일몰의 하늘 색은 향수병의 앰버빛처럼, 우리 눈으로 직접 감상할 수 있는 자연의 색이다. 그는 이를 두고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노을 질 때 태양을 중심으로 퍼지는 하늘의 색과 그 빛이 반사되어 사물에 물드는 색감이 ‘어보브 어스, 스테오라’와 잘 어울리는 이미지라고 느꼈습니다.”
예상대로 이번 협업은 <보그>의 오랜 친구 이솝과 함께한 또 한 번의 성공적인 작업이었다. 세 명의 사진가가 떠난 ‘어보브 어스, 스테오라’라는 매혹적인 향의 여정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유성의 핵심으로 돌아가 광물 차원의 아름다움을 담고 싶었던 이들의 바람이다. 이따금 고민과 걱정이 너무 많아 머리가 지끈거릴 때 ‘어보브 어스, 스테오라’는 우리에게 하늘을 올려다보라고 외치는 것 같다. 머리는 하늘을 향한 채, 발은 단단히 땅을 딛고 살아가는 모든 이의 상징처럼. VK
- 포토그래퍼
- 김재훈, 윤송이, 김재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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