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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램 피드 밖에서 만나는 팔로마 울

2025.10.14

인스타그램 피드 밖에서 만나는 팔로마 울

“런던 여자와 서울 여자가 우리 브랜드를 대하는 방식은 완전히 달라요.” 팔로마 란나(Paloma Lanna)는 2019년, 뉴욕에서 첫 팔로마 울 팝업 스토어를 열던 날을 또렷이 기억한다. “줄이 골목 끝까지 이어졌어요. 그때 알았죠. 화면 너머에서 우리를 지켜보던 사람들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걸.” 인스타그램 속 하트와 댓글로는 확인할 수 없던 팬들이 눈앞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의 표정, 동선, 차림새에서 얻은 생생한 피드백이 팔로마 울을 다음 챕터로 이끌었다.

팔로마 란나가 한국 팬에게 받은 편지. 팝업을 통해 직접 얻은 피드백이 브랜드의 방향을 바꾸기도 했다. @walomapool

팔로마 울은 수많은 ‘인스타그램 브랜드’가 탄생한 2014년에, 15피스로 구성된 컬렉션과 함께 시작을 알렸다. 회오리 무늬 톱, 보라색 코듀로이 셋업, 스터드 액세서리 같은 강렬한 비주얼은 피드 속에서 시선을 단숨에 붙잡았다. 하지만 입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비주얼보다 ‘입는 감각’이 중요해졌다. 그때부터 팔로마 울은 무채색과 구조적인 레이어링, 부드러운 니트, 버블 스커트, 스칸트로 옮겨가며 몸의 움직임에 집중했다.

팔로마 란나는 창립자이자 팝업 스토어의 첫 번째 점원이었다. 팝업 바닥을 쓸고, 피팅 룸을 오가며 사이즈를 찾고, 스타일링을 추천했다. 그렇게 직접 부대끼며 사람들의 반응을 익혀나갔다. 팝업은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브랜드의 방향을 모색하는 실험실’에 가까웠다. 도시마다, 사람마다 반응이 달랐고 그 차이를 온몸으로 느낀 란나는 점차 브랜드의 방향을 확신하게 됐다. “매장이 단순히 옷을 사고파는 곳처럼 보이길 원하지 않았어요. 실험할 수 있는 공간이자 재미있는 프로젝트로 남고 싶었죠.” 팝업의 열기가 번져나갈수록 팔로마 울은 더 오래 머물 장소가 필요했다. 온라인을 넘어, 이제는 오프라인의 아지트를 마련해야 할 순간이었다.

팔로마 라나가 공개한 바르셀로나 플래그십 스토어 설계도면. 라나는 이곳을 ‘홈타운 스토어’라고 표현한다. @walomapool

그 여정의 정점이자 전환점이 2026 봄/여름 파리 패션 위크 직후 오픈한 바르셀로나 플래그십 스토어다. 브랜드 창립 11년 만에 마련한 이 단독 공간은 수년간의 실험 끝에 얻은 확신의 결과물이었다. 800㎡(약 240평) 규모의 매장은 스튜디오, 갤러리, 패션 서점이 공존하는 복합 문화 공간으로 설계했다.

팔로마 울은 오랜 시간 협업을 브랜드의 중심에 두어왔다. 밀라노에서 이사벨라 벤시몰(Isabella Benshimol)과 함께한 전시와 캡슐 컬렉션처럼, 이번 플래그십에도 예술적 실험을 담은 갤러리와 서점이 들어섰다. “그동안 우리가 함께한 프로젝트를 잠깐만 보여줘야 했던 게 늘 아쉬웠어요. 이제는 마음껏 놀고, 실험할 수 있는 공간이 생겼죠.”

2024년 서울 팝업 스토어. 팔로마 울은 임시 팝업일지라도 작은 전시 공간을 마련한다. @palomawool
@palomawool

도시의 거리에서 매장 안으로 이어지는 복도형 구조는 ‘또 하나의 거리’를 품은 형태다. 곳곳에 놓인 벤치는 팝업 시절 피팅 룸 앞에서 기다리던 연인을 위한 자리로 남았다. “남자 친구들도 우리 여정의 일부였으니까요. 그들이 환영받는 기분을 느끼길 바라요.” 란나는 이 매장이 일상과 비일상의 경계에서 머물 수 있는 제3의 장소, 가까운 사람과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랐다.

“그동안은 인스타그램과 이커머스를 위해 컬렉션을 준비해왔어요. 하지만 이제는 매장을 위한 컬렉션을 만들죠. 맨눈으로 보는 색과 손끝으로 더듬는 질감을 동시에 고려하는 건 완전히 새로운 도전이에요.” 란나의 말처럼 이번 스토어는 단순히 디지털 세계를 물리적으로 옮긴 결과가 아니다. 브랜드의 오프라인 언어를 새로 구축하는 실험이었다. 조명 또한 팔로마 울의 미학을 현실로 옮기는 핵심 요소다. 커스텀 램프, 자연광과 인공광의 조화, 라텍스와 반투명 소재가 만들어내는 확산광은 공간 전체를 따뜻하게 감싼다. 뉴욕 팝업과 란나의 결혼식 조명을 맡았던 맥스 밀라 세라(Max Milà Serra)가 디렉팅을 담당했다. “현실에서도 우리만의 시각언어를 구축하는 게 중요했어요.”

바르셀로나 플래그십 스토어 곳곳을 감싸는 반투명 요소는 팝업 시절부터 이어온 팔로마 울의 시각언어다. Courtesy of Paloma Wool
Courtesy of Paloma Wool
@palomawool
Courtesy of Paloma Wool
Courtesy of Paloma Wool

매장은 쇼룸처럼 운영된다. 고객이 마음에 드는 아이템 번호를 적어 직원에게 건네면, 직원이 피팅 룸을 준비하는 방식이다. “이것도 팝업에서 얻은 교훈이에요. 사람들에게 천천히, 차분히 옷을 바라볼 시간을 주고 싶었죠. 손에 연필을 쥐는 그 평화로운 순간이 일상에 자주 찾아오진 않으니까요.”

‘천천히 바라보는 시간’은 팔로마 울의 일관된 태도이기도 하다. 관찰하고, 실험하고, 기다리기. 팔로마 울은 속도보다 방향을, 빠른 확장보다 필요한 성장을 택한다. 2024년 봄부터 전개한 남성복 라인 역시 같은 맥락에서 출발했다. “아직 팔로마 울의 남성 고객이 누구인지 탐색하는 단계예요. 우리처럼 적당한 가격대와 훌륭한 디자인을 동시에 갖춘 남성 브랜드는 많지 않죠. 그래도 반응이 좋아요. 자연스럽게 확장할 계획이에요.”

Paloma Wool 2026 S/S RTW
Paloma Wool 2026 S/S RTW

바르셀로나를 시작으로 팔로마 울은 런던과 파리로 향하고 있다. 올해 말 런던 메이페어에 두 번째 플래그십을 열 예정이다. 리버티 백화점과 비비안 웨스트우드 매장이 늘어선 거리에서, 팔로마 울은 디지털 인디 브랜드에서 글로벌 컨템퍼러리 브랜드로 도약하려 한다. 그러나 그 방향은 여전히 단단하다. 팔로마 울은 파리와 LA 등 주요 도시에서 새로운 기회를 이어가되, 성장의 리듬을 조절하며 독립성을 지켜나간다. “우리는 스스로 성장하는 독립 브랜드예요.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나아갈 겁니다.”

Paloma Wool 2026 S/S RTW
Courtesy of Paloma Wool
Anna Cafolla
사진
Courtesy of Paloma Wool, Instagram
출처
www.vogu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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