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마르지엘라적인 글렌 마르탱의 마르지엘라
성전에 발을 들인 문제아.

글렌 마르탱(Glenn Martens)의 첫 마르지엘라 쇼는 총 61명으로 구성된 ‘어린이 오케스트라’의 연주와 함께 시작됐다. 몸에 맞지 않는 턱시도 차림으로 등장한 아이들은 모차르트와 프로코피예프, 베토벤 등의 음악을 연주하며 게스트들을 미소 짓게 했다. 모델들은 정반대였다. 하우스의 상징적인 스티치 로고가 연상되는 개구기를 끼고 있던 모델들은 글렌의 표현을 빌리면 ‘의무적인’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는 마르지엘라 하우스가 언제나 ‘익명성’을 강조했다고 이야기한다. “예전부터 페인트나 가면을 활용해 익명성이라는 아이디어를 확장해왔죠. 이번 시즌 저는 마우스피스를 선택했습니다. 요즘 세상에는 억지 미소가 필요한 법이니까요. 물론 해석은 각자의 몫입니다.” 글렌은 어린이 오케스트라 뒤에 숨겨진 의미 역시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는 아이들이 뛰어노는 낡은 놀이터에서 개최된 메종 마르탱 마르지엘라 1989 봄/여름 컬렉션을 참고했는지도 모른다. 전임자인 존 갈리아노는 한 편의 연극을 방불케 하는 쇼를 선보였지만, 글렌의 쇼는 한층 차분하고 현실적이었다. 앤트워프 출신인 마르탱 마르지엘라와 달리 브루게 태생인 그는 와이/프로젝트와 디젤을 이끌며 젊은 세대가 매력을 느낄 만한 ‘상업적인’ 옷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한 차례 증명했다. 그는 마르지엘라에 ‘금욕주의’와 ‘절제’가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지 잘 알고 있다

고딕 스타일의 검정 가죽 코트와 물이 잔뜩 빠진 데님 코트가 그 증거다. 글렌은 스트리트 무드, 빼어난 테일러링, 빈티지 룩의 재해석, 격식 있는 이브닝 웨어의 전복 등 마르지엘라 하우스의 상징과도 같은 코드 역시 충실하게 따랐다. 그는 마르지엘라의 또 다른 상징 중 하나인 플라스틱 소재를 훌륭하게 재해석했다.

속이 훤히 비치는 실크 셔츠와 이브닝 재킷은 더할 나위 없이 미묘하고 세련돼 보였다. Z세대의 지지를 한 몸에 받는 이 ‘피리 부는 사나이(이번 쇼의 초대장은 크림색 리코더였다)’는 어린 세대뿐 아니라 어른들의 마음마저 사로잡고 싶은 걸까? “저는 언제나 소란을 피우려고 하는 디자이너지만, 마르지엘라에는 이미 훌륭한 옷이 존재하죠. 그 옷에 시대를 초월하는 힘이 있다고 믿습니다.” 글렌 마르탱은 마르탱 마르지엘라의 유산을 물려받았다. 은퇴한 지 20년 가까이 됐지만, 지금도 많은 이가 신성시하는 유산이다. 그가 스티치 모양의 마우스피스로 써 내려간 한 편의 잔혹 동화는 또다시 한바탕 소동을 일으킬 것이다. 그의 제품이 매장에 출시될 때는 또 어떤 일이 벌어질까? 공연을 마친 뒤 열광적인 호응 속에서 퇴장한 어린아이들처럼, 글렌 마르탱에게도 박수갈채가 쏟아질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VK
- 글
- SARAH MOWER
- 사진
- GORUN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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