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이 과거에 누린 삶을 침해해선 안 된다”, 갈라 포라스 김
국제갤러리에서 새로운 작가를 만났습니다. 런던과 LA를 오가며 활동 중인 갈라 포라스 김(Gala Porras-Kim)이 그 주인공인데요. 오는 10월 26일까지, 포라스 김이 처음으로 국제갤러리와 손잡고 선보이는 개인전으로, 소담한 규모임에도 꽤 뜨거운 호응을 얻고 있습니다. 작가는 특히 지난 2023년에 열린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전시와 리움 미술관 전시에서 호평받으며 누구든 궁금해하는 작가로 주목받았는데요. 이번에는 ‘자연 형태를 담는 조건’이라는 제목으로, 사람들이 자연을 다루기 위해 부여하는 규칙에 대한 고유한 통찰력을 선보입니다. 즉 인간이 만들어낸 다양한 형태가 자연의 추상을 어떻게 통제하는지에 대한 물음인 셈이지요.

한국에서 이전에 열린 두 번의 전시를 통해 포라스 김은 특히 유물이나 소장품 같은 제도적 맥락에 놓인 사물이 어떻게 분류·보존·전시되는지, 그 패러다임에 대한 탐구를 다양한 매체를 통해 소개했습니다. 이는 곧 ‘역사가 어떻게 현대 속에서 존재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죠. 그리고 이번에 작가는 그 시선을 미술관 같은 기관의 공공 영역이 아니라 개인의 수집 영역으로 전환했는데요. 저는 개인적으로 이 부분이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혹자는 미술관 유물과 소장품을 다루던 작가가 왜 수석을 다루는지 궁금해하기도 했는데요. 미술관 전시를 주로 해오던 작가가 상업 갤러리 전시에 맞는 시각과 방법론을 찾아낸 게 아닐까 싶더군요.
K1 안쪽 전시장에 전시된 수석 드로잉이 바로 그 전환의 결과물입니다. 수석은 철저히 사적인 가치 기준으로 오랫동안 수집되어왔지요. 특히 작가는 수석 수집이 여러 세대를 아우른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사물의 가치는 동시대 사람들과의 관계성에 의해 정해집니다. 하지만 수석의 경우에는 오래전 누군가에게 소중했던 이유가 설사 달라졌다 해도 여전히 소중히 간직되고 있다는 거죠. 작가는 전통적인 체계가 아니라 자신만의 개념으로 수석을 재분류합니다. 실존하는 바위 등을 수석으로 재구성해 그려낸 건데요. 여기에 작가는 실제 수석 수집가들을 초대해 수집가와 돌의 사적 관계의 연결 고리를 관찰하면서 입체적인 대화를 이끌어냅니다. 실제 수석들의 형태와 모습이 어찌나 기이하고 초현실적인지, 오히려 작가가 만들어낸 드로잉 속 수석이 더 진짜처럼 느껴지더군요.

한편 ‘자연 형태를 담는 조건’에 대한 또 다른 탐구인 ‘신호(Signal)’는 작가의 전작 ‘신호 예보(Forecasting Signal)’ 같은 작품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작업입니다. 제습기로 공간의 습기를 모으고 흑연을 활용해 그려낸 추상적 드로잉인 셈인데요. 작가는 미술관과 박물관 등의 보존 전문가들의 대화에서 이 작업의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즉 거의 모든 기관은 작품을 보존하기 위해 온도, 특히 습도 같은 자연적 조건을 통제하려 하지만, 이는 뜻대로 되지 않지요. 보이지 않지만 엄연히 전시장에 존재하는 환경적 요소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작가는 이런 요소들을 특정 공간과 시기의 기록으로 온전히 인정할 뿐만 아니라, 이를 통해 모든 것을 통제하려는 열망을 스스로 내려놓는 태도를 상기합니다.


갈라 포라스 김은 과거가 당시와는 다른 모습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현대의 일상에 나타나는 것을 지켜봐왔다고 합니다. 이렇게 역사를 품은 유물이나 소장품 등이 존재하는 방식을 미술로 탐구하는 건 다학제적일 뿐만 아니라 어쩌면 상상과 공감의 방식일지 모른다는 생각도 드는데요. 지난 2021년 광주비엔날레에 참여한 작가가 당시 인터뷰에서 한 말이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현재의 동기나 이해가 사물이 과거에 누린 삶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거기에 속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 말은 문명이라는 명목 아래 당연히 행해져온 관습을 미술 작품을 통해 재고하게끔 하는 시도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번에도 작가는 자연의 형태를 담는 조건이라는 상징적 화두를 제시하면서, 우리가 인지하지 못했던 다채로운 관계성을 일깨웁니다. 열린 접근과 고고학적 상상력, 그리고 인간과 비인간을 넘나드는 존중의 마음이 묻어나는 작품이라 해도 좋습니다.
최신기사
추천기사
인기기사
지금 인기 있는 뷰티 기사
PEOPLE NOW
지금, 보그가 주목하는 인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