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마지막 왕조의 도시 ‘후에’

스카이스캐너가 지난해 검색량을 바탕으로 2026년 새롭게 떠오르는 여행지 10곳을 소개했다. 그중 한 곳이 베트남의 ‘후에(Hue)’ 다. 익숙하지 않은 지명이지만, 후에는 베트남의 마지막 왕조가 숨 쉬던 고도다. 다낭에서 기차로 약 2시간 30분,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해안 절벽을 바라보다 보면 어느새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아름다운 도시에 닿는다.
한국인에게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여행지 베트남. 그중에서도 ‘다낭’은 ‘경기도 다낭시’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덕분에 이 도시는 여행자 포화 상태. 여유롭게 베트남의 문화와 전통, 그리고 역사적인 유적지까지 경험하고 싶다면 인근에 있는 ‘후에’를 추천한다. 패키지 여행 중 잠시 방문했다가 떠나기 일쑤인 이 도시는 이미 많은 유럽 여행자들로 북적인다.

후에는 1802년 자롱(Gia Long) 황제가 분열된 베트남을 통일하며 수도로 삼았다. 이후 143년간 응우옌(Nguyễn) 왕조는 13대에 걸쳐 이 도시를 다스렸다고 전해진다. 중국 자금성을 본떠 지은 황궁과 강변에 늘어선 사원과 황제릉들. 도시 중심에는 흐엉강이 끝없이 흐른다. 후에는 단순한 관광지로 이야기하기에는 베트남 근대사의 중요한 보물을 품고 있다. 1945년 바오다이(Bảo Đại) 황제가 퇴위하기까지, 이 고요한 도시는 왕조의 영광과 쇠락을 모두 경험했다. 프랑스 식민 지배와 베트남 전쟁으로 많은 유적이 파괴되었지만, 이후 199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면서 과거의 명성을 되찾았다. 지금도 많은 유적과 기념물군 복원 작업이 계속되고 있다.
후에 황궁 Hue Imperial City

흐엉강의 북쪽으로 건너가면 2km가 넘게 이어지는 성벽이 보인다. 1804년 자롱 황제가 건설을 시작해 1833년 민망(Minh Mạng) 황제 당시 지금의 규모로 완공되었다고 한다. 입구의 거대한 베트남 국기가 바람에 흩날리는 것이 인상적이다. 후에 황궁은 중국 베이징의 자금성을 4분의 3 크기로 축소하여 지은 것이다. 대부분의 건물, 문 이름이 한자로 적혀 있다. 과거 응우옌 왕조까지 중국 한자를 공식 문자로 사용한 탓이다. 덕분에 후에 곳곳에서 한자를 발견할 수 있고, 대부분의 건물 이름은 한자어로 읽을 수 있다.

후에 황궁은 황성(Hoang Thanh), 자금성(Tu Cam Thanh)이 겹겹이 둘러싼 형태다. 오문(午門, Ngo Mon)을 지나면 황제만 걸을 수 있던 황금색 문이 등장한다. 태화전(Dien Thai Hoa)를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넓은 황궁 터가 등장한다. 많은 이들이 걸어서 산책하거나 자전거를 타고 관람한다. 내부는 대부분 폐허가 되었지만 간간이 등장하는 성벽과 문에선 무너진 세월의 흔적이 드러난다. 가장 화려하고 아름다운 곳은 건중전(Kien Trung Dien)이다. 프랑스 건축 양식이 뒤섞인 외관과 내부는 다양한 색채의 타일과 프랑스식 장식으로 꾸며져 있다. 독특하게도 보석 하나 사용하지 않았는데, 아름답게 감도는 빛에 감탄이 터진다.
티엔무 사원 Thien Mụ Pagoda

흐엉강을 따라 황궁에서 서쪽으로 약 5km, 하케(Ha Khe) 언덕 위에 오르면 베트남에서 가장 상징적인 탑이 서 있다. 틈틈이 피어난 새싹과 무너진 벽돌 조각이 지난 시간을 상상하게 만든다. ‘하늘의 성모’라는 뜻을 지닌 티엔무 사원은 1601년 응우옌 호앙(Nguyen Hoang) 영주가 세웠다. 이곳에는 한 가지 전설이 내려오는데, 노파가 하케 언덕에 나타나 위대한 영주가 이곳에 탑을 세워 나라의 번영을 가져올 것이라 예언했다고. 7층 팔각탑 푸옥주옌(Phuoc Duyen)은 1844년 티에우찌(Thieu Trị) 황제가 지었다. 높이 21m, 층마다 부처를 모시고 있다. 탑 뒤편의 대웅전(Dại Hung Dien)에는 1710년에 만든 거대한 대홍종이 있다. 2톤이 넘는 종이 울리는 소리가 언덕 아래 강물까지 퍼졌다고. 사원 자체는 그리 크지 않지만 고즈넉한 분위기를 즐기며 둘러보기 좋다. 사원 바로 옆으로 노점들이 자리 잡고 있어 가볍게 음료를 마실 수 있고, 기념품 구매도 가능하다. 물론, 흥정은 필수.
민망 황제릉 Tomb of Minh Mạng

후에 시내에서 약 12km 떨어진 곳에 거대한 능이 숨어 있다. 응우옌 왕조에서도 가장 규모가 장엄하다. 민망 황제는 베트남의 영토를 캄보디아, 라오스까지 확장했다. 프랑스 선교사의 활동을 금지하고, 유교적 통치를 강화하는 등 매우 엄격한 유학자이자 정복자였다. 당시 민망 황제의 모습이 어떠했을지 이 황제릉을 보며 상상할 수 있다. 본인이 직접 설계했으나 재위 중에 완공하지 못한 능은 부지만 18만㎡에 달한다. 입구에서부터 황제릉까지 이어지는 길은 꽤 단순하다. 깊은 숲에 자리 잡은 길을 지나, 신도(神道)라 불리는 중앙 축을 따라 걸으면 삼문 형식의 대홍문(Dai Hong Mon)이 나타난다. 대홍문은 황제의 관이 능으로 들어간 뒤 문을 닫고 다시는 열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명루에 오르면 눈앞에 연못과 주변의 소나무 숲, 그리고 민망 황제가 잠든 능이 보인다. 압도적인 규모에서 느껴지는 황제의 위엄. 화려하기보다는 웅장한 느낌이 강한 곳이다.
카이딘 황제릉 Tomb of Khai Dinh

카이딘 황제릉은 앞서 언급한 민망 황제릉과는 입구부터 다르다. 가파른 계단을 따라 올라가야만 황제가 잠든 곳에 닿는다. 카이딘 황제는 응우옌 왕조의 열두 번째 황제로, 왕위 유지를 위해 프랑스와 긴밀히 협력해 ‘프랑스 정부의 월급쟁이’라 불렸다. 능은 1920년에 착공해 11년 만인 1931년, 그의 아들 바오다이 황제 때 완공되었다. 베트남과 유럽 양식이 뒤섞인, 바로크, 고딕, 신고전주의로 가득한 묘한 건축물이다. 프랑스에서 수입한 시멘트로 건축했는데, 지금은 비와 바람, 그리고 오랜 세월로 인해 검게 변했다. 황제가 잠든 천정전(Thien Dịnh Dien)에 들어서면 바깥 모습과 완전히 다른 내부 양식을 감상할 수 있다. 벽면을 가득 메운 도자기 타일과 유리 모자이크, 황금빛 침상 위에는 황제의 실물 크기 청동상이 앉아 있다. 규모는 작지만 어마어마하게 화려한 무덤. 이 하나를 만들기 위해 투입되었을 비용과 시간, 노동력이 눈에 선하다.
이처럼 후에는 도시 곳곳에 옛 왕조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곳들이 많다. 물론 며칠을 머물러야 할 정도로 볼거리가 아주 많은 곳은 아니다. 다만 느리게 여행하며 도시를 즐기기에는 다낭보다 후에가 딱 좋다. 시내 한가운데 있는 황궁을 매일 마주 보며 주변을 산책해도 좋고, 골목 곳곳에 숨어 있는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진하고 달달한 베트남 커피를 마셔도 하루가 완벽해진다. 빠르게 달리기만 하던 발걸음을 멈추고, 천천히 걷고 싶다면 이곳, 후에를 추천한다.
- 사진
- 엄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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