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노그램의 시간, 130년의 가치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지만 무엇보다 엄격하다. 한 세기가 넘게 이어온 창작물이라면 그 자체로 가치 있다.

나의 첫 번째 ‘백’은 루이 비통 스피디였다. 물론 그 전에도 수없이 가방을 들어왔지만 ‘백’이라 칭할 만한, 그러니까 소유한다는 기쁨을 준 첫 물건은 모노그램이 펼쳐진 스피디였다. 모노그램이라는 명칭도 몰랐고, 그저 갖고 싶어 20년 전에 구입한 백은 여전히 나의 옷방에 있다. 20대의 내가 회사 갈 때나 짧은 여행을 떠날 때 애용한 이 친구는 점차 늘어나는 백 사이에서도 여전히 존재감이 있다. 보고 있으면 그 시절 내가 떠올라 기분이 좋아지기도 한다. 이후 위시 리스트에는 다른 모노그램 백이 올라오곤 했다. 내게는 20년 역사지만 루이 비통의 모노그램은 130주년을 맞이했다. 한 세기가 넘게 사랑받아온 것은 고전, 클래식이란 가치를 부여받지만 그만큼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 창작자의 의도와 진심이 그만큼 오래 세상과 공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모노그램의 시작은 아버지에 대한 경의다. 1896년 조르주 비통(Georges Vuitton)이 창립자인 아버지 루이(Louis)를 생각하며 모노그램을 창조했고 하우스의 유산이 되었다. 네오고딕 장식과 자포니즘에 영감을 받아 LV 이니셜과 플로럴 메달리온을 조합해 완성한 디자인이다. 1872년 스트라이프 캔버스와 1888년 다미에에 이어 하우스의 정품임을 보증하기 위해 창작했지만 의도를 넘어섰다. 아름다움이 구조적이면서 즉흥적이고, 영원하면서도 끊임없이 변화할 수 있다는 철학을 보여주며 하우스의 상징이 되었다.


처음엔 리넨 자카드로 직조된 모노그램은 여러 세대 창작자, 컬렉터에게 계승되었다. 마크 제이콥스, 니콜라 제스키에르, 버질 아블로, 퍼렐 윌리엄스에 이르기까지 디자이너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에게 영감을 주었으며, 루이 비통이 사랑하는 아티스트 무라카미 다카시, 쿠사마 야요이, 리처드 프린스 등과도 협업을 이뤄냈다.


2026년 1월 루이 비통은 마스터피스로 자리한 모노그램 백을 다시 조명한다. 이때 떠오르는 타임리스 백이 있을 것이다. ‘개인 이동성’의 개념을 끊임없이 재정의하는 스피디(Speedy, 1930년), 자유와 편안한 여행의 상징인 키폴(Keepall, 1930년), 샴페인 다섯 병을 담기 위해 디자인해 즐거움을 예찬하는 노에(Noé, 1932년), 파리 건축에 대한 경의를 담은 알마(Alma, 1992년), 현대 라이프스타일의 동반자로 자리 잡은 네버풀(Neverfull, 2007년)이다.
무엇보다 새로운 모노그램 애니버서리 컬렉션(Monogram Anniversary Collection)을 공개한다. 모노그램 오리진(Monogram Origine), VVN, 타임 트렁크(Time Trunk) 컬렉션이다. 이들은 전통과 혁신, 클래식한 장인 정신과 현대적인 예술성을 재해석하는 동시에 하우스 유산의 각기 다른 면모에 집중한다.

모노그램 오리진 컬렉션은 초창기 여행 정신을 빈티지 감성으로 새롭게 구현한다. 1908년 하우스 아카이브의 고객 등록부 표지에서 영감을 받아 모노그램을 재해석했고, 내구성은 물론 코팅 캔버스로 부드러운 촉감을 완성했다.

VVN 컬렉션에서 VVN은 ‘바슈 베제탈 나튀렐(Vache Végétale Naturelle)’의 머리글자다. 1880년 이후 루이 비통은 천연 가죽에 독보적인 전문성을 공고히 해왔다. 시간이 갈수록 광택이 더 우아해지는 파티나로 잘 알려진 연한 베지터블 태닝 카우하이드가 단적인 예다. VVN 컬렉션은 천연 가죽에 바치는 헌사다. 더불어 탈착 가능한 모노그램 네임 태그와 내부의 모노그램 자카드 라이닝이 아이코닉한 모노그램 패턴을 기념한다. 레더 애호가라면 이 컬렉션의 가치를 단번에 알아볼 것이다.

타임 트렁크 컬렉션은 루이 비통 하면 빼놓을 수 없는 트렁크와 여행의 역사에 기반한다. 트렁크의 텍스처와 금속 디테일을 재현한 트롱프뢰유 프린트를 가져오며 과거와 현재를 잇고자 한다.
모노그램의 130년을 돌이켜보면 장인 정신, 예술, 여행, 기능과 아름다움이 시대마다 새로운 언어로 구현됐다. 그 시간 앞에서 모노그램은 묻는다. 시간이 쌓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클래식은 왜 새로움을 계속 추구해야 하는가. VK
- 피처 디렉터
- 김나랑
- 포토
- COURTESY OF LOUIS VUIT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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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OUIS VUIT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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