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황제, 발렌티노 가라바니를 추억하며
패션계의 마지막 황제, 시크의 제왕. 발렌티노 클레멘테 루도비코 가라바니(Valentino Clemente Ludovico Garavani). 1932년 5월 11일, 밀라노와 제노아 사이 한적한 마을 보게라(Voghera)에서 태어나 패션과 스타일의 정점에 올랐던 그가 3일 전 세상을 떠났다.

그리스 신화의 미다스가 손에 닿는 모든 것을 황금으로 바꿨다면, 발렌티노는 모든 것을 ‘아름답게’ 바꿔놓는 인물이었다. 그가 정의하는 아름다움은 럭셔리, 강렬함, 글래머, 완벽함, 페미닌의 집합체였다. 언젠가 어깨를 으쓱하며 “아름다움을 사랑할 뿐입니다. 저도 어쩔 도리가 없어요!”라고 이야기했던 그는 여성의 마음을 사로잡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밀라노의 아카데미아 델 아르테(Accademia dell’Arte)에서 프랑스어와 패션을 공부한 그는 17세의 나이에 파리로 이주했다. 에콜 데 보자르(École de Beaux Arts)와 파리 꾸뛰르 의상 조합(Chambre Syndicale de la Couture)을 거친 그는 1951년 왕족과 상류층 여성을 위해 화려한 디자인과 색상의 이브닝 드레스를 제작하던 아테네 출신 꾸뛰리에 장 데세(Jean Dessès)의 견습생으로 취직하며 패션계에 발을 들였다. 발렌티노의 친구이자 뮤즈 자클린 드 리브스(Jacqueline de Ribes)와의 첫 만남도 이때쯤이었다. 당시 데세의 옷을 즐겨 입던 자클린은 디자이너 올렉 카시니(Oleg Cassini)의 일을 돕고 있었고, 패션을 공부하지 않은 그녀는 스케치에 어려움을 겪었다. 자클린은 데세에게 “어떻게 해야 시크하게 그릴 수 있나요?”라며 조언을 구했고, 데세는 “솜씨 좋은 이탈리아 출신 일러스트레이터가 있다”며 그녀에게 발렌티노를 소개했다.
발렌티노는 데세 스튜디오에서 근무하던 시절 환상적인 드레이핑과 자수가 가미된 드레스를 스케치했다. 파란 시폰 소재로 만든 데이 드레스, 꽃과 보석 장식을 수놓은 이브닝 드레스 등 당시 여배우들이 입었을 법한 드레스가 대표적이다. 발렌티노는 1992년 하우스 창립 30주년을 기념하는 파티 겸 전시에서 이 ‘꿈의 드레스’를 직접 만들어 선보이기도 했다.

1956년 발렌티노는 데세의 어시스턴트였던 기 라로쉬가 론칭한 꾸뛰르 하우스에 합류한다. 이후 러시아 공주이자 디자이너였던 아이린 갈리친(Irene Galitzine, ‘팔라초 파자마’를 유행시킨 인물이다)과 잠시 함께 일했던 그는 1959년 자신의 이름을 딴 브랜드를 론칭한다.
발렌티노가 평생의 동반자 지안카를로 지암메티(Giancarlo Giammetti)를 만나 사랑에 빠진 것도 이 무렵이다. 지암메티는 약 70년 전, 발렌티노와의 첫 만남을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로마 어느 카페에 앉아 있는데, 상냥한 사람이 다가와 ‘혼자 왔느냐’고 물어보더군요. 그렇다고 대답하자 자신과 친구 한 명이 테이블에 같이 앉아도 될지 물었죠. 제 옆에 앉은 발렌티노의 얼굴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합니다. 검은 머리가 휘날리며 그을린 그의 얼굴을 감쌌는데, 관능적인 이목구비와 매혹적인 푸른 눈이 돋보였죠. 그때 발렌티노가 프랑스어로 말을 걸었습니다. 당연히 저는 알아듣지 못했고, 발렌티노는 프랑스에서 일하다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머릿속이 온통 프랑스어라고 설명했죠. 그는 ‘우리 다음에 만나면 프랑스어로 얘기해요!’라고 말했습니다.” 지암메티는 이후 평생 프랑스어를 공부했고, 연인이자 비즈니스 파트너였던 두 사람은 늘 프랑스어로 대화를 나눴다.
발렌티노는 곧 콘도티 거리에 집을 구했다. 화려한 외관과 프레스코 벽화가 돋보이는 아름다운 집이었지만, 1년 뒤 발렌티노는 파산 위기에 직면했고 곧 그레고리아나 거리에 있는 16세기 저택으로 이사했다(지암메티는 최근 콘도티 거리의 그 집을 매입해 사무실로 개조했다. 벽에는 온통 실크 벨벳이 걸려 있고, 집 안 곳곳에 에르베 반 데르 스트래텐의 가구와 골동품이 가득한 곳이다).
발렌티노는 점차 패션계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언론은 그의 수려한 외모에 주목했고, 로마에 들른 스타들은 그가 만든 옷과 사랑에 빠졌다. 영화 <클레오파트라> 촬영을 위해 로마에 머물던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밑단에 타조 깃털 장식을 더한 흰색 슬리브리스 드레스를 입고 <스파르타쿠스>의 프리미어에 참석한 덕분에 발렌티노는 전 세계에 이름을 알릴 수 있었다.


<보그> 역시 발렌티노를 주목했다. 당시 에디터로 일하던 글로리아 시프(Gloria Schiff)는 매거진 세상에 발렌티노를 소개했고,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에게도 만남을 주선했다. 재클린은 곧바로 그의 팬이 됐고 발렌티노, 지암메티와 함께 카프리에서 휴가를 보내기도 했다. 발렌티노는 애니멀 프린트를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하며(1964년 <보그>에 실린 얼룩말 무늬 재킷이 좋은 예) 큰 인기를 끌었고, 1967년에는 포토그래퍼 프랑코 루바텔리가 호랑이 무늬 팬츠와 바닥에 질질 끌릴 정도로 긴 발렌티노 코트를 입은 슈퍼모델 베루슈카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기도 했다. 발렌티노는 ‘젯셋 시크’가 무엇인지 누구보다 잘 아는 인물이었다. 타조 깃털과 비즈 장식이 달린 튤 소재 이브닝 코트(역시 바닥에 닿을 만큼 길었다) 안에 스트랩을 생략한 새빨간 칼럼 드레스를 매치하는 것이 그의 방식이었다.
‘올 화이트’ 룩이 연달아 등장한 1968 봄/여름 컬렉션도 빼놓을 수 없다. 마렐라 아녤리(Marella Agnelli, 이탈리아 출신 사교계 명사)는 그 쇼를 본 뒤 댄디한 비즈 장식 웨이스트 코트와 자수 재킷, A 라인 스커트를 구매했고, 포토그래퍼 헨리 클라크는 사이 톰블리의 집에서 그 컬렉션 룩을 입은 마리사 베렌슨(Marisa Berenson, 스키아파렐리의 손녀)과 베네데타 바르지니(Benedetta Barzini)의 모습을 촬영했다. 빨간 드레스를 선보이며 ‘발렌티노 레드’의 시작을 알린 건 1959년이었다.
오드리 헵번, 소피아 로렌,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 낸 켐프너 등 많은 사교계 명사의 마음을 사로잡은 발렌티노는 점차 자신의 집을 ‘업그레이드’했다. 벽면이 온통 페르시아 미니어처로 가득했던 로마 집은 어느새 아피아 가도의 대저택으로 변모했고, 집 인테리어는 거장 로렌초 몬지아르디노(Lorenzo Mongiardino)가 맡았다. 1980년대 말, 그의 집을 방문하고 내가 받은 인상은 ‘숨이 막힐 정도로 아름답다’였다. 사방이 친츠 가공한 직물과 1880년대 벨벳, 꽃으로 가득하고, 곳곳에 배치된 페르난도 보테로의 그림이 눈에 띄는 집이었다.
1980년대 중반, 로마에서 열리는 발렌티노의 꾸뛰르 쇼를 처음 보러 갔을 때가 떠오른다. 용기를 내 위압감 넘치는 그의 ‘살롱’에 발을 들이자, 곧바로 벽에 걸린 수트와 볼 가운, 이브닝 드레스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호화롭고 화려한 삶, 그러니까 ‘발렌티노다운’ 삶을 사는 사람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 거기 있었다. 그곳은 발렌티노가 꾸뛰르 의상을 제작하는 아틀리에기도 했다. 빛으로 가득한 방에서는 부지런한 여성 수백 명과 남성 몇몇이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다. 발렌티노 쇼 피날레를 장식하는 것은 언제나 모두의 마에스트로, ‘미스터 발렌티노’였다. 팔을 공중에 뻗은 채 손뼉을 치는 그의 모습은 흡사 개선장군 같았다.
1991년에는 그와 인터뷰를 하기 위해 로마를 방문했다. 우리는 미냐넬리 광장이 한눈에 들어오는 방에 앉아 있었는데, 방 안은 골동품과 함께 한눈에 봐도 고급스러운 커튼으로 가득했다. 발렌티노에게서 원하는 답을 얻는 것은 쉽지 않았다. 지암메티는 아르테 포베라 스타일의 예술품으로 꽉 찬 옆방에 있었는데, 그는 발렌티노와 정반대로 말이 아주 많은 사람이었다.

발렌티노는 카프리, 뉴욕, 런던 등 세계 각지에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었다. 1995년 그가 샤토 드 위드빌(Château de Wideville)로 나를 초대했을 때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긴 진입로를 따라가다가 급격히 코너를 돌자, 언덕 아래 거대한 성이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루이 14세의 애인이었던 루이즈 드 라 발리에르(Louise de La Vallière)가 한때 살았던 바로 그 성이다. 자크 비르츠(Jacques Wirtz)가 완성한 정원과 꽃으로 가득한 벽면을 지나자 비로소 대저택을 마주할 수 있었다. 발렌티노가 인테리어 디자이너 앙리 사무엘(Henri Samuel)과 함께 꾸민 내부는 중국풍 모티브와 에메랄드색 실크 벨벳 안락의자가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모습이었다.
거실에는 프랜시스 베이컨의 그림이 걸려 있었다. 장미 문양 카펫 위에 앉아 있는 한 남성의 추상화였는데, 평소 프랜시스 베이컨 화풍과 너무 다르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내가 본 베이컨 그림 중 ‘가장 발렌티노답다’고 설명해야 할까? 저녁 식사 자리로 향하던 중, 광활한 정원과 매혹적인 인테리어에 마음을 뺏긴 나는 발렌티노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름다움을 창조해내셨군요.” 발렌티노는 내 손을 꼭 잡으며 감격에 겨운 듯 답했다. “정말 그렇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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