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과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로열패밀리! 그 가운데 남다른 혈통과 우월한 유전자를 지닌 청춘스타들이 탄생했다. 모델, 뮤지션, 배우, 디자이너 등으로 맹활약 중인 차세대 로열 패션 스타 8인의 결정적 순간들.

“패션계 전체의 수요와 존재감으로 한 해를 정의할 만한 단 하나의 얼굴. 특급 사진가, 스타일리스트, 클라이언트와 함께 작업하며 스스로를 특별하게 만든 그들은 결국 2015년 최고의 스타가 됐다.” 패션모델에 관해 모든 것을 다루는 모델스닷컴은 2015년을 마무리하며 올해의 모델을 선정했다. 사진가, 스타일리스트, 캐스팅 디렉터 등의 전문가들은 물론 수천 명의 팬들이 함께 투표한 결과는? 전문가들은 안나 이버스를 꼽았지만, 패션 팬의 선택은 달랐다. 건강하고 친근한 매력의 지지 하디드가 올해의 모델 왕관을 차지한 것. 올해의 신인은 지지의 동생 벨라 하디드, 그리고 2015년을 대표하는 남자 모델은 럭키 블루 스미스였다.

사실 지금껏 우리가 알고 있는 모델의 성공 스토리는 익숙하다. 또래보다 훨씬 큰 키로 인해 구부정하게 몸을 굽힌 소녀가 어느 날 느닷없이 패션계의 신데렐라로 돌변하는 영화 같은 시놉시스 말이다. 상파울루의 어느 쇼핑몰을 걷다가 스카우트되거나(지젤 번천), 모스크바 외곽의 고속도로에서 과일을 팔다가 발굴되는 마법 같은 스토리 등등(나탈리아 보디아노바). 그러나 이제 모델을 주인공으로 한 패션 동화는 다시 쓰이고 있다. 지지처럼 엄마가 리얼리티 시리즈의 스타여야 하거나, 켄달 제너처럼 온 가족이 스타로 떠오른 집안의 딸이어야 한다. 혹은 럭키 블루처럼 인스타그램을 재치 있는 방식으로 자기 커리어에 이용하는 명민함을 갖춰야 한다.

지지와 켄달로 대표되는 새로운 패션 슈퍼스타의 출현은 패션 2세 시대의 터닝 포인트였다. 그렇다면 그들의 뒤를 이을 인물들은? 지난해 9월 <보그 코리아> 기사 ‘아버님이 누구니’에 언급된 인물부터 살펴보자. 샤넬 쇼에 선 가브리엘 케인 데이 루이스(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아들), 생로랑 쇼에서 만난 딜런 브로스넌(피어스 브로스넌의 아들)과 잭 킬머(발 킬머의 아들), 남매 모델로 떠오른 아이리스와 래퍼티 로(아빠가 주드 로) 등등. 이제 시선을 끄는 모델이 등장한다면, 가족 관계부터 먼저 파악해야 할 정도가 됐다. 패션 DNA가 검증됐다면 다음 단계는 그들의 SNS 습성을 눈여겨보는 일이다. 요즘 모델들에게 필수 사항은 자기 PR을 위한 소셜 미디어의 맹렬한 활용이다. 켄달의 인스타그램 팔로워 숫자는 4,600만 명을 넘어섰고, 지지는 1,100만 명의 팬을 거느린다. 물론 많은 팔로워 수가 패션 스타로서의 성공을 장담하는 건 아니다. 이 동시대적 채널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관건이다. ‘고작’ 190만 명 정도의 팔로워를 지녔지만, 럭키 블루는 세계 곳곳에서 팬과 셀피를 찍는 ‘반짝 이벤트’를 벌이며 재빨리 성공 가도에 올라탔다. 패션 화보에 등장하는 모델이 아닌, 스마트폰의 직사각형 화면으로 보는 모델이 더욱 익숙한 시대다. 미스터리한 가상 세계 속 모델보다 일상의 단편을 공유하는 친근한 이들이 패션 스타로 자리 잡은 것이다.

이쯤에서 <보그 코리아>는 지지와 켄달의 뒤를 이을 차세대 패션 왕족의 후손을 찾아 나섰다. 과연 또 어떤 로열패밀리의 후손이 패션계를 사로잡을까. 이 궁금증을 풀기 위한 여정에 동행한 인물은 한국계 캐나다인 사진가 피터 애시 리(영국 <보그>와 미국, 이태리 <보그 우오모> 등에서 감도 높고 자연스러운 사진을 선보인 젊은 사진가). 빛나는 청춘을 포착하는 작업을 그에게 제안하자 “Cool!”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와 함께 캐스팅 디렉터, 스타일리스트 김예영, 그리고 담당 에디터까지 네 명의 공작원들은 수 많은 이메일(그리고 카톡 단체방)을 통해 주목할 만한 새로운 패션 스타를 물색했다. “벨라는 어떨까?” “이미 너무 뜨지 않았어? 우린 뜨기 직전의 스타들을 찾아야 해.” “카일리 제너는?” “지켜봐야지 뭐!”

맨 먼저 <보그> 레이더에 포착된 인물은 헤일리 볼드윈(Hailey Baldwin). 그린포인트에 자리한 피터의 스튜디오에 들어서는 헤일리를 보자 1년 전 파리 생제르맹데프레의 소니아 리키엘 매장에서 마주친 그녀가 떠올랐다. 무대에서 어색한 미소로 불안함을 감추던 신인 모델의 모습 말이다. 그러나 화사한 미소로 스태프들과 인사한 뒤 행어에 걸린 촬영 의상을 살피며 먼저 말을 건네는 그녀의 모습에서 여유로움이 느껴졌다. “흰색 코트는 너무 멋져요. 촬영 끝나고 발렌시아가 매장으로 당장 가야겠어요.” 지난 1년 6개월 사이, 여러 패션지 촬영과 런웨이 경험이 그녀를 성숙하게 만든 것 같다. 그녀에겐 할리우드 명문가 출신이라는 자신감도 엿보였다. 아빠는 <유주얼 서스펙트>로 유명한 스티븐 볼드윈(삼촌은 <겟어웨이>와 <워킹 걸>의 알렉 볼드윈!). 또 브라질 출신 어머니의 미모를 이어받아 주위의 권유에 의해 자연스럽게 모델로 데뷔했다. “사람들의 시선이 두렵기도 해요. 늘 조심해야 하고 모든 일을 하기에 앞서 스스로를 검열해야 하죠.” 스타의 2세로서 별 노력 없이 모델이 됐다는 주위 시선이 두려울 때가 있을 것이다. 다행히 더는 그런 비평에 스스로 움츠러들지 않는다. “제가 어떤 일을 하든 사람들은 맘대로 말할 거예요. 이제 그런 의견에 흔들릴 필요는 없죠.”

카메라 앞에서 뛰놀듯 포즈를 취하고 거울 앞에서 ‘셀피’를 찍는 일이 무엇보다 자연스러운 그녀에게 청춘이란 자신을 비추는 눈부신 조명 같았다.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패션계는 저를 좀더 빨리 성장하게 만들죠. 스스로 책임감을 가져야 하니까요.” 자신의 젊은 시절을 돌아보느냐고 질문하자 그녀는 잠시 생각에 빠진 듯 매력적인 입술을 모아 이렇게 대답했다. “하지만 지금 일생 최고의 순간을 보내고 있는걸요? 그것만으로도 충분해요.”

헤일리가 할리우드와 뉴욕을 오가며 패션의 달콤한 맛을 체득하며 모델로 거듭났다면, 해리 브랜트(Harry Brant)는 뼛속까지 패션 유전자를 몸에 지닌 채 태어났다. 그의 엄마는 90년대를 호령한 슈퍼모델 스테파니 세이모어, 그리고 아빠는 <인터뷰> 매거진의 발행인 겸 아트 컬렉터로 소문난 피터 브랜트다. 그런 부모 아래에서 대체 뭘 경험했을까? 유치원에서 돌아오면 나오미 캠벨이 거실에서 그를 반겼고, 아빠 사무실에 가면 스티븐 클라인이 악수를 건넸다. 또 아제딘 알라이아가 직접 만든 파스타를 먹고, 린다 에반젤리스타와 함께 휴가를 떠났다. 당연하게도 패션계는 고등학교 입학하기 전부터 그를 유혹했다. 소년은 별생각 없이 리무진을 타고 슈퍼모델들과 함께 파티장을 오갔고,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VIP석에 자리 잡았다. 그리고 <뉴욕 타임스> <베니티 페어> 등의 미국 매체는 재빨리 새로운 패션 황태자의 탄생을 알렸다.

누군가는 이들이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운 좋은 아이들이라고, 패션계가 이들을 선호하는 건 집안의 유명세 때문이라고 냉소적으로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보그〉가 직접 만난 그들은 스스로의 재능을 새로운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모든 게 핑크빛은 아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직 사춘기에서 채 벗어나지도 못한 그가 버릇없고 겉멋이 든 부잣집 아이라고 선입견을 가졌다. 하지만 모두 과거의 추측일 뿐, 실제로 만난 해리는 예상과 달리 정중하고 예의를 갖춘 청년이었다. 거만함 따윈 느낄 수 없었다. 오히려 어색해하는 스타일리스트에게 먼저 웃으며 이렇게 말을 건네왔다. “이번 이태리 <보그> 어떻게 생각해요? 마이젤 시절이 그립지 않아요?” 그는 잘못된 선입견을 깨려는 듯 말을 이었다. “저에 대해 사람들이 뭐라고 얘기하는지 알아요. 하지만 어릴 때 이야기예요. 물론 그런 소문을 빨리 떨쳐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지만요.” 누구보다 빨리 철이 든 열아홉 살짜리 소년은 이제 바드 컬리지에서 예술사를 공부하고있다. “물론 거품 속에서 자랐어요. 하지만 그 거품엔 패션과 예술이 가득했죠. 그 안에 머무는 동안 이미지와 예술에 대한 열정이 커졌습니다.” 키만큼 마음도 한 뼘 더 자란 소년은 2015년을 바쁘게 보냈다. 스티븐 마이젤이 촬영한 이태리 <보그> 화보에 등장하는가 하면, 발맹 남성복 컬렉션 모델로 섰고, 형과 함께한 맥 메이크업 협업도 발표했다. 패션계가 그를 놓지 않는 이유는 분명했다. 짧은 상체와 긴 다리, 짙은 눈매와 날렵한 콧날의 마스크는 영락없이 스테파니였다. 실제론 여리게 보이지만, 화면에서는 50년대 할리우드 스타를 떠올리게 할 만큼 진한 매력도 뿜어냈다.

해리가 패션계의 왕족이라면, 딜런 펜(Dylan Penn)은 할리우드를 둘러싼 고고한 대기권에서도 가장 높은 곳의 공기를 들이마시며 자라났다. 그녀의 성에서도 짐작되듯, 아빠는 그 존재만으로도 카리스마를 내뿜는 숀 펜, 엄마는 성숙한 여인의 멋을 풍기는 로빈 라이트. 우리가 LA 촬영을 위해 임시 작전 본부로 마련한 베니스 비치의 어느 소박한 주택에 그녀가 들어서자 부모의 카리스마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과묵한 성격에다 웬만해서는 미소를 보여주지 않는 조심스러운 성격의 소유자였다. 하지만 어린 시절 얘기가 나오자 표정이 달라졌다. “가장 아름다운 유년의 기억이라면, 일곱 살 때 아빠가 모는 차의 뒷좌석에 앉아 애리조나 사막 위로 지는 석양을 바라보던 순간이에요. 밤새 지직대는 라디오를 통해 밤새도록 라이오넬 리치의 음악이 흘렀고, 백미러에 매달린 채 흔들리는 솔방울 향으로 가득했죠.”

스물네 살의 딜런은 최근 모델 활동을 시작했다. 지난해에는 영화 <더 컨뎀드(The Condemned)>를 통해 배우로서 신고식을 마쳤다. 아직 여드름이 채 사라지지 않은 몇몇 2세들이 카메라 앞에 뛰어들 무렵, 그녀는 평범한 아이들처럼 학교에 다니고 피자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모델 일이나 연기에 관심을 갖지 않았어요.” 카메라 앞에서는 것보다 그 뒤에 서서 좋은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 되고 싶었던 것. “하지만 부모님 모두 제게 좋은 감독이 되고 싶다면 연기자 경험도 중요하다고 충고하셨죠.” 그녀의 열정은 좋은 각본을 쓰고 근사한 영화를 만드는 일로 표현된다. 하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발로 걷어찰 만큼 앞만 보고 달리진 않는다. 아름다운 청춘을 재료로 자기 입맛에 맞게 요리하는 방법을 깨우치는 중이다.

딜런의 촬영이 끝날 때쯤, 집 밖으로 커다란 자동차 엔진음이 들렸다. 차 안에서는 풍채 좋은 중년 남자와 앳된 소녀가 함께 내렸다.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얼굴을 알아차린 스태프들이 비명을 지르기도 전, 그 남자는 짧게 손을 흔들고 다시 차에 탄 뒤 조용히 떠났다. 그가 바로 <록키>와 <람보>의 영웅 실베스터 스탤론! 그리고 그를 말없이 배웅한 소녀는 그의 둘째 딸 시스틴 스탤론(Sistine Stallone)이다. 이제 갓 열일곱 살이 된 시스틴은 아빠의 혈통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첫눈에 아리따운 이태리 소녀를 떠올리게 했으니까. 만약 그 안에 또 다른 이미지가 겹친다면, 90년대에 건강한 이미지의 모델로 활동했던 엄마 제니퍼 플라빈의 흔적일 것이다.

엄격한 가톨릭 여학교를 다닌 시스틴의 성격은 우리가 생각하는 캘리포니아 소녀의 모습 그대로였다. 해변에서 발리볼을 즐기고 할리우드의 카페에서 친구들과 셀피를 찍는 게 마냥 즐거운 그런 소녀 말이다. 그녀가 슈퍼스타의 딸이라는 사실을 알아챌 수 있는 대목은 낯선 스태프로 가득한 현장에서도 기죽지 않는 대범함이 드러난 순간이었다. “제 꿈은 모델로서 성공하는 거예요.” 언젠가 미국 <보그> 표지 모델을 꿈꾸는 이 소녀는 주어진 환경에 만족할 줄 아는 겸손함마저 갖추고 있었다. “부모님이 유명한 것은 제게 행운이죠. 하지만 무엇보다 감사한 건 가정이 사랑으로 가득하다는 거죠. 저는 삶에 감사할 줄 알아요.” 이토록 아름답고 겸손한 그녀에게 또 어떤 성공 스토리가 펼쳐질는지.

특별한 가정환경은 때로 평범한 우리가 상상하지 못할 경험을 선사한다. 그런 경험의 산물이 바로 윌로우 스미스(Willow Smith)다. 윌 스미스와 제이다 핀켓 스미스의 딸인 그녀는 2000년에 태어났다. 2007년 아빠와 함께 출연한 영화 <나는 전설이 다>로 처음 대중 앞에 선 소녀는 금세 자신만의 길을 찾았다. 열 살에 ‘Whip My Hair’라는 노래를 발표했고, 곧이어 니키 미나즈와 함께 ‘Fireball’를 선보였다. 하지만 결코 또래를 대상으로 한 경쾌한 동요는 아니었다. <보그 코리아> 촬영 즈음 발표한 첫 앨범 ‘Ardipithecus’ 역시 마찬가지. “아르디피테쿠스 라미두스(Ardipithecus Ramidus)는 지구에서 발견된 첫 번째 인간의 뼈를 가리키는 과학적인 명칭이에요”. 그녀의 설명대로 앨범은 일반적인 팝보다 좀더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었고 모험적 시도로 가득했다. 열다섯 살짜리 소녀에게 바랄 만한 발랄한 팝 음악과는 거리가 멀었다.어쩌면 그녀가 남다른 작업을 선보일 수 있는 이유는 남들보다 한 템포 빠르게 흐른 유년기 때문일 것이다. 혹은 정식 교육 대신 ‘홈스쿨링’을 통해 또래와 다른 세상을 배웠기 때문일지 모른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지금 이 소녀가 누구와도 다른 매력으로 패션계(최근 모델 에이전시와 정식 계약했다)와 음악 팬 모두를 흥미롭게 하고 있음은 분명했다. “나는 시간을 천천히 혹은 빠르게 흘러가게 할 수 있다. 내가 원하는 대로 말이다. 그렇기에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다.” 어떤 소녀가 <뉴욕 타임스>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거침없이 남길 수 있겠나. 한국이라면 4차원 소녀라고 씹어대겠지만, 현재의 모든 논란은 그녀를 더욱 흥미로운 아이콘으로 만들 뿐이다.

성숙한 소녀(비록 자신은 여성도 남성도 아니라고 밝혔지만)는 자기주장도 강했다. 촬영장에 들어서자마자, 의견을 적극적으로 밝혔다. 모스키노 티셔츠를 꼭 입길 원했고, 루이 비통 카키색 드레스도 빼놓을 수 없었다. 새하얀 스웨터를 입고 난 뒤엔 앉아서 무릎을 모으면 어떠냐고 제안한 것도 윌로우였다. “촬영하는 걸 즐겨요. 저를 표현할 또 다른 방식이니까요.” 그러고 보니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것 자체가 그녀를 남다르게 하는 동력이었다. 윌로우가 또래 아이처럼 보이던 유일한 순간은? 함께 대동한 여덟 명의 스태프 속에 숨어 있을 때였다. 홍보 담당자, 에이전트, 보디가드 등 그녀가 태어날 때부터 함께 해온 게 분명한 이들은 때로는 부모처럼, 때론 친구처럼 소녀의 곁을 충직하게 지켰다.

“비가 오는 파리에서 플라자 아테네 호텔에 가요. 거기서 로마에서 온 파스타를 먹으며 아주 비싼 와인을 마시죠. 오네트 콜맨이 저만을 위해 재즈를 연주하고, F. 스콧 피츠제럴드가 제 옆에 앉아 젤다와 함께 한 근사한 사랑 얘기를 들려줘요. 그러면서 우리 둘은 함께 페디큐어를 받죠.” 캐롤라인 브릴랜드(Caroline Vreeland)가 촬영장에서 우리에게 자신이 꿈꾸는 세상을 들려줄 때쯤, 모두가 함께 비 오는 파리로 날아가는 환상에 빠졌다. 그녀의 얘기에 한창 귀 기울이던 중, 그녀가 증조할머니 다이애나 브릴랜드의 재능을 상속 받았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보그>의 전설적인 편집장이었던 ‘미스 브릴랜드’가 자신의 상상력을 잡지에 담았다면, 캐롤라인은 스스로 떠올린 얘기에 멜로디를 더하는 뮤지션이 됐다(촬영에 집중하다가도 틈만 나면 기타를 든 채 속삭이는 듯 근사한 자신의 음악을 들려줬다). 음악적 재능이 DNA 덕분인지, 자신만의 능력이라고 믿는지 슬쩍 묻자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저만의 영감을 얻는 거죠. 그림, 거친 생각, 섹스, 지독한 진실 등등.”

솔직함이 더없이 매력적인 이 뮤지션은 촬영장에서도 거침없었다. 거품 목욕하는 모습을 촬영하자는 스타일리스트의 제안에 “너무 재밌겠는데요!”라며 욕조에 뛰어들었고, 샤워기 앞에 서서 포즈를 취하는 여유도 잊지 않았다. 완성도 높은 이미지를 위해서라면 뭐든 마다하지 않던 할머니를 영락없이 쏙 빼닮은 모습 아닌가. 깡마른 모델들과 달리 여성스럽고 관능적인 몸매, 여기에 영롱한 눈빛을 지닌 그녀를 패션계가 주목하는 건 당연했다. 이런 솔직함과 기발한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그녀의 인스타그램 역시 인기다. 이렇듯 그녀는 자신의 삶을 공유하는 데 거리낌이 없다. “가장 깊숙한 제 생각과 마음을 공유하는 일이 좋아요. 꼭 해야 한다고 느끼죠. 어떤 것도 금지된 건 없어요. 사람들과 아주 깊이 연결된 느낌이 좋아요.”

캐롤라인이 음악을 통해 자신에게 주어진 재능을 표현한다면, 랭글리 폭스(Langley Fox)는 캔버스에 아이디어를 담는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증손녀 겸 여배우 마리엘 헤밍웨이의 딸, 그리고 모델 드리 헤밍웨이의 동생이라는 엄청난 배경을 지닌 그녀는 모델보다 아티스트로 불리길 원한다. “늘 아티스트가 되고 싶었어요. ‘어른이 된 뒤에도 ‘아티스트’라면 즐기며 살 수 있을 거란 생각에 두 번 다시 뒤돌아보지 않았죠.” 마크 제이콥스는 랭글리의 일러스트레이션을 매장에 전시했고, 루이 비통은 그녀에게 작업을 의뢰했다. 아직 밝힐 수는 없지만 유명 브랜드와 비밀 프로젝트도 준비 중이라고 귀띔했다. “모델 일도 즐거워요. 정말 흥미로운 경험이죠.” 이번 시즌 토즈와 아크네 스튜디오 등 도시별로 원하는 단 하나의 쇼에만 선 그녀가 가장 무서워하는 건? “사실 하이힐 신는 게 제일 두려워요. 런웨이에 서면 넘어지지 않을까 늘 걱정되니까요.”

우리는 이 유쾌한 아가씨와 베니스 해변으로 향했다. 행인들이 쳐다봐도 그녀는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틈만 나면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촬영 팀을 즐겁게 했다. 미국을 대표하는 대문호의 증손녀에게 기대하는 엄숙함과는 거리가 멀지 않나? 게다가 LA의 클럽을 오가는 파티 걸의 우울한 분위기도 없었다. “제가 가장 기분 좋을 때가 언제인지 알아요? 8시 30분쯤 잠자리에 드는 거예요. 그리고 아침 6시 30분에 일어나 건강한 아침 식사를 먹고 등산을 하는 거죠. 다시 스튜디오로 돌아와 작업하고, 제가 키우는 반려 동물들과 시간을 보내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 화려한 패션계의 조명이 그녀를 비춰도 전혀 변하지 않을 건강한 에너지가 그녀의 몸과 정신에 충만해 보였다. “화려한 삶을 원치 않아요. 평안하고 평범한 현재의 제 삶이 좋아요. 늘 행복하자, 라는 게 삶의 모토거든요.”

곧 패션계를 사로잡을 로열패밀리 후손의 마지막 인물은 뉴욕에서 발굴됐다. 주인공은 윌로우의 오빠인 제이든 스미스(Jaden Smith). 디자이너, 모델, 배우, 뮤지션 등 여러 타이틀을 지닌 그는 바즈 루어만이 제작하는 TV 시리즈 ‘The Get Down’을 위해 뉴욕에 머무르고 있었다. 스튜디오에 처음 등장할 때부터 그의 룩은 남달랐다. 티셔츠에 레깅스 팬츠, 그리고 미니스커트를 떠올리게 하는 앞치마를 입고 스튜디오에 들어선 것(직접 디자인하는 ‘MSFTS’의 아이템). 하긴 그가 치마를 즐겨 입는 건 인터넷에 떠다니는 수많은 사진이 증명한다. “전통적 성에 대한 관습을 따르지 않아요. 다른 여러 나라에서는 오히려 남자가 치마를 입는 게 전통인걸요. 그렇기에 모든 논란은 그저 논란에 불과해요.” 말수는 많지 않았지만 의견을 전할 땐 분명한 어조로 그가 설명했다.

열일곱 살이라는 나이 때문인지, 그는 어른들이 상상하지 못한 아이디어를 직접 실행하는 대범함마저 갖추고 있었다. 그가 꼽는 업적 중 하나는 자신만의 ‘어플’을 만든 것이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어플을 통해 데뷔 앨범도 발표했다. “저의 음악을 제 어플을 통해 선보이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지만, 분명 새로운 사고방식이었죠. 그 사실이 자랑스럽습니다.” 이런 실행력을 지탱하는 건 끝없는 호기심이다(촬영용으로 준비한 태권도복의 소재조차 궁금해했다). 그런 그가 현재 궁금해하는 건 세상 속 어지러운 현실이다. “집 없는 사람들, 먹을 게 부족한 사람들, 병으로 죽어가는 사람들, 전쟁에 시달리는 사람들…” 실행력이 빠른 청년답게 이런 궁금증은 곧 새로운 프로젝트로 이어질 예정이다. “폭력과 욕심이 줄어들게 만드는 새로운 사고방식을 음악을 통해 표현하고 싶습니다. 기분 좋은 사운드를 들려주고 싶어요.”

태권도복을 갖춰 입고 공중을 향해 발차기 날리는 제이든과 함께 한 한 달 간의 촬영이 끝났다. 그 사이에 8인의 청춘들에겐 끝없이 변화가 일어났다. 헤일리는 저스틴 비버와의 연애를 공식화하며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고, 제이든은 루이 비통의 여성복 광고에 치마를 입고 등장해 패션 젠더에 대한 논란을 가속화시켰다. 촬영 후 곧바로 발표된 윌로우의 새 앨범은 금세 수많은 호평과 혹평 사이를 오갔다. 또 랭글리는 어느 사진가와 함께한 작업을 전시한다고 전해왔다. 누군가는 이들이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운 좋은 아이들이라며 냉소적으로 말할지 모른다. 또 패션계가 이들을 선호하는 건 집안의 유명세 때문이라고 빈정댈 수 있다. 하지만 <보그>가 직접 만난 그들은 스스로의 재능을 새로운 방식으로 꾸준히 표현하고 있었다. 그것을 세상에 알리는 청춘들의 모습은 그래서 더 찬란하고 아름다웠다. 760만여 명의 팔로워가 이 청춘들을 지켜보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