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dealized Minds

섬뜩하거나 지루한 삶 속에서 고군분투의 고유한 가치를 일깨워주는 배우 손현주와 이준기. 우리 마음을 대변해온 두 남자의 심리 수사 게임이 시작된다.

정답을 위한 정답, 손현주

화이트 헨리넥 셔츠는 타임 옴므(Time Homme).

화이트 헨리넥 셔츠는 타임 옴므(Time Homme).

오늘처럼 비 오는 날은 무엇을 하며 보내나.
촬영 없는 날은 자전거를 타는데 비가 오네. 2000년부터 정식으로 라이딩을 한 것 같다. 그때는 군포 수리산부터 불곡산, 마니산, 무명산, 우면산, 청계산까지 오프로드를 갔는데 요즘은 자전거길을 따로 내지 않다 보니까 트레킹 하는 분들이 싫어하셔서 온로드 위주로 다닌다. 자전거 타면 아무 생각이 없어진다. 속도 맑아지고. 혼자 끌고 나가는 맛도 있고.

tvN 드라마 <크리미널마인드> 촬영이 한창이다. 어제는 어떤 장면을 찍었나.
논산 방면 봉일천 쪽에 옛 미군 시설이 있다. 시설 안에 들어가면 지하 벙커도 있고, 폐건물도 있는데 거기서 밤 신도 찍는다. 낮에 들어가도 빛이 안 들어오니까 상관없거든. 전날 오전 11시부터 준비해서 다음 날 오전 11시에 나왔다.(웃음)

사람과의 인연으로 작품을 선택하는 일이 잦다고 들었는데 이번 작품은 어땠나.
나는 미드보다는 한국 드라마와 한국 영화를 많이 보는 사람이다. 매니저 통해서 시즌 1의 첫 번째 에피소드만 봤는데 막연하게 한국에서 지능 범죄 수사대를 풀어내면 어떻게 될까, 우리나라도 <그놈 목소리>처럼 아직 못 푼 숙제가 있는데. 몰랐던 것에 대해서 알아가고 싶었다. 요즘은 네티즌들도 범인을 잡는다. 우리 드라마를 보면서 모두 수사관이 되면 좋겠다 싶기도 했다. 세상은 더 복잡하게 흘러갈 것이고 점점 더 답이 없이 흘러갈 수도 있다. 염색체가 다르니 미드하고는 다를 수밖에 없지 싶다. 대신 우리 감성으로 만들고 있다.

촬영 준비가 철저하기로 유명한데, 이번에는 프로파일러 역할이다. 전작에서 경찰서를 하도 자주 출입해서 ‘반전문가’일 것 같다.
형사도 심리를 다룬다. 드라마, 영화에서 경찰서에 살다 보니 아는 형사도 많다. 이들에게 모르는 것을 자꾸 물어보게 된다. 이를테면 유치장 들어갈 때 수갑을 채우느냐 마느냐 하는 것들. “형, 맞는 거야? 이런 건 어때?” 연락하면 답이 오고, 본인이 모르면 또 옆에 형들한테 물어봐준다. 만나서 대포 한잔 하기도 하고 그런다. 경조사 있으면 가고. 세월이 흘러서 정년퇴직한 분도 있고, 사이버 수사대로 옮긴 분도 있다. 이번에 또 많은 부분을 물어보게 될 거 같다.

세상 돌아가는 일에 촉각을 세우는 편인가.
요즘 세상은 너무 복잡다단하고 예상치 못한 일이 많이 생긴다. 이럴 때 연기자들은 어떻게 자기 자리를 잘 지켜야 하는가가 가장 큰 숙제라고 생각한다. 좋지 않은 일에 연루되더라도 빨리 일어나면 되는데 좌절하는 후배들을 볼 때면 안타깝다. 이때를 대비한 시스템이 전무한 상황 아닌가. 아이돌, 개그맨, 배우, 가수… 문화를 만드는 사람들만의 쉼터나 놀이터가 없다. 각자 찾아야 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홀로 개척한 놀이터가 있나.
취미는 자전거나 산이었고 장애 어린이 합창단 단장으로 있다. 연기를 하고 나서 쉴 수도 있지만 다른 쪽으로 도움을 주고받는 것을 만들어놨으면 좋겠다. 우리 때도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었지만 드라마에 어른들이 많았다. 선배들의 울타리가 안식처가 되어줬다. 그런데 요즘 드라마에는 어른들이 별로 안 나오니 그런 기회가 사라졌다. 해마다 젊은 배우들이 쏟아진다. 이는 곧 전에 있던 사람들이 도태됐단 얘기다. 이럴 때 얼마나 침착하게 대처할 수 있느냐, 기다릴 수 있느냐 그 싸움인데, 그런 면에서 후배들은 조급해질 수밖에 없다.

단막극에 대한 애정도 깊었던 걸로 안다.
단막극도 다 없어졌다. 뭐, 어떻게 하겠나. 방송 제작비가 없고 여건상 만들 수가 없다고 하는데. 재미있었는데 안타깝다. 인간 순애보가 없어도 드라마나 영화는 계속해서 흘러갈 것이다. 배우로서는 어른들이 많이 나오는 드라마가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다시 주말 드라마나 일일 드라마 쪽으로 가게 된다면, 좀더 잘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다. 선후배, 작가 선생님들과 회의를 많이 거쳐서 조금 더 재미나고 현실을 반영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 그런 드라마가 나오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다.

필모그래피에 방송이 44편, 영화가 19편 검색되더라. 연극하던 시절까지 합치면 100편도 넘는 작품에 출연했다. 주변에 물어보니, 어머니는 <솔약국집 아들들> <장밋빛 인생>의 친근한 모습으로, 한 선배는 <첫사랑>에서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그대’를 부르는 주정남으로, 한 후배는 스릴러 전문 배우로 당신을 설명한다. 관객에게 각기 다른 모습으로 기억되는 배우라는 점이 정말 특별하게 느껴졌다.
재미있게 했던 기억이 난다. 첫 스타트를 했던 <형> <첫사랑> <장밋빛 인생> <추적자 더 체이서>(이하 추적자)… 생각해보니까 참 오래 왔다. 때에 따라서 처가살이도 하고, 바람도 피웠다가, 따뜻한 가장이기도 했고 아내를 잃기도 했고, 딸도, 동료도 잃었다. 3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참 많은 일이 있었다.

화이트 커팅 스레드 스트라이프 장식의 셔츠는 디올 옴므(Dior Homme), 코튼 팬츠는 에르메스(Hermè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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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적자>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다. 스타 없이 작품으로만 얘기할 수 있는 드라마 분야를 개척했다.
대본이, 책이 좋았다. 박경수 작가와 조남국 감독과 배우들 모두 절실했다. 몇 차례 엎어져도 기다렸던 건 그거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죽기 살기로 했다. 어떤 사람들은 이해가 안 가는지 “얼마만큼 죽기 살기로 했습니까?”라고 하는데 그거밖에 없는데 어떻게 죽기 살기로 안 하나. 우리끼리는 정말 차돌처럼 굴러갔다. 한 장면을 위해 모두 돕고 기다렸다. 배우, 작가, 감독, 스태프 모두 형제처럼 지냈다. 앞으로 그런 작품이 또 나올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어쩌다 재방송으로 <추적자>를 보면 지금도 슬프다. 내가 보면서도 힘든데 시청자들은 이길 수 없는 상대와 싸움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억울한 일이 없는 세상이 돼야 할 텐데. 그렇지 않으면 희망이 없지 않나.

한 챕터가 끝난 것처럼 <추적자> 이후 필모그래피 색깔이 완전히 바뀐 것도 사실이다. <황금의 제국> <숨바꼭질> <쓰리 데이즈> <악의 연대기> <더 폰> <보통사람>까지 장르는 달라도 진한 냄새를 풍기는 작품이 이어졌다.
지금 대한민국이 영화나 드라마나 스릴러를 많이 만든다. 면면을 보면 제작비 대비 사람들의 선호도가 높다. 왜 맨날 스릴러만 나오지? 스릴러를 많이 본다! 아마 제작자도 되게 머리가 아플 것이다. 한정된 돈으로 얼마만큼 충격적인 걸 보여줄 수 있을까 고민하다 보면 스릴러인 것이다.

가성비가 좋은 장르인가 보다.
좋지 않다고 얘기할 순 없다. 로맨틱 코미디도 많지만 스릴러가 기억에 남아서 스릴러가 많이 나온다고 느끼는 것이다. 나에게도 “왜 스릴러만 좋아하세요?”라고 묻는데, 다른 것도 좋아한다. 그런데 자꾸 스릴러만 들어오니까 스릴러만 하는 거다. 사실 그냥 기자들이 하는 말들이다. <보통사람>은 스릴러가 아니었다. 드라마였다. 크게 반향을 많이 못 일으켜서 그런 거지. 지금도 어디로 가는지 모르지만 나는 항상 내일이 대단히 궁금하다. ‘어떤 기회가 올 것인가? 어떤 것이든 거기에 맞춰서 간다. 그 안에서 충실히 잘 놀아볼 것이다.’ 생각할 뿐이다.

연기하는 즐거움이 달라진 건 없나.
진정성에 대한 마음은 똑같다. 어떻게 끌고 나가서 어떻게 잘 끝낼 것인가,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스태프, 연기자와 어떻게 앙상블을 이뤄갈 것인가, 그런 고민을 할 뿐 다른 고민은 없다. 힘든 거야 당연한 거다. 쉽자고 이 일 하는 건 아니지 않나. 굳이 따지자면 연극은 좀 다르다. 메커니즘 차이인데 그래도 무대가 주는 건 드라마나 영화와 다르다. 쾌감과도 다르다. 두렵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가지 않으면 안 되는 길이다. 즐거움보다 두려움이 더 많은 곳이 무대다. 사실 그 두려움 때문에 수십 년 동안 무대에 못 섰다. 무대에 서는 선후배를 보면 연극하는 사람들만의 신념 같은게 있다. 오랜 시절을 버티고 있던 사람들한테 욕을 안 먹으려면 준비를 철저히 해서 가야지 그렇지 않으면 그것만큼 시건방진 게 없다. 그네들한테도 연극으로 설득을 하고 싶은 거다. 언젠가 자연스럽게 갈 것이다.

한 가지 일을 꾸준히 하는 사람에 대한 존경심이 큰 편인데, 오랫동안 배우로 활동하는 비결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다음에 또 어떤 설레는 일이 들어올까 생각한다. 이렇게 생각하는 나도 복 받은 거다. 배역 없는 사람들도 여전히 많은데. 대학로에 있는 배우들을 추천하곤 한다. 연기 잘하는 친구들에게 기회를 줘야 할 것 아닌가. 내가 주는 건 아니
고, 감독이 봐서 괜찮아야겠지.

배우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나.
때에 따라서 그 시대를 대변해줄 수 있는 사람. 그래서 상대방의 아픔을 대리로 치유해줄 수 있는 그런 사람. 못하는 일을 가능하게 해줄 수도 있는 사람. 답답함을 풀어줄 수 있는 사람이다. 영화를 볼 때 티켓만 사서 들어가진 않는다. 콜라도, 팝콘도 먹어야 할 텐데 그걸 충족시켜주려면 배우들은 끝도 없이 노력해야 한다.

내일은 더 나을 것이라고 믿는 편인가.
배우를 처음 할 때부터 ‘잘될 것이다’ ‘괜찮아질 거야’라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온 것 같다. 항상 스스로를 많이 혼냈다. 아직 배우로 활동하고 있지만 아무리 해도 쉬워지지 않는다. 왜 쉬워지지 않지? 그러니까 연기를 하는 거다. 답을 모르니까. 정답이 있었으면 연기라는 장르가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을까?

몇 달 전 실로 오랜만에 예능 <해피투게더 3>에서 인간 손현주를 봤다.
망신 많이 당하고 왔다.(웃음) 내가 개그맨들을 되게 좋아한다. 사람이 사람을 웃긴다는 건 대단한 일이다. 그만큼 웃길 때는 자기 에너지는 배가 빠진다. 연기하는 사람들보다 개그맨들을 더 많이 아는데 좋아해서 그렇다. 좋아하니까 말 한마디라도 더 해보고 싶고 그러다 보니까 아는 동생들이 많아졌다.

당신은 어떤 아버지인가.
친구 같은 아버지. 그래서 빨리 나의 마음을 충분히 알 수 있는 나이가 됐으면 하고 바란다. 둘째가 중학교 2학년인데 고등학교 졸업하고 군대 갔다 와서 나랑 산이나 놀러 다니고 그랬으면 좋겠다. 지금은 너무 여유가 없다.

마음대로 영화나 드라마를 만들 수 있다면 어떤 이야기를 담고 싶나.
그냥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동생들 다 시집 장가 보내고 엄마한테 얹혀살면서 당당하게 사는 노총각 있잖나. 명절에 동생들 오면 오히려 큰소리 치고. 한마디씩 거들다가 아버지한테 뒈지게 빗자루로 맞고 뛰쳐나가서 담배 한 대 피우고 오는. 좌충우돌, 사랑하는 이야기. 특별한 이야기보다 그냥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살아가는 이야기 소재는 무궁무진하다.

쓸모를 위한 쓸모, 이준기

스트라이프 패턴 셔츠는 에르메스(Hermès).

스트라이프 패턴 셔츠는 에르메스(Hermès).

원작 <크리미널마인드> 팬이었나.
팬까진 아닌데 오래전부터 재미있게 보던 드라마다. 원작 팬이 많은 드라마이기 때문에 이번에 기대감와 설렘으로 시작했지만 그만큼 부담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한국판 <크리미널마인드>는 재해석 개념으로 봐야 할 것 같다. 미드에서는 완벽히 수사에만 집중한다면 우리는 이보다 다각적인 면을 담고 있다. 자칫하면 넘칠 수도 있고, 조금 다르게 보일 수도 있어서 고민을 거듭하면서 찍고 있다.

프로파일러 김현준 역할을 맡았다. 인물 설명을 읽어봤지만 원작에 나오는 인물과 매치가 안 되더라.
원작에는 없는 캐릭터다. NCI이라는 특별수사팀의 일원인 다른 인물과 달리 현준은 프로파일러로 발전해나가는 친구다. 많은 작품에 나오는 성장하는 캐릭터인데, 시청자는 현준을 통해 전체 구성원들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크리미널마인드>에는 당신이 잘할 수 있는 연기가 모여 있는 느낌이다.
작품 할 때마다 “이 작품은 이준기가 잘하는 것들의 종합 세트다”라는 말을 듣는다.(웃음) 내가 뭔가를 다양하게 해오긴 했구나 한다.

존경하는 배우로 손현주를 꼽은 적이 있다. 첫 만남은 어땠나.
처음에 술 마실 때 뵈었다. “선배님이 이번 작품 하신다고 해서 저도 하기로 했습니다”라고 말씀드리니 “헛소리하지 말라”고 하시더라.(웃음) 그런데 진짜 이 작품을 하기로 결정한 이유 중 하나다. 나는 항상 배우들 간의 합이 기대되고 궁금하다. 그동안 연기적으로 많이 발전했다고 생각하는 작품이 대부분 선배님과 어떤 합이 있었을 때였다. 손현주 선배님은 항상 힘을 보태주겠다고 말씀해주신다. 신인 배우에게도 “네 식대로 해. 왜 주변 얘기를 들으면서 위축되고 쓸데없는 계산을 하느냐. 본인이 창조하는 캐릭터가 지구상에서 유일한 캐릭터다”라고 말씀해주신다. 후배를 믿어주시는 게 느껴진다. 물론 술자리도 자주 마련해주신다. 술자리 궁합이 잘 맞을 것 같다. 약주를 드시는 시간을 상당히 잘 쓰신다. ‘아유, 오늘 술이나 먹고 기분이나 풀자’가 아니라, 한잔하며 우리가 가져가야 할 방향에 관한 고민을 나눈다. 나 역시 술 마시며 그런 얘기하는 걸 너무 좋아해서.(웃음) 2차, 3차까지 가는 스타일 아니고 1차에서 딱 10시까지 마신다. 주종은 소주다. 빠른 소주. 며칠 전에도 회식했는데 둘이 먼저 취했다. 다른 친구들이 조금씩 마실 때 원샷 하고 그러니까 둘이 같이 정신 잃는 경우가 많다.(웃음)

원작의 경우 상황에 너무 몰입해 힘들어했던 배우가 하차하는 일도 있었다. 지금까지 심리적으로 어려운 부분은 없나.
돌이켜보면 <투윅스> 때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힘들었다. <개와 늑대의 시간> 때도 비슷했는데 상당히 예민해졌다. 현장에서 장난도 많이 치고 풀어지는 스타일인데 이들 작품은 그러기가 쉽지 않았다. 이번에는 혼자 끌고 가지 않으니까 덜할 것 같은데 내심 기대도 된다. 그런 연기를 하는 걸 되게 좋아한다. 그렇게 몰입할 때 진짜 연기를 하는 기분이 든다.(웃음) 그래서 힘든 작품을 많이 했던 것 같다.

고난과 역경 속에서 서민들의 어려움을 대변하는 역할에 굉장히 끌리는 것 같다.
배우들 대부분 좋아하는데 나는 유독 병적으로 더 좋아한다. 누군가의 히스토리로 시청자와 관객들이 희망을 얻을 때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배우가 직업이지만 내가 엄청난 예술적 기질을 타고나서 이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타고난 셀럽이나 아티스트는 아니란 얘기다. 하고 싶은 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노력해야 한다. 이에 따른 고난과 역경은 당연한 것이다. 어려움을 이겨냈을 때 또 한 단계 발전한다. 이런 생각이 나의 삶의 모토다. 지금까지 그렇게 해왔고 캐릭터에 이런 성향이 묻어나는 것 같기도 하다.

왜 타고난 재능이 없다고 생각하나.
타고난 배우라면 하루 이틀 고민하면 될 연기도 일주일에서 보름 이상 고민한다. 그렇게 해야만 대중을 만족시킬 수 있다. 그래서 항상 쉬지 않고 뭔가를 해야 한다.

노력한다는 범주 안에는 무엇이 포함되어 있나.
공부다. 거의 연기학처럼 하는 거다. 공부로 채워지면 어느 순간 몰입이 된다. 현장에서도 내 것만 신경 쓰는 게 아니라 하나부터 열까지 준비하는데, 그 이유는 현장을 놀이터로 만들어야 마음껏 연기를 펼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술적인 연기나 본능적인 연기와는 또 다른 얘기다.
나에겐 기술이 먼저다. 그러고 나서 우러나오는 연기가 되겠지. 그래서 항상 긴장하고 남들보다 두세 배 준비한다. 그런 연기가 먹힐 때 짜릿하다. 나도 되는구나.

액션 연기로 인정받은 건 신체적으로 타고난 거 아닌가.
그것도 꾸준히 준비해온 거다. 처음 배우를 해야겠다고 결심했을 때 가진 게 없어서 매일 뭔가를 배우러 다녔다. 그때부터 액션을 배웠고 이후에 빛을 본 것이다. 주변에서 천생 배우라고도 말하지만 나는 그렇게 느끼지 못한다. 여전히 작품에 들어가면 첫 촬영이 내 인생의 첫 번째 촬영인 것만 같다. 그동안 해온 시간이 있기 때문에 현장에 녹아드는 속도는 빠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날 잠 못 자고 스트레스 받는 건 똑같다. 아닌 척할 뿐이다.

평소 시청률, 기사, 시청자들의 온 · 오프라인 반응을 체크하는 것도 노력의 일환인가 보다.
선배들이 항상 말씀하신다. “그냥 네 것만 챙겨라. 너무 많은 고민을 안고 살지 마.” “안 할게요” 하면서도 방송이 시작되면 성적표 받아보면서 적당한 수준의 자책을 한다. 무엇을 더 만들어가야 도움이 될 수 있을까 고민한다. 노력도 즐기지 않으면 못할 테지만 다행히 나는 그런 생각 자체가 즐겁다. 오히려 인간 이준기로 돌아왔을 때 너무 심심하다. 그런 시간이 싫으니까 작품이 없는 자투리 시간에도 팬미팅을 하고, 앨범을 내고 여러 가지를 해본다. 어쩔 수 없이 생기는 공백을 인간 이준기로 사는 것보다 배우로서 감정적인 소스를 채울 수 있는 시간으로 만들고 싶은 것이다. 계속 뭔가를 창조해내고 싶고 거기서 자극을 받는다.

평소 어떤 책을 읽나.
대본밖에 안 읽는다. 어느 순간부터 아예 안 읽는다. 휴대폰으로 시사, 경제, 과학…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세상을 본다. 책보다 내가 필요한 정보나 감정을 빨리 보고 싶다.

재킷, 팬츠는 프라다(Prada), 화이트 니트 톱은 산드로 옴므(Sandro Homme).

재킷, 팬츠는 프라다(Prada), 화이트 니트 톱은 산드로 옴므(Sandro Homme).

데뷔 때부터 그랬나, 서서히 변한 건가.
천천히 변화했고 이제 정착됐다. 중간에는 이런 내 모습 때문에 힘들었지만 ‘나는 이게 맞구나’ 깨달았다. 혹자는 배우가 왜 그런 감정 소비를 하면서 사냐, 비워야 채울 수 있다, 인생을 즐기고 살라고 한다. 안다, 아는데 나는 이 방식인 거다. 언젠가는 지칠 수도 있고 달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대중에게 큰 사랑을 받기 시작한 시점부터 불안감을 느꼈다. 신드롬을 겪고 돌이켜보니 배우를 꿈꿨지 스타로 뜨고 질 목표로 온 건 아니었다. 많이 허무했다. 그때부터 나만의 행동 양식을 계속 만들었다. 처음에는 잃기 싫어서였다.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떤 책임감을 가지고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하는가. 대중이 나에게 준 믿음을 지키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고민했다. 시작은 유치했지만 고민에 답을 찾아가면서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을 많이 느꼈고 사람들과의 교류가 나 자신의 가치를 만들어간다는 걸 알게 됐고 자연스럽게 행동이 달라졌다.

장르물과 사극을 반복하는 듯 보였지만 어느덧 그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듯하다.
“판타지에 최적화되어 있다” “장르물에 최적화되어 있다” “고생길에 최적화되어 있다” 그런 말들이 좋다. 쓸모 있는 배우잖나. 팬들은 제발 편하게 연기하라고 한다. 피칠갑 그만하고 로맨스물에서 멋진 역할 맡으라고 한다. 세상에 편한 연기가 어디 있겠느냐마는, 수트도 입고 나오고 여자도 확 끌어안고.(웃음) 인터뷰도 항상 이준기의 로맨스물을 보고 싶다로 끝난다. 진짜 매년 고민하고 있다. 그런 작품을 못 만나는 게 나도 정말 개탄스럽다. 그런데 뭔가 발전적인 로맨스물이어야지 맞지 않는 로맨스를 해서 굳이 불편함을 줄 필요가 있을까 고민하다가 계속 기회를 놓쳤다. 생각보다 로맨스물도 많이 들어온다. 다행히 거절한 로맨스물 중에 <태양의 후예>나 <도깨비>는 없었다.(웃음)

어떤 선택이 모여서 지금의 결과를 낳은 것 같나.
자세히 보면 다 같은 사극이 아니다. 심지어 최근 두 작품은 다 판타지다. 당시에 들어온 시나리오 중에서 내가 그려보면 신선할 것 같은 작품을 한다. 사극 다음 작품이 사극이 되면 전 직원이 사무실에 모여 고민을 한다. “또 사극 하면 안 되는데.” “근데 이건 또 다르잖아.” <조선총잡이> 때는 “조선시대에 총잡이라니 얼마나 획기적인 기획이야.” <밤을 걷는 선비>는 “아니, 조선시대에 뱀파이어가 살았대. 얼마나 이게 획기적이야.” <달의 연인-보보경심 려>는 “아니, 고려로 다시 돌아간대, 여자가. 갔더니 꽃형제들이 난리야. 획기적이야.” 항상 그런다.(웃음) 장르물도 마찬가지고. <투윅스>는 “처음으로 아버지 역할인데? 이렇게 어린 나이에?” 했다.(웃음)

최근 <레지던트 이블: 파멸의 날>과 <시칠리아 햇빛아래>가 있었지만 할리우드 영화 특별 출연이나 중국 제작 영화다. 한국 영화 출연이 뜸한 이유는 무엇인가.
드라마에 공을 들이다 보니까 어느 순간부터 영화 쪽 관계자분들에게 나의 데이터베이스가 많지 않더라. 그렇지 않아도 내가 좋아하는 장르물을 스크린에서 표출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요새 직접 뛰어다니면서 관계자분들 만나서 의지가 있으니 찾아달라고 얘기한다. 역할의 대 · 중 · 소에 상관없이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작품에 도움이 된다면 무엇이든 하겠다고. 만들어가야 할 숙제이고 그래서 좀더 적극적으로 도전하려고 한다.

이준기 팬이 되는 과정에서 동일한 패턴을 발견했다. 처음에는 좋아하는 스타일의 배우는 아니라고 하다가 우연히 어떤 작품을 보고 ‘어? 이런 사람이었어?’ 하며 빠져들고 전작을 역주행하더라. ‘다시 보기’를 부르는 배우구나 싶었다.
사극 전문 배우라는 타이틀 때문 아닐까. 실제로 작품을 보면 다 다르다는 것을 느끼는 것 같다. <달의 연인-보보경심 려>을 보고 빠진 팬들은 대부분 어리다. 내가 누군지 몰랐던 친구들인데 “이준기가 뭐가 잘생겼어? 근데 여기서는 왜 잘생기게 나오지?” 이러면서.(웃음) 새로운 팬이 유입되고 다양한 분들이 좋아해주신다면 나야 좋다.

실제로 만나니 당신은 남자다운 성격이 강한데, 데뷔 초 예쁜 남자의 대명사로 떠올랐을 때 기분이 어땠나.
요샛말로 오글거렸다. 하지만 신인이 그런 큰 타이틀을 달았으니 ‘공길’에 많은 사람들이 빠질 수 있게 해야 했다. 당시 감독님이 절대 내 모습이 나오면 안 된다는 지시도 했다. 많은 것을 절제해야 했고 결과적으로 1~2년은 그 이미지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뭘 해도 받아들여지지도 않고 ‘공길’에 덧씌워지니까 힘들었다. 7년 정도 지나서야 배우로 봐주는 인식이 생겼다. 남자 배우의 중성적인 느낌은 작품의 효과가 떨어지면 비호감이 되지 않나. 배우로서 영역도 좁아지고. 그런 것 때문에 고민이 많았다. 큰 축복이었지만 큰 과제이기도 했던 셈이다. 그래서 액션 장르에서 남성적인 면을 보여주는 데 집중했던 것 같다.

그 시간이 쌓여서 커리어에 큰 도움이 된 셈이다. 그나저나 온몸에 액션 연기의 흔적 같은 상처가 보인다.
배우가 직접 액션을 하는 게 마냥 좋은 건 아니다. 대역을 쓰는 이유가 부상이 따를 수 있는 장면이기 때문인데 그걸 직접 하니 당연히 부상이 따르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접 연기했을 때 감정선에 도움이 되었기에 했던거다. 하지만 요즘 몸에 탄력이나 유연성이 조금씩 떨어지는 게 느껴진다. 예전에는 밤새도록 발 차기를 해도 끝도 없었는데 지금은 2시간 정도 찍으면 근육이 끊어지고 그런다. 무술팀 분들이랑 친한데 오랜만에 보면 “준기도 이제 늙는구나. 그냥 버스트만 가라” 그럴 때 서글프다. “내가 왜 버스트만 가! 미쳤어. 그런 얘기 하지 마!” 소리 지르고 있지만.

여전히 더 잘하고 싶은 건 연기뿐인 것 같다.
그것밖에 할 줄 아는게 없다. 진짜 무능하다. 가족들도 “네가 연기 생활 하는 데 충실하고 대중들에게 밉보이지 않게 해라”라고 그런다.

평생 연기 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업그레이드하면 되지 않을까.
맞다. 궁극적 목표는 쓰임새가 있는 배우이다. 활용도도 높고, 쓸모있는 배우. 할리우드 가는 것도 좋지만 그것도 쓸모가 있어야 한다.(웃음)

손현주가 입은 미니멀한 그레이 수트는 타임 옴므(Time Homme), 코튼 셔츠는 코스(Cos), 크루넥 스웨터는 지 제냐(Z Zegna), 레이스업 슈즈는 휴고 보스(Hugo Boss). 이준기가 입은 더블 브레스티드 재킷은 맨온더분(Man On The Boon), 블랙 니트 톱은 우영미(Wooyoungmi), 팬츠는 포츠 1961(Ports 1961), 슈즈는 쥬세페 자노티(Giuseppe Zanotti).

손현주가 입은 미니멀한 그레이 수트는 타임 옴므(Time Homme), 코튼 셔츠는 코스(Cos), 크루넥 스웨터는 지 제냐(Z Zegna), 레이스업 슈즈는 휴고 보스(Hugo Boss). 이준기가 입은 더블 브레스티드 재킷은 맨온더분(Man On The Boon), 블랙 니트 톱은 우영미(Wooyoungmi), 팬츠는 포츠 1961(Ports 1961), 슈즈는 쥬세페 자노티(Giuseppe Zanott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