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

젤라토의 계절

2023.02.20

by VOGUE

    젤라토의 계절

     10.10 젤라토

    오드리 헵번, 그리고 그레고리 펙은 여전히 영화 속 세기의 연인으로 남아 있다. 윌리엄 와일러 감독의 1953년작 로맨틱 코미디 영화 <로마의 휴일> 덕분이다. 영화가 뿜는 매력과 재미는 도통 낡지 않는다. 낡기는커녕, 세월을 뛰어넘어 로맨틱 코미디의 대명사로 끝없이 회자된다. 담을 뛰어넘어 시내로 나온 공주님, 그리고 야심을 숨기고 접근했다가 취재 대상인 공주에 반해 특종을 포기한 멋쟁이 기자를 영원한 캐릭터로 승화시킨 헵번과 펙, 두 배우의 공이다. 연인은 로마 여기저기를 쏘다닌다. 산책은 가장 고전적인 연애의 과정이다. 둘이 한 길을 걷는다. 걷는 동안 풍경을 공유한다. 그러다 마음이 포개지는 데에 이른다. 잠깐 발걸음을 멈춘 사이가 마음이 도약하는 때다. “어디 가서 차나 한잔”은 종작없는 소리가 아니다. 한쪽의 마음이 두 사람 마음의 그 다음을 엿보는 순간이다. 바로 이 순간, <로마의 휴일>의 연인은 차 한잔을 길가에서 만난 젤라토로 대신한다.

     

    젤라토. 초콜릿과 함께 과자 동아리의 마침표를 이루는 과자다. 어떤 재료에서 출발하든 어는점 아래서 완성되므로, 한국어로 표현하면 “빙과(氷菓)”에 든다. 알프스 만년설을 이용한 빙과의 역사를 일찍이 출발시킨 로마제국의 후예답게, 이탈리아 사람들은 유지방 및 우유, 그 밖의 재료를 섞어 얼린 빙과를 일찌감치 궤도에 올렸다. 16세기를 지나면서는 설탕을 본격적으로 활용하게 되었고 19세기에는 젤라토라는 빙과를 확립한다.

    젤라토는 미국으로 건너가서는 미국식 냉동기술과 대량 생산에 기댄 아이스크림으로 변한다. 아이스크림, 곧 크림(유지방)처럼 부드러운 얼음과자라는 뜻일 테다. 미국은 기술과 대량생산에 바탕해 젤라토라는 말을 밀어내고, 젤라토 특유의 질감과는 다른 질감으로 빙과의 세계를 순식간에 석권한다. 여기서 이탈리아 사람들이 살짝 삐진다.

    이탈리아 사람들이 보기에, 아이스크림의 원조는 이탈리아 제과사가 탄생시킨 젤라토이다. 유지방과 설탕을 핵심 재료로 하고, 어는점 아래 적정 온도에서 완성한, 사람의 상온 감각을 거슬러 먹는 재미, 이 끝에서 목구멍을 넘기기까지 독특한 촉감을 느끼는 재미, 씹기만이 아니라 핥아 녹이기라는 놀이의 요소까지 극대화한 빙과의 정점에 젤라토가 자리한다는 것이다.

    만들고 내놓는 데에도 차이가 존재한다. 이탈리아 젤라토는 유지방 함량이 아이스크림에 견주어 적다. 공기 함유량도 상대적으로 적어서 아이스크림보다 재료의 밀도가 높다. 수분이 더 적기도 하다. 그러니 너무 낮은 온도에서 보관하고 내놓으면 돌덩어리가 되게 마련이다. 그래서 젤라토는 막 먹는 사람에게 나오기 전에 영하 13도쯤에서 보관한다. 제품에 따라 영하 30도로 보관하기도 하는 아이스크림에 견주어 확실히 어는점이 높다. 그러니 먹을 때 보다 부드러우면서 덜 차갑다. 덜 찬 만큼 유지방의 풍미, 부재료로 쓰는 과일이나 향신료의 풍미가 훨씬 풍부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젤라토의 스펙트럼도 대단하고 19세기 이래 세계 빙과사를 바꾸어 놓은 아이스크림의 스펙트럼도 대단하다. 유지방을 미량만 쓰는 빙과 셔벗, 유지방을 전혀 쓰지 않는 빙과 소르베를 떠올리면, 젤라토는 젤라토대로, 아이스크림은 아이스크림대로 제 정체와 개성을 가꾸어 가고 있다.

    젤라토 제과사, 젤라토 장인의 자랑은 오늘 조금 다른 데를 향한다. 유지방, 수분, 설탕, 다른 부재료 사이에서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 그 과정을 상상하게 하는 대표적인 빙과가 젤라토라는 것이다. 유지방, 우유, 설탕을 핵심으로 하되 수많은 과일과 향신료가 방점을 찍는다. 미량의 향신료라도 물성을 단박에 바꾸어 놓기 때문에 제과사는 숙련으로 몸에 아로새긴 임기응변을 해 내야 한다. 대량 생산 아이스크림이 기계 기술과 현대의 첨가물에 기댄 포뮬러로 안정적인 물성을 구현한다면, 아티장을 내걸 수 있는 장인의 젤라토는 제과사의 손맛이 깃든 동세가 생생한 물성, 속성을 구현한다.

    이를 제대로 맛볼 때가 이 계절이다. 한여름에 허겁지겁 넘기던 때와는 또 다른 매력이 있다. 바로 녹아 흘러내리지 않는 영하 13도에서 막 나온 젤라토는 마지막 한 입까지 풀어지지 않고 제 몸을 유지한다. 이때 “젤라토는 쫀득하다”로 요약되는 물성만이 젤라토의 전부일 수 없다. 쫀득거림 이전의 부드러움, 이물감 없이 풀리는 유지방과 방점을 찍어주는 다른 부재료의 공존, 향이 풍기자마자 이 끝, 혀 끝, 목구멍을 간질이는 촉감들을 함께 감각해 볼 만하다. 무엇보다, 즐거운 탐구자가 될 것을 권한다. 베리에서 견과, 시럽에서 초콜릿에 이르는 다양한 부재료가 어떻게 유지방과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지 상상하면서 한입 물 때, 비로소 젤라토의 참맛이 느껴질 테다. 젤라토를 맛나게 음미할 수 있을 테다.

      고영(음식 문헌학자)
      에디터
      김나랑
      포토그래퍼
      Courtesy Phot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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