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ing Modern : MoMA in Pa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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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ing Modern : MoMA in Paris

2017-11-06T11:13:52+00:00 2017.11.01|

‘현대적(modern)’ 정신이란 무엇일까 ? 뉴욕 현대미술관(MoMA)의 초대 관장 알프레드 바르(Alfred H. Barr, Jr.)는 ‘모던’을 ‘진보적인 것, 독창적인 것, 어려운 것, 확실한 가치 이상의 것’이라고 정의했다. 루이뷔통 재단 미술관에서 개최된 모마 소장품 기획전 < 비잉 모던 : 모마 인 파리 (Being Modern: MoMA in Paris) >는 근 한 세기 동안 현대예술의 현재와 미래를 주도해 온 모마의 정신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모마의 관장 글렌 로리, 루이비통 재단 미술관의 아트 디렉터이자 큐레이터인 수잔 파제를 비롯한 두 기관의 큐레이터들의 협업을 통해 완성된 이번 전시에서는 모마의 탄생부터 오늘날 현대예술의 지표로 거듭나기까지의 역사를 수놓은 모던 아트 작품들과 대중적으로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현대예술의 흐름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컨템퍼러리 아트 작품까지, 약 200여 점의 모마 소장 작품을 만나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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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크 게리의 건축물 4개 층 전관, 총 11개의 갤러리에서 펼쳐진 전시는 20세기 초부터 21세기에 이르는 작품들을 대부분 연대순으로 묶어냈다. 하지만 작품들을 연대순으로 배열했다고 해서 고루하고 단조로운 ‘박물관 식’ 디스플레이를 상상했다면 큰 오산이다. 모마의 탄생기를 장식한 작품들을 모아 전시한 첫 번째 전시관에 들어서자 대표적인 유럽 모던 아티스트들의 작품, 세잔의 <목욕하는 사람>과 피카소의 <스튜디오>가 가장 먼저 시선을 끈다. 두 그림을 중심으로 왼편에는 대공황으로 침체된 30년대 미국을 기록한 워커 에반스의 사회주의 리얼리즘 사진들과 영화계 내 인종차별을 풍자한 흑백영화가 영사되고 있고, 그 오른쪽에는 추상 조각의 개척자인 콘스탄틴 브랑쿠시의 윤이 나는 구리 조각 <공간 속의 새>가 비슷한 금속 소재로 만들어진 스웨덴 산업디자인 오브제들과 마주 보고 있다. 실제로 뉴욕 세관으로부터 몰래 들여온 산업 부품으로 오인당하여 2년간의 소송을 치르게 된 작품인 <공간 속의 새>를 실제 산업 부품과 나란히 전시한 것이 재미있다.

수잔 파제는 뉴욕 모마의 확장 및 보수 작업 기간 동안 루이비통 재단에서 열린 이번 전시는 일종의 모마의 ‘매니페스토’와 같은 전시라고 언급한 바 있다. 공예와 순수미술, 일상 생활과 예술의 경계를 허물고자 했던 20년대 유럽 아방가르드 운동의 정신을 이어받은 초대 관장 알프레드 바르는 대부분의 모던 아트 미술관들이 유럽의 회화와 조각만을 취급하던 30년대 초부터 일명 ‘기계 예술’이라 불리며 열등한 예술로 치부되었던 사진과 영화를 미술관에 들여왔고, 더불어 여타 순수 미술 분야와 동등한 예술적 가치를 지닌 창작 분야로 평가했던 산업 디자인 오브제와 건축물 등을 모은 기획전을 선보이기도 했었다. 전시의 첫 번째 방에서 볼 수 있는 모마 초기 컬렉션의 분야적 다양성은 예술에 대한 새로운 접근방식을 도모했던 모마의 국제적이고 다학제적인(pluridisciplinary) 설립 원칙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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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인상주의에 이어 등장한 큐비즘(피카소), 신인상주의(폴 시냐크의 <펠릭스 페네온의 초상화>), 미래주의 회화(움베르토 보치오니의 <심리상태>연작), 그리고 20-30년대 또 한 번 현대예술의 지형도를 바꾼 다다 (프란시스 피카비아, <M’Amenez-y>), 초현실주의 (살바도르 달리의 <기억의 지속>; 르네 마그리트의 <잘못된 거울>), 추상주의 (몬드리안, <하양, 검정 그리고 빨강의 구성>; 말레비치, <절대주의 구성: 흰색 위의 흰색>) 작품들을 한데 모은 전시의 두 번째 방에서는 기존의 예술사조에서 탈피해 끈임없이 ‘새로움’을 추구했던 유럽 근대예술의 역동적인 동태를 읽어낼 수 있다.

지난 루이비통 재단 미술관에서 선보인 모던 아트 기획전<열정의 열쇠 (2015)>, <현대미술의 아이콘, 시츄킨 컬렉션 (2016)>과 비교했을 때 <모마 인 파리>는 보다 심층적이고 다각적인 시선으로 모더니티의 역사를 되짚어 볼 기회를 제공하기도 하지만, 이번 전시를 유독 돋보이게 하는 것은 두말할 것 없이 파격적인 큐레이팅일 것이다. 두 번째 전시관에 볼 수 있는 마르셀 뒤샹의 레디 메이드 작품 <자전거 바퀴>를 중심으로 왼쪽에는 월트 디즈니의 영화를 오른쪽에는 에이젠슈타인의 <전함 포템킨>과 영사한 공간배치는 특히나 흥미로운 미학적 충돌을 만들어 낸다.

전시의 두 번째 방 정 중앙에 놓인 막스 베크만의 <출발>, 살육의 현장을 담은 두 폭의 그림과 배를 타고 어디론가 향하는 무리들의 모습을 담은 밝은 느낌의 그림이 한 쌍을 이루는 이 삼면화는 유럽예술이 고난기로 들어선 20세기 초의 역사, 그리고 그것과 긴밀하게 닿아있는 모마의 역사를 상징적으로 들려주는 듯하다. 1차 세계대전 이후 폭발적으로 발전한 현대예술은 1930년 초부터 중유럽을 중심으로 퍼져나간 파시스트 정권에 의해 박해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당시 수많은 모던 아트 작품들이 해외로 팔려나갔고 정부의 억압에 고통받던 예술가들도 자유를 찾아 북미로 이주하게 되는데, 베크만의 작품을 비롯해 두 번째 갤러리에 전시된 앙리 마티스의 <금붕어와 팔레트>, 에른스트 루트비히 키르히너의 <거리, 베를린> 등 은 바로 이 격동의 시대에 ‘퇴폐예술’로 낙인찍혀 자국의 미술관에서 내몰린 후 모마의 컬렉션으로 들어오게 된 작품들이다. 이렇듯 유럽에 전체주의 확산되고 2차 세계대전 벌어지던 시절, 모마는 현대예술의 피난처가 되었고, 이는 미술관의 훗날을 결정짓는 중요한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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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거장들의 작품들을 지나 도착한 세 번째 방은 예술적 모더니티의 새로운 지평을 연 미국 추상표현주의 페인팅들이 장식했다. 전쟁을 피해 미국으로 망명한 유럽 현대예술 작품과 아티스트들이 현대예술의 중력이 미대륙 쪽으로 기울어지는 단초를 제공했다면, 추상표현주의 작가들의 출현은 미국 현대예술이 결국 유럽을 추월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형태와 배경의 관계에 주목했던 유럽회화의 전통의 전복을 시도한 윌렘 데 쿠닝과 잭슨 폴락의 작품, 그리고 유럽미술의 중심개념인 ‘미’에서 탈피해 ‘숭고’를 갈망했던 바넷 뉴먼과 마크 로스코의 컬러 필드 페인팅은 강렬한 색채와 선이 만들어내는 고유한 질감과 율동으로 관객들을 빨아들인다. 미국  추상표현주의하면 모마를 먼저 떠올리는 사람들도 적지 않겠지만, 실제로 뉴욕 현대미술관 모마는1940년대 초 뉴욕을 중심으로 활동한 이 젊은 아티스트들의 작품들에 정작 뜻들 미지근한 반응을 보였던 기관 중 하나였다. 하지만 일찍이 유럽의 모던 아트를 미국의 청년들에게 소개했던 모마가 미국식 모더니즘이 싹을 틔울수 있는 토양을 다지는 데 미친 지대한 영향력만큼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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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듯 다른 기하학적 무늬들이 악보처럼 펼쳐지는 솔 르윗의 <벽화 #260>으로 문을 연 네 번째 갤러리에서는 반복의 연재를 통해 환영 주의라는 서양예술의 요체를 더욱 철저히 해체하려 했던 미국 미니멀리즘 작품들과 팝 아트 작품들을 만나 볼 수 있다. 모두 같은 규격의 콘크리트 타일을 정사각형으로 정렬해 놓은 듯 보이는 칼 안드레의 조각 <144개의 납 정사각형>, 질서와 우연, 이미 만들어진 것과 창작이라는 언뜻 상반된 원칙들을 결합한 엘스워스 켈리의 페인팅, <큰 벽을 위한 색상들>, « 당신이 보는 것은 당신이 보는 것이다. What you see is what you see. »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 프랭크 스텔라의 미니멀 페인팅 <이성과 천박함의 결혼, II>, 이와 더불어 20년대 유럽 미니멀리즘의 선구자 바우하우스와 30년대 미국으로 망영한 건축가 미스 반 데어 로에의 영향으로 받아 완성된 미국의 ‘인터네셔널 스타일’ 건축 모형까지 자로 잰 듯 네모반듯한 작품들이 나란히 전시되어 있다. 60년대 미국 미니멀리즘은 마침내 미국의 모더니즘과 유럽의 모더니즘 (특히 20년대 미니멀리즘)을 융화한 예술동향으로 평가되지만, 솔 르윗과 비롯한 몇몇 미니멀리즘에서 출발해 개념예술이라는 새로운 예술언어를 제시한 작가들의 행보는 오히려 미니멀리즘이 뿌리를 내린 모더니즘의 종식을 예고했다고 보는 편이 맞을 것이다.

 

전시의 네 번째 방의 다른 반 쪽은 개념예술보다는 훨씬 더 전면적으로 모더니즘의 와해를 시도했던 또 다른 예술사조, 우리에게도 친숙한 이름인 팝 아트 작품들이 채웠다.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익사하는 여자>와 이번 전시를 통해 처음으로 파리 관람객들을 찾은 앤디 워홀의 <캠벨 수프 캔>을 비롯한 누구나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아이코닉한 팝 아트 작품이 전시관 양쪽 측면에 걸려 있고, 전면에는 워홀의 전매특허인 실크스크린 기법으로 제작한 판화 <더블 엘비스>와 다섯 개의 <스크린 테스트>가 영사되고 있다. 고도의 자본주의 사회가 쏟아내는 대량생산 상품들과 이미지들을 예술의 소재이자 원칙으로 삼았던 앤디 워홀의 작품들이 자아내는 가벼움 내지는 공허는 여전히 질타의 대상이 되곤 하지만, 말없이 카메라 (관객들을) 응시하는 마르셀 뒤샹, 밥 딜런, 살바도르 달리, 수잔 손택, 제니 홀저의 클로즈 업 된 얼굴들을 보고 있자면 오히려 ‘기계’가 되지 못한 한 인간의 멜랑콜리한 시선이 느껴지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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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마 컬렉션의 주요 소장품들을 통해 20세기 모더니티의 연대기를 그려나가는 지하 일 층과 지상층의 전시장을 지나 2층에 들어서자 혼돈의 풍경이 시야로 들어온다.  제네럴 아이디어의 <에이즈 벽지>로 뒤덮인 여섯 번째 전시관의 입구에는 풀어헤친 단발머리에 편안한 트레이닝복을 입고 <트리오 A>를 공연하고 있는 젊은 이본느 라이너의 모습이 보인다. 기존 모던 댄스의 극적이고 서술적인 요소를 완전히 벗겨내고 일상적인 움직임만으로 구성해 낸 그녀의 즉흥적인 안무는 무용예술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

소위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라 불리는 60년대 이후, 현대예술은 시대를 관통하는 특정한 형식이나 핵심개념을 구축하기보다는 다원적인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각각 <행동하는 예술Art in Action>, <이미지와 아이덴티티Images and Identities>라는 제목 아래 전개된 여섯 번째, 그리고 일곱 번째 갤러리에서는 ‘예술’이 그동안 드높게 쌓아 올린 현실과의 장벽을 붕괴하고자 했던 실천적이고 반체제적인 작업들이 소개되었다. 평상복을 화이트 큐브에 무심하게 걸어놓은 요세프 보이스의 <펠트 양복>, 흰색 화면만을 담고있는 필름에 낀 먼지들과 영사기가 돌아가는 소리들을 ‘작품’으로 내건 백남준의 설치 작업 <필름을 위한 선>은 훗날 기념비가 될 미술작품이 아닌 일시적이고 유약하며 비물질적인 예술을 지향했던 60년대 예술운동들의 급진적인 태도를 대변한다.

‘신체’과 ‘카메라’의 존재가 유독 도드라지는 일곱 번째 갤러리는 젠더와 인종과 같은 정체성의 권력을 전복시키고자 했던 70-80년대 미국 아티스트들의 작품들이 주를 이룬다. ‘로베르타 브라이트모어’라는 가상의 자아로 4년간 살아간 린 허쉬만 리슨의 엽기적인 퍼포먼스를 기록한 자료들, 사진 이미지와 텍스트의 대립적인 편집을 통해 강렬한 메세지를 던지는 바바라 크루거의 <무제>, 전통적인 서양 회화 코드를 이용해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일상을 그려낸 제프 월의 라이트 박스 설치 사진 등, 주제적으로나 양식적으로나 이질적인 이 작품들은 당대의 작가들이 얼마나 다양한 예술적 작업을 통해 정체성이라는 규범 권력에 저항해 왔는지를 보여준다. 2층의 마지막 갤러리는 신디 셔먼의 셀프 포트레이트 연작 <무제, 필름 스틸>,정형화된 여성상을 재현한70장의 사진으로 가득 채워졌다. 차별적인 구조를 인식하고 폭로하는 것을 넘어 새로운 예술의 문법을 제시한 셔먼의 작품의 가히 급진적이다.

70년대 후반을 시작으로 모마는 자 기관을 비롯한 ‘현대미술관’이라는 백인남성들의 성채에서 오랜 세월 배제됐던 여성 아티스트들과 아프리카계 미국 작가들, 그리고 비서구권 작가들에게 더 많은 자리를 내주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 왔다. 이러한 기관의 노력은 전시의 후반부에 다다를수록 좀 더 분명하게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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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비통 재단 미술관 3층에 갤러리 9와 갤러리 11에서는 모마가 최근 2년간 수집한 전 세계의 현대미술 작품들이 펼쳐진다. 이집트의 이만 이사, 터키의 아슬리 차부숄루, 아직은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들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는가 하면 예술의 형식과 기술과 정체성을 둘러싼 동시대의 이슈를 반영한 페인팅(마크 브래드포드, 리크리트 티라바니자), 조각(트리샤 도넬리, 카메론 롤란드)과 사진(라토야 루비 프래지어) 작품들도 눈에 띈다. 전시장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신문 가판대는 실제 브루클린의 지하철역에서 10개월간 수백 개의 팬진을 자체 발행하고 176개의 모바일용 이모티콘 세트를 선보이기도 한 공동체 지향적인 프로젝트, 레레 사베리의 <더 뉴스 스탠드(The Newsstand)>를 재구성한 것이다.

3층의 위치한 갤러리 중 세 개의 전시관은 각각 세 명의 동시대 작가들에게 헌정되었다. 예술과 세계의 새로운 관계성을 모색하는 로만 온다크의 <우주 측정하기>의 명상적인 작품을 지나 이안 챙의 자동 컴퓨터 프로그램을 통해 무한으로 이야기를 창조해내는 비디오 설치작업을 맞닥뜨리게 되는 경험은 꽤나 생경하다.

마지막 갤러리에 다다르자 흡사 성가처럼 들리는 합창 소리가 들려온다. 방 안에 들어서자 40개의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40개의 각기 다른 목소리가 만들어 내는 화음으로 가득 찬 원형의 공간과 가만히 눈을 감고 서있는 관객들, 혹은 스피커를 따라 천천히 소리의 숲을 거니는 관객들이 눈에 들어온다. 프랭크 게리의 건축에 영감을 받아 제작한 자넷 카디프의 <40파트의 모테토>는 서로 다른 40명의 성악가를 목소리를 담은 40개의 스피커로 구성된 음향 설치 작품으로 개념적으로 지극히 단순한 작품이라 할 수 있지만 실제로 소리가 만들어내는 이 입체적인 조각품 내지는 건축물과 조우하는 관객의 경험은 ‘개념’을 넘어서는 무언가이다. <모마 인 파리> 전시는 마무리하는 카디프의 작품은 전시의 초반에 만나볼 수 있었던 인간적인 모든 것과의 단절을 예고했던 근대미술 작품들과 묘한 메아리를 이루며 다시금 ‘숭고’로의 회귀를 알려오는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