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비라는 음악, 패션, 차세대 움직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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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비라는 음악, 패션, 차세대 움직임

2019-04-10T17:54:29+09:00 2019.04.02|

턴이 들어간 쿠반 셔츠는 프레드 페리(Fred Perry at Platform), 간치니 로고 벨트는 살바토레 페라가모(Salvatore Ferragamo), 데님 팬츠는 리바이스(Leviʼs), 검정 로퍼는 닥터마틴(Dr. Martens), 십자가 모양 실버 팔찌와 십자가 모양을 양각으로 새긴 팔찌는 트렌카디즘(Trencadism).

라비는 뚜렷한 주관을 현실화하는 아티스트 같아요. 팬이 아닌 대중에게 잘 드 러나지 않아 안타까워요. 특히 패션을 얘기하고 싶어요. 이번 앨범 의 이미지 컨셉도 직접 잡았더군요. 나를 가장 잘 표현하는, 주체적인 키워드는 뭘까. 패션이더라고요. 기분에 따라, 가는 장소에 따라 입는 옷이 다르잖아요. 패션은 나를 다양하게 투영하는 예술적 표현 아이템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기에 앨범으로 선보이고 싶었어요. 처음엔 라비의 ‘Closet’으로 할까, ‘Magazine’은 어떨까 고민했는데 룩북을 선택했어요. 시각적으로 더 감각적이고 다채롭게 표현할 것 같았거든요. 룩북의 L을 R로 바꾸고 ‘.’을 찍어 ‘라비의 룩북’이란 의미를 담았죠.

패션에 관심이 많은데, 가장 인상적인 사건이나 컬렉션, 디자이너를 꼽는다면요? 특정 브랜드의 쇼나 모델도 좋지만, 그걸 해석하는 아티스트를 통해 많이 배워요. 뮤지션 에이셉 라키나 미고스 등의 스타일을 좋아하면서 봐요. 언뜻 과해 보이지만 재미있는 시도잖아요. 저는 그만한 재력이 없어서 구현하기는 힘들고요(웃음).

패션계의 결과물을 자기 방식으로 해석하는 아티스트를 좋아하는군요. 얼마 전 사망한 칼 라거펠트도 정말 좋아해요. 그는 ‘시그니처’가 분명함에도 다양성이 존재해요. 저의 시안에도 자주 등장하죠. 물론 제가 칼을 따라한다고 칼이 되지않고, 그와 똑같은 옷을 입어도 라비는 라비라고 생각해요. 저 혼자 창조적 패션을 시도한다기보다 다른 이의 좋은 영향력을 섞어 나만의 방식대로 표현해요.

래픽 패턴 셔츠는 펜디(Fendi), 화이트 팬츠는 우영미(Wooyoungmi), 로퍼는 벨루티(Berluti).

패션에서 욕망은 뭔가요? 솔직히 옷을 브랜딩해 사업을 하고싶은 생각은 전혀 없어요. 제가 좋아하는 브랜드의 뮤즈나 앰배서더가 되어 그들과 교류하고, 이를 제 콘텐츠에 녹여내고 싶어요. 단순히 옷을 걸치는 것이 아니라 창조적인 관계가 되는거죠. 친구 카이가 구찌 앰배서더예요. 친구로서 멋지고 자랑스러워요. 저와 함께 표현해갈 브랜드가 있으면 좋겠어요.

앨범 수록곡은 1번 트랙 ‘R.OOK BOOK’을 시작으로 ‘L.A.Y.E.R.E.D’ ‘RUNWAY’ ‘HOODIE’ 등 패션 용어네요. 예를 들어 ‘L.A.Y.R.E.D’는 레이어 드가 가진 패션 특징을 어떻게 투영했나요? 꼭 옷 얘기만이 아니라 다양하게 해석 했어요. 특히 레이어드는 ‘너와 나를 레이어링한다’는 의미로 썼어요. 전혀 다른 아 이템을 레이어드해 하나의 특정한 톤이나 핏을 구현하잖아요. 서로 다른 우리가 하나 되는 모습도 레이어링과 비슷하죠. 그 안에 섹슈얼한 표현도 들어가 있고요. 타 이틀곡인 ‘TUXEDO’는 삶의 방식을 의미해요. 턱시도라 하면 개츠비처럼 파티를 즐기는 사람들, 가깝게 말하면 라운지에서 와인을 마시는 사람이 떠오르죠. 일상과는 동떨어진 옷이잖아요. 거기서 포인트를 잡고 오늘만큼은 소비하고 낭비하자는 뉘앙스를 담았어요. 내가 최고라는 게 아니라, 반복되는 일상과 욕심 없는 패턴에서 벗어나 오늘만큼은 개츠비의 DNA를 꺼내자는 거죠.

2월에 발매한 디지털 싱글 ‘live(Feat. 청하)’를 소개하는 브이라이브를 보면, 곡의 존재 이유를 중시하더군요. 자신의 괴로움을 노래로 승화했지만 타인에게 들려줄 당위성이 더 있어야 한다는 느낌이었죠. 이번 앨범은 어땠나요? 곡의 목적에신경을많이써요. 때론 그 목적이 사소한 것일 수 있죠. ‘청각적으로 기만하 면 돼, 들을 때 재미있으면 다야’라며 가사를 막 쓸 때도 있어요. 최근 트렌디한 많은 래퍼가 가사를 쉽게 써요. 페이머스 덱스(Famous Dex)라는 래퍼가 그렇죠. 워낙 아티스트 인터뷰를 자주 찾아보는데 그 친구가 이런 말을 해요. “가사에서 메시지를찾고싶으면 제이지나 나스 앨범을들어. 진짜 좋은 음악이거든. 근데 그냥 친구랑 미친듯이 춤추고 놀고싶으면 나를 들어.네가 골라 들으면돼 . 이게 새로운 흐름이야.” 어떤 음악이든 자신을 표현하면 된다는 태도가 좋았어요. 특정 시선보다 나 에게 의미를 두는 거죠. 그래서 이번 앨범도 내가 좋아하는 패션이란 키워드를 부여 했죠. 수록곡 중에도가사나 주제에 집중해서 쓴 곡이 있는가하면 편하게 만든 노래도 있어요. ‘RUNWAY’는 다른 일을 하며 듣는다면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를 만큼 유연하고 자극 없는 노래예요. 그런 의도였는데 몇몇 분께서 ‘RUNWAY’가 지루하 다는 거예요. 다행히 그 노래를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 나오면서 수록했죠.

고 화이트 티셔츠, 그 안에 입은 블랙 셔츠, 블랙 팬츠, 블랙 앤 화이트 컬러의 로퍼는 벨루티(Berluti).

곡이나 앨범을 만들 때 주변 의견을 적극 수렴하나요? 솔직히 이전에는 고집을 부렸다면 요즘은 열고 들어요. 2년전에 프로듀서 형 두 명과 크루를 만들었어요. 그때부터였어요. 그들을 좋아하기에 음악을 같이 하는데 ‘리스펙’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특히 피처링 아티스트는 최대한 존중해요. 그가 래퍼라면 만들어온 ‘벌스(Verse)’에 절대 수정을 요구하지 않아요. 곡에 그의 해석이 담기길 바랐는데 변 형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설사 아쉬운 점이 있더라도요.

자신의 이름을 단 앨범에서 쉽지 않은 결정일텐데요. 제가 이전에 그렇지 못한 대우를 받았거든요. 4~5년 전에 녹음할 때만 해도 디렉터들이 ‘한국에 있는 누구처럼 해줘’라는 말을 했어요. 너무 싫었죠. 그럼 그와 작업하지 왜 날쓰지? 의아했기에 저는 그러고 싶지 않았어요.

‘디렉션’을 알기 쉽게 주고 싶었던 거 아닐까요? 아니요. 특정 래퍼를 생각하고 곡 을 썼기 때문이죠. 근데 실제 녹음하는 랩은 제가 만들었잖아요. 제 호흡을 무시할 때는… 서로 온도 조절은 필요하지만 아예 딴 곳으로 갈 때는 아쉬웠어요.

서로에 대한 존중과 신뢰없이 함께 작업하기 힘들죠. 음악뿐 아니라 모든 면에서요. 그래서 청하와 작업할 때도 최대한 존중했어요. 청하라서 제안한 건데, 제가 뭔가를 요구하면 해당 뮤지션은 함께하는 작업이 아니라 자신을 갖다 쓴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잖아요. 자신 안에 있는 것은 본인이 제일 잘 안다고 생각해요.

다른 뮤지션과 자주 함께하는 편인데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예전에는 그 뮤지션과 작업을 하면서 배우려 했어요. 내가 만든 음악에 이 사람은 어떤 랩을 할 까 궁금하고 곁에서 보면서 얻어가고 싶었죠. 요즘엔 딱히 그렇진 않지만, 쎄이(SAAY)라는 친구가 궁금해서 일부러 곡까지 바꿔가며 작업을 제안했어요. 이번 앨범에서 함께했죠.

또 함께 하고 싶은 아티스트는 누군가요? 청하와 완전히 다른 스타일의 음악으로 한 번 더 작업하고 싶어요. 그녀의 강한 에너지, 퍼포먼스를 드러내 보이고 싶어요. 남자는 폴킴 씨가 묘하게 다가와요. 무척 담백해 보이지만 자극 있는 목소리죠. 음 악도 워낙 잘 만드신다고 들어서 제 톤과 플레잉에 녹여보고 싶어요.

시너지를 낼 누군가를 찾겠다는 의지로 음악을 들을 것 같아요. 엄청 찾아봐요. 유튜브나 사운드클라우드로 아무도 모르는 ‘누군가’를 늘 탐색하죠. 이번에 ‘녹는 점’이란 곡에 참여한 콜드 베이(Cold Bay)와 ‘HOODIE’란 곡의 라프 산도우(Raf Sandou), 시도(Xydo)도 기성 아티스트가 아니에요. 이 친구들에게 DM을 보내 작업을 제안했어요. 원하는 뮤지션을 찾으면 저는 DM을 보내거든요(웃음). 다들 당황하죠. 왜 갑자기 라비가 나한테?

사운드클라우드를 듣다가 우연히 발견했나요? 우연이라기보다 저나 함께 하는 프로듀서 형들이나 작정하고 찾아요. 아직 드러나지 않은 친구들이랑 하면 더 재미있 을 것 같거든요. 콜드 베이라는 친구는 고려대 화학과인데, 실험실 같은 데서 만든 영상을 보고 무척 신선했어요. 이런 친구가 어떻게 이런 음악을 하지? 사람이 궁금 해져서 만났죠. 라프 산도우는 도쿄, 캐나다, 한국에서 살아서 랩을 3개 국어로 써요. 옷도 희한하게 잘 입어서 ‘아이덴티티’가 있는 친구로 느껴졌어요.

기성과 다른, 새로운 세대의 움직임 같아요. 정말 그러고 싶어요. 그래서 더 열심히 움직이는 것 같아요.

의무감도 있는 것 같아요. 의무감이라기보다하고 싶어서 해요. ‘내가 그 역할을 안 하면 누가 해’도 아니고, 누가 저에게 그런 모습을 기대한다고도 생각하지 않아요. 그저 제가 하고 싶을 뿐이죠.

 

패턴이 들어간 쿠반 셔츠는 프레드 페리(Fred Perry at Platform), 데님 팬츠는 리바이스(Leviʼs), 십자가 모양 실버 팔찌와 십자가 모양을 양각으로 새긴 팔찌는 트렌카디즘(Trencadism), 선글라스는 레이밴(Ray-Ban at Luxottica).

 

싱글이나 미니 앨범 외에 믹스테이프를 꾸준히 내왔죠. 제게 믹스테이프는 비상업적인, ‘그저 나의 음악을 세상에 던진다’는 의미가 강하거든요. 본인은 정규 앨범, 미니 앨범, 싱글과 믹스테이프를 어떻게 구분해서 발매하나요? EP만 해도 과한 시도나 실험 정신보다는 듣는 이를 고려해 뻔하지 않은 선에서 멀리 가지 않죠. 관련 뮤직비디오나 퍼포먼스도 마찬가지고요. 믹스테이프는 래퍼로서 그 세계의 일원이고 싶고, 그 문화를 사랑하기에 당연히 할일이에요. ‘가져야 하는 움직임’이죠. 저 역시 상업적인 기대는 하지 않고 만들어요. 물론 대중에게 사랑받으면 좋겠지만그보단 제가하고 싶은 걸하죠.

이미 알려진 뮤지션이자 아이돌로서 ‘그저 하고 싶은 음악을 낸다’는 게 쉽지 않을 텐데요. 부담 없이 진행하는 프로젝트라 주변에서 걱정을 많이 하세요. 하지만 움직이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제가 좋아하는 문화에서는 ‘허슬(Hustle)’이라고 해야 할까요. 계속 움직이고 결과물을 내고 열심히 하는 것에 의미를 두거든요. 한번은 무료 공개하는 믹스테이프에 10곡을 넣겠다는 저와 회사의 온도 차를 좁히 기가 쉽지 않았어요. 음원이라기보다 ‘움직임’이라고 설득했죠. 이걸 통해 나를 더 드러낼 수 있고 어떤 발판이 될 거라고요.

EP는 라비의 대중적인 제안, 믹스테이프는 라비의 허슬로 이해할 수 있겠군요. 각각 접근 방식도 무게도 다르죠. 믹스테이프는 보다 가벼워요. ‘재미있을 것 같아 서’가 다예요. <NIRVANA>는 멜로딕하고 신스가 쌓여 있는 단위의 믹스테이프 를 내고 싶었고, 반대로 <K1TCHEN>은 트랩으로 가득 채우고 싶었을 뿐이죠. <NIRVANA 2>도 기획 중인데 벌여놓은 작업이 있어서 뭐가 먼저 될지 모르겠어요. 싱글은 앨범 단위로 묶기에는 통일되기 어려운 곡이 되곤 하죠. ‘ADORABLE’ 은 계절감 있고 편안한 노래라서 여름용 싱글로 낸 게 다예요. ‘live’는 곡의 메시지 를 앨범으로 풀기엔 무겁고, 그만큼 제가 할 이야기가 없어서 싱글로 냈고요.

 

갈색 와플 니트는 보스 맨(Boss Men), 옆 라인에 레터링이 들어간 팬츠는 우영미(Wooyoungmi).

‘live’는 자신이 괴로움을 노래로 풀어낸 만큼 이것으로 누군가 위로받길 바랐다고 들었어요. 위로라기보다는 적어도 이 노래를 들으면 나는 혼자가 아니구나,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라비라는 아티스트가 있고, 그가 이런 삶을 응원하고 사랑하고 있음을 전하고 싶었어요. 감사하게도 곡의 의도를 많이 알아주신 것 같아요.

뮤지션으로서 기쁜 순간은 자신의 의도가 듣는 이에게 전달됐을 때인가요? 그렇기도하고, 무대에 설 때도 그래요. 이 노래는 특히 주변에서 많이 연락왔어요. 가사 때문이리란 생각도 드는데, 다들 찡했다, 울었다 하셨죠. 지인의 지인은 막연히 괴롭기만 한 감정과 상태를 잘 정리해준 글을 본 것 같다고 하셨죠. 정말 고마웠어요.

언젠가 “나는 항상 꿈꾸는 사람, 갈구하는 사람, 욕심 내는 사람, 이렇게 늘 어떤모습의 사람이길 바라왔다”고 말했어요. 여전히 유효한가요? 그런 강박 때문에지치기 도 했어요. 하지만 결국 그게 라비죠. 힘들어하면서도 여전히 그렇게 사는 나를 보 면서 어쩔 수 없지 싶어요. 어떤 아티스트가 되고 싶나, 지금 무엇을 갈구하는가 생각하면, 제 음악이나 오늘 하는 <보그> 촬영처럼 이런 움직임이 사람들에게 스며들었음 좋겠어요. 그래서 자꾸 손이 가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라비의 음악이라면 찾아 듣고 싶고, 라비가 요즘 어떤지 궁금하고 보고싶은. 잘하는 아티스트라도 손이 가지 않을 수도 있거든요. 저 마저도 한번 더 보고 싶은 사람이 있어요. 그 아티스트가 좋아하는 브랜드의 새 컬렉션이 나왔는데 어떻게 소화했을까, 안 입었을까 궁금하죠. 그 아티스트는 저한테 스며있는 거예요. 소수든, 다수든, 그들에게 스 며들고 싶어요. 잘되고 싶다는 의미와는 달라요.

색 재킷은 보스 맨(Boss Men), 허리 부분이 데님으로 된 검정 울 팬츠는 디스퀘어드2(Dsquared2), 로고 장식 벨트는 우영미(Wooyoungmi), 검정 로퍼는 닥터마틴(Dr. Martens), 실버 반지는 트렌카디즘(Trencadis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