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BOR OF LOVE

Living

LABOR OF LOVE

2020-02-04T09:07:29+00:00 2020.02.11|

그레타 거윅은 루이자 메이 알콧이 <작은 아씨들>을 출간한 36세에 영화 <작은 아씨들>을 연출했다. 늘 ‘조’가 되고 싶었던 그녀의 영화에는 2020년에 유효한 분명한 생각과 풍부한 감성이 있다. 밀레니얼 세대를 넘어 제니얼 세대까지 사로잡은 거윅의 연출론과 모성에 관한 서사.

HEAVENLY BODIES
지난해 3월 거윅과 그녀의 연인이자 동료 감독인 바움백 사이에 아들이 태어났다. 드레스는 발렌티노(Valentino).

그레타 거윅(Greta Gerwig)이 웨스트빌리지에 자리한 타운 하우스 1층 큰방에 서 있다. 이 집은 그녀의 연인이자 동거인이며 영화 연출가 노아 바움백(Noah Baumbach)의 어머니 소유로, 이 커플이 편집 스튜디오로 쓰는 공간이다(바움백 감독이 <더 마이어로위츠 스토리스(제대로 고른 신작)>에서 썼던 여우 가면이 한구석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다). 여러 대의 데스크톱 모니터 중 하나에서 거윅 감독의 신작 <작은 아씨들>이 스톱모션으로 재생되고 있었다. 여주인공 조 마치 역을 맡은 시얼샤 로넌이 여동생 에이미(플로렌스 퓨), 멕(엠마 왓슨)과 이야기하는 장면이다. 거윅은 하늘 빛깔을 보며 고민하더니 <레이디 버드>의 편집에도 참여한 닉 라미레즈(Nick Ramirez)에게 물었다. “저 은빛, 없앨 수 있나요?” 거윅의 말에 닉이 마우스 위에 올려놓은 손을 까딱거리고 있는데, 작은 발 하나가 춤추듯 움직이자 거윅 감독의 시선이 유모차로 다시 쏠렸다. 거윅과 바움백 감독 커플의 6개월 된 아들 해롤드가 주의를 끌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거윅은 조금 전 커플이 함께 지내는 근처 아파트에서 건너왔다. “살아 있는 생명체를 모두 데려왔어요.” 그녀는 바움백과 함께 기르는 강아지를 풀어주었다. 미니 버니두들종으로 이름은 위저드다. 위저드가 담쟁이덩굴로 뒤덮인 뒤뜰로 달려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저 아이는 편집견이나 다름없어요. 여기에 익숙해 있거든요.” 해롤드도 마찬가지다. 거윅은 거의 매일 이 타운 하우스로 유모차를 밀고 와 자신의 영화가 형체를 갖춰가는 동안 아들에게 수유하고 낮잠도 재웠던 것이다.

모니터 화면에 잡힌 장면은 <작은 아씨들>의 거의 마지막 부분이었다. 마치가의 네 자매 중 가장 사랑스러운 셋째 베스가 죽은 직후였다. 스포일링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솔직히 1868년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여덟 번 이상 영화로 각색된 <작은 아씨들>의 줄거리를 모르는 사람은 없지 않나? 루이자 메이 알콧(Louisa May Alcott)이 쓴 이 남북전쟁 시대 이야기는 역대 가장 사랑받는 젊은 여성의 성장소설 중 하나로 꼽힌다. 소설에 등장하는 반항적 작가이자 알콧의 또 다른 자아라 할 수 있는 ‘조’는 “단지 자신과 자매들에 관한 새로운 이야기를 글로 쓰고 있을 뿐이며 굉장히 진부한 이야기라 별 매력이 없는 것 같다”고 자매들에게 털어놓고 있다. “글로 쓴다고 해서 진부한 이야기에 중요성이 부여되지는 않아. 중요성을 반영할 뿐이지.” 조가 자신감 없는 어조로 말했다. 그러자 에이미가 반박했다. “아냐, 나는 일상적이고 진부한 것에 관해 글을 쓰는 행위가 그런 일들을 중요하게 만든다고 생각해.”

영화 속 대사의 80%는 원작을 그대로 살렸지만, 이런 대사는 거윅이 직접 써서 추가한 것이다. 그래서 그녀의 신념이 느껴질 수밖에 없다. 거윅이 배우로, 작가로, 감독으로 커리어를 쌓는 동안 그녀 같은 부류를 애먹인 그 진부한 드라마에 대한 감정을 토로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시몬 드 보부아르부터 패티 스미스, 엘레나 페란테에 이르는 여러 세대가 시대의 문화적 규제 때문에 자신의 가치관이 희생되는 것을 거부하던 강인한 여주인공 조 마치와 자신들을 동일시했듯, 대학을 갓 졸업한 순진한 세대는 거윅 감독으로부터 조와 같은 강력한 분신을 발견했다.

이 강력한 화신은 <한나 테이크 더 스테어>와 <밤과 주말> 같은 저예산 로파이 멈블코어 영화에서, 그리고 바움백의 영화 <그린버그>, <프란시스 하>와 <미스트리스 아메리카>(두 사람이 시나리오를 공동 집필했다) 에서 시작되었다. 특히 바움백의 작품 세 편에서 거윅은 진지하고 감상적이며 자기 회의와 곤궁을 두려워하지 않는 여주인공을 연기함으로써 밀레니엄 첫 세대들의 눈에 들었다. 샐리 루니(Sally Rooney)는 2017 년 출간한 소설 <Conversation with Friends>(밀레니얼 세대를 잇는 제니얼 세대의 스타일을 다룬다)에서 “그때 우리는 소파에 앉아 그레타 거윅이 출연하는 영화를 보며 종이 박스에 담긴 중국 음식을 먹고 있었다”라고 썼다. 독자로서 우리가 이 문장이 의미하는 바를 정확히 알다시피, 거윅은 갓 성인이 된 특정 세대의 수호성인이 되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거윅의 진정성은 희화된 모습 이면에 숨겨져 있었다. 묘한 야망과 예술적 관심을 지닌 영화감독다운 면모는 좀처럼 드러나지 않다가 데뷔작 <레이디 버드>를 연출하면서 명확해졌다. 2017년에 개봉한 이 작품이 비평가들로부터 폭발적 호평을 받았던 것이 다. 친근하고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이 영화는 한 여성이 부모, 절친들, 첫사랑 등 가장 중요한 관계 속에서 겪는 압박과 기쁨을 충실히 다뤘다. 그리고 이 영화를 통해 거윅은 오스카 감독상 후보에 올랐다(여성 감독으로서는 역대 다섯 번째). <레이디 버드>는 평단으로부터 엄청난 호평을 들었을 뿐 아니라 사람들이 그녀에게 큰 기대를 걸게 만들었다. 다음에 거윅은 뭘 할까? 뉴욕 다운타운이 배경인 인디 영화에서 반영웅적 인물을 연기하며 사랑받았던 배우가 소신에 전념하고 자신의 철학과 확신을 가진 영화감독이 되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

기대에 대한 화답은 소녀 시절부터 열렬히 사모하던 소설의 각색이었다. 거윅은 이미 400페이지짜리 시나리오를 써놓은 상태였다. 2018년 오스카 시상식이 끝난 뒤 거윅은 빅서(Big Sur)의 한 오두막집에 칩거하며 <작은 아씨들> 시나리오 수정 작업에 들어갔다. “루이자 메이 알콧과 단둘만의 시간을 가져야 했거든요.” 그녀가 말했다. 거윅은 알콧(그녀는 알콧이 이 소설을 출간한 나이와 같은 36세다)에게 동질감을 크게 느꼈다. 점술가에게 둘의 사주를 비교해달라고 요청할 정도였다. “예술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신비주의가 필요하거든요.”

거윅이 그리니치 호텔 뜰에서 입고 있던 의상도 알콧이나 조 마치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앞면에 작은 파란색 단추가 달린 하이넥의 아페쎄 긴소매 인디고 블라우스를 입고 있었다. 그녀는 생각하는 곰돌이 푸우처럼 손으로 턱을 받친 채 침착하게 필요한 말만 하며 신중하고 사려 깊게 행동했다. 1940년대 스크루볼 코미디(Screwball Comedy) 속 영화 주인공처럼 에너지를 분출하기도 했다. “세상에, 우리가 한 활동을 꼼꼼히 살펴보며 빠짐없이 저를 취재하시네요”라고 소리치기도 했다. 초창기에 거윅이 연기한 캐릭터들처럼 머리로 생각하는 동시에 다른 사람들도 알게 하는 스타일인 듯했다. 나중에 그녀는 ‘2시간 동안 <작은 아씨들>에 대해 아주 열정적으로 이야기하는 바람에 진이 빠지고 말았다’고 인정하게 될 것이다. 거윅은 모든 일을 이런 식으로 하는 것 같았다. 모든 추진력을 끌어올려 일한다. 이런 면은 <작은 아씨들>을 연출할 때도 다르지 않았다.

“<작은 아씨들>은 개인적인 장편 서사 영화예요.” ‘잔소리 많은’ 마치 고모 역을 맡은 메릴 스트립이 말했다. “상당 부분 작가 자신의 이야기이고, 결국 그녀의 자전적 이야기이기 때문이죠.” 이 영화는 자매들이 성장한 시절부터 시작하며, 알콧이 출간한 원작이 반영된 시간대로 전개된다. 첫 시간대는 자매들이 10대였을 때고, 또 다른 시간대는 그로부터 7년이 지난 후다. 그리고 거윅 감독이 이야기를 추가한 엔딩에는 조와 알콧이 걸어온 길을 비교하는 메타내러티브가 삽입되었다. “관객이 볼 필요성조차 인지하지 못하던 책을 출간하게 만들 수 있다면, 이것은 모두가 영화에서 이뤄지길 바라던 방향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녀가 가슴에 손을 얹은 채 테이블 너머로 몸을 구부리며 말을 이었다. “당신은 그녀가 그 책을 내길 바라고 있어요. 하지만 그 책을 눈으로 보기 전까지는, 그녀가 그 책을 손에 쥐기 전까지는 깨닫지 못하죠. 깨닫고 나서야 비로소 ‘바로 그거야. 저 책!’이라고 말하게 되는 거죠.”

바움백은 말했다. “<작은 아씨들>의 첫 편집본을 보니, 이 영화가 만들어지는 이유가 정확히 파악되더라고요. 지극히 개인적인 영화였거든요. 이 영화는 이야기를 전달하면서 원작 자체에 존경을 표하고 있어요. 오직 거윅 감독만 할 수 있는 거죠.” 굉장히 세세하게 공들여 촬영한 이 영화는 겉으로는 전형적인 모습을 띠고 있다. 하지만 고리타분하지 않다. 거윅은 카메라가 끊임없이 움직이게 하고, 원작 대사의 속도를 높였다. “저는 모든 대사를 있는 그대로 다 듣고 싶었지만, 생기 넘치는 속도로 전달되기를 바랐죠.” 그녀가 말했다. “훌륭한 대사가 가벼운 말투로 전달되길 바란 거죠.” 거윅은 왈츠 장면을 찍기 위해 안무가 모니카 빌 반스(Monica Bill Barnes)를 초빙했다. 반스는 배우들이 더 큐어와 데이비드 보위 노래에 맞춰 춤추게 했다. 공인 요가 자격증을 가진 엠마 왓슨은 영화 출연진을 요가와 명상의 세계로 이끌었다. “촬영장에서 젊은 여배우 여럿이 솔선수범하니 분위기가 확 바뀌었죠.” 로넌이 말했다. “우리 모두 완전히 들떠 있었어요. 그리고 그레타 감독도 어린 소녀 같았고요. 그녀가 그 에너지를 정말 잘 포착해냈죠.”

영화 촬영이 막바지에 접어들 때쯤 거윅은 임신 6개월이었다. 하지만 배우들은 A라인 드레스와 커쿤 코트 때문에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저는 당시에 감독님의 스타일이 그렇겠거니 했어요.” 조의 이웃사촌 로리 역을 맡은 티모시 샬라메가 말했다. 거윅은 알콧이 <작은 아씨들>을 집필한 곳이며 소설의 무대가 된 과수원 집을 그대로 재현했고, 심지어 알콧의 고향 매사추세츠주 콩코드에서 촬영했다. “그곳은 특별해요. 거장들이 가까이 살면서 세상에 대해 재성찰한 곳이니까요.” 거윅은 콩코드에 대해 설명하면서, 랄프 왈도 에머슨(Ralph Waldo Emerson), 헨리 데이비드 소로(Henry David Thoreau), 나다니엘 호손(Nathaniel Hawthorne) 등 한 세기 전에 그곳에 모여 살았던 미국인 사상가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에머슨은 알콧의 집 건너편에 살면서 오랫동안 알콧 집안을 도와주었다. 일부 전기 작가들에 따르면 알콧이 소로에게 로리에 대한 영감을 얻었고, 소로가 인근 월든 호수로 어린 알콧 자매들을 데리고 자연 관찰 산책을 했다고 한다. 영화 촬영 기간 동안 거윅 감독은 주말마다 비슷한 일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또한 시간이 날 때마다 부근에 있는 슬리피 할로우 공원묘지에 들르기도 했다. 이 위대한 작가들 모두 이 공원묘지에 묻혀 있으며, 그들을 숭배하는 팬들이 묘비에 펜을 놓아둔다고 한다. 거윅도 알콧의 묘비에 노란색 라미 만년필을 놓아두었다.

“저는 늘 조처럼 되고 싶었어요.” 3남매 중 막내인 거윅은 캘리포니아주 새크라멘토에서 성장했다. 10대부터 꾸준히 글을 썼고, 자신이 쓴 시나리오로 가족들에게 연기를 시키기도 했다. 산부인과 간호사인 어머니는 긴 시간 근무 후에도, 아버지는 지역 신용조합에서 일을 마치고 퇴근한 후 연기를 해야 했다. 학교 동창회에 대한 초안을 쓰기도 하고 ‘아주 우스우면서도 비극적인’ 잡지를 여러 권 발간했다. ‘낙서 가득한 셔츠’를 입고 다락방에 틀어박혀 글을 썼다. 어린 거윅은 아버지의 하와이안 셔츠를 입고 다니며 버스, 화학 수업 시간, 치과 등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글을 썼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거윅이 말했다. “저는 세상으로부터 그 글을 훔치는 것 같은 기분을 즐겨요. 제가 뭔가를 가지고 멀리 도망가는 것 같아요. 멍석을 깔아준 듯 형식을 차린 자리가 되면 저는 착 가라앉고 말죠. 남모르게 글을 써야 해요.”

오버사이즈 하와이안 셔츠를 걸친 거윅 감독이 해롤드를 안고 타운 하우스 바닥에 앉아 있었다. 아버지에게 빌려 입던 셔츠와 상당히 비슷했다. 물론 이것은 오트(Otte) 매장에서 구매한 것이었다(해롤드가 태어난 후 그녀의 쇼핑 기준은 무엇일까? “가까운 곳이어야 해요!” 그리고 모유 수유 때문에 앞자락을 단추로 여밀 수 있어야 한다). 지금의 활기 넘치는 삶을 받아들이고 있지만 거윅은 적지 않은 의구심을 품고 있다. “항상 엄마가 되는 것을 두려워했어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어떤 것을 의미할지 걱정한 거죠.” 거윅은 카디 비(Cardi B)의 인스타그램을 본 적 있다(거윅은 절대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지 않는다). 그 래퍼의 임신과 출산 이야기를 접한 것이다. “그녀는 임신으로 모발 상태가 얼마나 더 나아졌는지 동영상을 촬영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결국 임신과 출산으로 극심한 속 쓰림에 시달리며 폭발했어요. 그럼에도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고 말하는 여성분들을 보면 정말 감동적이었죠.”

거윅은 지난해 3월에 <작은 아씨들>의 1차 편집에 들어갔다. “1차 편집을 마치면 마음도 놓이고 아이도 태어날 거라는 걸 알고 있었죠.” 실제로 정확히 편집을 마친 지 24시간 만에 해롤드 랄프 거윅 바움백이 세상에 나왔다(거윅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모든 이름을 주고 싶었다고 한다). 그녀는 출산휴가를 떠나기로 계획했다. 하지만 마침 메릴 스트립이 대사 녹음 때문에 뉴욕 시내로 나온다고 했고 거윅은 해롤드를 데리고 녹음실을 방문했다.

“그 아이가 메릴로부터 세례를 받는 것 같았죠.” 몇 시간 후 거윅은 주말 동안 바움백에게 해롤드와 위저드를 맡기고 바너드대학 시절 절친 다섯 명과 미니밴을 타고 뉴욕 북부로 드라이브를 가기로 했다. 그녀는 평소 이런 모임을 거의 갖지 않는다. 집 근처에서 글을 쓰면서 바움백과 아기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 때문이다. 이 가족은 바움백 감독의 동생 부부네에도 자주 놀러 간다. 동생 니코 바움백(Nico Baumbach)은 작가이자 학자이며, 부인 애니 베이커(Annie Baker)는 극작가로 활동하고 있다(이 부부에게도 해롤드와 비슷한 또래의 아이가 하나 있으며, 이들은 곧 해롤드의 대부모가 될 것이다). 이 감독 커플은 극장에도 즐겨 간다. 거윅은 요리도 즐긴다. 물론 바움백이 기꺼이 부주방장이 되겠노라 동의할 때뿐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이 두 사람은 최근 실험적으로 이유식을 만들기 시작했다. 현재는 모유와 오트밀에 고구마를 섞어보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바움백 감독은 약속한 전화 인터뷰 시간에 한창 퓌레를 만들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인터뷰에 늦은 것을 사과해야 했다. 전화기 뒤쪽 어디선가 울음소리가 들려오자 바움백은 해롤드를 달래러 갔다. “지금 상황을 실시간으로 듣고 계십니다.” 감독이 말했다. 무릎에 앉혀놓은 해롤드의 기분이 좋아지자 이 영화감독은 거윅이 자신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진심 어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우리가 함께 지낸 이후로 제가 하는 일, 심지어 기술적으로 그녀와 상관없는 일조차도 그녀로부터 엄청난 영향을 받았어요. 제가 커리어를 시작하던 초창기에는 지나치게 생각이 많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녀 덕분에 제 자신을 내려놓을 수 있었죠.”

바움백은 2010년 작품 <그린버그>에 거윅을 캐스팅하면서 처음 만났다. 그리고 다음 해에 <프란시스 하> 시나리오를 공동 집필하면서 연인 관계로 발전했다. 비평가들은 이런 소식 때문에 거윅을 공동 각본가보다 바움백 감독의 뮤즈로 여기게 되었다. “그런 시선 때문에 좌절감에 빠졌고 그것을 바로잡고 싶었죠.” 거윅 감독이 말했다. 기자들 또한 바움백 덕분에 거윅이 더 많은 기회를 얻은 것은 아닌지 궁금해했다. 물론 지금은 그런 의문이 줄어들긴 했다. “어느 정도 사실이긴 해요. 여러 면에서. 그렇지만 바움백은 믿기지 않을 만큼 중요한 협업자고, 제가 영향을 끼친 사람이죠. 제게 가장 중요한 사람이에요.” 그녀가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다시 이어갔다. “그런데 저는 저만의 영화를 만들기로 작정했어요. 그래서 어떤 상황이든 제가 마음먹은 대로 하고 말았을 거예요.”

지금은 오히려 그녀가 바움백 감독에게 기회를 열어주기도 한다. 마고 로비가 영화 <바비>를 제작하고 출연하기로 하면서, 거윅에게 접촉해왔다. 그래서 거윅 감독과 바움백 감독이 공동으로 시나리오를 집필하기로 합의했다(그녀가 메가폰을 잡는다는 기사도 나왔지만 시나리오에만 초점을 맞춘다고 했다). “우리가 글을 쓰면서 느끼는 즐거움이 모든 것에 스며들었으리라 생각해요.” 거윅이 말했다. 그녀와 바움백 감독은 대본의 기본 틀이 마련되면 각자 섹션을 맡아 따로 작업하고, 마지막에 함께 논의한다. “제가 쓴 시나리오를 보며 그가 웃고, 그가 쓴 글을 보고 제가 웃죠.”

지난해 11월에 개봉한 바움백의 신작 <결혼 이야기>는 이혼에 관한 격정적인 코미디 드라마로 평단의 극찬을 받았다. 바움백과 거윅이 동시에 오스카 감독상 후보에 노미네이트된다면 이 시상식이 생긴 이래 최초로 커플 감독상 후보라는 진기록을 세우게 된다. “전반적으로 굉장히 흥미로운 한 해였어요.” 바움백이 말했다. “제가 촬영하던 영화의 편집본을 그레타에게 보여줬고, 몇 달이 지난 지금 제가 그녀의 영화를 보고 있어요. ‘행복하다’는 오글거리는 말을 사용하고 싶지는 않아요.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새롭게 뭔가를 만드는 것을 지켜보고, 그 사람이 만든 것이 제 마음에 쏙 드는 것만큼 대단한 일도 없는 듯해요! ‘대단하다’고 거듭 말하는 것 말고는, 어떻게 달리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거윅과 나는 편집 스튜디오에서 만나기 며칠 전 카페 클루니(Café Cluny)의 창가 테이블에 앉아 스테이크 프리츠를 주문했다. 그녀는 자신의 아이폰과 밝은색 스마이슨 노트에 앞으로 해볼 만한 프로젝트 아이디어 리스트를 기록해놓는다고 말했다. 그 리스트에 <바비> 시나리오 작업이 포함되어 있었다. <작은 아씨들> 제작자 에이미 파스칼(Amy Pascal)은 거윅 감독과 함께 뮤지컬 영화 제작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고 알려주었다. “저는 어떤 스토리든 꾸준히 확장시켜나가고 싶어요.” 거윅이 말했다. 그렇지만 그녀가 가장 먼저 하고 싶은 것은 바로 안톤 체호프(Anton Chekhov)의 작품이다. 다가오는 봄에 거윅은 뉴욕 시어터 워크숍에서 샘 골드(Sam Gold)가 연출하는 작품 <세 자매>에서 마샤를 연기할 것이다. 연기자로서는 4년 만의 복귀다. “연기가 두렵기도 했어요. 그런데 샘이 ‘체호프의 작품을 달달 외우는 것보다, 작가로서 감독으로서 더 잘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라는 말을 하더군요.”

프렌치프라이를 능숙하게 반으로 접어 처음에는 마요네즈를, 그다음에는 케첩을 찍으며 거윅이 말했다. “사람들이 저를 이해 못하는 순간이 많았던 것 같아요. 실제로 <세 자매> 출연 소식과 <바비> 관련 기사가 같은 날 발표되자, 친구 하나가 ‘세상에서 가장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구나!’라는 문자를 보냈죠. 그런데 틀린 말도 아니에요. 어쩌면 저는 그런 식으로 한곳에 너무 치우치지 않는 것을 즐기고 있는지도 몰라요.”

”모든 것이 스토리텔링과 관련되어 있죠.” 배우 겸 시나리오 작가로, <레이디 버드>와 <작은 아씨들>에 모두 출연한 트레이시 레츠가 말했다. “그래서 저는 거윅이 한 가지를 선택해야 하나 싶어요.” 그렇지만 거윅은 자신이 감독처럼 가장 많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정말 엄청난 일이고 무섭기도 해요. 그렇지만 가장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하죠.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님이 ‘최고의 감독들은 모두 배우였다’고 말해준 게 생각나네요. ‘나 역시도 연기를 했어. 마틴 스콜세지, 스티븐, 오손 웰즈 모두 연기를 했지’라고 얘기해주더군요. 그래서 저는 ‘세상에, 정말 대단한 분들이 저와 같은 이력을 가졌네요!’라고 말했죠.”

거윅이 “세상에, 제가 그 훌륭한 분들처럼 해낸 거예요!”라고 감탄조로 말하는 중 마침 그녀가 주문한 스테이크가 나왔다. 그녀는 스테이크를 한 입씩 야무지게 먹었다. 헨리 제임스(Henry James)의 알콧에 대한 비평이 부당하다고 말할 때는 포크와 나이프를 내려놓고 가슴에 손을 얹은 채 이런저런 제스처를 하며 강한 어조로 말을 이어갔다. 그러면서도 스테이크만큼은 맛있게 먹었다. 기자들은 거윅을 진중하고 열정적이라고 표현해왔다. 모두 그녀에게 걸맞은 표현이다. 그렇지만 그런 말이 여성에게 적용될 때는 유머나 유희적 면이 부족하다는 뜻을 내포한다. 거윅은 분명한 생각과 풍부한 감성의 소유자다. 그렇지만 지나치게 심각하지 않으며 자기 인식이나 흥이 부족하지도 않다. 자기 모습 그대로를, 자신이 특정 순간에 느끼는 감정 그대로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그녀 같은 사람이 다른 사람들에게 익숙하지 않을 수도 있다. 아마 이런 특징이 그녀가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였을 것이다. “거윅이 어떤 사람인지는 스크린에서 정확히 표현되죠.” 메릴 스트립이 말했다. “그녀는 자신이 세상을 보는 그대로 우리가 세상을 보게 만들죠. 직관적이고 확신에 차 있어요.”

영화를 세상에 내놓는 것과 아이를 출산하는 것의 유사점은 뭘까? “모르겠어요. 18년 정도 지난 후 다시 여쭤보시는 게 좋겠네요.” 거윅이 멋쩍게 미소 짓더니 한숨을 쉬었다. “아마, 영원히 자격이 부족하다고 느낀다는 점, 그 일로 경외의 대상이 된다는 점이 비슷하지 않을까 싶네요.” 그녀가 갑자기 시간을 체크하더니 모유 수유하러 갈 시간이라고 말했다. 손목에는 1950년대 티파니 남성용 시계를 차고 있었다. 몇 년 전 바움백에게 선물 받은 이 시계는 원래 한 판사가 소유하던 것으로, 시계 뒷면에는 ‘위엄 있고 진지한 친구 모리스 에더(Morris Eder) 재판관’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식대를 계산하는 중에 그녀는 갑자기 가게 된 상황에 대해 미안해했다. “모유 수유 간격인 1시간 반에서 최대 2시간 동안 모든 일이 이뤄지죠.” 그 시간은 딱 영화 한 편의 러닝타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