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1996 그때 그 음악

2020.07.29

by 손기호

    1996 그때 그 음악

    10 Albums of 1996

    1990년대 10대 시절을 보낸 에디터가 추억하는 1996의 명반.

    1996년을 대표할 만한 푸지스의 앨범.

    The Score – Fugees

    “Strumming my pain with his fingers” 로린 힐(Lauryn Hill)의 끈적이는 목소리가 들려오면 절로 어깨가 들썩이던 노래, Killing Me Softly with His Song’이 수록된 명반. 1996년을 통틀어 가장 세련되고 대중적이었던 앨범은 단연코 푸지스의 두 번째 앨범이었다. 힙합 속에 아이티 출신의 리듬을 담아낸 와이클리프 장(Wyclef Jean)과 프라스(Pras)의 힘으로 완성한 사운드는 지금도 쿨하기 그지없다. 게다가 로린 힐의 멋은 이 세상 것이 아니었다.

    1990년대 최고의 명반 중 하나로 손꼽히는 DJ 섀도우의 데뷔 앨범.

    Endtroducing…. – DJ Shadow

    1990년대 최고의 앨범 중 하나로 손꼽히는 DJ 섀도우의 데뷔 앨범은 하나의 단어로 설명하기 어렵다. 펑크와 록, 힙합과 재즈, 앰비언트와 소울 장르가 마구 뒤섞인 앨범은 당시에 충격 그 자체였다. 새로웠지만 전통을 숨기진 않았고, 강렬하지만 부담스럽진 않았다. 이 앨범을 처음 들었을 때 멋쟁이 형, 누나만 아는 비밀을 알아낸 것 같던 그 기분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스파이스 걸스 열풍을 불러일으킨 바로 그 앨범.

    Spice – Spice Girls

    스파이스 걸스 신드롬은 남달랐다. 단순한 유로 댄스에 맞추어 춤을 추는 영국 소녀들이라고 치부하기에 그 열풍은 차원이 달랐다. 1990년대 X세대의 전형을 대표하는 듯한 모습이 당시 어린 팬들에게 동경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일까. 공장에서 만든 탄산음료와 같은 밴드라는 비평을 듣곤 했지만, 그들만큼 자유롭게 자신의 개성을 표현한 그룹도 많지 않다.

    갑자기 등장한 착한 얼굴의 뮤지션 벡.

    Odelay – Beck

    1990년대 초반이 너바나와 펄 잼의 그런지 시대라면 1990년대 후반은 라디오헤드와 오아시스로 이어지는 브릿 팝의 시대였다. 그리고 그 사이에 미국 청년 벡(Beck)이 있었다. 외모만으로 쿨한 그의 앨범은 당시 멋쟁이들의 사운드트랙과 같았다. 게다가 살짝 멍한 표정의 벡은 스타일도 훌륭했다. 오죽하면 에디 슬리먼이 한참 뒤 그를 광고 모델로 촬영했겠는가. 맨해튼 거리를 거니는 어린 벡의 모습을 담은 ‘Devils Haircut’ 뮤직비디오는 1996년의 감성 그 자체다.

    1996년 세상을 떠나면서 전설로 남은 투팍.

    All Eyez on Me – 2Pac

    1996년 음악계 가장 큰 사건 중 하나는 투팍이 총격 사건으로 세상을 떠난 일이었다. 그가 떠나기 전 선보인 마지막 앨범은 덕분에 명반이 되었다. 이제는 옛날 말이 되어버린 ‘갱스터 랩’을 대표하는 앨범이지만 사운드는 마냥 옛날의 것은 아니다. 지금 들어도 신나는 ‘California Love’, ‘All Eyez on Me’가 바로 이 앨범의 수록곡. 아직도 그가 사망한 직후 ‘PC 통신’ 힙합 동아리에서 올라오던 추모의 글을 잊을 수 없다. 현대 힙합의 아이콘을 몰랐다면 지금 들어봐야 할 때다.

    한국에서도 많은 인기를 누린 벨 앤 세바스찬.

    If You’re Feeling Sinister – Belle & Sebastian

    1990년대 후반 홍대는 ‘인디 신’의 성지였다. 드럭과 헤븐 등의 음악 클럽과 가게가 생겨날 때 벨 앤 세바스찬이라는 술집도 있었다. 스코틀랜드 출신 밴드가 서울에 가게를 냈을 리 없으니 아마 열성 팬의 아이디어였을 것. ‘챔버 팝’ 정도로 분류되지만, 벨 앤 세바스찬은 하나의 정서와 같았다. 시끄럽고 소란스러운 사운드가 쏟아져 나오던 시절 잔잔한 멜로디로 승부하던 밴드. 아직도 그들이 2010년 한국에서 처음 공연하던 날이 기억난다. 밴드도 팬들도 모두 세월의 흔적이 가득했지만, 신나게 무대를 뛰어다니던 멤버들의 사운드만큼은 청춘 그 자체였다.

    유희열의 솔로 프로젝트로 다시 태어난 토이의 두 번째 앨범.

    YOUHEEYEOL – Toy

    지금 10대에게 유튜브가 있다면, 1996년의 10대에겐 심야 라디오가 있었다. 취향에 따라 좋아하는 방송과 DJ는 나뉘었지만, 모두 독서실과 방에서 라디오를 꼭 붙들고 있었다. 그 당시 인기 있던 DJ 중 한 사람은 <FM 음악도시>의 ‘시장’ 신해철. 자정부터 새벽 2시까지 이어지는 방송에서 그는 음악을 좋아하는 어린 친구들의 우상과 같았다. 그리고 그 프로그램 패널로 등장한 이가 바로 유희열이었다. 이듬해 자연스럽게 ‘음도의 시장’직을 물려받은 그가 선보인 두 번째 앨범. ‘내가 너의 곁에 잠시 살았다는 걸’, ‘그럴 때마다’ 등 지금까지도 유명한 곡이 수록된 앨범이다. 열정적인 토이 팬들이 생겨난 것도 이맘때 일이었다.

    일본에서 하나의 사회현상으로 불릴 정도로 인기를 누린 아무로 나미에.

    Sweet 19 Blues – Namie Amuro

    금지된 일본 문화에 빠진 청소년을 취재하는 뉴스가 종종 방송을 타곤 했다. 일본 문화가 금지되던 시절이지만 누구는 <롱 베케이션>을 보고 기무라 다쿠야에 반하고, 누구는 X Japan의 음악을 따라 부르느라 목이 쉬었고, 누군가는 <이웃집 토토로>를 돌려 보느라 바빴다. 그리고 1996년은 단연코 아무로 나미에의 해였다. 그녀의 춤, 스타일, 음악 모든 것이 유행하던 시절. “난 이제 고작 열아홉일 뿐”이라고 노래하던 아무로 나미에의 모습은 지금 봐도 촌스럽지 않다.

    열일곱의 나이에 작사, 작곡까지 모든 걸 완성한 피오나 애플.

    Tidal – Fiona Apple

    당시 음악을 즐겨 듣던 친구들은 항상 편을 가르곤 했다. ‘메탈리카 vs 메가데스’, ‘블러 vs 라디오헤드’, ‘머라이어 캐리 vs 휘트니 휴스턴’ 등등. 친구들이 앨라니스 모리셋을 외쳤다면 난 피오나 애플의 팬이었다. 그건 단순히 음악 스타일이나 가사의 내용으로 규정할 수 없는 취향의 문제였다. 24년이 지난 지금도 그녀가 아직도 시대에 유효한 음악을 선보이는 것만 봐도 얼마나 뛰어난 뮤지션이었는지 알 수 있다. 게다가 지극히 1990년대스러운 뮤직비디오는 지금 봐도 당시의 충격이 떠오른다.

    당시 영국의 일렉트로닉 음악계를 대표하던 언더월드.

    Second Toughest in the Infants – Underworld

    1990년대는 일렉트로닉 음악의 전성시대였다. 매시브 어택(Massive Attack)과 팻보이 슬림(Fatboy Slim), 에이펙스 트윈(Aphex Twin)과 프로디지(The Prodigy), 케미컬 브라더스(The Chemical Brothers)와 포티셰드(Portishead) 등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귀가 떨어져 나갈 정도로 강렬한 비트부터 감성적인 멜로디까지 취향에 맞춰 골라 들을 수 있던 시절. 그래도 1996년의 비트는 단연코 언더월드의 몫이었다.

    에디터
    손기호
    포토그래퍼
    Courtesy Phot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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