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먹고 마시고 정치하라

2018.11.05

by VOGUE

    먹고 마시고 정치하라

    필라델피아와 워싱턴 D.C.를 10여 년 전 방문했다면 달라진 모습에 놀랄 것이다. 여전히 미국 역사, 정치의 중심지이지만 미식과 나이트라이프, 갤러리 등 라이프스타일에 민감하게 움직인다.

    필라델피아 시민들은 뿌리 깊은 역사의 도시에 산다는 자부심이 크다. 이제 미화와 공익의 상징이 된 2,000여 점의 벽화, 밀집한 갤러리, 다양한 미식과 쇼핑이 함께한다는 자랑까지 보태졌다.

    필라델피아, 벽화 따라 걷다 갤러리로 필라델피아 관광청의 제프리 요(Jeffrey Yau)는 뉴욕에서 필라델피아로 이사 왔다. “필라델피아는 5년 새 많이 변했거든요. 마치 소호의 확장 버전 같아요. 특히 미식 분야가 그래요. 이전에는 도시 중심부에 일하다가 곧장 외곽의 집으로 퇴근했다면, 지금은 레스토랑이나 바에서 남은 하루를 즐기죠. 시에서도 적극적이에요. 도시를 깨끗하게 정비하는 것은 물론 여름이면 매주 수요일마다 레스토랑의 해피 아워를 여는 등 작은 부분까지 신경 쓰죠. 의류와 신발은 면세 쇼핑이 가능하고 갤러리가 즐비하죠. 저보다 아내가 이곳을 더 좋아해요.” 필라델피아의 유서 깊은 호텔 ‘리튼하우스(Rittenhouse)의 이탤리언 레스토랑 스카페타(Scarpetta)에서 식사를 하던 제프리가 덧붙여 물었다. “필라델피아 하면 무엇이 생각나죠?“ 나는 톰 행크스 주연의 1993년 작 <필라델피아>의 풍경과 크림 치즈가 다였다고 양해를 구했다. 그는 마지막 날 ‘필리 치즈 스테이크’를 선물했다. 얇게 구워낸 쇠고기와 치즈를 듬뿍 넣은 샌드위치다. “크림 치즈보단 필리 치즈 스테이크가 이곳을 대표하는 음식이죠.” 1940년대부터 문을 연 캄포스 델리(Campo’s Deli)는 실베스터 스탤론이

    영화 <록키> 촬영 당시에도 즐겨 찾고, 많은 이들이 줄을 서는 원조집이다. 그는 아침 식사로 뱅크 앤 버번(Bank & Bourbon)의 팬케이크를 권했다. 블루베리 사워크림의 이 폭신한 팬케이크는 먹어본 것 중 최고였다. 이곳은 버번 마스터가 상주하는 바로도 유명해 저녁에도 붐빈다. 버번과 녹차, 레몬, 정제 우유로 만든 칵테일 시크릿 노크(Secret Knock)가 대표 메뉴다. 물론 한번은 리딩 터미널 마켓(Reading Terminal Market)에서 아침을 먹길 권한다. 이곳은 1892년부터 시작된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실내 시장으로, 베일러스 도넛 앤 샐러드(Beiler’s Donuts and Salads), 프레첼로 유명한 밀러스 트위스트(Miller’s Twist),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아이스크림인 바세츠 아이스크림(Bassetts Ice Cream) 등 상점 80여 군데가 있다. 시장답게 가격도 저렴하고, 여러 가게에서 먹을 거리를 사와 따로 마련된 테이블에서 먹을 수 있다.

    AKA UNIVERSITY CITY 펠리 클라크 펠리 아키텍츠(Pelli Clarke Pelli Architects)가 설계한 이곳의 가장 큰 장점은 필라델피아 경관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호텔 28층에 자리한 피트니스센터는 통창으로 일출을 보며 러닝 머신에서 뛰려는 사람들로 붐비곤 했다. 같은 층에 수영장과 정원, 바, 극장 등이 2,300㎡ 규모로 자리한다. 객실 268개를 갖추며, 레지던스 형태에는 주방과 거실, 세탁기까지 마련되어 장기간 머무르기 좋다. 호텔 1층에 자리한 월넛 스트리트 카페(Walnut Street Café)에서 조식을 즐겨도 좋다. 라 콜롬브(La Colombe) 커피와 로컬 요구르트를 즐겨 먹었다. 30분에 한 대씩 호텔에서 중심가로 이동할 수 있는 셔틀을 운행한다.

    필라델피아 관광을 시작하기 전 도시 풍경을 보고 싶다면 원 리버티(One Liberty) 전망대를 찾으면 된다. 57층 높이에서 360도로 내다볼 수 있다. 또 다른 비밀스러운 전망대는 로건(Logan) 호텔의 루프톱 라운지 어셈블리(Assembly)다. 잘 차려입은 젊은 남녀들이 샴페인을 부딪치는 이곳에선 조지 워싱턴 동상이 있는 중심지가 훤히 보인다. 이날엔 또 다른 본청 직원 킴벌리 바렛(Kimberly Barrett)이 초록색 티셔츠를 입고 나타났다. 이곳에서 나고 자란 그녀는 미식축구 팀 ‘필라델피아 이글스’의 광팬으로, 팀복을 입고 경기를 보러 가야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이글스의 승리를 기념하는 초록색 도넛을 선물하기도 했다. (맛은 색깔과 상관없었다.) 킴벌리는 이 도시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필라델피아는 미국 독립전쟁이 결실을 맺은 역사의 현장이기 때문이다. 그 상징인 ‘자유의 종’과 미국독립기념관, 성조기를 만든 베치 로스(Betsy Ross)의 집 등이 자리한다. 초대 미국을 만들었다는 이들의 자부심은 당연하다.

    요즘 필라델피아는 벽화 예술의 도시로도 불린다. 어느 주차장에서 5층 건물 높이의 커다란 벽화를 보았는데, 노예제도를 끝낸 에이브러햄 링컨과 프레더릭 더글러스를 기리는 내용이다. 시에서 필라델피아 벽화 프로그램(City of Philadelphia Mural Arts Program)을 추진해 도심 전체에 3,800여 점의 벽화를 그렸다. 현재는 2,000여 작품이 남아 있으며 이를 돌아보는 프로그램도 있다. 나는 은발의 65세 가이드와 함께했는데, 젊은 시절 도시에 벽화를 그리던 아티스트기도 했다. “벽화는 필라델피아를 바꾸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죠.” 한 벽화에는 노숙자를 돕는 전화번호가 쓰여 있다. 벽화를 통해 미적인 환기뿐 아니라 소외 계층을 위한 사회 공헌도 추구한다.

    필라델피아에는 미술관 거리(Museum District)도 있다. 그 시작은 필라델피아 미술관(Philadelphia Museum of Art)이다. 영화 <록키>에서 실베스터 스탤론이 훈련하던 미술관의 계단에서는 영화를 본 적도 없는 10대부터 전 연령층이 기념사진을 찍는다. 내년 3월까지 크리스찬 디올의 역사를 볼 수 있는 가 열린다. 필라델피아 미술관에서 바라보면 아름드리 가로수가 이어진 길이 보이는데, 그를 따라 프랭클린 과학 박물관(Franklin Institute Science Museum), 로댕 미술관(Rodin Museum), 예술 아카데미(Pennsylvania Academy of the Fine Arts) 등 크고 작은 갤러리와 문화시설 18군데가 이어진다. 그중 연못 정원에 끌려 반즈 재단 미술관(The Barnes Foundation)을 방문했는데, 의사였던 알버트 C. 반즈(Albert C. Barnes)가 설립한 곳으로 폴 세잔, 피카소, 르누아르, 고흐 등 주요 인상파 및 현대미술가의 작품을 볼 수 있다. 특히 르누아르 작품은 181점으로 단일 미술관으론 최다 보유다. 이곳은 알버트가 생전에 구성한 독특한 작품 배치가 흥미롭다. 모딜리아니가 그린 긴 목의 초상을 아프리카의 여성 목각과 함께 배치하는 식인데, 묘하게 어울린다. 또 다른 산책을 원한다면 아이비리그 중 하나인 펜실베이니아대학교(University of Pennsylvania)도 괜찮다. 드넓은 캠퍼스의 청춘도, 그들이 즐겨 찾는 맛집도 많다. 펜실베이니아대학교에선 2,644㎡ 규모의 인류고고학 전문 펜 박물관(Penn Museum)을 운영 중인데, 현재 리노베이션 중으로 2019년 9월에 정비를 마무리한다.

    킴벌리는 이렇게 덧붙인다. “뉴욕, 샌프란시스코, LA에 이미 가봤다면 그다음은 필라델피아가 되어야 할 거예요. 전과 달라진 필라델피아에는 갤러리, 음식, 쇼핑, 깨끗한 거리 산책까지 삶을 더 사랑하게 해줄 것으로 가득하거든요.”

    워싱턴에서 백악관, 국회의사당, 미술관에만 집중한다면 또 다른 매력을 놓치는 것이다. 미식과 호텔 문화를 선도하고자 새롭게 조성된 더 워프, 젊고 도발적인 문화와 세계 각지의 레스토랑이 밀집한 아담스 모건, U 스트리트 등에 들러야 한다.

    워싱턴, 링컨을 만난 후엔 브루어리로 워싱턴 D.C.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스포츠보다 치열하게 정치하는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의 배경인 국회의사당, 영화 <스파이더맨: 홈커밍>에서 스파이더맨이 타고 올랐던 워싱턴 기념탑, 더 위 세대라면 <포레스트 검프>에서 톰 행크스가 뛰어든 링컨 기념관 앞 인공 호수를 떠올릴 것이다. 물론 이것은 워싱턴 D.C.를 처음 방문하는 사람들의 필수 코스다. 국립공원관리청(NPS) 요원이 인솔하는 무료 도보 투어나 바이크 앤 롤(Bike and Roll DC), 시티 세그웨이 투어(City Segway Tours) 등의 자전거 혹은 세그웨이 투어로 주요 관광지를 돌아볼 수 있다. 혼자가 편하다면 시에서 운영하는 자전거 공유 프로그램을 이용해도 좋다. 나는 세그웨이를 타고 주요 관광지만 돌아보았는데도 반나절을 넘겼다. 링컨 기념관, 워싱턴 기념탑, 백악관, 국회의사당, 수많은 박물관과 미술관을 지나친다. 투어 후엔 개인적으로 국립 초상화 미술관(National Portrait Gallery)에서 버락 오바마 부부의 초상화를 보고, 워싱턴 국립 미술관(National Gallery of Art)에서 다빈치, 고흐, 고갱을 만나기도 했다. 박물관, 도서관 등 스미소니언 협회 산하 19개 문화시설은 모두 무료다.

    UNITED AIRLINES 유나이티드 항공이 매일 인천-샌프란시스코 직항 노선을 운항한다. 이 노선을 통해 미국 허브 공항인 시카고, 덴버, 휴스턴, LA, 뉴욕/뉴어크, 워싱턴 D.C. 등으로 환승할 수 있다. 물론 캐나다와 중남미 연결도 편리하다. 인천-샌프란시스코 직항 노선을 보잉 787-9 드림라이너로 운항 중이다. 기타 기종 대비 약 30% 커진 유리창은 투명에서 불투명으로 채도 조절이 가능하며, 다이내믹 LED 조명 시스템을 설치하고, 박테리아와 오염 물질을 제거하는 ‘HEPA’ 기술을 이용한 필터링 시스템으로 두통, 눈의 자극과 건조함을 줄여 장거리 비행의 피로를 줄였다.

    워싱턴 D.C. 관광청에서 근무하는 케이트 깁스(Kate Gibbs)는 다른 얘기를 한다. “물론 미국의 정치, 문화를 보여주는 중요한 장소죠. 하지만 이곳만 보고 돌아간다면 워싱턴의 진짜 매력을 놓치는 거예요. 가장 트렌디한 사람들이 모여 미식과 나이트라이프를 선도하거든요.” 그녀는 워싱턴 D.C.의 북서쪽에 자리한 지역 아담스 모건(Adams Morgan)의 펍 루퍼스 유니온(Roofers Union)으로 나를 이끌었다. 그곳에서 수제 맥주 30종을 주문했다.(물론 시음용 작은 잔으로) “10여 년 전만 해도 대기업이 맥주를 점령했지만, 요즘 워싱턴 D.C.에 수제 맥주가 부흥하고 있어요.” 워싱턴 D.C.와 그 일대에는 캐피털 시티 브루잉 컴퍼니(Capitol City Brewing Co.), 포트 시티 브루잉 컴퍼니(Port City Brewing Co.), 아틀라스 브루 웍스(Atlas Brew Works) 등 브루어리가 50여 군데다. <워싱턴 포스트>는 브루어리 안내 지도를 내놓기도 했다. 해가 지자 아담스 모건에 자리한 페루, 에티오피아, 일본, 한국 등 세계 각지의 레스토랑과 바가 붐비기 시작했다. 이 중 케이트의 단골은 한식을 선보이는 불 코리안 바 & 레스토랑(Bul Korean Bar & Resturant)이다. “언제 가도 만석이에요.” 페미니스트와 성 소수자를 위한 제품을 파는 아웃레이지(Outrage)처럼 개성 있는 가게와 클럽도 있다.

    이 거리의 하이라이트는 더 라인 D.C.(The Line D.C.) 호텔이다. 100여 년 된 교회를 호텔로 개조했다. 1층에는 ‘Full Service Radio’라는 인터넷 라디오를 송출하는 부스도 있다. 워싱턴 D.C.의 인플루언서, 뮤지션, 아티스트의 소식과 음악을 공유한다. 당일 라디오 부스에선 작은 파티가 열렸고, 디제이는 방문자 누구에게나 와인을 권하고 이야기를 나눴다. 이 호텔은 모두에게 열린 ‘민주적인’ 가치관을 지향한다. 호텔 내 요가, 러닝 등의 프로그램은 투숙객이 아니어도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당일 호텔 외관에는 트럼프를 비판하는 캠페인의 빔을 쏘았다. 로컬 아티스트인 로빈 벨(Robin Bell)의 공공 프로젝트다. “이게 진짜 워싱턴 D.C.라니까요. 도전적이고 새로운 것으로 가득하죠.” 로빈 벨 크루와 이야기를 나누던 케이트가 들뜬 기분으로 자랑했다.

    INTERCONTINENTAL AT THE WHARF 워싱턴 D.C.에서 새롭게 떠오르는 지역, 더 워프에 자리하는 호텔이다. 보스턴을 기반으로 한 디자인 스튜디오 파커 토레스(Parker Torres)가 가장 중점을 둔 것은 역시 뷰. 포토맥강을 바라보며 잠들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어느 날은 강 위에 펼쳐지는 불꽃놀이를 창문을 스크린 삼아 감상했다. 물론 루프톱 수영장과 레스토랑에서 언제든 리버 뷰를 즐길 수 있다. 특히 이곳 1층에 자리한 레스토랑 키스 앤 킨(Kith & Kin)은 꼭 들러보길. 셰프 크와메 온우아치(Kwame Onwuachi)가 캐리비안과 아프리카의 음식을 준비한다. 신선한 콩에 캐리비안 칠리 소스를 곁들인 브뤼셀(Brussels), 에티오피아 소스로 맛을 낸 패티로 웹 매거진 에서 최고의 버거로 선정한 햄버거도 있다. 396㎡(120평) 규모의 스파와 네일 관리 숍도 문을 연다.

    그녀는 아담스 모건 외에도 U 스트리트, H 스트리트, 듀퐁 서클(Dupont Circle) 등을 추천했다. U 스트리트는 미국 흑인 문화의 중심으로, 재즈의 전설인 듀크 엘링턴(Duke Ellington)의 고향이기도 하다. 당연히 곳곳에서 재즈 공연이 열리며, 바와 레스토랑도 즐비하다. H 스트리트는 아틀라스 퍼포밍 아트 센터(Atlas Performing Arts Center)라는 공연장을 중심으로 하며, 4월 중순에서 12월 중순까지 매주 토요일, 파머스 마켓이 열려 신선한 치즈와 과일, 꽃 등을 구입할 수 있다. 매년 H 스트리트 축제가 열릴 때면 예술 공연과 다양한 수공예 노점, 푸드 트럭을 즐기려고 수천 명이 모여든다.

    나는 더 워프(The Wharf)에 머물렀다. 포토맥강을 바로 앞에 두고 호텔과 레스토랑, 거대한 자전거 주차장, 보트 시설이 자리하는 지역이다. 작년에 거의 완공된, 그야말로 새롭게 뜨는 지역이다. 건물 대부분이 포토맥강을 바라보기에 가만히 경치만 봐도 좋지만, 원하면 수상 택시나 보트를 타고, 힘이 넘친다면 패들보트나 카누를 저을 수도 있다. 밤에는 앤섬(The Anthem)에서 열리는 공연을 봐도 좋다. 당시에는 핑크마티니의 콘서트가 예정돼 있었다. 한쪽에는 수산물 시장이 있다. 푹푹 김을 내며 쪄낸 대게, 갓 따온 굴 등을 저렴하게 살 수 있다. 물론 시장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운이 솟는다.

    10년 만에 워싱턴 D.C.를 찾은 사람이라면 늘어난 미식과 음악, 나이트라이프 공간에 놀랄지 모른다. 작년에는 워싱턴 D.C. 최초의 와이너리도 생겼으니까. 브루클린 와이너리(Brooklyn Winery)의 2호점인 디스트릭트 와이너리(District Winery)는 애너코스티아강을 마주한 더 야즈(The Yards)에 자리한다. 이곳에서 캘리포니아 일대 포도로 제조한 다양한 와인을 시음하고, 해당 레스토랑에서 마리아주할 수도 있다. 워싱턴 D.C.에 와이너리라니, 의아해하자 워싱턴 관광청의 바네사 카사스(Vanessa Casas)는 이렇게 얘기한다. “여기 사람들은 새로운 주류와 미식에 대한 호기심이 엄청나요. 그래서 와이너리까지 갖고 싶은 거죠. 다른 어느 곳보다 삶을 즐길 줄 아는 도시예요.”

      에디터
      김나랑
      포토그래퍼
      추종훈, 워싱턴 D.C. 관광청(Destination DC)
      스폰서
      BRAND USA(미국 관광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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