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혜진, 이현이, 김원경, 이금영의 ‘몸’ 이야기
근사한 몸매란 단순히 길고 가느다란 실루엣으로 정의되는 건 아니다. 세심한 정성과 긍정적인 자아 이미지가 투영됐을 때 비로소 아름다운 몸이 탄생한다. 여기 한국에서 가장 늘씬하고 건강한 아름다움을 지닌 톱모델 4명이 그들의 근사한 보디라인 속에 담긴 이야기를 전한다.
Han Hye Jin
2000년 3월 뾰로통한 표정으로 김중만의 카메라를 노려보던 소녀의 모습으로 처음 <보그>에 등장한 후, 지난 13년간 한혜진의 몸은 거의 매달 <보그> 지면 위에서 낱낱이 기록되고 사람들에게 찬양받아 왔다. 그녀의 몸은 충분히 그럴만했다. 선이 분명한 어깨와 짧은 허리, 길고 가느다란 팔과 곧게 뻗은 긴 다리는 탁월하고도 이상적인 ‘옷걸이’였다. 거기에다 모델 일에 대한 프로다운 욕심과 열정, 그리고 뛰어난 집중력이 더해지자 모델로서 그녀의 몸은 거의 완벽에 가까웠다. 그야말로 ‘리터칭’이 필요 없는 몇 안 되는 한국 모델 중 한 명으로서 자부심을 가질 만했다. 하지만 누구나 칭송하는 그 몸에도 정작 본인은 부족한 점을 발견하곤 낙담했다. “내가 가진 몸과 가지고 싶은 몸은 달랐어요. 전체적으로 밋밋하고 굴곡이 없는 몸이기에 다르게 변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죠. 왜 안 그렇겠어요?”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한혜진은 자신과 타인의 몸을 비교하지 않게 됐다. 자신보다 더 가늘고 날씬한 몸이나 성숙한 굴곡이 있는 글래머러스한 몸매가 아닌, 단단한 부감을 지닌 몸을 꿈꾸게 됐다. 태권도와 킥복싱으로 몸을 단련한 지젤 번천이나 직접 요트를 운전해 대서양을 건너는 다리아 워보이가 현재 그녀의 롤모델. 몇 년 전 해외 활동을 ‘올스톱’ 한 후 늘어난 2kg을 빼기 위해 시작한 운동이 그녀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준 셈이다.
1년 전부터 일주일에 세 번 퍼스널 트레이너와 함께 근력 운동과 유산소 운동을 시작한 이후 무엇보다 변한 건 몸이 반응하는 속도였다. “몸무게 수치가 중요하지 않다는 걸 깨달았어요. 오히려 근육과 체지방 비율이 원하는 실루엣을 결정짓는 데 더 큰 역할을 하더군요.” 그 결과 얻은 건 더 근사해진 실루엣뿐만이 아니었다. 인생의 반 이상을 하이힐 위에서 생활해온 그녀에게 약한 무릎은 고질병. 특히 해외에서 활동하던 시절, 뉴욕에서 쇼 스케줄 때문에 힐을 신고 달리다가 넘어진 이후 무릎은 더욱 약해졌다. “너무 심해져 무릎에 찬 물을 빼야 할 정도였어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약한 무릎을 보완하기 위해서라도 허벅지 근육을 발달시켜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죠. 이제는 무릎 통증이 사라졌어요.” 하루 종일 긴장 속에 화보 촬영이 끝나면 소리 없이 울부짖던 어깨와 허리의 근육통도 차츰 사라졌다. “몸의 유연성이 좋아지니까 포즈를 취할 때도 자유롭고, 스스로 원하는 부위를 돋보이게 하는 요령도 터득하게 됐어요.” 무엇보다 중요한 건 스스로의 몸을 조절하는 데서 오는 자신감이다. “이제서야 제 몸을 나 스스로 지배한다는 자신감이 생겼어요.” 운동을 통해 당당함이라는 소중한 보너스를 얻은 그녀의 몸이 비로소 자신에게 만족하며 행복해하고 있다.
Lee Hyun Yi
“자신의 몸에 100% 만족하는 모델이 과연 있을까요?” 몸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이현이가 얼른 대답했다. “영화 <픽처 미(톱모델의 일상을 날것 그대로 공개한 다큐멘터리)>를 보면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몸을 가졌다고 추앙받는 모델조차 완벽하게 만족하진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죠. 모델이라면 누구나 어느 정도 콤플렉스가 있을 수밖에 없어요.” 2005년 슈퍼모델 선발대회를 통해 데뷔할 당시만 해도 이현이는 자신의 몸에 불만이 많은 평범한 신인 모델이었다. 어린 시절 같은 반 아이들 보다 머리 하나가 더 크다는 이유만으로 멀리 뛰기와 단거리 육상 선수로 뛰었던 흔적은 유난히 근육이 발달한 하체에 그대로 남아 있다. 그에 비해 빈약한 상체에 좁은 골반은 신인 모델 이현이를 힘 빠지게 만들었던 것도 사실. 또, 해외 무대에 진출했을 때는 평생 받아본 적 없었던 ‘살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까지 경험했다. “저와는 아예 골격부터 다른 서양인 모델들과 함께 무대에 서자니 제 몸의 부족한 점이 더 생생하게 다가왔어요. 그들의 동그란 몸은 같은 사이즈라도 날씬해 보이게 하는 시각적 효과가 있지만, 납작한 제 몸은 아주 말라야 그들과 비슷하게 보였죠.”
이현이가 긍정적인 시선으로 자신의 몸을 만나게 된 건 4년 전 필라테스를 시작한 이후. 몸을 적극적으로 가꾸게 되면서 선이 고운 어깨 라인을 자랑스러워하게 됐고, 탄탄한 다리 라인이 단점이 아닌 장점임을 인정하게 됐다. “단점이라 생각했던 몸의 각 부분을 하나씩 가꿔가니 뿌듯한 만족감이 생겼어요. 단단하게 뭉친 종아리 근육을 풀어줘 길어 보이는 다리를 만들었고, 엉덩이 라인을 업 시켜 근사한 뒷모습을 만들 수 있었죠.” 원래부터 단아한 라인이 돋보였던 그녀의 몸은 노력한 만큼 더 근사해졌다. 선이 곱고 분명한 어깨 라인과 가늘고 단단한 상체는 누구보다 매니시한 룩이 잘 어울리는 모델로 그녀를 재탄생시켜줬다. 단점을 장점으로 바꾸니 자신감 또한 되찾게 됐다. 특히 매끈하고 탄탄한 이현이의 다리는 다른 모델들이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매력. “운동을 열심히 하고 모델 경험이 쌓여갈수록 몸을 직접 디자인해 나가는 기술도 터득하게 됐어요. 아마도 그게 제가 지닌 최고 장점일 거예요.” 몸을 평가하는 남들의 시선을 뛰어넘어 자신의 몸을 직접 디자인해 나가는 모델. 이런 자신감이야말로 그녀의 몸을 반짝반짝 빛내주는 역할을 하는 게 분명했다.
Kim Won Kyung
“글쎄요, 발목이 가장 마음에 들어요. 곧고 가늘어서 사진에 예쁘게 나오거든요.” 몸에서 가장 예쁜 부위를 묻자 발목을 꼽으며 가볍게 웃어넘겼지만, 김원경의 몸은 한국 모델 중 최고로 꼽힐 만하다. 유난히 길고 날씬한 다리에 적당히 굴곡 있는 가슴과 엉덩이, 그리고 가는 골격. 모델로서는 물론 여성으로서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아름다운 곡선이다. 그래서 매년 여름 수영복 화보를 기획할 때마다 <보그> 에디터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이름 역시 김원경. 열 여덟 나이로 <보그>의 논개 화보에 엑스트라 모델로 등장했던 것이 13년쯤 전인 99년. 그때나 지금이나 몸매에 거의 변화가 없다는 것도 모델로선 큰 장점이다. “아무래도 그땐 젖살이 남아 있었고, 지금과는 2kg 정도 차이가 나긴 해요. 얼굴 살이 빠진 것 말고 크게 변한 건 없어요.” 10년이 넘도록 175cm에 50kg란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는 건 타고난 유전적인 축복이 크다. “운동을 많이 하면 살이 금세 빠지는 편이에요. 근력 운동을 해도 근육이 잘 붙지 않죠. 그래서 전 그냥 저녁마다 집 근처에 있는 남산 산책로를 빠른 걸음으로 걷는 정도로 만족해요. 워낙 걷는 걸 좋아하거든요.”
헬스클럽에서 하는 근육 운동이나 필라테스 없이도 지금처럼 탄탄한 몸을 가지게된 비결은 오히려 평소 생활 습관에서 찾아볼 수 있다. 큰 키의 소유자가 그렇듯 몸을 구부정하게 하는 일은 없다. 꼿꼿이 허리를 세우고 어깨를 펴는 건 기본 중의 기본. 8자걸음 또한 상상할 수 없다. 곧게 무릎을 뻗어 내딛는 걸음은 우아할 뿐 아니라 다리 라인을 긴장감 있게 유지하는 데도 좋다. 심지어 침대에 눕는 순간에도 자세가 흐트러지는 법이 없다. 엉덩이 라인이 망가지지 않도록 옆으로 누워 자는 것에 익숙해진 그녀다. “처음엔 불편했지만 이제는 완전히 익숙해졌어요. 항상 꼿꼿한 자세를 취하는 습관이 원하는 실루엣을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된 것 같아요.” 물론 헬스 트레이너라면 근력 운동도 꼭 병행해야 하고, 약간 8자걸음이 일자걸음보다 좋고, 옆으로 자는 것 또한 척추 건강엔 해롭다고 말하겠지만, 현재 그녀의 건강은 완벽해 보인다. 열렬한 운동광이 아닌 대신 좀더 신경을 쓰는 건 차라리 매일 먹는 먹을거리. 피로를 없애는 칡즙, 소화를 돕는 천마즙, 피를 맑게 해주는 한약재를 달인 물을 늘 마시고, 건강에 해로운 음식들을 될 수 있는 한 멀리한다. “독소를 없애는 것만으로도 몸에 도움이 돼요. 그리고 항상 긍정적인 태도를 갖는 것. 몸에 대한 스트레스를 없애는 것만으로도 건강한 몸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해요.”
Lee Keum Young
일반적으로 패션 모델들이 완벽하게 짜인 라이프스타일을 유지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들쑥날쑥한 스케줄에 잦은 장거리 여행, 그리고 건강과는 거리가 먼 식단까지. 데뷔 4년 차인 모델 이금영은 이런 불규칙한 스케줄 가운데 건강을 유지하는 자신만의 방법으로 액티브한 레저 스포츠를 예로 들었다. 어렸을 때부터 즐겼던 수영은 물론, 스킨 스쿠버와 서핑까지 그녀는 물과 함께하는 스포츠를 특히 즐긴다. “러닝머신 위에서 뛰기만 하는 건 재미 없잖아요. 짜릿하게 스트레스를 날려버리면서, 몸에도 새로운 자극을 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에요.” 매일 즐길 수는 없지만, 모델다운 몸매를 갖추는 데 있어 이런 수상 스포츠는 확실히 도움을 준다. 예를 들어 서핑을 위해 보드 위에서 팔을 젓는 건 탄력 있는 어깨와 팔 라인을 만드는 데 안성맞춤. 보드 위에서 두 다리로 균형을 맞출때 필요한 긴장감은 탄탄한 다리 근육을 길러준다.
즐거운 몸 만들기에 빠져 있던 이금영에게도 ‘위기’는 있었다. “2010년 교환학생 자격으로 파리에서 1년 동안 지내면서 무려 13kg나 몸이 불었어요. 돌아와서 몸을 회복시키는 데 정말 엄청나게 고생했죠.” 하지만 이 과정을 통해 이금영은 몸에 대해 새롭게 바라보게 됐다. 말하자면, 몸은 사랑하는 만큼 아름답게 변할 수 있다는 것. 그 결과 과거 179cm 키에 가는 뼈대의 깡마른 소녀 모델에서 좀더 여성스럽고 탄탄한 몸을 지닌 멋진 모델로 변신할 수 있었다. 우선 군살을 빼기 위해 유산소 운동과 근력 운동을 병행했고, 식단을 조절하며 다이어트에 돌입했다. 그리고 지금의 몸은 데뷔 시절보다는 2~3kg 늘었지만, 라인이 뚜렷해진 건강한 몸을 지니게 됐다. 그리 좋아하는 수상 스포츠는 그 멋진 몸을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과거 모델 시절엔 전형적인 마른 비만형이었어요. 뼈는 가늘고 근육은 없는데 체지방은 많았으니까요. 정말이지 체중계 수치는 중요하지 않아요. 몸은 겉보다 속이 더 중요하죠. 체중은 더 나가도 체지방이 없고 탄탄한 몸. 그게 건강한 몸이에요.” 노력하는 만큼 정직하게 얻어지는 것이 우리의 몸. 지금 이금영의 몸은 그 평범한 진리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 포토그래퍼
- 강혜원
- 스탭
- 헤어 / 조영재, 조소희, 신동민, 메이크업 / 이미영, 오가영, 현윤수
- 기타
- 필라테스 기구 / 케어 필라테스(CarePilat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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