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갈리아노는 돌아올 수 있을까?
선원, 투우사, 나폴레옹, 혹은〈나비 부인〉핑커튼 중위처럼 차려입고 패션쇼 대미를 장식하던 존 갈리아노. 그의 피날레 퍼포먼스를 다시 볼 수 있을까? 갈리아노에 대한 뉴스가 계속해서 접수되는 지금, 그는 과연 패션계로 돌아올 수 있을까?
며칠 전, 존 갈리아노가 오스카 드 라 렌타 디자이너로서 계속 함께할 수도 있다는 뉴스가 떴다. 올가을 컬렉션 객원 디자이너로 참여한 후부터 그가 여든 살이 넘은 오스카 드 라 렌타의 후계자가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추측이 여기저기서 흘러 나온 상태. 하우스 측은 “갈리아노와 함께할 수 있는 길을 모색 중이지만, 아직 확실한 길을 찾지 못했다”라고 공식 입장을 전했다. 드 라 렌타 자신은 갈리아노를 향해 무한 신뢰를 보이고 있다. “모든 사람에겐 두 번째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내가 그 기회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이 무척 기쁘다.”
갈리아노가 드디어 어두운 터널을 벗어날 수 있을지 더 두고 봐야겠지만 지난 2년간 그의 거처를 둘러싼 소문은 한두 개가 아니었다. 지난달엔 연극 <The Importance of Being Earnest> 연출을 맡고 직접 출연하는 스티븐 프라이가 무대 의상 디자이너로 롤랑 뮤레, 사라 버튼과 함께 갈리아노를 고려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1982년 영국 국립극장에서 같은 공연이 열렸을 때 갈리아노가 그 역할을 훌륭히 수행한 것을 떠올리면 적역. 하지만 쟁쟁한 다른 두 후보를 제칠 수 있을진 아직 미지수다. 5월에는 뉴욕 파슨스에서 사흘짜리 특강을 준비 중이라는 발표가 났지만, 마지막에 취소됐다. 몇몇 학생이 갈리아노 수업에 반대하는 탄원서를 내며 항의했고, 결국 학교는 수업 대신 대규모 질의응답 시간을 갖자고 요청했다. 하지만 공개 재판이 될 가능성이 컸기에 갈리아노는 이를 거절했다. 그 전에는 모교 센트럴 세인트 마틴에서 강의할 것이라는 소문도 돌았다. 학교 측은 “지난 몇 년간, 갈리아노는 여성복 디자인 전공생들에게 주제를 정해주고 그 중 가장 뛰어난 작품을 선보인 학생들에게 따로 조언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했다”라고 입장을 전했다. “올해도 그는 선택된 12명 학생들과 만남의 시간을 가졌다. 하지만 이 외에 어떠한 수업도 예정돼 있지 않다.” 또 60년 만에 부활한 메종 스키아파렐리의 디자이너로도 이름이 한참 오르내렸다. 결국은 크리스챤 라크로와에게 돌아갔지만 말이다.
지방시를 거쳐 디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승승장구하며 패션계 대표 디자이너 중 한 명으로 군림하던 그가 대체 언제부터 이토록 소문만 무성한 채 실속 없는 구직자가 됐냐고? 그건 누구나 알다시피, 모두를 경악시킨 한 사건 때문. 디올 가을 쇼를 며칠 앞둔 2011년 2월 24일, 파리 마레 지구에 위치한 ‘라 페를’에서 술을 마시던 갈리아노는 옆자리 커플에게 “더러운 유대인 면상” “빌어먹을 동양 놈” 같은 언어폭력을 퍼부었고, 곧바로 경찰이 출동했다. 그리고 나흘 후, 영국 타블로이드 <더 선> 웹사이트엔 동영상 하나가 공개됐다. 라 페를에서 또 다른 여성과 말다툼 중인 갈리아노가 찍힌 휴대폰 영상. 여기서 그는 믿기 힘든 말을 내뱉고 만다. “나는 히틀러를 사랑해. 그 당시라면 당신 같은 사람은 지금 살아 있지 못할 거야. 당신네 어머니들, 조상들 모두 가스실에서 죽었을 거야.” 로맨티스트 갈리아노 입에서 나온 이 무시무시한 말에 패션계는 경악할 수밖에. 2006년 봄 컬렉션에서 그는 ‘모든 것은 아름답다’는 제목으로 체형, 키, 인종, 나이 등에 상관없이 다양한 모델들(히틀러가 봤다면 증오했을 만한)을 등장시키지 않았나. 사건 이후 시간은 아주 빠르게 흘러갔다. 디올 향수 모델, 나탈리 포트만은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하는 한 사람으로서 갈리아노와 다시는 함께 일할 수 없다”라고 선언했고, 디올의 CEO 시드니 톨레다노는 “그가 한 말들을 규탄한다. 그것은 디올이 오랫동안 지켜온 핵심 가치에 완벽히 반하는 것이다”라고 전했다. 가을 쇼 당일, 디자이너 대신 무대에 오른 톨레다노는 유대인으로서 자신이 느낀 고통을 숨기지 않은 채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고군분투하는 무명의 재봉사와 장인들이야말로 고동치는 디올 하우스의 심장”이라며 입장을 표명했다. 그리고 3월 1일, 사건 발생 일주일 만에 갈리아노는 디올에서 전격 해임됐다.
15년간 모든 열정을 쏟던 일자리를 하루아침에 잃은 갈리아노는 지난 2년 반 동안 무얼하고 지냈을까? 아리조나 재활 센터에서 의료진의 감시하에 치료를 받던 그가 패션계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은 그 해 7월에 열린 케이트 모스의 결혼식. 금색 세퀸들이 불사조 모양으로 박힌, 20년대풍의 낭만적인 시스루 드레스는 모스와 갈리아노의 우정은 물론, 디자이너로서 건재한 실력을 증명해 보였다. 그리고 올해 초, 오스카 드 라 렌타 스튜디오에서 3주간 함께하며 가을 컬렉션 디자인에 참여했다. 뉴욕 패션 위크 시작 전부터, 갈리아노가 드 라 렌타와 함께 피날레 인사를 할 것인지, 백스테이지에서 마지막 피팅을 보며 인터뷰에 응해줄 것인지 등에 대한 소문이 무성했다. 짐작대로 쇼 당일, 갈리아노는 나서지 않았다(수지 멘키스가 화장실에서 그와 마주쳤을 뿐). 모델이 입은 우아한 바이어스 커팅 드레스들에서는 그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지만.
변호사가 아닌, 갈리아노 자신이 대중들 앞에서 입을 연 것은 지난 6월 12일, 미국 PBS <찰리 로스 쇼>를 통해서였다. 생 로랑 수트 차림에 깔끔한 포니테일을 한 다소 낯선 모습의 갈리아노는 지난 이야기를 담담하게 털어놓았다. 7월호 미국 <베니티 페어>에서도 사건 이후 첫 인터뷰를 게재했다. 그런데 방송과 인터뷰를 통해 갈리아노가 강조하는 것은 동영상을 보고 그 자신이 가장 놀랐다는 사실. “저는 그것을 보고 토했어요. 거리에서 트럭이 제 옆을 휙 스쳐 지나가는 바람에 깜짝 놀라 다리에 힘이 풀려버리는 그런 기분이었죠.” 그는 <베니티 페어> 인터뷰에서 고백했다. “처음에 술은 목발 같았죠. 컬렉션이 끝난 후 왠지 허탈한 기분이 들 때마다 술을 마시곤 했습니다. 컬렉션이 거듭될수록 그런 일이 더 자주 일어났고, 저는 그것의 노예가 됐습니다. 그 후 잠을 잘 수 없어서 약을 먹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몸이 떨리는 것을 멈출 수 없어 또 다른 약을 복용했습니다. 마지막에는 손에 닿는 건 무엇이든 마셨어요. 하지만 저는 단 1초도 제가 알코올 중독자라는걸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갈리아노를 환자로 생각하는 중독 전문가들은 그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원인을 절대 알 수 없을지 모른다고 말하면서도 이렇게 분석한다. 해리스 스트레타이너 박사는 “필름이 끊긴 상태에서는 본래의 자신과 정반대 모습이 나타날 수 있어요”라고 설명한다. “사람들은 순간적으로 억압에서 해방됐다고 느끼기에 아무 말이나 막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것이 반드시 진심은 아니에요. 그냥 의식의 흐름을 스쳐 지나가는 것일 수도 있어요. 한마디로 뇌가 맛이 가는 거죠.” 결국 ‘취중진담’이 늘 맞는 소리는 아니라는 뜻. <베니티 페어> 인터뷰에서 그의 친구이자 쇼 음악 디렉터인 제레미 힐리는 사건 당일, 갈리아노의 마음 상태가 어땠는지 단서가 될 만한 얘기를 들려줬다. “동영상이 찍힌 시기는 그가 2011년 가을, 갈리아노 남성복 컬렉션에 대해 고민하던 때입니다. 영화 <지붕 위의 바이올린>과 루돌프 누레예프의 이야기가 쇼의 주제였어요. 당시 머릿 속엔 그 생각들로 가득했을 겁니다.” 누레예프가 뛰어난 무용가였을 뿐 아니라 유대인들에 대한 공격적 발언으로도 유명했던 것을 떠올리면, 세인트 마틴 시절 만난 유대인 존 플렛을 ‘인생의 사랑’이라 부르던 갈리아노 머릿속에 그런 반유대적인 생각이 어떻게 들어갔는지 짐작할 수 있다. 물론, 이건 하나의 가설일 뿐. 어쨌든 법정에서는 그가 신경안정제 중독으로 고통 받았다는 사실이 증거로 채택됐고, 2011년 9월, 그는 ‘출신, 종교, 인종, 혹은 민족 등을 근거로 한 공개적인 모욕’에 대해 유죄 판결을 받았고, 징역형 대신 6,000유로의 벌금과 집행 유예가 선고됐다.
지난 30개월 동안 갈리아노는 술을 마신 적이 없다고 한다. 그리고 그가 노력하는 만큼 패션계에서도 복귀를 기다리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보그>를 발행하는 콘데나스트 인터내셔널 CEO, 조나단 뉴하우스는 갈리아노와 런던 유대인 커뮤니티 사이에 다리를 놓고 있다. “갈리아노는 극심한 고통 속에서 어린아이처럼 투정을 부렸어요. 그렇다고 그가 목숨을 바쳐야 할까요? 저는 영국 최고의 랍비에게 그를 어떻게 해야 할지 물었어요. 그는 잘못을 한 누군가가 속죄를 원한다면 우린 환영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유대인인 뉴하우스는 갈리아노를 완전히 용서했다. 그리고 그의 도움으로 런던의 가장 오래된 정통 유대교회의 랍비, 배리 마커스와 갈리아노의 정기적인 대화가 시작됐다. 미국 <보그>의 안나 윈투어도 갈리아노의 복귀를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사람 중 하나다.
물론 여전히 그를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누구보다 직접적인 피해자인 LVMH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과 디올의 시드니 콜레다노. 사실 그들은 사건이 터지기 훨씬 전부터 그의 중독 문제로 고민해왔다고 한다. “몇 번이나 사죄 전화를 했지만 통화는 연결되지 않았어요. 최근에도 한 번 연락했지만 아직은 이르다는 답변을 받았죠”라고 갈리아노는 <베니티 페어>에 전했다. 그런가 하면, 이스라엘 텔 아비브의 디자인 대학에서 갈리아노에게 수업 요청을 했을 때, 그는 비행기표까지 샀지만 마지막 순간에 초청이 취소됐다. 부유한 대학 이사회 멤버가 갈리아노가 나타나면 학교에 대한 재정 지원을 철회하겠다고 협박했기 때문. 또 오스카 드 라 렌타 쇼 다음날, <뉴욕 포스트> 표지에는 ‘얼간이!’라는 제목으로 갈리아노의 모습이 등장했다. 여기에 그가 입고 간 옷차림(검정 수트, 챙이 넓은 검정 모자, 땋은 머리)이 유대교 의상을 조롱한다는 해석이 더해지자 엄청난 비난이 이어졌다. 갈리아노는 그날 입은 옷이 오랫동안 자신의 개인적 취향이었을 뿐이라고 해명해야만 했다. “직접 디자인한 챙 달린 벨벳 모자, 에드워드 시대풍의 코트, 돌체앤가바나 재킷, 무릎에서 조이는 헐렁한 새틴 반바지까지 누군가를 화나게 할 의도는 아니었어요. 저는 제가 멋스러워 보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런 식으로 옷을 입고 간 건 바보 같은 짓이었어요. 제가 어떤 식으로 오해받을 수 있을지 좀더 의식했어야 했죠.”
21세기엔 인종 구분을 짓는 것조차 무의미하게 느껴지지만, 현재 패션계에서 힘을 지닌 이들은 유대인이다. 그렇기에 반유대주의자로 낙인 찍힌 갈리아노가 돌아오는 것이 이토록 힘든 것인지도 모른다. 그에게는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까? “제가 절대 대답할 수 없는 질문 중 하나가 미래에 관한 것입니다. 저는 디자인을 할 줄 알아요. 그리고 디자인할 준비가 돼 있죠. 속죄를 통해 다시 한번 기회가 주어지길 바랄 뿐입니다.” 4만 명 이상이 시청한(지난 6개월 중 최고 시청률) <찰리 로스 쇼>에서 갈리아노는 이렇게 말했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저는 2년 전 일어났던 일에 대해 감사하고 있습니다. 저 자신에 대해 아주 많은 것을 알게 되었으니까요. 그동안 잊고 있던, 창작에 목말라하는 어린 소년을 다시 발견했습니다. 저는 살아 있습니다.”
- 에디터
- 패션 에디터 / 임승은
- 포토그래퍼
- Annie Leibovitz
- 기타
- PHOTO / WWD / MONTRO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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