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봄 진주 이야기
지구 상에 존재하는 보석 중 유일무이하게도 생명체 안에서 탄생되고 자라는 진주.
우아하기만 한 고전적 이미지를 벗어나 팜므 파탈과 펑크 이미지로 환골탈태한 2014년 봄 진주 이야기.
잘 알다시피, 진주는 진주조개 속에 티끌이 들어가 탄산 칼슘의 결정인 진주층에 박힘으로써 탄생되고 자라나는, 지구 상에서 유일무이한 살아있는 보석이다. 천연 진주(아코야, 마베, 남양, 흑진주, 담수진주)는 다이아몬드와 마찬가지로 컬러, 광택, 크기와 형태, 스크래치 등에 따라 등급이 나뉘는데, 진주층이 아주 두껍기 때문에 양식 진주에 비해 훨씬 광택과 컬러가 아름답다(현재는 인위적으로 진주 핵을 넣어 호수나 바다에서 키우는 양식 진주가 대부분이긴 하다). 코코 샤넬이 제아무리 ‘패션성’으로 인조 진주의 싸구려 이미지를 하이패션으로 승화시켰다 해도 진짜 진주의 고귀한 신분을 능가할 순 없는 법. 특히 여자들이라면 누구나 간절히 원하는 우아하고 고상한 이미지를 완성하기 위해 진주는 트위드 수트나 레이스 시폰 드레스, 파스텔 카디건 세트 등에 즐겨 매치됐다. 그래서인지 우리 여자들은 누구나 진주 귀고리를 손에 들면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처럼 촉촉한 눈빛과 청초한 메이크업까지 연출해야 제대로 해냈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그런데 올봄 클래식과 우아함이라는 단어에 갇혀 있던 진짜 진주가 변신을 시도하며 길거리로 뛰쳐나왔다면? 진주를 사랑한 코코 샤넬 덕분에 인공 진주가 하이패션에 입성하게 된 것은 멀고 먼 옛날이야기. 올봄엔 그 인공 진주가 아닌, 천연 진주들이 펑크족의 상징인 뾰족뾰족한 스터드, 가는 체인, 거친 철조망 모티브를 만났다는, 고정관념을 제대로 뒤집는 이야기다.
대표적인 진주 명문가 타사키는 패션 디자이너 타쿤 파니치굴을 영입해 대대적 리뉴얼을 감행했다. 송곳니나 가시를 연상시키는 모티브에 진주를 아슬아슬하게 세팅한 데인저 컬렉션, 뾰족한 갈고리 형태에 뽀얀 진주 한 알을 앙증맞게 박은 리파인드 리벨리온 등등. 또 실용적이고 위트 있는 의상을 전개하는 미하라 야스히로와 협업으로 탄생시킨 컬렉션에는 독수리, 가시넝쿨, 볼트, 옷핀 모티브를 진주에 장식했다. 타사키 코리아는 여전히 진주 하면 떠오르는 고정관념이 있다고 전한다. “격식을 갖춘 우아한 느낌이죠. 하지만 타쿤을 영입한 후 타사키 주얼리는 파격적인 모습의 패션 주얼리로 변신 중입니다. 이제 진주는 요조숙녀나 귀부인 이미지에서 벗어나게 됐어요. 캐주얼하게 진주 주얼리를 즐길 수 있게 됐죠.” 빅 주얼리 하우스의 담장 밖으로 벗어나면 좀더 자유로운 형태로 양식 진주가 활용된다. 코스튬 주얼리 브랜드 톰 빈스는 옷핀과 체인이 마구 뒤섞인 진주 액세서리를 꾸준히 선보이고 있다. 보드라운 비단 줄에 꿰어 있어야 할 진주가 옷핀과 가시에 마구 찔려 있는 모습에선 보수적 이미지에서 벗어난 진주의 일탈이 느껴진다.
청담동 멀티숍 슈퍼노말에 전시된 국내 주얼리 디자이너 서윤희가 선보이는 아델라이(Adelai)도 마찬가지. 그녀는 뭉툭한 메탈을 기본으로 담수진주를 새롭게 세팅했다. “순도 92.5%의 스털링 실버를 유화 처리해 낡은 청동 느낌을 줬습니다. 꽃 모양으로 만든 실버 위에 울퉁불퉁한 담수진주를 이슬처럼 세팅했어요. 이제 진주는 얌전한 스커트 수트나 원피스에만 어울리는 주얼리가 아니에요. 낡고 워싱된 데님 팬츠나 가죽 의상에도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주얼리 아틀리에를 운영하고 있는 디자이너 지동겸의 ‘진(Jinn)’에서도 천연 담수진주와 산화시킨 실버 체인을 이용한 새로운 진주 주얼리 타브(Tav) 컬렉션을 만날 수 있다. “히브리어로 십자가를 뜻하는 타브 컬렉션을 위해 은은한 블랙 펄이 감도는 담수진주에 쇠사슬과 십자가를 세팅했습니다. 천편일률적인 동그란 형태를 탈피해 울퉁불퉁 자유로운 형태가 매력적이죠.” 수작업으로 딱 하나씩만 만드는 진의 진주들은 샤넬 트위드 수트를 입고 록 페스티벌에 간 느낌! 이번 시즌 스티브앤요니 컬렉션에 등장한 뉴욕에서 활동 중인 주미 림(Joomi Lim) 진주 컬렉션도 마찬가지다. 진주와 스터드, 큼직한 크리스털 오브제를 믹스한 펑키한 진주 주얼리들이 스티브앤요니의 스트리트 감성 패션과 어울려 눈에 쏙쏙 들어왔다.
“진주가 지켜온 고정관념이 깨질 때가 됐어요. 컬러 스톤처럼 자신이 입고 싶은 의상에 따라 자유롭게 달라지는 진주의 매력은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이번 시즌 타사키에 합류한 하이 주얼리 디자이너 마리 엘렌느 드 타이야크의 설명처럼, 그동안 뽀얀 우유 빛깔과 함께 우아하고 얌전한 매력만을 뽐내던 진주가 베일을 벗었다. 더 이상 트위드 재킷이나 실크 블라우스, 캐시미어 카디건의 ‘짝궁’이 아니다. 낡은 청바지와 가죽 미니스커트, 컬러풀한 스포츠 룩과 스트리트 패션이 진주 주얼리의 새 친구다.
- 에디터
- 패션 에디터 / 김미진
- 포토그래퍼
- KANG TAE H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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