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쇼 민주화
소셜 미디어 플랫폼이 배타적 패션쇼의 빗장을 열었다고 환호했다. 그러나 가장 궁극적이고 최종적인 패션쇼 민주화는 이번 시즌에야 이뤄졌다. 모두의, 모두에 의한, 모두를 위한 쇼!
9월 2일 아침, SNS는 설렘과 조바심으로 들끓었다. “나는 지방시의 이름으로 오늘 회사에 지각하겠노라.” “지금 학교에서 티켓 신청 중.” “만약 날 초대하지 않으면 자해하겠음.” “패션의 신이시여, 제발 지방시 티켓 한 장만 갖게 하소서!” 지방시 쇼는 지난 몇 시즌 동안 참석하고 싶어 하는 사람 수에 비해 초대장은 다소 박한(꽤 큰 규모에도), 업계에서조차 ‘익스클루시브’ 쇼 중 하나였다. 그러나 첫 뉴욕 플래그십 스토어 오픈과 리카르도 티시의 하우스 입성 1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뉴욕에서 열린 내년 봄 쇼는 좁고 험난하던 출입구를 자비롭고도 시원스레 열어젖혔다. 어느 정도냐 하면, 패션계 울타리 바깥까지 닿을 만큼 아주 활짝!
“패션은 경이로운 동시에 매우 배타적이죠. 그렇지만 언젠가는 모두가 동참할 수 있는 장소에서 쇼를 열고 싶었어요.” 티시의 바람대로 패션계 인사와 셀럽을 제외한 1,200명의 ‘외부인’은 석양이 수평선을 물들이는 가운데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의 퍼포먼스가 펼쳐진 허드슨 강가 26번 부두에 설치된 지방시 쇼장을 가득 메웠다. 1,200명을 구성한 인원은 9월 2일 오전 10시부터 ‘givenchynyfw15.com’에서 온라인 신청을 받아 추첨한 1인 동반 입장 가능한 410명, 그리고 뉴욕 패션 스쿨(FIT, 파슨스, 프랫 인스티튜트와 패션계 고등학교) 학도 280명, 쇼장 근처 거주민 100명.
고작 몇 년 전만 해도 언론은 쇼장 안의 사람들이 어미 새처럼 분주히 ‘찍어 나른’ 온라인상의 사진이 패션쇼의 대중화를 실현했다며 법석을 떨었다. <WWD>가 ‘디지털 군중 스포츠’라고 표현한 패션 위크는 쇼장에서 살아 있는 모델이 코앞에서 바람을 일으키며 걸어가는 장면을 목격하더라도 스마트폰 액정 화면을 통해 다시 봐야만 쇼를 봤다고 안심할 정도였다. 그리고 실제 상황보다 가상의 이미지가 더 현실처럼 느껴질 때쯤, 지방시를 선두로 한 내년 봄 쇼에선 불가능하게 여겨지던 것을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다. 패션쇼 민주화의 가장 적극적이고 능동적 방식이라 할 수 있는, 다시 말해 패션계 외부인을 쇼장으로 초대하는 것.
‘외부인’을 쇼장으로 초대하는 이벤트는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쇼 시작 2시간 반 전부터 맨해튼과 브루클린 일부 지역에 한해 우버 앱을 통해 신청을 받은 랙앤본은 우버 VIP 차량으로 당첨자를 픽업, 쇼장에 초대하는 깜짝 이벤트를 마련했다. 랙앤본의 디자이너 데이비드 네빌은 라이브 스트리밍보다 ‘한발 더 나아간’ 단계를 원했다. “우버와의 협업을 통해 고객과 이어지는 쿨한 방식의 경험적 마케팅을 시도했습니다. 초대된 고객들은 우리 브랜드의 본질을 보다 가깝게 느낄 수 있죠.”
그런가 하면 마크 제이콥스는 귀여운 체제 전복적 쇼 방식으로 패피들을 당황케 했다. 자랑스레 초대장을 흔들며 뉴욕의 역사 깊은 단일 상영관 지그펠드의 미로 같은 복도와 계단을 통과해 영화관 의자에 착석한 이들은 쇼 직전, 공짜 팝콘과 스낵을 우물거리며 초대받은 자의 여유를 한껏 누렸다. 그러나 쇼가 시작되자마자 아연실색할 수밖에! 모델들이 영화관 바깥의 도로 위에 설치된 레드 카펫으로 등장했기 때문. 간절하게 펜스에 달라붙어 있던 행인들과 초대장 없는 이들이 더 먼저, 훨씬 가까이, 그리고 보다 수월하게 룩을 감상했고(좋은 각도의 사진까지 건졌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고) 모델들이 극장 안으로 들어올 때까지 실버 스크린을 통해 지켜본 이들은 의자에 고정된 채 한동안 말문이 막혀버렸다. 결국 누군가의 허탈한 목소리가 어색한 정적을 깼다. “이거 아주 멋지구먼!”
“전부 값비싼 것과 저렴한 것이 공존하죠. 모든 게 뒤섞여 있습니다.” 마크 제이콥스의 말처럼 외부인을 쇼장으로 들인 디자이너들은 쇼 구성을 다채롭게 하는 데 유난히 공을 들였다. 그림 같은 장소와 한 편의 시 같은 행위 예술이 있었던 지방시, 브루클린의 담배 창고를 개조한 공연장에서 맥주와 감자칩, 팝콘, 그리고 톰 요크의 배경음악으로 한껏 분위기를 돋운 랙앤본, 오케스트라의 화려한 라이브 공연과 옛날 극장 같은 연출로 만사가 시시한 패피들 조차 들뜨게 만든 마크 제이콥스까지.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지만, 지금껏 뉴욕에서 흔치 않던 이런 일련의 장치는 온라인으로 패션 세계를 충분히 경험했다고 믿는 이들에게 메시지를 전하는 듯 보였다. 이를테면 실제 눈앞에 펼쳐진 실제 상황은 온라인 세계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오감을 자극하는 것으로 풍요로우며 빠르고 가볍게 소비되지 않을 가치가 충분하다는 사실.
오감을 자극하는 아날로그적 미학으로 가득한 패션쇼는 가상 세계와 현실 세계가 동등한 가치를 지닌 시대에 태어난 젊은이들에게 압도적 경험을 선사했을 것이다. 그러나 패션 민주화에 불을 붙인 것이 소셜 미디어인 만큼, ‘신문물’에 최적화 된 방식으로 소비자와 접촉하는 디지털파들도 있다. 라이브 스트리밍은 이제 기본 중의 기본이며, 대화창으로 현장감을 더한 트위터의 실시간 TV 앱 페리스코프가 새로 등장했다(제레미 스캇). 또 CFDA 인큐베이터 출신 디자이너 미샤 노누는 런웨이나 프레젠테이션 대신 인스타그램으로 새 컬렉션을 발표했다. 와우! “패션쇼는 장소에 구애받을뿐더러 특정 그룹 사람들만 대상으로 합니다. 내가 원하는 건 기자, 바이어와 함께 고객을 초대하는, 그러니까 좀더 글로벌하고 포괄적인 형태입니다.” 패션 위크를 통틀어 이 쇼만큼 모두에게 공평한 조건 아래 발표된 쇼가 없다는 것은 확실하다.
애플에서 이미지 전문가를 영입하고 광고 이미지를 인스타그램으로 처음 공개했던 DKNY는 쇼 직후 기자들에게 자문을 구하던 ‘베스트 룩’ 선정을 대중에게 직접 물었다. 알렉산더 왕 역시 10주년 기념 캡슐 컬렉션을 구성할 지난 시즌의 베스트 룩을 트위터와 인스타그램 피드백으로 결정했다. “소셜 미디어는 사람들과 소통하는 진실하고 즉각적이며 민주주의적 방식입니다”라고 알렉산더 왕은 말했다. “전 세계 우리 팬들과 직접 대화하고 즉각적 피드백을 받을 수 있다는 건 고마운 일이죠.”
패션쇼가 셀럽과 블로거들의 잔치로 혼란스러웠을 때, 오스카 드 라 렌타는 2회로 치르던 자신의 쇼를 1회로 줄이고 엄격하게 선정한 이들만 초대자 명단에 올리는 강수를 뒀다. 급격한 변화와 혼돈의 시기를 거쳐 패션쇼는 예전보다 정돈됐고 대중과 소통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중이다. 다음 시즌엔 또 무엇이 등장할지 모른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패션쇼가 더 이상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그들만의 리그는 아니라는 것.
- 에디터
- 송보라
- 포토그래퍼
- COURTESY PHOT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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