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겨울에 등장한 패치워크 모피
디자인 완성도를 위해서든, 새로움과 재미를 위해서든, 혹은 환경보호를 위해서든 이제 모피 테크닉이 갈수록 발전하고 있다. 그리하여 2015년 겨울에 등장한 건 바로 패치워크 모피!
지금까지 유행한 모피의 계보를 살펴보자. 자연스러운 본연의 색감을 살린 밍크와 세이블, 링스 같은 호화스러운 모피가 각광받던 시절을 지났다. 그런 뒤 소매를 떼어낸 조끼로 캐주얼한 멋을 즐기기 시작해 와일드한 양털과 여우털에서 다시 호사스러운 모피 본연의 멋을 찾았다. 실용적인 모피 조끼에서 큰 재미를 본 우리 여자들은 힘들이지 않고 멋을 낸 모피 야상에(안감에 각종 값비싼 모피를 덧댔다) 눈길을 돌렸다(작년 겨울 패션 거리를 강타한 ‘미스터앤미세스퍼’의 유행을 떠올려보라). 그러는 동안 인조 모피는 주머니가 가벼운 멋쟁이들과 패션 비건족으로부터 각광받으며 나날이 진화에 진화를 거듭해왔다.
하지만 모피는 여전히 화려한 색상이나 소재보다 모노톤을 고집해온 여자들에겐 두려운 존재다. 솔직히 말해 오랫동안 모피가 추구해온 한 가지 타입의 디자인(주로 ‘올드’하거나 ‘글래머러스’한 이미지)과 흔해빠진 컬러(블랙과 브라운)가 더는 동시대적이지 않다. 또 ‘쎈’ 언니 느낌의 거대한 볼륨은 ‘오버’해서 꾸민 여자처럼 시대에 동떨어진 이미지를 주기 일쑤. 그 모피가 여자들을 배려하는 디자이너들 덕분에 현실감각을 더했다. 세련된 야상의 안감으로 쓰이는 것뿐 아니라 클래식한 헤링본 코트의 가장자리를 장식하거나 캐주얼한 스니커즈를 장식하는 등등. 이렇듯 다양한 색감과 중성적 터치(리본이나 러플, 잘록한 허리 라인을 없앴다)로 우리는 재치 있게 모피를 즐기게 된 것.
PATCHWORK GAME
기록할 만한 한파가 들이닥친 올 초 뉴욕 패션 위크(1934년 이후 가장 추운 겨울로 기록됐다)에서 두툼한 파카와 모피가 부각되는 건 아주 자연스러운 풍경이었다. 체감 기온 영하 20℃가 넘는 잔혹한 날씨에 시내 곳곳의 쇼장을 전전해야 하는 기자와 바이어들에게 파카와 모피는 선택이 아닌 필수. 일생일대 가장 추운 겨울을 뉴욕에서 경험한 나 역시 밍크 코트 세 벌과 여우 코트 한 벌로 극한의 일주일을 견뎌야 했다. 그렇다 보니 아무래도 내 관심은 전세계에서 몰려든 멋쟁이들의 모피 룩와 런웨이 모피 스타일에 꽂힐 수밖에. 그러던 중 런웨이와 리얼웨이 모피의 공통된 흐름이 포착됐으니 바로 멀티 컬러링이다. 톰 포드 쇼에는 조각보처럼 다양한 블루 톤 밍크 조각을 패치워크한 롱 코트와 다양한 질감의 밍크와 아스트라칸을 믹스매치한 코트가 등장했다. 또 마크 제이콥스, 프라발 구룽, 타쿤 캣워크는 물론, 런던의 프린, 록산다, 밀라노의 펜디, 마르니 등등도 마찬가지. 소재 믹스, 그래픽,컬러 블로킹 등 이번 시즌은 모피 가공의 종결을 보여주는 듯 다양한 믹스매치가 부각됐다.
“지난 시즌까지는 각각의 모피를 구분하기 힘들 만큼 미묘하게 믹스했다면, 이번에는 길이나 색깔, 소재를 대비시켜 믹스 효과를 극대화한 게 특징이죠.” 여우털, 시어링, 밍크가 믹스된 모피 코트를 들춰 보이며 펜디의 모피 달인들이 설명했다. 톰 포드 모피와 마찬가지로 믹스의 효과는 인상적이었고 펜디가 들인 정성이 한눈에 다 보였다. 모피의 드라마틱한 변화는 마르니 캣워크에서도 나타났다. 질감을 살린 컬러 블로킹과 패턴 플레이가 특징인 모피의 등장이 그것. “보시다시피 밍크, 폭스, 짧은 양털의 믹스가 많아요”라고 마르니 숍마스터가 얘기했다. “지나치게 ‘드레시’해 보이지 않고 안에 입은 옷이 뭐든 돋보이게 할 만큼 세련됐죠.” 페라가모 쇼룸에서는 적어도 다섯 가지 이상의 컬러를 촘촘히 연결한 시어링과 밍크 코트를 구경할 수 있었다. “컬러는 훨씬 더 대담하고 강렬해졌어요. 가령 밍크 코트 한 벌에도 여러 색깔을 더해 다른 소재처럼 보이게 했습니다.” 아쉽게도 이 두 아이템은 한국에 바잉되지 않지만, 같은 시리즈의 컬러 블로킹 모피는 이미 매진되거나 예약이 끝난 상황.
“패치워크 가공은 70년대부터 시작됐습니다. 펜디 하우스가 지속적으로 선보인 기술이죠. 소재, 색깔, 패턴에 변화를 주며 끊임없이 변화를 주고 있습니다.” 펜디 하우스는 아티스트 소피 토이베르 아르프 작품에서 영감을 얻은 이번 컬렉션에도 패치워크 테크닉이 생생하게 적용됐다고 덧붙였다. 시어링과 여우털, 밍크가 주요 소재인 만큼 볼륨도 ‘익스트림’급. “펜디 모피 컬렉션에는 클래식 라인과 런웨이 스타일이 공존합니다. 매장에만 진열되는 클래식 모피도 매 시즌 트렌드와 적절히 균형을 맞춰 디자인합니다.” 충분히 입을 수 있는 클래식 컬렉션 못지 않게 컬렉션 모피 역시 인기가 좋다. “대부분 기존 모피 쇼핑 고객의 재구매로 이어집니다. 이미 모피를 많이 입어본 고객들이 ‘컬렉션 피스’처럼 과감한 모피를 시도하죠.”
다양한 모피를 경험한 모피 마니아들이 계속해서 새로운 스타일을 찾는 건 프라다도 마찬가지다. “난이도 높은 모피 신기술이 개발될 수밖에 없는 이유죠.” 프라다 하우스는 매년 봄, VIP 모피 고객들을 위해 ‘오더메이드 서비스’를 진행한다. “주문 후 3개월이면 세상에서 ‘유일무이’한 모피 옷을 받을 수 있습니다. 런웨이와 별도로 디자인되지만 시즌 컨셉과 맞추죠.” 파스텔 색조가 특징인 이번 시즌엔 그런 컬러를 많이 활용했다고 프라다 하우스는 덧붙인다. “두세 가지 이상의 색깔을 믹스하는 컬러 블로킹 디자인이 많았죠.”
남들과 다른 옷에 대한 욕구는 모피 쇼핑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매장에 진열된 모피 의상보다 주문 제작이 더 인기를 끄는 이유가 그것이다. 이런 욕구는 젊은 멋쟁이들에게 더 강하게 드러난다. 그래서 모피 업계는 젊은 고객을 공략하기 위해 날이 갈수록 동시대적이고 신선한 디자인 개발에 몰두한다. “색깔을 많이 쓰면 아무래도 모피 특유의 무겁고 나이 든 느낌을 피할 수 있습니다.” 모피 브랜드 ‘더페더’ 디자인팀의 설명이다. 하지만 다른 색감과 소재를 조화시키다 보면 모피 사용량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고 전한다. “예전의 패치워크가 주로 남는 모피의 믹스로 이뤄졌다면 요즘 패치워크는 치밀하게 계획된 소재 믹스로 완성됩니다. 그래서 더 비싸질 수밖에요.”
그런데도 모피 소비 연령층이 갈수록 낮아지는 이유는 뭘까? 부드러운 소재, 실용적이고 스포티한 디자인, 과감한 원색 등 우븐처럼 스타일링 범위가 무궁무진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기존 모피에서 느낄 수 없던 강렬함까지. 지난겨울 모델 수주는 ‘샌디 리앙(양털과 밍크, 가죽을 컬러풀하게 해석해 패션 피플들로부터 전폭적 지지를 받고 있다)’의 패치워크 양털 코트로 모피 스타일링의 재미를 경험했다. “디자인이 좀 튀잖아요? 샌디 리앙을 입으면 어딜 가든 주위 시선이 느껴져요. 저 역시 흔치 않은 모피를 입었다는 특별한 느낌도 좋았죠. 포근함은 물론이죠.” 그런가 하면 안나 델로 루소가 입은 마이클 코어스 2013년식 카무플라주 밍크는 수많은 모피 메이커와 여자들에게 발상의 전환을 선사했다. 밀리터리 아이템도 모피가 될 수 있다는 사실. 그 영향인지 작년 가을 편집매장 ‘수퍼노말’에 진열된 비슷한 컨셉의 ‘라콤펠(Lacompel)’ 밍크 컬렉션은 2,000만원대의 고가에도 바로 솔드 아웃!
모피를 즐길 수 있는 겨울을 어느 계절보다 좋아하는 나역시 샌디 리앙의 아름다운 밍크 코트와 델로 루소가 입은 것과 비슷한 카무플라주 패치워크 밍크를 손에 넣기 위해 고군분투하게 만들었다. 덕분에 과감한 패턴의 밍크 코트는 나의 겨울을 즐겁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어딜 가든 모피를 입고 등장할 때면 쏟아지는 관심(“대체 누가 디자인한 거죠?” “어디서 살 수 있어요?” 등등)과 부러움이 어깨를 으쓱하게 만든 것도 사실이니까. 자타 공인 모피 마니아답게 얌전한 세이블과 밍크부터, 몽골리안 램, 송치, 티베트램, 여우털, 모피 야상까지 세상의 온갖 모피를 경험해본 내가 올겨울 적극 추천하는 스타일은? 예쁜 컬러 블로킹이 가미된 밍크! 그건 시어링 소재를 즐겨 사용하는 끌로에의 클레어 웨이트 켈러의 말처럼 편안하고 고급스러운 느낌을 준다. “모피는 가장 간결한 형태일 때 더 모던합니다.” 그녀의 얘기대로 고급스럽지만 힘을 빼고 입는 것이야말로 이번 시즌 모피 스타일링의 포인트(내 경우엔 편안함과 모던한 멋을 내기 위해 와이드 데님, 그리고 하이톱이나 스니커즈처럼 캐주얼한 요소를 가미한다).
BOLD MOVE
몹시 추운 날씨에 멋스러워 보이고 싶다면 눈밭을 뒹굴어도 끄떡없이 치렁치렁한 여우나 몽골리안 램코트만 한 게 없다. 펜디 매장엔 대형 베이지색 여우털 코트(물론 밑단을 흰색 여우털 조각과 패치워크해 완성했다)가 쇼윈도에서 나를 유혹했다. 호두 맛 아이스크림처럼 부드럽고 풍성하고 두툼한 모피 코트를 보자마자 나는 이 코트를 걸친 지드래곤이나 리한나 같은 젊은 패셔니스타의 모습을 떠올렸다(펜디 매장 스태프들은 키가 아주 큰 적임자가 나타나 쇼핑하길 원하는 눈치였지만). 그것은 현실과 동떨어진 요부 이미지보다 동시대적 ‘아우라’를 풍겼다. 루이 비통의 ‘익스트림’한 양털코트 역시 납작한 스니커즈를 즐길 줄 아는 아가씨들에게 현대적 이미지를 부여할 것이다. 극지방 탐험을 즐기며 극한 상황에서도 살아남는 여성상을 원했던 니콜라 제스키에르의 소망대로 북극곰처럼 커다란 오버사이즈 양털 코트 한 벌이면 혹한에도 끄떡없다.
FAKE PLAYER
감각적이고 실용적인 밍크와 여우털이 모피 축제의 서막을 열긴 했지만, 인조 모피의 인기 역시 여전히 뜨겁다. 인조 모피 생태계에서 눈길을 끈 건 풀 스커트와 파자마 수트에 와일드한 폭스 재킷 대신 그래픽 패턴의 인조 모피 코트를 매치한 푸시버튼이다. 디자이너 박승건은 부드러운 모드아크릴 합성 소재에 비비드 컬러와 스트라이프, 하운드 투스 체크를 곁들였다. 이렇게 완성된 재치 만점의 블루종과 오버사이즈 코트는 올겨울 또 다른 패션 거리에서 주목받을 것이다. “인조 모피는 ‘싸구려’라는 인식이 강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인조 모피만으로도 품질 좋은 옷을 제작할 수 있어요.” 인조 모피의 다양한 색감과 프린트, 갈수록 발전하는 인조 모피 제작 기술 덕분에 날씬한 스타일을 즐기는 데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푸시버튼 외에, 스티브앤요니, 카이, 럭키슈에뜨, 202팩토리, 래비티 등에서 감각적이고 동시대적인 인조 모피 아이템을 쇼핑할 수 있다. 아울러 인조 모피의 대대적인 유행을 이끈 런던의 쉬림프와 샬롯 시몬 같은 라벨까지.
“모피가 완전히 변했어요 이제는 ‘레디투웨어 패브릭’입니다.” ‘더페더’의 소재팀은 가죽이나 패딩처럼 더 많은 모피를 패브릭과 믹스할 거라고 전망한다. 이런 21세기 모피엔 어떤 스타일링이 적절할까? 한국 모피 브랜드 ‘Ds Furs’의 디자인팀은 스트리트 감각이 관건이라고 조언한다. “너무 빼입은 것보단 이너웨어와 하나 되는 느낌으로 자연스럽게 연출하는 것이 더 근사합니다.”
- 에디터
- 손은영
- 포토그래퍼
- ZOO YONG GYUN, GETTYIMAGES/MULTIBITS, INDIGITAL, COURTESY PHOTOS
- 모델
- 배윤영
- 스탭
- 헤어 / 안미연, 메이크업 / 오미영, 세트 스타일링 / 최서윤(Da;r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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