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INTO ATELIER – ② JOHAN CRETEN (요한 크레텐)
아틀리에는 한 예술가의 모든 것이 시작되는 비밀스러운 공간인 동시에 한 인간의 열정과 고독, 자유와 욕망을 품은 일상의 통로이다. 창간 20주년을 맞이한 〈보그〉가 파리, 브뤼셀, 베를린, 도쿄, 뉴욕 등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인 작가 10인의 작업실을 찾아 ‘오늘의 예술’을 포착했다. 예술가의 시공간에서 출발한 패션 모먼트는 동시대성의 또 다른 기록이다. ▷ ② JOHAN CRETEN (요한 크레텐)
JOHAN CRETEN in PARIS
벨기에 출신의 예술가 요한 크레텐은 젊은 시절 25년 동안 멕시코, 뉴욕, 유럽 다수의 도시를 여행하듯 떠돌며 ‘노마드 예술가’로 살았다. 생마르탱(Saint-Martin) 운하가 한눈에 들어오는 이 운치 있는 아틀리에는 그가 10년 전 처음으로 둥지를 튼 곳이다. 네덜란드, 벨기에, 뉴욕 등에 위치한 그의 다른 작업실이 작품을 제작하고 보관하는 기능에 충실하다면, 이 복층 공간은 보다 본질적이다.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스케치를 하고, 모형을 만드는 등 모든 작품이 시작되는 곳. 대표작인 거대한 독수리 조각 ‘Pliny’s Sorrow’의 축소 모형이 눈에 띈다. 동시에 컬렉터로서의 면모를 엿볼 수 있는 ‘호기심의 방(Cabinets de Curiosité)’이기도 하다. 16세기 태피스트리를 비롯해 르네상스 시대의 조각상, 빅토리안풍의 앤티크 가구, 원시시대의 기운을 품은 조각품, 동물 박제, 사진 액자와 스케치까지 혼재되어 있다. 이들은 다양한 시대의 문화적 산물인 동시에 취향을 넘어 예술적 계보와도 관련이있다. “형태, 제작 기법뿐 아니라 신화적, 종교적 도상이 지닌 역사, 사회, 정치적 비하인드 스토리에도 관심이 많아요.” 아름다운 형태 안에 날카로운 메시지를 담은 그의 작품과도 일맥상통한다. “미래를 알기 위해서는 과거를 알아야 해요.”
요한 크레텐은 21세기의 대표적인 플랑드르 예술가다. 플랑드르는 벨기에의 한 지역으로 통용되지만, 미술사에서는 16세기까지 네덜란드와 벨기에에서 발전한 미술, 즉 건축, 조각, 태피스트리, 회화 등을 가리킨다(‘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를 그린 요하네스 페르메이르나 ‘아르놀피니의 결혼’ 등의 얀 반 에이크 형제 그리고 루벤스도 여기에 포함된다). 요한 크레텐은 그중에서도 도예 기술을 통해 플랑드르 미술을 잇고 있는 몇 안 되는 미술가 중 하나다. 언젠가부터 현대미술에서 도외시된(심지어 금기로 통해온) 도예 기술은 요한 크레텐의 재기 넘치는 사유, 청동 작품 같은 소재와의 만남, 조각에 대한 혁신적인 비전과 결합해 잠재력을 품은 새로운 분야로 거듭나고 있다.
전통성과 현대성의 간극에서 해석의 여지는 더욱 풍부해진다. 이를테면 ‘New York Glory’는 구조적으로 꽃과 같은 자연의 일부에서 가져온 듯하지만, 뫼비우스의 띠처럼 얽힌 도시의 도로를 떠올릴 수도, 종교적 뉘앙스의 제목 ‘글로리’를 통해 그 이상을 상상할 수도 있다. 동물, 새의 형태를 한 작품이 단순한 묘사를 넘어 인간의 위치나 책임감 등 존재를 묻는 우화임을 짐작할 수도 있다. 2014년 <뉴욕타임스>의 은 앤트워프 미들하임 박물관 조각 공원에서 열린 전시 을 다루며 이렇게 썼다. “크레텐의 작업은 우리 모두의 내면에 존재하는 폭풍과 이야기한다. 개인적으로, 사회적으로. 그리고 오랜 테마인 자연, 여성, 힘, 정치, 영혼으로 말이다.”
촬영 중간중간 작가가 건넨 몇몇 문장은 현시대 모더니스트들이 오해할 수 있는 지점을 바로잡는다. “내가 생각하는 모더니티는 과거와의 완전한 단절, 균열이 아닙니다.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길고 점진적인 움직임이죠. 이를 위해서는 우리의 과거, 진화의 역사뿐 아니라 우리가 저지른 오류까지도 철저히 대면해야 합니다.” 그의 작품이 그렇다. 오는 10월 22일부터 열릴 전이 그 제목처럼 그의 ‘전공’을 일별하는 자리가 될 거라는 기대가 더욱 커지는 이유다.
- 에디터
- 윤혜정
- 포토그래퍼
- Hyea W. Kang, Courtesy of the Artist
- 모델
- 곽지영
- 헤어
- Mike Desir@B Agency
- 메이크업
- Christina Lutz@B Agency
- 비주얼 디렉터
- 김석원
- 현지 인터뷰 진행
- 정혜선(파리 통신원)
- 프로덕션
- 배우리(Woori BAE)
- 어시스턴트
- 최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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