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ever Jang Mi Hee
장미희는 시대를 관통하는 뮤즈다. 그녀가 건재한 건 ‘세상에 알려진 장미희’와 ‘존재로서의 장미희’와의 줄다리기에서 한 번도 져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영화 데뷔 40주년을 맞이한 그녀가 팔색조의 매력이 담긴 기념비적 화보를 남긴다. 시간이 지나도 동시대성을 잃지 않을 영원한 아방가르드, 장미희!
우리가 만난 날은 장미희의 생일이었다. 인스타그램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화가 중 한 명인 루치안 프로이트의 생일임을 친절히 알려준 날이기도 했다. 작은 꽃을 사 들고 그녀를 만나러 가던 길, 그 때문인지 느닷없이 장미희가 그의 그림 ‘Girl with a White Dog’ 속 여자와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루치안 프로이트의 초상화라면 강박적일 정도로 사실적인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유독 이 작품에서는 여자 본연의 품위와 고독, 도발과 사연이 은은하게 느껴진다.
아침에 미역국은 드셨어요?
아니요, 커피만 마시고 나왔어요. 평소엔 달걀 한 알, 사과 한쪽 그리고 카푸치노 두 잔, 이렇게 먹어요.
좋은 날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보통 생일은 어떻게 보내시나요?
특별한 건 없어요. 기념일은 그냥 여러 날 중 하나인데요. 예전에도 그랬지만 너무 많은 것에 의미를 부여하면 번거로워지더군요. 그저 잘 살아 있다는 것만도 다행이다. 태어난 게 좋을 수도, 안 좋을 수도 있는데, 그날이 꼭 축복이어야 하나.(웃음) 태어났다는 것의 의미가 뭔가, 내가 해야 할 일이라는 건 뭔가, 내 존재가 마냥 축복일 수도 없고, 슬픔일 수도 없고, 가끔은 막막해지기도 하죠. 생일이면 꼭 존재에 대해 생각하게 돼요.
당대를 풍미한 스타였는데 특별한 날 팬들과 떠들썩한 만남의 자리를 가진 적은 없으신가요?
그때나 지금이나 순수한 마음의 팬들이 있죠. 화려한 파티 형식이 아니라 좀 수줍고, 부끄럽고, 따뜻하고, 소박한 자리. 자신은 줄 것이 없어서 촛불 하나를 부처님께 공양했는데 유독 그 촛불만 꺼지지 않더라 하시던 분, 대문 앞에서 강아지를 안고 있던 제자, 비 오는 날 강의실 밖에서 우산을 들고 기다리던 학생… 그런 순간을 마주할 때마다 마음이 물컹하면서 울컥해요. 저의 순수함을 오히려 돌려 받은 듯한 느낌이었는데, 그에 대한 존중함이 커서 그럴까요? 파티 이런 건 아직도 어색해요. 감사의 자리를 가진 적은 있죠. 하지만 저의 생 전체에 있어서 저 자신을 위해 파티를 연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아요.
화보 촬영을 위해 이틀을 통째로 내고, 매 컷 헤어 메이크업을 바꾸는 수고로움을 기꺼이 감수한 배우는 만난 적이 없어요. 새삼 감동적이었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어요.
전 즐겁지 않은 일은 하지 않아요. 돌이켜보면 자신이 99% 충실하지 않았던 때, 자기만 알고 있던 순간들이 있잖아요. 프로가 된다는 건 더 이상 그러한 후회와 실수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거거든요. 작품이든 화보든, 알고 있는 것을 제대로 활용하여 최선의 결과물을 만드는 게 저의 책임이고, 그 일을 하는 이유 혹은 가치라고 생각해요. 일단 준비는 철저히 하되 하기로 했으면 최고의 스태프들을 믿고 가는 거고요. 지금은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의 구분이 명확해졌어요.
배우 일을 하게 된 걸 후회한 적은 없었나요?
쓸데없는 얘기를 들을 때 그렇죠. 값비싼 명예에 대한 대가를 치르는 것이겠죠. 하지만 그건 누구나 다 감당해야 하는 거 아닐까요? 내가 나무처럼 뿌리 내려 성장해가고 있을 때도, 나의 일을 통해 만들어진 이미지로서의 장미희는 막 날아다니는 거예요. 그래서 저도 그걸 제3자처럼 같이 보곤 해요. “아, 그래?”하면서.(웃음) 보드리야르가 말했듯 시뮬라시옹의 시대잖아요. 떠다니는 이미지와 실체의 간극을 굉장히 실감할 수밖에 없죠.
처음 이 일을 시작한 40년 전에도 그런 생각을 하셨나요?
그러지 못했죠. 저희 언니가 춘향이 오디션에 제 사진을 보내면서 모든 것이 시작되었어요. 제 장래 희망은 초등학교 선생님이었는데, 언니가 그걸 보냈다는 걸 알고도 가만있었으니 제 의지가 한 20%는 작용했다고 볼 수 있겠죠. “제가 재능이 있는 건가요?”라고 물으니 촬영 감독님이 “네가 춘향이의 모습이야” 하시더라고요. 전 “아, 그런가요?”라고 되묻곤 했죠. 그렇게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하나하나 지시해주는 걸 그대로 따라 하면서 배워갔어요. <겨울 여자>의 김호선 감독님은 말씀하셨죠. “한눈도 안 팔고 집중하여 상대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모습에서 이화를 발견했어.”
<겨울 여자>로 시작하는 일련의 필모그래피가 얼마나 대담하게 작품을 선택했는지 보여줍니다.
드라마 <해녀 당실이> 촬영 때 다이빙까지 배웠는데도 막상 절벽에서 뛰어내리려니 너무 무서운 거예요. ‘뛸까 말까’ 하다가 ‘에라, 모르겠다!’ 하면서 했어요. 모든 일이 그런 식이었죠. 내가 생각한 단 하나는 ‘나는 죽지 않는다’였어요. 해야 할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던 거죠. 어릴 때 이렇게 일할 수 있었던 두려움에 대한 자유로움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공포에 대한 자유로움. 게다가 그때나 지금이나 20대는 모든 생각, 추구하는 지향점, 정신세계, 마음, 체력, 에너지 이런 것들이 활화산처럼 막 폭발해 자기를 확장하는 시기니까요.
게다가 당시로선 낯설거나 금기시된 진보적인 여성들을 택했어요. 어떤 특별한 믿음이 있었나요?
전 한 번도 순종적인 역할을 한 적이 없어요. 자기가 살고 있는 현재에서 뭔가를 돌파하려고 한 여성들, 자기 자신뿐 아니라 사회, 정체성, 가치관, 관념, 관습으로부터 자유롭길 원하고 거기에 문을 두드려 열린 사회를 만들고자 한 신여성들이었죠. 자기 마음이, 지성이 이끄는 대로 용기 있는 삶을 택한. 지금도 전 그것이 완성된 삶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살고 있는 태도와도 맞았고요.
그런 태도가 당시엔 낯설게 비칠 수도 있었겠군요.
배우에 대한 이미지가 너무 강해, 다른 행보를 이해 받기란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힘들었죠. 전 그때나 지금이나 좀 진지한 편이라 오해도 많이 받았어요. 하지만 세상이 원하는 그 모습이 저 자신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그러거나 말거나, 저 자신을 믿고 제가 추구하는 삶을 살고자 했어요. 그게 제가 흥미를 느끼고, 할 수 있고, 의미 있다고 생각한 데다 어린 나이에 남의 기준에 맞춘 삶을 살 여력도, 변할 생각도 없었죠. 그런 게 좀 힘들었던 것 같아요. 전 항시 제가 비주류라고 생각하거든요.
〈사의 찬미〉로 상을 받으셨지만, 그즈음엔 드라마에서 더 자주 만났어요. 〈육남매〉처럼 기존 행보와는 다른 드라마부터…
그러니까, 왜 했냐는 거죠?(웃음) <육남매>는 그전부터 작업해온 이관희 감독님이 프로덕션을 차린 후 만드는 첫 드라마였어요. 그냥 함께 하고 싶었어요. 게다가 이 엄마는 기존의 억척 엄마들과는 좀 달랐어요. 위태위태한 운명을 받아들이며 살지만 결코 세파에 찌들지 않는 귀한 심성을 갖고 있었어요. 무엇에도 영향 받지 않는 인간의 품성을 이야기한다는 점도, 이관희 감독 가족의 실화라는 점도 좋았어요. 결국 드라마는 예상대로 흥행에 대대적으로 성공했죠. 16부작에서 100회 편성으로 바뀌었고, 이관희 프로덕션은 이 드라마로 셋업할 수 있었어요. 감독님, 작가님과는 지금도 1년에 몇 번씩 만나면서 가족처럼 지내요. 그럼 된 거죠.
〈엄마가 뿔났다〉 같은 드라마도 의외였지만 신선했어요.
정을영 감독이 만나자마자 “악역입니다” 그러더군요. 그래서 어떤 악역인가 봤더니 매우 매력 있더라고요. 그때만 해도 드라마에서 상류층은 좀 배타적으로, 비인간적으로 그려지는 편이었거든요. 통속극 안에서도 다른 시도를 해야한다고 생각했어요. 패션 감각도 있고 사랑스러운 사모님도 있을 수 있지 않을까 했는데, 센세이션을 일으켰죠.
최근 가장 흥미롭게 임한 작품은 무엇이었나요?
드라마 <맏이>. 고결한 한국 여자의 감수성을 갖고 있던 여자였고, 지금 시대에도, 앞으로도 볼 수 없는 여자예요. 전 그녀를 너무 잘 알아요. 11회분을 찍고 빠지는 스케줄이었지만, 그래도 연기하면서 너무 행복했어요.
학교에서의 삶이 배우 장미희에게는 어떤 영향을 줄까요?
빔 벤더스가 영화 1,000편을 본 것이 가장 큰 공부가 되었다고 하더군요. 그 정도는 아니지만, 저도 일주일에 서너 편은 꼬박꼬박 봐요. 제가 좋아하는 배우, 이를테면 알 파치노와 다니엘 데이 루이스가 나오는 영화는 몇 번씩 볼 때도 있어요. 지금까지도 이렇게 영화를 열심히 보면서 공부하는 사람이 있을까요?(웃음) 또 새로운 세대와 함께 공부하면서 이들의 새로운 생각, 새로운 감각에 눈높이를 맞추고 소통하는 것도 즐거워요. 가르치러 들어왔지만 지금은 오히려 제가 많이 배우고 있어요.
〈보그〉 에디터들이 미모를 유지하시는 방법을 많이들 궁금해했는데, 비결을 알아낸 것 같아요!
미모는 잘 모르겠지만…(웃음) 생각과 감각을 젊게 가져가는 건 중요해요. 그래야 나이 들어도 오래 쓴 솜처럼 둔탁하지 않고 가벼울 수 있어요. 점점 모니터에 비친 내 얼굴이 내가 생각하는 내 얼굴과 다르게 느껴질 때가 많아요. 그래서 얼굴 근육 하나조차도 신경써야 하지만, 그래도 사람이 주는 느낌 자체가 달라지면 안 되죠. 실은 그게 달라질까 봐 얼마나 조심하는데요…(웃음)
신선하고, 비범하고, 아름답고, 젊은 패션을 추구하는 ‘루비(RUBY)족’은 다른 말로 ‘장미희가 되고 싶은 중년 여성들’이라고들 하더군요. 하지만 패션을 대하는 방식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감각 역시 비범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요즘은 어떤 패션에 마음이 가나요?
기본적으로는 정성 들여 만든 웰메이드 옷을 즐기고, 심플하고 모던한 옷도 자주 입죠. 얼마 전에는 메이크업 아티스트 박태윤이 판매하는 캐시미어 머플러도 샀답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릭 오웬스가 새삼 대단한 디자이너인 것 같더군요. 뉴욕에 있을 때부터 그의 옷을 즐겨 입었지만, 입을수록 새로워요. 시류에 편승하지 않고, 순수한 창작 열정과 자기만의 정체성을 지키면서도 늘 개발하려는 노력을 높이 사요. 그래서인지 릭 오웬스의 옷은 오래 입어도 옷이 늙어 보이지 않아요. 입으면 입을수록 현대적인 감성이 느껴져요. 물론 베트멍이나 자크무스 같은 재능 있는 젊은 디자이너의 새로운 차원의 해체주의도 관심을 갖고 흥미롭게 지켜봐요. 전 그들의 실험과 재능을 언제나 지지해요.
- 에디터
- 윤혜정
- 포토그래퍼
- HONG JANG HYUN
- 스타일리스트
- 조윤희
- 헤어 스타일리스트
- 한지선
- 메이크업 아티스트
- 박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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